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게(Shange)부터는 산비탈에 누런 다락논이 나타나고 수확을 앞둔 나락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살림살이도 위쪽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노새 행렬이 우리 길을 막는다. 물 한 모금 마시겠다고 잠시 꾀를 내던 노새는 몰이꾼이 던진 돌팔매로 등짝을 얻어 맞았고, 몰이꾼 앞에 선 녀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몰이꾼이 휘두르는 회초리에 수시로 맞는다. 내 앞에 있던 녀석은 내가 부담스러웠는지 방귀로 응수를 한다. 30여 분간 행렬을 따르며 재미있는 구경을 했다.
바훈단다(Bahundanda)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쉬었다. 우리가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군인들이 총을 들고 왔다갔다하고 주민들도 시끌법적했다. 바훈단다 식당에서 오랜만에 문명의 이기를 보았다. 트레킹에 들어간 이후 TV를 처음으로 본 것이다. 그것도 대우전자 제품을 말이다. 옷을 잘 차려입은 가족들이 줄줄이 올라온다. 처음엔 살림살이가 넉넉한 모양이다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네팔 다샤인(Dashain) 축제를 맞아 귀향하는 행렬이었다. 우리나라 추석 귀성과 똑같았다.
부불레(Bhubhule)에서 비포장도로를 만났고 쿠디(Khudi)에선 차량 경적소리를 들었다. 문명 속으로 귀환한 것이 분명했다. 꼬박 14일 걸려 마나슬루를 한 바퀴 돌아 트레킹 끝지점에 도착한 것이다. 한 대장이 덴지에게 양 한 마리를 잡으라 지시를 했다. 잔치를 벌이자는 것이다. 내일이면 쿡과 세르파, 포터들과 이별을 하기 때문이다. 후미를 맡았던 세르파 친구가 내게 수박색 오렌지를 하나 건넨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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