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심하진 않지만 나도 감기 기운이 있다. 비상약품 주머니를 뒤져 약을 복용했다. 한화정이 감기 몸살로 너무 힘들어 한다. 배낭을 뺏어들고 그 뒤를 따랐다. 레테에서 좀솜으로 오르는 이 길은 안나푸르나 라운드 구간의 일부다. 이 길엔 묵티나트(Muktinath)로 성지 순례를 다녀오는 인파들이 엄청 많았다. 묵티나트는 티벳 불교에서도, 힌두교에서도 성지로 친다. 그래서 멀리 인도에서도 성지 순례차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빨간 사리를 걸친 여자들이 유독 많아 푸른 산길이나 회색 마을과는 대조가 되었다.    

 

사과 재배로, 그리고 사과주로 유명한 투쿠체(Tukuche)에서 삶은 감자로 점심을 대신했다. 네팔 감자는 크진 않지만 맛은 꽤 좋은 편이다. 그래도 감자만 먹기엔 너무 퍽퍽해 두세 개 집어 들면 식사 끝이다. 김치나 동치미와 곁들이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로지에서 외국인을 위해 만든 메뉴는 천편일율적이라 우리가 택할 수 있는 폭이 그리 크진 않다. 현지인들이 먹는 달밧은 무척 싸지만 외국인이 똑같은 달밧을 시켜도 몇 배나 비싸게 받는 것이 그들 관례다.   

 

트랙터 두 대를 빌려 좀솜(Jomsom)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먼지를 풀풀 날리며 질주하는 트랙터 때문에 길을 걷는 행인들은 먼지를 뒤집어 쓴다. 한 시간 만에 좀솜에 도착했다. 좀솜은 마치 준사막 지대의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오히려 황량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마을이었다. 그래도 이 산골 마을에 은행도 있고 공항도 있다. 좀솜에서 하룻밤을 묵고 비행기로 포카라로 이동한 후, 다시 비행기로 카트만두로 이동하는 일만 남았다. 이번 트레킹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트레커스 인(Trekker’s Inn)이란 호텔에 투숙했다. 명색이 호텔이라 이름을 붙였기에 시설이 어떨까 궁금했다. 혹시가 역시로 바뀌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객실에 허름한 샤워실과 화장실이 있다는 것이 산속 로지와는 다른 점이다. 그래도 그 게 어디냐. 화장실 찾아 건물 밖으로 나가 헤매는 일만 없어도 훨씬 좋지 않은가. 네팔에는 이런 불편을 자연스레 감내하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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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지인 2013.01.14 1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아빠 감자사진보고 바로 감자 쪄먹은거 아세요? 너무 맛있게 생겼네요.. 그나저나..저 당나귀들은.. 얼마나 힘들까요..? 저렇게 무거운걸 들고 오래 걷는데도 불평한번 못하니....

  2. 이해인 2013.01.14 1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녀린 여자들이 슬리퍼만 신고서 저 가파른 산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내려오는 모습이 마냥 신기해요. 게다가 머리에 이는 무겁게 생긴 저 짐들은 또 어떻고요. 네팔의 우먼파워가 대단하네요!

  3. 보리올 2013.01.15 0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지인 ; 감자 사진을 본 김에 감자를 쪄 먹었다? 네 식욕을 돋구려면 앞으로 음식 사진을 많이 올려야겠다. 말라깽이 빨리 벗어나야지. 당나귀 신세가 가엾다고? 글쎄 말이다. 왜 하필이면 네팔에서 태어나 그 고생을 하는지... 네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근데 그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다 생각의 차이지.

    @ 해인 ; 네팔 여자들 무척 강하지. 남자들은 대충 놀고 먹고 여자들은 아이들 키우고 농사 짓고 밥하고. 힘도 무척 세단다. 20살 정도된 아가씨가 나뭇짐을 등에 지었는데 내가 한 번 머리로 메어 보려고 하다가 결국 못 들었단다. 너무 무거워서. 그네들은 그걸 들고 10리 길도 마다 않고 짐을 옮기지. 그들은 어쩌면 운명이라 생각하고 순응할지 모르지만 아빤 속으로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웠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