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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슈잉③] 아그네스 호수(Lake Agnes)

산에 들다 - 캐나다 로키

by 보리올 2013. 8. 1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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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모어 로지에서 편하게 하루 묵었다. 밴프로 출발할 때까진 설퍼 산 뒤에 있는 선댄스 캐니언(Sundance Canyon)에서 마지막 스노슈잉을 즐기려 했다. 그런데 그 동안 우중충했던 지난 이틀과는 달리 구름 사이로 군데군데 파란 하늘이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날은 곤돌라를 타고 설퍼 산에 올라 밴프 주변 산세를 음미하고 고봉들이 펼치는 순백의 향연을 감상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일행들의 동의를 얻어 급히 방향을 설퍼 산으로 바꿨다.   

 

날씨는 내 기대만큼 그렇게 화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밴프를 둘러싼 봉우리들을 둘러보기엔 충분했다. 산자락을 온전히 보여준 것만 해도 어딘가. 산 봉우리 정상은 대부분 하얀 눈으로 덥혀 있었지만, 중턱 아래로는 눈이 많이 녹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나머지 눈도 조만간 녹아 없어질 것이란 의미 아니겠는가. 4월에 눈 구경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걸어 1902년부터 1933년까지 기상관측소로 사용했다는 조그만 건물까지 다녀왔다. 우리가 스노슈잉을 하려 했던 선댄스 밸리가 바로 아래 내려다 보였다.

 

 

 

 

 

선댄스 지역은 이미 설퍼 산에서 충분히 감상하였기에 마지막 산행지를 바꾸기로 했다. 퍼뜩 머리에 떠오른 곳은 레이크 루이스(Lake Louise)에서 오르는 아그네스 호수(Lake Agnes). 다행히 나를 뺀 일행들 중에는 겨울철 아그네스 호수를 본 사람은 없었다. 레이크 루이스도 꽁꽁 얼어 있었다. 날씨가 맑아 호수 뒤로 빅토리아 산(Mt. Vicoria)이 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스노슈즈를 들고 레이크 루이스 얼음 위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미러 호수(Mirror Lake)까지 경사는 그리 급하지 않았지만 3km 거리가 내내 꾸준한 오르막 구간이었다. 머리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날 때가 되어서야 미러 호수에 닿았다. 급격히 솟은 빅 비하이브(Big Beehive)가 성긴 머리를 가진 정상부를 드러내며 우리를 맞는다. 얼마를 더 오르자 시야가 확 트이며 페어뷰 산, 애버딘 산, 르프로이 산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리틀 비하이브 가는 것은 생략했다. 갈림길에서 직진해 아그네스 호수 곁에 지은 티하우스에 도착했다.

 

 

 

아그네스 호수를 처음 본 일행들 입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우리 뒤로는 보 밸리(Bow Valley) 건너편으로 레이크 루이스 스키장과 설산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 시선을 강하게 잡아끈 것은 꽁꽁 얼어붙은 호수면에 펼쳐진 설원과 그 뒤에 위압적으로 솟은 악마의 엄지 손가락(Devil’s Thumb), 그 오른편에 자리잡은 화이트 산(Mt. Whyte)이었다. 이 장관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우린 그저 좋다, 좋다 소리만 연발하고 말았다. 스노슈즈를 신고 설원을 달려 마지막 남은 열기도 발산하고, 티하우스 아래서 쭈구리고 앉아 자칭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사흘간 스노슈잉 일정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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