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랄라우 트레일의 끝지점인 칼랄라우 비치까진 가지 못하고 하나코아 캠핑장에서 발길을 돌렸다. 지금까진 우리 오른쪽을 채웠던 바다 풍경이 왼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와이메아 캐니언(Waimea Canyon)에서 내려다 보던 풍경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니 그 위엄이 한층 더 한 것 같았다. 칼랄라우 트레일이 무척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의 여러 잡지에선 꽤나 위험한 트레일이라고 꼽은 적도 있다. 아웃사이드 잡지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트레일 20곳 중에 하나로 여기를 꼽았고, 백패커 잡지에선 미국 내에서 위험한 트레일 10군데 중 하나로 꼽았다. 호우가 내리면 급속히 수위를 높이는 급류를 건너야 하는 점과 7마일 지점에 있다는 벼랑이 그 주된 이유 같았다.
칼랄라우 트레일에는 캠핑장이 두 군데뿐이다. 중간 지점에 있는 하나코아는 당일로 들고나기에 힘이 부치는 사람들이 주로 묵는 것 같았고, 대부분은 칼랄라우 비치에 있는 캠핑장을 이용한다. 이 트레일은 워낙 인기가 많아 몇 가지 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이면 캠핑 허가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까닭에 허가없이 몰래 들어가는 사람도 꽤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 우리도 모르고 한 일이지만 허가를 받지 않고 하나코아 캠핑장까지 다녀왔다. 2마일 지점에 있는 하나카피아이 비치까지 당일 산행하는 경우는 캠핑 허가가 필요없지만, 여기를 지나 더 깊숙히 들어가는 경우는 설사 당일 산행이라 하더라도 캠핑 허가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뭣 모르고 그냥 들어갔는데 다행히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돌아오는 발길이 여유로웠다. 마음이 허허로운 탓인지 아까보다 야생화가 더 많이, 더 자주 보였다. 그 이름조차 알 수 없지만 하와이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를 만나는 일은 참으로 기분좋은 일이었다. 하나카피아이 강을 건너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예기치 못한 소나기의 빗줄기가 엄청 굵었다. 우비를 꺼내 입는다, 배낭 커버를 씌운다 일시 소동이 났다. 소나기는 15분 뒤에 그쳤다. 공기 속에 눅눅한 습기가 느껴지면서 안경엔 김이 서리고 몸에선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이 2월인데도 이렇게 더우면 한여름에는 이 트레일을 어찌 걷는단 말인가. 여름이 아닌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이 트레일의 가장 큰 단점은 길을 걷는 내내 조용히 상념에 잠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무시로 머리 위를 날아가는 헬리콥터가 엄청난 소음을 만들기 때문이었다. 진짜 몇 분 간격으로 헬기가 연달아 나타나 소음만 남겨놓고 휙 사라져 버리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가장 쉽게 나팔리 코스트를 보려는 사람들의 기고만장한 표정이 하늘에 비치는 듯 했다. 시끄러운 헬기 소리에 은근히 짜증이 일었다. 유명 관광지라 어느 정도는 감수를 해야 하겠지만 조용하고 한적한 트레일을 걷던 사람에겐 몹시 신경이 쓰였다. 하기사 우리 같은 사람만 이 경치를 보란 법은 없으니 내가 참는 수밖에 없으리라. 어쨌든 헬기 소음은 칼랄라우 트레일에서 찾은 옥의 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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