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버타 주 남서쪽 끝단에 자리잡은 워터튼 호수 국립공원(Waterton Lakes National Park)은 그 남쪽에 위치한 미국 몬태나 주의 글레이셔(Glacier) 국립공원과 맞닿아 있다. 해발 1,280m에 있는 워터튼 호수는 어퍼와 미들이란 이름의 호수 두 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영어 표현엔 복수형 s를 붙인다. 지도 상에서 북위 49도를 따라 일직선으로 캐나다와 미국 국경선을 긋다 보니 어퍼 워터튼 호수(Upper Waterton Lake) 가운데로 국경선이 지난다. 워터튼 마을에서 유람선을 타면 여권 없이도 국경을 넘어 미국 영토를 다녀올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경험으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국립공원 안에 자리잡은 워터튼 마을은 주민이라야 100명 남짓해 규모는 무척 작지만, 그래도 연간 40만 명의 방문객을 받고 있다. 워터튼 호수 옆에서 자연을 벗삼아 야영을 하고 싶은 사람은 247개 캠프사이트를 보유한 캠핑장을 이용할 수도 있다.
워터튼 호수 국립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산행지 가운데 하나가 크립트 호수(Crypt Lake, 1945m)다. 산 속 깊이 숨은 이 호수 역시 국경선이 호수 가운데를 통과한다. 크립트 호수에 올라 호수를 한 바퀴 돌면 입국심사도 받지 않고 미국땅을 밟고 돌아오는 재미가 있다. 크립트 호수를 가려면 워터튼 마을에 있는 마리나에서 셔틀보트를 타고 호수를 건너야 한다. 산행기점인 크립트 랜딩(Crypt Landing)까진 15분 걸린다. 오전에 두 편만 있고 오후엔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두 번 픽업하는 게 전부다. 사전 예약이 필요한 이유다. 보트에서 내린 사람들이 앞다퉈 산길로 접어들었다. 두 번에 걸쳐 보트로 실어나르는 100여 명의 인원이 함께 산행을 하는지라 호젓함을 즐기긴 좀 어려운 곳이 아닌가 싶다.
산행을 시작하면 바로 헬 로링 폭포(Hell Roaring Falls)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하산 때 보기로 하고 그냥 직진을 했다. 헬 로링 크릭을 따라 계속 고도를 높였다. 낙차 175m의 크립트 폭포가 시야에 들어왔다. 오래지 않아 터널로 오르는 사다리가 나타났고 약 25m 길이의 터널을 통과해야 했다. 터널 마지막에선 무릎을 굽히고 기다시피 하는 구간도 있었다. 터널을 빠져나오면 벼랑을 오르는 구간이 나오는데 손으로 잡는 케이블이 설치되어 있어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크립트 호수에 닿았다. 크립트란 말이 그리스어로 히든(hidden)이란 의미답게 호수가 봉우리와 벼랑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고즈넉한 호숫가에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몇몇은 물 속에 들어가 차가움을 만끽하기도 했다. 난 호수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여긴 사람이 없어 호젓한 분위기를 누릴 수 있었다. 크립트 랜딩에서 크립트 호수까진 왕복 17.2km지만 크립트 호수를 한 바퀴 돌면 1.8km를 추가해야 한다.
[캐나다 로키] 아카미나-키시니나 주립공원, 베네트 패스 & 포럼 호수 (4) | 2021.05.15 |
---|---|
[캐나다 로키] 워터튼 호수 국립공원, 버사 호수 (2) | 2021.05.10 |
[캐나다 로키] 워터튼 호수 국립공원, 마운트 카튜 (8) | 2021.04.29 |
[캐나다 로키] 마운트 아시니보인 백패킹 ④ (8) | 2019.09.09 |
[캐나다 로키] 마운트 아시니보인 백패킹 ③ (8) | 2019.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