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입맛을 잃고 누룽지만 찾는 사람들이 늘어 내심 걱정이 앞선다. 일행들 걷는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졌다. 고소 적응을 위해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고소에 몸이 점점 힘들어지는 모양이다. 물을 많이 마셔라, 천천히 걸어라 다시 한번 주문을 했다. 토롱 라(Thorong La)까진 며칠 더 고생을 해야 하는데 그 때까지 다들 아무 일 없이 버텨주어야 할텐데……. 피상을 벗어나자 길가에 추모탑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거기엔 우리 나라 영남대 산악부의 추모 동판이 있었다. 1989년 안나푸르나 2봉 원정시 대원 두 명이 사망했다고 적혀 있었다.

 

훔데(Humde)가 멀리 내려다 보이는 날망에 섰다. 마을을 따라 곧게 뻗은 하얀 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혹시 저것이 공항 활주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훔데에 공항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마을에 도착해서야 그것이 공항이 맞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그만 관제탑도 세워져 있었다. 1주일에 두 편의 비행기가 포카라로 연결된다 했다. 우리 일행 중에 어느 누가 도저히 토롱 라를 넘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비행기로 돌아서야 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마을을 벗어나면서 또 한 군데의 검문소를 통과했다.    

 

안나푸르나 지역은 티벳과 접경을 이루는만큼 티벳인들이 많이 모여 산다. 길을 걸으며 티벳 불교의 유적 또한 많이 만난다. 그들의 삶이 결코 종교와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도 스님 두 분이 고소 증세도 무척 힘들어 한다. 두통에다 속까지 메슥거리는 증상까지 나타났다. 누가 보아도 전형적인 고산병 증세다. 몸이 힘들면 자주 쉬는 게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이 아니던가. 예정보다 일찍 점심 식사를 하자고 일행들을 불러 세웠다. 안나푸르나 3봉 아래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걸음을 멈췄다. 안나푸르나 2봉과 4봉을 거쳐 3봉까지 왔으니 그래도 많이 온 셈이다. 식당 한 켠엔 빛바랜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다. 우리네 시골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기서부턴 길가에 얼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자락 폭포에도 하얀 얼음이 매달려 있었다. 밤에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 아니겠는가. 앞으론 보온에도 신경을 써야 할 판이다. 뭉지(Mungji)란 마을은 안나푸르나 연봉들을 보기에 아주 좋은 위치에 있었다. 안나푸르나 2봉과 3, 4봉이 모두 한 눈에 보인다. 그 동안 2봉 뒤에 숨어 잘 보이지 않던 4봉까지 뚜렷히 보였다. 브라카(Braka)에 있는 곰파는 규모가 대단했다. 4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절이라 했지만 경내까진 들어가지 않았다. 그 대신 길가에 세워진 천상천하유아독존상을 돌아나왔다.

 

해발 3,540m에 자리잡은 마낭(Manang)에 도착했다. 토롱 라를 넘기 전에 있는 마을 중에선 가장 큰 동네다.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EBC)를 가는 길목에 있는 남체(Namche)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깊은 산골에 있으면서도 웬만한 편의 시설은 다 갖추고 있었다. 병원도 있고 빵집과 카페도 있었다. 산악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작은 영화관도 있다고 했다. 저녁을 먹기 전에 마을을 한 바퀴 휙 둘러보는 것으로 일차 구경을 마쳤다. 우리는 여기서 하루를 쉬며 고소 적응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렇다고 로지에서 마냥 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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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팩타민 2014.01.13 12: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래간만에 트래킹 다녀왔을대가 새록새록 하네요.. ^^
    힘들어도 보는 풍경이 좋아서 가끔 사진을 봐도 두고두고 좋은 곳이 되었어요 ^^

    • 보리올 2014.01.13 1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한 동경이나 향수, 추억을 모두 가지고 계시겠죠. 벌써 히말라야를 다녀오신 모양이군요. 좋은 추억이 되어 삶의 활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동틀녘 수탉 한 마리가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훈련소 신병처럼 벌떡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로지 식당에서 만난 이스라엘 청년들 셋은 라우레비나 패스로 오른단다. 배낭 크기가 장난이 아닌 것을 보아선 요리사나 포터를 쓰지 않고 고행에 나선 친구들이다. 속으론 좀 부러웠다.

 

이제부터는 줄창 내리막인줄 알았는데 계곡으로 내려섰다간 타데파티(Thadepati)까지 가파르게 올라선다. 내리막 길에 오르막이 나오면 좀 짜증이 일기도 한다. 하지만 타데파티부터는 완만한 능선길이 계속 되었다. 타데파티부터 다시 설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능선 상에서 시샤팡마(Shishapangma)를 볼 수가 있다며 지반이 정상부가 매끈하게 보이는 먼 봉우리 하나를 가르킨다. 8,000m급 고봉 중에 가장 낮은 산으로 온전히 티벳 땅에 속해 있는 산이다. 비록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충분히 감격에 겨웠다.   

 

지반이 가르킨 또 다른 봉우리는 1992년 타이항공의 여객기가 추락한 현장이라고 한다. 우리가 어제 지난 탑이 그 때 죽은 일본인 한 명을 추모하기 위해 가족들이 세운 위령탑이라 한다. 어제 그런 이야기를 해줬다면 탑을 지나치면서 고인을 추모라도 했을텐데 지반은 타이밍을 맞추는데 좀 서툰 듯 하다. 네팔에서는 신분이 무척 높은 귀족 출신이라는데 말이다.  

 

망겐고트(Mangengoth)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헬남부(Helambu)로 갈리는 길이 여기서 나뉜다. 쿠툼상(Kutumsang)까지는 무척 지루한 내리막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어떤 연유인지 쿠툼상 들어서는 길목에 폐허 상태로 방치한 빈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10여 년간 정부군과 마오이스트 반군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낮에는 정부군에게 시달리고 밤이면 반군에게 얻어 맞는 일이 계속되니 주민들이 집을 버리고 도망쳐 버린 까닭이다. 지리산 빨치산 토벌 당시의 우리 나라를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했다.

 

쿠툼상은 능선에 자리잡은 큰 마을이었다. 전기도 들어오고 사람들 입성도 풍족해 보였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 표정에도 구김살이 없었다. 모처럼 로지에서 찬물로 샤워도 했다. 전등이 있으니 식당에 모여 앉아 시간을 보내기도 좋았다. 또 하루가 흘렀다. 내일 하루 더 산에서 묵으면 도시로 나가야 한다. 산을 내려가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매미가 성장을 위해 허물을 벗듯 나는 히말라야를 통해 자신의 허물을 벗으며 성장통을 이겨내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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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영숙 2013.10.12 05: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물을 벗어 성장통을 이겨 낸다? 사춘기도 아니고 자신의 더 많은 발전을 위해 노력? 내지는 향상
    할수있는 모색을 찾아 본다라고 사료 되내요...
    사춘기의 growing pain 그런것 인가요? 아니면 다른뜻?.....


    석양 무렵의 대나무 모습, 너무 아름다와요,,,

  2. 보리올 2013.10.12 06: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 생각이 많이 나시는 모양이네요. 신체적인 성장도 있지만 정신적인 내면의 성장통도 있다고 봅니다.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라고 보면 되지요. 전 히말라야에서 마음을 비우는 공부를 하고 싶은데 잘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계속 노력해야겠죠.

 

어제는 쌀이 부족하다고 현지에서 쌀을 사더니 오늘은 김치가 떨어졌단다. 2주 트레킹인데 1주도 채 되지 않아 물자 부족 현상이 벌어지다니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어떤 꿍꿍이가 있지 않나 의심도 했지만 일단 카트만드에 긴급 공수를 요청했다. 로지 주인이 청구하는 금액을 보면 물가도 엄청 올랐겠지만 우리를 봉으로 아는 그네들 의식도 엿볼 수 있었다. 야채나 장작 가격이 엄청 비싸게 청구되어도 가이드나 요리사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은 철저히 로지 주인편이란 것을 트레킹 내내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오늘 구간은 강을 따라 고도를 700m 내렸다가 다시 500m를 올려 툴루샤부르(Thulo Syabru)에 닿아야 한다. 밤부를 지나 절벽에 석청이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계곡을 오르면서 본 적이 있었지만 그 땐 무엇인지 잘 몰랐다. 사람들이 석청을 따려고 길게 줄사다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네들에게 석청을 사면 진짜 석청을 살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네팔에서 진짜 석청을 사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툴루샤부르에는 전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다랑이논이긴 하지만 경작지가 제법 넓어 부촌이란 냄새가 풍긴다. 곡식을 추수하는 농부들의 바쁜 손길을 느낄 수도 있었다. 호텔 라마에 투숙을 했다. 이름에 호텔이란 말이 들어갔다고 시설이 로지완 연판 달랐다.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방에 딸려 있었다. 모처럼 호강을 한다. 우리 손에 없다가 하나라도 있으면 그것이 바로 행복인데 우리는 너무 많은 것에 익숙해 산다.

 

모처럼 영양 보충을 위해 닭을 두 마리 사서 백숙을 준비하라고 했다. 마리당 1,200루피씩 주었으니 좀 비싸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한 마리는 우리 일행이, 다른 한 마리는 현지 스탭들이 먹도록 했다. 식사 후 마을 구경에 나섰다. 논에는 원숭이 떼가 무리를 지어 다니고 있었고, 멀리 가네쉬(Ganesh) 산군이 눈에 띄었다. 이 마을에서 티벳 국경이 직선거리로 불과 몇 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한다.   

 

마을엔 인터넷 카페도 두 군데나 있어 트레커들을 유혹한다. 그 중 한 곳을 들러 한글 지원이 되냐고 물었더니 대답도 않고 무턱대고 컴퓨터부터 켠다. 한글이 되지 않아 되돌아 나오는데 일단 컴퓨터를 켰으니 돈을 달란다. 점잖게 거절하고 나왔다. 형편이 괜찮아 보이는 마을인데도 우리를 발견한 아이들은 예외없이 초코렛이나 펜, 돈을 요구했다. 어느 녀석은 그냥 지나치는 우리에게 욕을 해대는 것을 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혼내 줄 수도 없으니 이방인인 우리가 참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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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플량에서 레테까지 이틀 구간은 안나푸르나 라운드 코스에 속해 있기 때문에 길도 넓직하고 숙박시설도 꽤 좋은 편이다. 칼리간다키(Kaligandaki) 강을 따라 고도를 조금씩 높이면서 천천히 걸어 오른다. 전형적인 네팔 산길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이 길은 옛날부터 티벳과 네팔을 오가며 장사하던 상인들이 다니던 길이라 오늘도 여전히 등짐을 진 말떼와 몰이꾼이 지나간다. 말똥을 피해 조심조심 발걸음을 떼지만 말똥 냄새를 피할 방법은 없다.

 

말떼와 몰이꾼들의 쇳소리에 더해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양떼들, ‘나마스떼를 외치며 손을 벌리는 개구쟁이들까지 모두 시간이 정지된 듯한 풍경들이다. 고소 적응에 대한 걱정 때문에 모두가 마음 편하게 이 풍경을 즐기진 못한다. 처음 히말라야를 찾은 사람들이 고산병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는 쉽지 않은 법. 그러나 여기서 가타부타 이야기할 것은 없다. 일단은 일정 고도까지 올라가서 몸의 반응을 유심히 지켜보는 수밖에.

 

티플량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앞에 마오이스트 한 명이 나타났다. 소총 대신 영수증 철을 들고 통행료를 요구한다. 네팔 반군들과 정부군 사이에 수시로 교전이 벌어진다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통행료만 제대로 내면 반군들이 외국인 트레커를 노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통행료 수입이 그들 자금줄에 큰 몫을 차지한다는 반증이리라. 한 대장이 겁도 없이 통행료가 비싸다며 협상에 들어가 일인당 10달러 선으로 합의를 보았다.

 

타토파니(Tatopani)에서 수제비로 점심을 먹었다. 얀은 우리 걱정과는 달리 수제비도 맛있게 먹는다. 타토파니는 뜨거운 물이란 의미로 온천이 있음을 의미한다. 아직 고소 적응을 걱정할 높이는 아닌지라 일부는 온천욕을 하러 갔다. 실외에 크지 않은 노천탕이 있었다.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허름한 시설도 있었는데 손님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3시 조금 넘어 다나(Dana)에 도착해 텐트를 쳤다. 한 대장이 요리사 치링에게 닭도리탕을 주문했다. 치링은 작은 키에 수줍음을 많이 타는 친구인데, 한국 음식은 꽤 잘 한다. 치링이 만든 음식치고 맛이 없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먼 고지로 닭을 팔러 가던 닭장수가 졸지에 홍재를 했다. 한 마리에 300루피씩 열 마리를 졸지에 팔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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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온도가 영하로 떨어진 것이 분명했다. 텐트 안 물통의 물이 모두 얼어 버렸다. 삼도(Samdo)로 향했다. 어제 베이스 캠프를 다녀온 탓인지 다리가 무겁다. 길은 그리 가파르지 않았다. 3시간 걸려 도착한 삼도. 티벳(Tibet)으로 가는 교역로가 있던 곳답게 수십 마리 야크 떼에 짐을 싣고 있던 대상들을 만났다. 무슨 물건을 나르냐고 물었더니 주로 소금과 곡물이 교역 대상이란다. 티벳까지 보통 6일을 걸어간다니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오늘 점심도 칼국수. 점심을 마치고 잠시 낮잠을 청했다. 고도 탓인지 바람이 차갑게 느껴진다. 아침에 마나슬루 봉과 작별을 고했는데 여기서 다시 만났다. 그런데 방향이 달라져 그런지 마나슬루의 모습이 영 낯설어 보였다. 다람사라(Dharamsala)까지 천천히 걸으며 고도를 1,000m나 올린다. 고도 4,000m를 지난 지도 한참이 지났다.

 

다람사라는 인가 한 채 없는 허허벌판이다. 해발 4,460m의 초원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어제 베이스 캠프를 다녀온 때문인지 고소 적응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늘 우리보다 늦게 도착하던 포터들이 오늘따라 먼저 도착해 텐트를 쳐놓았다. 이틀을 일 없이 편히 쉬더니 원기가 뻗치는 모양이다. 나무도 한 그루 없는 이 황량한 벌판 어디서 나무를 구했는지 모닥불을 피워 추위를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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