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가장 먼저 한 일은 창문을 열고 날씨를 체크하는 것이었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하고 금방 비가 올 듯 잔뜩 찌푸린 날씨였다. 공항 뒤에 버티고 선 닐기리 연봉이 구름에 가려 전혀 보이질 않았다. 이런 날씨면 소형 비행기가 뜰 수 없을텐데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홀로 호텔을 나와 거리로 나섰다. 어디선가 양떼들이 몰려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좀솜에서 비행기를 탈 때도 바람이 강하다는 이유로 하루를 완전히 공친 날이 있었다. 공항측에서 안내방송도 없이 하루 종일 기다리게 했던 기억이 났다. 오늘도 그러면 안 되는데일단 예티항공 사무실로 가서 운행 여부를 확인해 보았다. 이 날씨에 비행기가 들어오기는 어렵지만 날이 좋아지면 바로 뜰 수가 있단다. 일단 오전 11시까지는 기다려 보자고 한다.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긴딩이 오늘 항공기 운항이 완전 취소되었다고 한다. 혹시나 해서 일단 버스 티켓부터 구입을 하고 예티항공으로 다시 갔다. 사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30여 분을 기다렸건만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 않는다. 일부러 사무실을 비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서 몇 번인가 큰 소리로 부르니 그제서야 직원이 나타난다. 항상 큰 소리를 내야 마지 못해 움직이는 이곳 사람들의 수동적인 태도가 좀 얄미웠다. 비행기 운항이 취소된 것은 아니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부탁을 한다. 기다리는 일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여기서 포터들과 헤어졌다. 그들은 버스로 먼저 내려가고 우리만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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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한 기다림 속에 포카라에서 첫 비행기가 들어왔다. 공항에 몰려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우리가 탈 두 번째 비행기는 아무 소식이 없다. 애를 태우는 기다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공항 경비를 서는 경찰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지더니 두 번째 비행기 소리가 들려온다. 우여곡절 끝에 일행 모두 비행기 탑승을 완료했다. 20인승 소형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올라 구름을 헤치며 날아간다. 하얀 구름이 옆으로 휙휙 지나간다. 갑자기 구름이 걷히면서 산자락이 눈앞에 나타나기를 몇 번인가 반복했다. 이러다가 산기슭과 충돌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포카라에 무사히 도착했다. 시간이 좀 늦어지긴 했지만 무사히 도착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네팔 현지 여행사에서 보낸 파상이란 친구가 미니버스를 가지고 마중을 나왔다. 파상이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페와 호수 선착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비엔 베뉴 호텔(Hotel Bien Venue). 3층 공사 때문에 시끄러운 것이 흠이었지만 방이 깨끗하고 넓직해서 좋았다. 호텔을 나와 페와 호수 주변을 거닐며 쇼핑도 했다. 급할 것이 하나도 없는 여유로운 일정이었다. 포카라는 산중에 있는 마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치 크고 화려했다. 이 정도면 문명으로의 귀환이라 부를만 했다. 그 이야긴 우리가 돌아갈 시간이 다 되었다는 의미 아니던가.    

 

어디서 식사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배낭 여행을 온 젊은이들이 산마루 식당을 추천한다. 네팔인이 하는 식당인데도 한국 음식을 잘한다고 칭찬을 한다. 그 식당에서 뜻밖에 치링을 만났다. 그가 식당의 주방장이자 주인인 모양이었다. 한왕용 대장의 히말라야 클린 원정대에 요리사로 참가했던 치링은 나와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 사이 결혼도 했고 돌이 넘은 아들도 있었다. 부인을 불러 인사를 시켜 부인과 아이와도 상견례를 마쳤다. 치링이 차려준 한국 음식에 입이 즐거웠다. 거기에 맥주까지 한 잔 곁들이니 부러울 게 없었다. 치링이 우리의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을 이렇게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대미를 장식하게 해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트레킹 요약>

 

밴쿠버 산꾼들과 함께 걸은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은 2009 11 2일 서울을 출발해 11 16일 귀국하는 2주 일정으로 진행을 하였다. 트레킹 자체는 11 3일에 시작해 11 13일 포카라에 도착함으로써 마무리를 지었다. 6명이 참여해 숙식은 모두 트레킹 구간에 있는 로지에서 해결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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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쓰메 2014.01.20 12: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희귀한 풍경들이네요 ㅎㅎ

    • 보리올 2014.01.20 1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팔은 우리 나라 1950년대 또는 1960년대 모습과 비슷합니다. 촌스런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지요.

  2. 설록차 2014.01.22 0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모로 오~래 기억에 남는 여행이셨겠어요...
    저렇게 작은 비행기를 탄 적이 있는데 바람에 흔들리니 롤러코스틀 탄 듯 스릴만점이었어요...사실 무서웠어요...^^

    • 보리올 2014.01.22 07: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히말라야 여행은 여러 지역을 갔었기 때문에 기억이 서로 엇갈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옛 일을 되살려 추억을 꼼씹어 보면 제 가슴엔 늘 훈훈한 여운이 남습니다. 몇 년 못 갔더니 더 생각이 나는군요.

  3. 제시카 2014.03.18 0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혀 다른 풍경이네요... 저런 문화를 접해본적도 없으니 신기하기만 하네요~ 양들 엉덩이에 핑크색 염색된것도 귀엽구.. ㅎㅎㅎㅎ

    • 보리올 2014.03.18 06: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 언제 네팔이나 함께 갈까? 네가 겪어본 세상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배울 점이 많을 거야. 우리 막내 데리고 히말라야 산길을 걸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내 버킷 리스트에 하나 추가해야 되겠다. 그리고 저 양 엉덩이에 칠한 페인트는 주인이 자기 재산이란 것을 표시한 것이란다.

  4. 2015.03.14 0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5.03.14 18: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블로그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무슨 의미신지요? 저는 꾸준하게 글을 올리고 있는데 말입니다. 솔직히 저는 알래스카를 가본 적이 없어서 엔드님 여행 계획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5. 김치앤치즈 2016.08.10 12: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나푸르나 등반 후 먹은 한국음식은 과연 어떤 맛이었을까요...^^
    답글 보니 안나푸르나 또 가실 것 같은데요.ㅎㅎ

    • 보리올 2016.08.10 14: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주 맛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국 음식을 하는 네팔 현지인이 꽤 있습니다. 도시나 트레킹 도중에도 가끔 김치를 맛볼 수 있고요. 네팔은 언제라도 다시 가고 싶습니다.

 

좀솜까지 가는 오늘 구간이 우리가 직접 걷는 마지막 구간이다. 내리막 길이라 부담도 없었다. 그런데 최정숙 회장이 자꾸 숨이 차다고 한다. 고소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다른 데 있었단 말인가. 껄빌에게 최 회장을 모시고 짚으로 먼저 가라고 했다. 가능하면 고급 호텔을 잡아 편히 쉬시게 하라고 일렀다. 나머지 일행들은 걸어서 가기로 했다. 차로 갔으면 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난 이 구간은 반드시 걸어가야 한다고 강조를 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구간이라 차로 휙 지나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내달리는 차량들이 그리 반갑지 않았다. 이제 묵티나트까지 차가 올라오니 안나푸르나 라운드 코스도 반으로 줄은 셈이다.  

 

묵티나트와 좀솜 사이엔 묘한 매력을 가진 마을들이 많다. 토롱 라를 오르기 전에 지나친 산골 마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묵티나트 바로 아래에 있는 자르코트(Jharkot)도 황량한 산악 지형에 자리잡은 무척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지저분한 건물 외벽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지는 그런 마을이다. 계곡 건너편에 흙으로 된 절벽이 나타나고 거기엔 수많은 동굴들이 뚫려 있었다. 사람이 살았던 곳인지, 아니면 스님들이 수도했던 곳인지 어디 물어볼 곳이 없다. 어떻게 저 가파른 곳을 드나들 수 있었는지 몹시 궁금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동굴에 이르는 길이 보이질 않는다. 설마 암벽 등반하면서 들락거리진 않았겠지?  

 

무스탕(Mustang) 초입에 있는 카그베니(Kagbeni)에 도착했다. 무스탕은 아직까지도 작은 왕국을 이루며 살고 있는 신비의 세계다. 지금에야 언론들이 앞다투어 소개를 해서 많은 사실들이 알려져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지의 세계였다. 무스탕 왕국에 들어가려면 특별한 허가가 필요하고 그 신청 비용도 만만치 않다. 높은 지점에서 카그베니를 내려다 보니 마을 풍경이 그리 평화로워 보일 수가 없었다. 상류에서 떠내려온 자갈과 모래가 쌓인 곳을 일일이 손으로 개간해 논을 만들어 놓았다. 마을과 논, 하천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했다. 행여 내가 네팔에 살아야 한다면 서슴없이 이곳을 택하리라 마음 먹었다.

 

에클리바티(Eklebhati)의 한 로지 마당을 빌려 점심을 준비했다. 로지에서 매식을 하지 않고 버너와 코펠을 써서 우리가 직접 준비하는 마지막 식사다. 남은 식량을 모두 처분한다고 짜파게티를 끓이고 후식으로 누룽지와 커피도 준비했다. 나름 격식을 갖춘 점심에 다들 흡족해 하는 모습이다. 지나가는 트레커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우리의 성찬이 궁금했는지 자꾸만 흘낏흘낏 쳐다보고 간다. 에클리바티부터는 강변으로 내려서 하천 바닥을 걸었다. 멀리 좀솜이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빗방울이 돋기 시작했다. 다들 발걸음이 빨라졌다. 하지만 좀솜에 도착했을 때에는 물에 빠진 생쥐마냥 모두가 젖어 있었다.

 

공항과 은행이 있는 좀솜은 제법 번화한 마을이다. 지난 번에는 트랙터가 대중 교통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버스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산골 마을로서는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공항 바로 앞에 있는 스노랜드(Snowland)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좀솜에선 고급호텔에 속한다 했다. 숙박료도 지금까지 지불했던 금액의 세 배가 넘었다. 저녁 식사로 닭백숙을 할 수 있는지 주방에 알아보라고 했다.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으나 닭 한 마리에 3,500루피, 50불 넘게 달라고 한다. 이건 완전 바가지 요금이다. 50불이면 염소 한 마리를 잡을 수 있는 금액인데. 우리가 봉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닭백숙은 취소하고 통상 먹던 메뉴를 골랐다.  

 

그 동안 고생한 포터들에게 저녁을 사기로 했다. 따로 음식을 시켜 먹고 현지인 가격으로 계산해서 청구하라 했는데, 로지 주인은 그것도 외국인 가격으로 청구를 했다. 로지 주인을 불러 따졌다. 주인과 실강이 끝에 반반씩 양보하는 것으로 낙찰을 보았다. 이런 경우가 다반사라지만 뻔히 알면서 당하는 것이 더 억울하다. 트레킹 구간에 있는 로지 주인은 대체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다. 자식들을 외국으로 유학 보내는 경우도 많다. 내 경험으론 로지 주인들은 일반적으로 남자는 까무잡잡하고 깡마른 대신 여자는 통통하고 기름기가 흐른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이 호텔의 노인네 남자 주인은 피둥피둥 살이 찌고 욕심도 많아 보였다. 다음엔 절대 이 집으로 발길도 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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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 적응을 위한 예비일이다. 모처럼 늦잠을 잤다.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해 7시 아침 식사, 8시 출발로 하던 일정을 두 시간 늦추었더니 엄청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두 분 스님은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았다. 웬만하면 숙소에서 쉬라고 했더니 고소 적응을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가겠다고 한다. 포터 중에 가장 어린 리다가 오늘따라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 친구는 올해 15살이다. 우리로 치면 중학생인 셈인데 일찌감치 학교를 때려치우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늘 웃는 얼굴이라 일행들로부터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트레킹 초기부터 기침을 콜록콜록 해대더니 어제는 열이  끓었다. 스님들이 아침, 저녁으로 감기약을 먹이며 이 친구 상태를 체크한다.  

 

강가푸르나 호수를 지나 전망대까지 오르는 코스와 그 반대편에 있는 프라켄(Praken) 곰파까지 오르는 코스 두 가지를 놓고 고민하다가 프라켄 곰파를 택했다. 안나푸르나 산군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엔 곰파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왕복 4시간 걸린다니 소요시간도 적당했다. 포터들은 숙소에서 쉬도록 하고 우리만 길을 나섰다. 마을을 벗어나 급경사 오르막을 어느 정도 치고 올랐더니 조망이 좋아진다. 왼쪽부터 안나푸르나 2, 4, 3봉이 차례로 보이고 그 오른편에는 강가푸르나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강가푸르나에서 생성된 빙하가 길게 아래로 뻗어 있었고, 그 아래에 빙하가 녹은 물이 모여 에메랄드빛 호수를 만들어 놓았다. 호수가 많지 않은 히말라야에서 이렇게 큰 호수를 보는 것은 일종의 행운이라 할만했다.

  

강가푸르나 호수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틸리초(Tilicho) 호수에 닿는다. 그쪽으로 가도 결국은 좀솜에 닿지만 그 코스엔 로지가 없어 텐트를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그 코스를 눈으로 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프라켄 곰파로 오르는 길은 꽤나 가팔랐다. 해발 3,900m에 있는 곰파까지 가려면 400m 높이를 단숨에 치고 올라야 한다. 그리 쉽지는 않았다. 풍경도 처음 보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곰파 아래에 세워진 불탑 근처에서 점심을 준비했다. 미리 씻어온 잡곡을 코펠에 넣고 버너에 불을 붙였는데 고도가 높은 탓인지 잘 익지를 않는다. 네팔 요리사들이 압력밥솥을 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조금 설익긴 했지만 우리 입맛에 맞는 밥이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다른 팀을 수행했던 네팔인들이 절 안으로 들어가기에 나도 덩달아 따라갔다. 나이 지긋한 라마승 한 분이 방문객을 맞아 축복을 내려준다. 사진 몇 장 찍으려다 공짜로 차 한 잔 얻어 마신 죄로 스님 앞에 앉게 되었다. 불에 구운 곡식 몇 알과 노란색 물을 손바닥에 따라주며 먹으란다. 그리곤 내 머리에 경전을 대고 염불을 외우며 축원을 해준다. 불자도 아닌 사람에게 이런 황송할 데가 있나. 하지만 그 축원 의식은 공짜가 아니었다. 노승은 옆에 있는 비닐 봉지에서 가는 실로 만든 목걸이를 꺼내 내게 걸어주더니 손을 벌린다. 성의껏 100루피를 시주했다. 한데 이번에는 다른 봉지에서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목걸이를 꺼내더니 500루피를 달라고 한다. 정중히 사양하곤 밖으로 나왔다.

 

마낭으로 돌아와 이메일 확인한다고 인터넷 카페를 찾았다. 차메에 비해 여기는 고도가 좀더 높다고 1분에 20루피를 받는다. 한 시간을 사용하면 2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이제부터 인터넷 사용은 삼가야겠다. 저녁을 먹고 산책에 나섰다. 카페에서 커피나 한 잔 하자고 일행들을 데리고 나선 길이었다. 난로에 장작을 집어넣고 그 주위에 둘러앉아 이야기 꽃으로 시간을 보냈다. 저녁 7시면 달리 할 일이 없어 잠자리에 들곤 했는데 오늘은 꽤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카페가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서야 로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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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새벽 5시 기상, 6시 공항 집결. 날씨는 맑았고 바람도 없었다. 이런 날 비행기가 뜨지 못한다면 그건 말도 안 된다. 우리 일행을 두 개 비행기로 나누더니 먼저 출발하는 1진은 보딩 패스를 받고 청사로 들어갔다. 우린 그 사이에 건너편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왔더니 비행기 소리가 들린다. 1진이 먼저 비행기에 탑승해 포카라로 떠났다.   

 

2진도 수속을 밟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조그만 소동이 일어났다. 우리가 카트만두로 가져가겠다고 했던 쓰레기가 중량 초과로 거부된 것이다. 몇 차례 설득을 해보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그래서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서 어렵게 가지고 온 쓰레기를 좀솜에 버리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쓰레기를 직접 보고 싶어 했던 네팔 언론의 기자들이 많았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칼리간다키 강 주변의 평화로운 정경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이 깊은 히말라야 산 속까지 굽이굽이 좁은 길들이 이어져 있고,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산기슭을 깎아 계단식 논과 밭을 만들었다. 하늘과 맞닿은 이 높은 고지까지 한 뼘 땅을 일군 이네들의 고단함을 누가 알겠는가? 하늘에서 보는 그 굴곡의 현란함이 오히려 가슴 아프기만 하다.

 

포카라 공항에서 또 하나의 해프닝이 일어났다. 우리 일행을 다시 두 개 비행기로 나눈 항공사에서 보딩 패스를 발급 받았다. 6명인가는 1진으로 먼저 출발을 했다. 근데 우리가 탈 비행기는 출발 시각이 지나도 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대행사 장정모 사장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알아본 바로는,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오던 비행기가 다른 곳으로 항로를 바꿔 가버렸다는 것이다. 이 무슨 황당한 이야기람? 그럼 우리는 언제 가는데? 아무도 모른단다.

 

, 저는 여기서 여행사를 하는 사람이라 눈치가 보여 그러니 형이 대신 카운터에 가서 큰 소리를 쳐주면 안 되겠습니까?” 장 사장이 나에게 부탁을 한다. 왜 하필이면 나야? 속으로 툴툴 거리며 덩치 좋은 후배 둘을 좌우에 거느리고 카운터에 가서 다짜고짜 탁자를 치며 매니저를 불렀다. 의도적으로 영어 반, 한국어 반으로 큰 소리를 냈다. 얼굴이 파래져 매니저가 나왔다. 그는 우리를 2층 라운지로 데려가 과자 몇 개와 음료수를 주며 우리를 달랜다. 빨리 비행기를 부르겠단 약속을 받고 라운지에서 또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카트만두에 도착해 공식 일정을 모두 마쳤다.

 

 

 

 

 

<트레킹 요약>

2005925일부터 10 6일까지 펼친 안나푸르나 클린 원정대의 기록이다. 이 일정은 카트만두를 출발해 카드만두에 도착한 날까지만이다. 난 개별적으로 카트만두에서 합류를 했기 때문에 본대와는 달리 이동을 하였다. 산악인 한왕용 대장이 펼치는 <클린 마운틴 캠페인>의 일환으로 참가한 이 활동에 대해선 <월간 山> 2005. 11월호에 기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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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까지 공항에 도착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전해진 슬픈 소식은 날씨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못하며 언제 올지도 전혀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네팔 국내선은 소형 프로펠러 비행기가 운행하다 보니 툭하면 기상조건을 들어 결항을 한다. 공항 앞에 짐을 쌓아 놓고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며 하루 종일 죽치고 있을 수밖에. 한 마디로 좀솜에서 발이 묶인 것이다. 그 흔한 안내 방송도 없고 어느 누가 나와서 미안하단 말 한 마디 없다. 이런 것을 보면 영락없는 후진국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모든 신경은 공항 출입문에 쏠려 있었다.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었고, 출입문 가까운 곳에 마냥 머물러 있어야 했다. 참으로 무료한 시간이었고 좀이 쑤셨다. 카고백에 기대 잠을 청하는 일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변이 어수선해지면서 포카라에서 비행기가 떴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포카라로 갈 수 있겠단 희망을 갖게 되었다. 비행기가 도착한다는 사이렌 소리까지 내며 공항도 부산을 떨었지만, 비행기는 끝내 내리지 못하고 되돌아가 버렸다.

 

아침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렇게 멍하니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여행하다 보면 이런 일도 생기기 마련이지. 느긋하게 마음을 먹자.’ 스스로를 다독여 보지만 이렇게 손님을 무작정 기다리게 만드는 것 외에는 정말 다른 방안이 없나 하는 회의가 들었다. 손님들이 모두 좀솜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이라면 무슨 대안이 있을 법 한데 말이다. 하여간 이렇게 하루를 완전히 공친 다음에야 호텔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숙소를 시설이 약간 더 좋은 닐기리 호텔로 바꾼 것으로 마음을 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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