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운이 아주 좋은 사람이다. 왜냐 하면 나에겐 산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들과 동무가 되어 국내에 있는 많은 산을 올랐을 뿐만 아니라 그 녀석이 초등학교 6학년였을 때는 단둘이서 백두대간 구간 종주도 마쳤다. 이제 청년이 된 아들은 여전히 산에 드는 것을 좋아한다. 캐나다에서도 둘이서 종종 산에 오르기도 했고, 때로는 텐트와 침낭을 짊어지고 야영을 떠나기도 했다. 2009년 여름에도 서로 일정을 맞춰 캐나다 로키로 야영을 떠나자 합의를 보았다.
캐나다 로키는 겨울철이 길고 눈이 많이 쌓여 산행에 좋은 시기는 통상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을 친다. 산행 대상지를 고르고 일정을 짜고 있는데 아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고국에 있는 고등학교 친구 두 명이 이번 여름에 캐나다를 오고 싶어 하는데 그 둘을 데리고 함께 야영을 가도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나야 아들하고 둘이서 호젓하게 보내는 시간을 원하지만 아들 친구들이 함께 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 않은가.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곁눈질해 보는 것도 나에겐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아들 친구 중 문환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곧 학사장교로 입대를 한다 했고, 승진이는 군복무를 마치고 이제 복학을 준비하고 있다 했다. 내가 그 친구들을 만난 적은 없었지만 아들을 통해 그들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던 터였다. 그렇게 해서 20대 초반의 젊은피들과 2박 3일간 백패킹을 나서기로 했고, 커다란 배낭 4개와 텐트 2동, 취사구와 식량을 준비해놓고 젊은 친구들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 4명이 요호(Yoho) 국립공원에 있는 타카카우 폭포 주차장에 모인 것은 2009년 7월 27일였다. 한국에서 온 두 젊은이는 이런 백패킹이 처음이라고 했다. “산행 경험이 많진 않지만 그래도 너희는 젊지 않으냐.”며 젊은 친구들에게 무거운 짐을 맡겨 버렸다. 난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가볍게 메고 싶었다. 텐트 한 동, 식량 한 봉지의 무게가 나중에 어떤 부담을 줄지 전혀 감이 없는 이 친구들은 흔쾌하게 내 짐을 받아 배낭에 집어 넣었다. 산행에 임하는 자세는 일단 합격점이었다.
요호 국립공원에서 유명한 트레일로는 아무래도 요호 밸리(Yoho Valley)와 오하라 호수(Lake O’Hara)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요호 밸리에 있는 트레일 몇 개를 연결해 걷기로 했다. 첫날 산행은 아이스라인(Iceline) 트레일을 걷는다. 산행 기점인 위스키 잭(Whiskey Jack) 호스텔 주차장부터 첫날 야영을 할 리틀 요호 캠핑장까지는 10.4km 거리에 등반 고도는 690m. 배낭 무게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그리 어려운 코스는 아니다.
낙차 254m를 자랑하는 타카카우 폭포의 우렁찬 포효 소리를 들으며 산행을 시작했다. 햇볕은 따가웠고 날은 무더웠다. 헉헉 숨이 막히고 땀이 비오듯 흘렀다. 초반부터 시작되는 오르막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요호 패스와 요호 호수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 산허리를 에둘러 에머랄드 빙하(Emerald Glacier) 아래를 횡단했다. 두 군데에서 신발을 벗고 빙하가 녹은 시냇물을 건너야 했다. 불과 1분이나 물에 발을 담갔을까. 너무나 차가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 섬뜻한 차가움에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빙하는 크레바스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 빙하 녹은 물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이 물에 빠지면 체온이 금방 떨어져 몇 분이면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6.4km 지점에서 해발 2,210m의 아이스라인 서미트(Iceline Summit)에 닿았다. 오늘의 최고점이다. 어느 새 날씨가 바뀌어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도 고산지대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모양이다.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리틀 요호 계곡에 걸려 있는 다리를 건너자, 아이스라인 트레일은 끝이 나고 리틀 요호 밸리 트레일로 올라섰다. 다리를 건너 바로 캠핑장을 만났다. 해발 2,075m 높이의 캠핑장에 텐트 두 동을 쳤다. 두 젊은이는 텐트치는 것도 서툴러 아들이 먼저 시범을 보여야 했다. 후두둑거리는 비를 맞으며 저녁을 준비한다. 어린 친구들에게 조리를 맡길 수 없어 식사 당번은 내 몫이다. 배낭에 눌린 어깨가 아프다곤 하지만 그 친구들 표정은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역시 젊음은 부러움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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