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동부에서 3년이란 시간을 보낸 뒤 모든 짐을 훌훌 벗고 고국 방문길에 올랐다. 연세가 아흔을 넘긴 모친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여기저기 인사할 곳도 꽤 많았다. 2주간의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주마간산으로 지방도 다녀왔다. 이번 방문길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가는 곳마다 재래시장을 들르고 싶었다. 재래시장은 서민들의 고단한 삶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면서도,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의외로 삶의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라고나 할까. 고향의 정취를 맛보는 기분이 들어 난 재래시장을 좋아하고, 그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것 또한 즐긴다.
캐나다에도 이와 비슷한 재래시장이 있기는 하다. 우리의 장터처럼 도심의 빈 공간에서 주말마다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이 열린다. 직접 수확한 농산물을 가지고 나오는 농부가 있는가 하면 집에서 구운 빵을 가지고 나와 팔기도 한다. 손수 만든 공예품을 진열해놓고 파는 예술가도 있다. 여기라고 사람사는 냄새가 빠질 일은 없지만, 주말에만 열린다는 시간적인 제약이 있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재래시장처럼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상설시장이 그립다. 시장에서 사고파는 물건보다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재래시장엔 싸면서도 푸짐한 먹거리와 막걸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종로5가역 근처에 있는 광장시장이었다. 1905년에 한성부 허가를 받아 시장이 탄생했다니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나는 얼마 전에 방영된 ‘다큐멘터리 3일’이란 TV프로그램을 보고 나서야 그 존재를 알 수 있었고 다음 고국 방문길에 꼭 가보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광장시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닭 한 마리’ 골목은 꽤 여러 번 갔었는데 여기는 솔직히 처음이었다. 결론적으로 광장시장에 있는 먹자 골목의 엄청난 규모에 놀랐고, 그 안을 가득 메운 엄청난 인파에 또 한 번 놀랐다. 시장은 북적이는 사람들로 너무나 복잡했다. 뒤에서 미는 사람들 때문에 저절로 앞으로 나가는 형국이었다. 인산인해란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았다. TV에서 방영한 효과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이렇게 사람이 많았는지 도통 모르겠다. 대박났다는 표현이 바로 이럴 때 쓰는 말 아닐까.
열십자 형태의 시장 안을 음식점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음식점이 그리 많음에도 월급쟁이들이 퇴근하는 저녁 무렵에는 자리잡기도 힘이 들었다. 모든 종류의 길거리 음식이 여기 집결한 것 같았다. 마약김밥과 육회, 그리고 직접 맷돌로 녹두를 갈아 만든 빈대떡이 광장시장을 대표하는 메뉴라 했지만, 그 외에도 고를 수 있는 메뉴가 무척 많았다. 순대와 떡볶이, 어묵, 칼국수, 매운탕, 모듬전, 팥죽, 족발 등등. 그 모두를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다. 몇몇 가게는 유명세를 타는지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무척 길었다. 이웃 간에 맛은 비슷할텐데 유명세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몇 가지 음식으로 배를 채웠더니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빨리 일어나라는 눈치를 준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시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흡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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