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이라 이름을 붙이고 찾아간 두 번째 장소는 서울 공덕동의 성우이용원이었다. 머리 깍기가 마땅치 않은 캐나다라서 고국 출장길에 머리를 깍겠다 벼르던 참에 아들에게 서울에서 오래된 이발소를 하나 찾아보라고 했더니 공덕동에 있는 이 이용원을 추천한다. 만리동 고개에서 배문고 쪽으로 가면 있단다. TV, 신문에도 소개된 유명한 곳이란 이야기보다는 3대가 이발로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는 이야기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성우이용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라고 한다. 1927년에 문을 열었다니 벌써 80년을 넘겼다. 이발소를 처음 본 인상이 너무 좋았다. 허름하기 짝이 없는 외관은 내가 찾던 것과 똑같지 않은가. 슬레이트 지붕과 페인트 칠이 벗겨진 문틀에선 세월의 관록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런 이발소를 찾을 수 있었다는 행운에 내심 무척 즐거웠다.
이발소 안에 있는 모든 집기, 비품은 마치 골동품 전시장 같았다. 연륜이 서린 이발 도구는 물론이고 면도칼, 말가죽으로 만들었다는 칼갈이, 면도용 거품을 만드는데 쓰는 솔, 무쇠 난로, 세면대, 조리라 불리던 물뿌리개, 이발 의자, 의자 위에 아이들 앉히던 판자 등 모두가 내가 어릴 적 보았던 물건들과 똑같았다. 역사와 전통이 서린 이런 집기들을 여기서 보다니 이 무슨 횡재란 말인가.
외할아버지, 아버지 뒤를 이어 48년이란 긴 세월을 이발이란 한 우물을 파면서 살아온 이남열 선생을 만났다. 그는 가히 ‘이발 장인’이라 부를만 했다. 60대 초반의 나이에 비해 얼굴은 무척 해맑은 편이었다. 그는 이발 기술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발 기술을 완벽히 익히려면 30~40년의 세월이 필요한데 요즘은 그렇게 배우려는 이발사가 없다고 한탄을 하신다. 기술을 제대로 익히지 않고 남의 머리를 만지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그나저나 이 기술을 물려받을 사람이 마땅치 않아 고민이 많단다.
가위를 바꿔 가며 머리카락을 자르는 정성이 대단해 보였다. 마치 한올 한올씩 자르는 듯 했다. 미장원에서 기계로 휙휙 깍아대는 이발과는 맛과 격이 달랐다. 이발을 하면서 손님들과 나누는 이야기도 옛날 방식과 같다. 내게도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털어 놓는다. 이발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머리를 자르고 면도, 세발까지 해서 2만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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