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퀘벡 시티에 내려 앉았다. 하룻밤을 올드 퀘벡에서 묵게 되었으니 그냥 숙소에서 시간을 죽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간단히 저녁을 먹고 야경 구경에 나섰다. 가장 먼저 샹플렝의 흉상이 시야에 들어온다. 샹플렝의 얼굴에 대해선 전해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 따라서 현존하는 샹플렝의 동상은 모두 조각가의 상상에 의한 것이다. 낮에 돌았던 올드 퀘벡의 골목길로 다시 들어섰다. 골목을 가득 채운 고풍스런 건물들과 인공 조형물이 조명을 받아 나름 운치를 뽐내고 있었다. 한겨울 추위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올드 퀘벡을 한 바퀴 돌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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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아주 특이한 풍경만을 모아 놓은 웹사이트가 하나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색상을 지니고 있는 도시 열 곳을 선정해 보여 주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멕시코의 과나후아토(Guanajuato)였다. 알록달록 크레파스로 칠한 듯한 마을 사진을 보고 여기는 꼭 가야겠다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멕시코 시티를 가는 김에 가장 먼저 들른 곳이 과나후아토였다. 행여 시간이 부족하면 다른 곳은 생략해도 좋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과나후아토는 멕시코 시티에서 북서쪽으로 420km 떨어져 있다. 해발 2,000m 높이의 산자락에 자리잡은 산골 마을이다. 1548년에 설립되었다니 역사는 꽤 깊은 편이다. 이 도시는 한때 전세계 은 생산량의 1/3을 생산할 정도로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그 이야긴 광산에 일할 사람이 많았다는 의미고, 그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 가파른 산자락에 빼곡하게 집을 지었다는 말이 아닌가. 산자락에 겹겹이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아름다운 집들이 자리잡고, 그 사이를 아기자기한 골목이 산 날망까지 이어진다. 첫눈에 이런 별세계가 아직도 있나 싶었다. 그런 까닭에 이 과나후아토는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었으리라.

 

아침 일찍 호스텔을 나서 골목길로 들어섰다. 날은 밝았지만 아직 가로등은 꺼지지 않았다. 성모 마리아 성당을 기점으로 삼았다. 가장 먼저 피필라 기념탑(Monumento a del Pipila) 올라 일출을 보고 싶었다. 분명 동상 위치를 파악했고 그 방향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 올랐건만 엉뚱하게도 그 반대편 기슭으로 올랐다. 거긴 새벽 시장이 들어선 것인지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성당으로 돌아와 다시 방향을 잡고는 30여분 가파른 경사길을 올랐다. 궤도열차가 운행을 한다지만 시간이 너무 일러 이용할 수는 없었다. 구불구불 골목길을 오르다 다리가 팍팍해질 무렵, 기념탑이 있는 전망대에 닿았다. 해는 이미 산등성이로 떠오르고 말았다.

 

 

 

 

피필라 기념탑은 과나후아토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빠짐없이 찾는 곳이다. 멕시코 독립 전쟁 당시에 햇불을 등에 지고 용감하게 선봉에 서서 요새를 향해 돌격했던 광부 피필라의 모습을 26m 동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높이 26m라지만 언덕 위에 설치되어 있어 밑에서 보면 굉장히 높아 보인다. 마침 아침 햇살을 받아 동상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동상을 보기 위해 여기를 찾는다기보다는 과나후아토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 온다고 해야 옳을 것 같았다. 그만큼 마을 전경을 한 눈에 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듯 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도 많지 않았다. 한 쌍의 일본 젊은이만 보였을 뿐 개미 한 마리 얼씬 거리지 않았다. 한참을 계단에 앉아 우두커니 마을을 내려다 보았다. 이것이 꿈은 아니겠지. 저 앞에 펼쳐진 마을 풍경이 정녕 과나후아토란 말인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알록달록, 형형색색이란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이들은 무슨 이유로 이렇게 화려한 색깔을 택했을까? 이들 유전자에는 이렇게 요란한 색채감을 수용할 수 있는 감성이 있는 것일까? 아쉽게도 난 아직 그 이유를 모른다. 요즘에는 건물 외관을 다채로운 색깔로 유지하기 위해 시에서 나서고 있다고 한다. 주민이 색깔을 정하면 시에서 무료도 칠을 해주는 식으로 말이다.

 

 

 

 

 

 

골목을 누비며 산자락을 걸어 내려왔다. 지하 차도부터 먼저 찾았다. 예전에는 수로로 쓰였던 것이 지금은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가 되었다. 그 덕분에 지상에 있는 건축물을 훼손시키지 않고 보전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지하 차도에서 계단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이젠 본격적으로 골목길 탐방을 나설 차례다. 난 원래 이런 골목길에 아련한 향수를 느끼는 특이 체질이다. 화려한 색상만 뺀다면 우리나라 골목길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고, 실제로도 우리나라 골목길을 걷는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중세 시대의 골목길을 아직까지 그대로 보전하고 있는 과나후아토가 점점 좋아졌다.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투박한 질감의 벽돌이나 시멘트 위에 이렇게 과감한 원색을 쓰다니 그들의 미적 감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크레파스 마을이란 표현이 정말 잘 어울렸다. 허름한 골목길에서 마냥 행복감에 젖어 있었는데, 그것을 깨운 것은 사나운 강아지 한 마리. 골목길을 서성거리는 내가 수상했던지 열심히 짖으며 쫓아오는데 이 녀석 정말 막무가내였다. 그 소리에 놀라 장닭 한 마리도 덩달아 울어댄다. 이제 그만 도심으로 내려가라는 의미로 받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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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3.08.02 06: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화에 나옴직한 마을을 보러 그 멀리까지 가셨군요...(성당 지붕울 교회 십자가로 바꾼다면) 부산 초량 산복도로 주변 마을의 풍경이 비슷한데요...과나후아토를 모델로 삼았는지 최근에 컬러풀한 페인트를 칠했더군요... (사진에서 보았읍니다) 부산항이 내려다 보이고 맑은 날엔 오륙도가 보이는 초량 경치도 근사합니다.....^*^

  2. 보리올 2013.08.02 0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산 자갈치 시장은 종종 가는 편이었지만 초량 산복도로쪽은 거의 간 적이 없었습니다. 다음에 부산 가게 되면 일부러라도 한 번 들러 보아야겠습니다.

 

시간 여행의 마지막 여정은 군산 해망동 달동네였다. 서울에 있는 달동네 골목길을 찍겠다고 주말 시간을 투자했던 것이 벌써 10년도 넘었다. 그 때는 서울이란 지역으로 한정해 작업을 했는데, 서울 밖에도 멋진 골목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가끔 청주나 전주, 군산, 부천까지 다녀왔던 기억이 난다. 군산은 어느 사진 모임을 따라 원정을 왔었다. 월명동 일본 가옥과 이곳 해망동 골목길이 우리 촬영지였는데, 바다를 끼고 있는 골목길이 아름다워 군산에 후한 점수를 준 적이 있다.    

 

바다가 보이는 동네라 하여 해망동(海望洞)이라 불린다. 군산항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배기에, 어찌 보면 바다 풍경이 보이는 별장지같은 명당 자리에 촘촘히 옛 주택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사이를 구불구불 골목길이 누비며 미로처럼 언덕 위로 가지를 뻗는다. 아련한 옛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해망동 골목길이라 그동안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 다시 찾은 것이다.

 

왜 하필이면 여기에 마을이 형성되었을까? 군산항은 일제시대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쌀 수출항으로 번창했던 곳이다. 1980년대까지는 산업화 대열에 편승해 수산업과 목재업으로 제법 흥청댔다고 한다. 해방후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이 언덕배기에 집을 짓기 시작했고 여기에 군산항 부두 노동자들이 가세를 하여 규모가 제법 커졌다고 한다.

 

마을 전체 분위기는 전에 다녀갔을 때와 비교해 그리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을 형세가 점점 퇴락해 가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가 있었다. 어떤 집은 빈 집으로 방치돼 폐허가 되어 버렸다. 어떤 영화에 영자미장원으로 나왔다던 노란색 이층건물도 조만간 사라질 것이고, 이미 문을 닫은 허름한 이발소 산해이용원도 얼마 후엔 헐리고 말 것이다. 재개발이란 미명 아래 너무나 많은 것들이 우리 곁을 떠나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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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리나래 2013.04.08 1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산 해망동은 그야말로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곳이죠..
    여름에는 너무 시원해서 '해망동 산다'고 큰 소리로 말한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는 곳이죠

  2. 보리올 2013.04.08 20: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습니까? 여름에는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러와 해망동 사는 보람을 느끼겠네요. 바다를 내려다보는 위치는 정말 좋더군요.

 

2011 8 17일부터 8 29일까지 본국 출장 일정이 잡혀 주말을 이용해 몇 군데 다녀올 수 있었다. 옛 추억과 정취를 불러 일으키는 장소를 골라 내 시간을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시간 여행이라 이름을 붙이고 찾아간 첫 번째 장소는 서울 북촌의 한옥마을이었다.

 

북촌 한옥마을을 찾은 횟수는 헤아릴 수가 없다. 인사동에서 가까워 구경을 간 적도 있고 사진기를 들고 일부러 찾은 적도 있다. 가회동에 한옥을 구입해 사시는 선배 집에도 가끔 갔었다. 한옥에서 잠자는 것도 물론 나에겐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있던 아들에게는 처음 한옥에 머무르는 기회라서 일부러 한옥 체험을 하기로 했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옥 게스트하우스에서 며칠을 묵었다. 비록 방은 작고 그 안에 아무런 시설도 없었지만 한옥에서 잔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적이었다. 아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었으리라 본다. 한옥체험관으로 유명한 락고재 1인실이 18만원, 2인실이 25만원을 받아 거의 일류 호텔 수준에 버금 간다. 물론 우리가 묵은 게스트하우스는 이보다 훨씬 저렴했다.

 

원래 북촌이란 청계천, 종로 윗동네란 의미로 쓰였다 한다. 전통 한옥이 밀집되어 있는 주거지역을 말하는데, 여기엔 가회동, 계동, 재동, 삼청동이 들어간다. 1960년대까진 거의 한옥으로 이루어졌던 북촌 마을은 1990년 이후 다세대주택이 많이 들어서면서 한옥이 급속히 사라졌다. 그래도 가회동 일대는 여전히 한옥이 많이 남아있고 요즘은 한옥 보전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미로처럼 뻗어있는 한옥마을 골목길도 걸을만했다. 좁은 골목을 따라 기와 지붕과 대문, 담장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회색빛 일색의 대도시 달동네 골목길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 보였다. 공예품을 파는 가게나 아늑한 분위기를 지닌 전통찻집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가 있었다. 이제는 이런 전통 가옥이 외국인을 불러 들이는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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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3.07.13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깨끗하게 정비되고 국내외 관광객이 늘었다면 실제 그 동네에 사는 주민은 조용하고 안락한 일상은 잃은거네요...한옥체험이 외국인에게 인기라던데 보리올님도 아드님과 체험을 하셨다니 뭐라 하던가요...일본식 집에서 양옥 2층집을 거쳐 아파트에서만 살아서 한옥은 시골 친척집밖에 못가봤어요...고향이 진주(사천)이라 서부경남 함안 의령에 친척이 많이 살았습니다...시골 한옥은 겨울에 외풍이 세고 불편했는데 위의 집들은 내부를 개량한 집이겠죠...사진을 보니 고향에 간 듯한 기분이 들어요...^*^

  2. 보리올 2013.07.14 01: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은 한옥마을을 보려는 관광객으로 넘쳐납니다. 낮에는 꽤나 소란스러워졌습니다. 그래도 이런 한옥이 남아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편의성과 효율만 따지면 조금은 불편하기도 할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