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마찬가지로 텐트는 그대로 두고 배낭만 꾸려 요호 빙하(Yoho Glacier)를 다녀오기로 했다. 오늘 우리가 걸을 곳은 요호 밸리 트레일이었다. 지도 상에는 트윈 폭포 캠핑장에서 요호 빙하까지 편도 2.3km라 표시되어 있어 그리 멀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트레일이 공식적으로 끝나는 지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요호 빙하는 거기서 바위를 넘고 물길을 건너 한참을 더 가야 했다. 4km가 넘는 지점까지 올라갔지만 우리 앞에 가파른 절벽과 폭이 제법 넓은 급류가 나타나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했다. 저 앞에 빙하 끝단이 보이긴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올라가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은 날씨가 더 없이 좋았다. 구름이 좀 있기는 했지만 푸른 하늘을 가리진 못했다. 우리 앞을 가로막은 뒤틀린 지층은 여러 가지 색깔과 무늬를 내포하고 있어 아름답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자연이 빚은 조각품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캔버스에 그린 유화라고나 할까. 온통 바위 투성이인 이 계곡에 빨간 꽃 몇 송이를 피운 인디언 페인트브러시(Indian Paintbrush)의 노력은 또 어떤가. 연약해 보이는 야생화 한 그루의 생명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올 뿐이었다. 산은 정직하게 발품을 판 사람들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보여준다.
요호 빙하에서 녹은 물은 계곡 사이로 물길을 만들어 아래로 흘러 내려간다. 이 요호 밸리로 흘러드는 수많은 물줄기가 서로 섞여 요호 강을 만들고, 요호 강은 킥킹호스(Kicking Horse) 강으로 합류했다가 결국은 컬럼비아(Columbia) 강이 되어 태평양으로 들어간다. 동쪽에 있는 산자락이 지정학적으로 꽤나 중요한 대륙분수령(Continental Divide)인지라 아이들에게 잠시 그 의미를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륙분수령은 한 마디로 북미 대륙의 물줄기를 나누는 역할을 한다. 요호 밸리처럼 대륙분수령 서쪽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모두 태평양으로 흘러가고, 그 반대편으로 떨어지면 대서양이나 북극해로 흘러간다.
캠핑장으로 돌아와 점심으로 라면을 준비했다. 우리가 요호 빙하를 다녀온 사이 텐트는 잘 말라 있었다. 이제 짐을 싸서 하산할 일만 남았다. 여기서 타카카우 폭포 주차장까지는 6.6km. 오르막이 없는 평탄한 길이기에 두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어떻게 해서 폭포 이름에 웃는다는 의미가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래핑(Laughing) 폭포는 제법 수량이 풍부했다. 바위면을 타고 졸졸 흘러내리는 포인트 레이스(Point Lace) 폭포도 둘러 보았다. 이미 타카카우 폭포와 트윈 폭포를 보고난 후라 감동은 그리 크지 않았다.
타카카우 폭포를 다시 만났다. 요호 밸리를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온 것이다. 우렁찬 폭포 소리가 우리의 무사 귀환을 축하하는 오케스트라 연주 같았다. 실제로 다람쥐 한 마리가 축하 행렬로 나와 두 발로 서서는 우리 귀환을 지켜 본다. 이렇게 해서 2박 3일의 백패킹 일정을 모두 마쳤다. 모처럼 젊은 친구들과 며칠을 함께 보냈더니 내가 젊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모두 이해할 수도 없었고 내가 끼어 들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지만, 난 꽤나 기분이 들떠 있었고 절로 콧노래가 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문환이, 승진이, 그리고 아들 종인에게도 이 짧은 추억이 캐나다 로키를 평생 기억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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