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아침에도 계속 내린다. 히로사키(弘前) 성을 둘러보아야 하는데 비를 피하긴 어렵겠다. 우산을 하나씩 받쳐 들고 성으로 들어갔다. 히로사키 성은 연간 3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는 명소 중의 명소다. 봄에는 화려한 벚꽃으로 유명하고,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눈으로 유명하다. 이 말은 1년 내내 사람들로 붐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우리 눈 앞에 펼쳐진 단풍은 그리 화려하지는 않았다.
히로사키 성은 쓰가루를 통일한 쓰가루 가문의 본성이었다. 1611년에 완공된 이 성에는 천수각이란 옛 건물과 성문, 해자 그리고 그 위에 놓인 다리 등이 남아 있다. 겉에서 보기엔 규모가 큰 성채라 생각을 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천천히 걸어 한두 시간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을 정도? 성 안에 모두 5,000그루의 벚나무가 심어져 있다고 하는데, 천수각 앞에 그 선조쯤 되는 수령 300년 묵은 벚나무가 지지대에 기대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마침 국화전이 열리고 있어 또 다른 눈요기도 즐길 수 있었다. NHK의 대하드라마 <천지인(天地人)>을 국화로 재현한 놓아 이채로웠다.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인데 요즘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성 밖으로 나와 옛날에 선교사들이 지어 도서관으로 썼다는 양관을 들어가 보았다. 바로 옆에 있는 문학관에서는 유명한 소설가였던 다자이 오사무(太宰治生)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여져 있었다.
히로사키에서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야마자키(山崎)란 프랑스 식당이었다. 이 식당 주인이자 주방장인 야마자키 타카시(山崎隆) 씨는 아오모리 현에서 생산하는 친환경 식재료만을 발굴해 프랑스 음식과 접목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기적의 사과’로 유명한 아키노리 기무라(木村秋則) 씨가 생산한 사과를 이용해 사과 수프를 만들었고, 호세가와(長谷川) 씨가 일체 약을 쓰지 않고 직접 집에서 만든 사료로만 기른 10개월짜리 돼지를 3시간 삶아 만든 메인 요리가 나왔고 그 뒤에 디저트가 나왔다. 무공해 사과로 만들었다는 설명을 들어서 그런지 수프 맛이 깔끔한 느낌이 들었다. 특이하게도 이 수프는 따뜻한 것이 아니라 차가운 수프였다.
메뉴판을 찬찬히 살펴보니 ‘기무라 씨가 자연 농법으로 재배한 사과를 사용해 만든 차가운 수프’와 같은 식으로 요리를 설명하고 있어 좀 장황한 느낌이 들었지만 모두 친환경 식재료를 개발해 사용했다는 설명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주방장 야마자키 씨가 직접 나와 사과로 수프를 만든 배경에 대해 설명한다. 사과를 이용해 수프를 만들겠다는 발상 때문에 처음에는 주변에서 ‘저 사람 바보 아니냐?’는 손가락질도 받았단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은 아주 독특한 발상의 히트 상품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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