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캐나다 로키가 가고 싶어졌다. 그것도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겨울에 말이다. 어제 요호 국립공원(Yoho National Park)의 기온이 영하 27도를 기록했고 오늘은 영하 12도란다. 날씨가 풀린다는 예보가 있어 일단 믿기로 했다. 실제 기온과 체감온도는 또 다르니 어느 정도 추위는 각오를 해야 한다. 그래도 우리는 발길을 로키로 돌렸다. 멀리 로키까지 가는 이유는 밴쿠버에서는 스노슈잉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밴쿠버 산악 지형엔 매년 엄청난 눈이 쌓인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 영향인지 이번 겨울 시즌에는 눈 구경하기가 힘이 들었다. 몇 미터씩 쌓였던 눈이 사라진 것이다. 캐나다 로키에선 스노슈잉을 할 수가 있겠지 하는 생각에 문득 지난 가을에 다녀온 오하라 호수(Lake O’Hara)가 떠올랐고, 그러자 마음은 이미 그곳으로 훌쩍 떠나버린 것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가겠다 따라 나섰다. 안영숙 회장, 전영철 선생 그리고 나 셋이서 2014년 1월 7일 캐나다 로키로 차를 몰았다. 새벽 5시에 집결해 길을 서둘렀다. 9시간을 운전해 오하라 호수 입구에 도착한 다음에 다시 4~5시간을 스노슈잉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좀 급했다. 아무리 빨리 가도 어두컴컴한 산길을 걷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가는 도중에 주유한다고 두 번인가 차를 세우고 커피 한 잔 마신 것 외에는 일체 쉬지를 않았다. 점심도 차 안에서 운전을 하면서 해결했으니 말이다. 오하라 호수 진입로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1시 40분. 예상대로 거의 9시간을 운전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나 혼자 줄창 운전을 하고 왔으니 피곤이 겹겹 쌓였으리라.
우리는 오하라 호수에 있는 엘리자베스 파커 산장(Elizabeth Parker Hut)에 머무를 예정이다. 원래 계획은 3일을 묵을 생각이었으나 이틀밖에는 예약이 되지 않았다. 이 산장이 편리한 점은 프로판 가스와 버너, 냄비, 식기, 칼, 수저 등 취사도구가 모두 비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린 식재료만 가지고 들어가면 된다. 텐트와 취사구만 빠져도 백패킹에서 상당한 무게를 줄일 수 있다. 2박 3일간 먹을 식량을 나누고 스노슈즈를 신은 뒤 배낭을 메었다. 어깨에 느껴지는 배낭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크로스 컨트리 스키로 오하라 호수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스노슈잉은 우리만 하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스노슈즈를 신으니 걷는 폼새가 영 어색해 보였다. 그래도 몇 년만에 다시 신어보는 스노슈즈란 말인가. 나름 감회가 새로웠다.
스키 트랙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눈이 단단하게 다져져 있어 발이 빠지진 않았다. 기온은 영하 12도라 했지만 바람이 불어 꽤나 쌀쌀했다. 얇은 장갑 하나를 끼었더니 손끝이 시려 견딜 수가 없었다. 장갑 하나를 더 꺼냈다. 이 길은 여름철이면 셔틀버스가 다니는 비포장도로다. 일반인들은 차를 가지고 들어올 수가 없다. 길이 넓고 뚜렷해 길 잃을 염려는 없지만 가도가도 끝이 없다. 날은 어두워지고 그에 비례해 몸은 점점 지쳐간다. 은근한 오르막에 숨이 헉헉 찼다. 배낭 무게에 어깨도 쑤시고 허리도 아프다. 11km 거리가 이렇게 멀 줄이야…… 1km를 남겨놓은 마지막 구간에선 허벅지에 근육 경련이 일어났다. 한 마디로 다리에 쥐가 난 것이다. 고양이도 없으니 쉬는 횟수를 늘여 고단한 다리를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사이에 이렇게 체력이 떨어지다니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산행을 시작한 주차장에서 11km되는 지점에 레인저 사무실이 있다. 여기서 오른쪽 산 속으로 1km를 더 오르면 캐나다 산악회에서 운영하는 산장이 나온다. 산길로 들어설 때는 헤드랜턴을 꺼내 길을 밝혔다. 엘리자베스 파커 산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 12km의 거리를 4시간에 걸어온 것이다. 눈길 산행에선 느린 걸음은 아니었다. 산장에는 1남 2녀의 캐나다 젊은이들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겨울철에도 2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 우리 6명이 쓰기엔 엄청 여유로운 공간이었다. 통나무로 만든 산장은 너무나 좋았다. 고즈넉하고 옛스런 분위기에 심신이 절로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곳에 묵으며 며칠을 지낼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커다란 행복 그 자체였다.
바로 저녁 준비에 들어갔다. 인스턴트 해장국에 찬밥과 떡점을 넣어 죽을 끓였다. 소위 ‘꿀꿀이죽’이라 부르는 특별 메뉴가 우리 저녁인 셈이다. 시장이 반찬이었다.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니 추위에 떨었던 몸이 좀 녹는 것 같았다. 전 선생이 직접 담갔다는 복분자 술이 한 순배 돌았다. 반쯤 언 차가운 술이 뱃속으로 들어가니 속까지 시원해진다. 눈을 녹여 설겆이도 하고 양치질도 했다. 산장 주변을 흐르는 계류가 모두 눈에 가려 식수를 구하려면 눈을 녹여야 했다. 겨울에 야영을 가면 늘 그랬으니 신기하진 않았다. 저녁 8시가 조금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젊은 친구들은 난로 앞에 앉아 와인을 기울이며 열심히 수다를 떤다. 장작을 태우는 난로가 있어 전혀 춥지가 않았다. 모두들 피곤했던지 잠자리에 들자마자 금방 잠에 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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