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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빵의 유혹에 경주를 가다

여행을 떠나다 - 한국

by 보리올 2013. 12. 2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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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만나러 경주에 다녀온다는 동생을 따라 나섰다. 당일에 다녀오려면 시간이 빠듯할 것이 분명함으로 경주를 둘러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천년고도 경주를 이렇게도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쳐 지나가는 이런 여행도 보는 관점에 따라선 재미있을 것 같았다. 사실 무작정 따라 나선 배경에는 동생이 언급한 황남빵이 많은 작용을 했다. 예전에 부산을 출장가는 경우 김해공항에서 경주빵을 사다가 아이들에게 주었던 기억이 살아났다. 그래, 경주빵의 원조라는 황남빵을 먹어보자. 황남빵이 눈앞에 어른거리자, 앞뒤 가리지 않고 동생 차에 올라타게 된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에서 점심 시간을 맞았다. 난 본래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급하지 않으면 고속도로를 벗어나 현지 식당을 찾곤 했다. 마침 차가 영동을 지나고 있어 동생에게 황간 인터체인지로 나가자고 했다. 거기엔 예전에 산행을 다니면서 자주 들렀던 올뱅이 국밥집이 있었다. 이 지역에선 올갱이를 올뱅이라 부른다.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오면 바로 식당이 보이는데, 그래서 식당 이름을 인터식당이라 붙인 모양이었다. 촌스러운 영문 이름이었지만 난 정이 느껴져 좋았다. 된장을 푼 국물에 부추와 올갱이를 넣어 팔팔 끓인 국밥이 시원했다. 예전에 먹었던 맛과 별반 다르지 않아 기분이 좋았다.

 

 

 

경주에 도착해 황남빵을 만드는 가게부터 들렀다.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빵을 만들어 파는 가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다니 놀랍기만 했다. 우리도 순서를 기다려 몇 박스를 샀다. 어머니 드릴 것도 챙겼다. 1939년부터 만들어온 빵이라니 그 하나하나에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얇은 껍질 안에 듬뿍 넣은 팥앙금이 역시 일품이었다. 천년고도 경주에서 만든 빵이라 더 맛있었나 보다. 우리가 아는 경주빵은 황남빵을 만들던 기술자가 독립해서 만들었다 한다. 그러니 원조를 따지면 황남빵이 먼저인 셈이다.

 

 

 

 

 

  

오랜 만에 보는 보문호는 조용하고 고즈넉해서 좋았다. 늘 사람들로 붐비던 곳인데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호수 위로 떨어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호숫가를 좀 걸었다. 이제 다시 올라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경주에 있는 한정식집 옛정이란 곳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그렇게 비싸지도 않은 금액에 반찬 가짓수가 엄청 많이 나왔다. 조금씩 맛을 보아도 배가 부를 것 같았다. 한국의 인심과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상차림이었지만 남은 음식은 모두 버릴텐데 너무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나라는 식량이 부족해 어린 아이들이 굶어 죽는다던데 우리는 음식을 버려야 하다니낭비란 생각이 들어 공연히 한정식을 찾았구나 후회를 했다.

 

 

 

 

 

   

동생은 원주로 바로 간다고 해서 상경은 KTX를 이용하기로 했다. 경주역까지 태워주면서 보문단지에 있는 현대호텔에서 샀다며 동생이 다보빵을 건넨다. 이 빵은 황남빵을 겨냥해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견과류와 고구마, 무화과를 넣어 두뇌 영양에 좋다고 자랑을 한다. 소는 팥대신 강낭콩을 썼다. 그 맛이 궁금해 그냥 가지고 올라갈 수가 없었다. 열차 안에서 하나둘 꺼내 먹다가 보니 박스에 들은 스무 개를 모두 먹어치웠다. 경주 황남빵과 다보빵으로 배를 채운 특이한 날이었지만, 동시에 식탐을 어찌 하지 못한 하루이기도 했다. 하여간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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