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9.01.10 이탈리아 돌로미티 트레킹 ; 트레치메 (2)
  2. 2016.11.25 [노르웨이] 베르겐 (4)
  3. 2016.10.05 [스위스] 제네바(Geneva) ③ (2)
  4. 2016.10.03 [스위스] 제네바(Geneva) ① (6)
  5. 2016.05.09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2)

 

유럽 중부에 자리잡은 알프스 산맥은 동으론 슬로베니아, 서쪽으론 프랑스에 이르는 광대한 산군이다. 그 가운데 오스트리아와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가 있다. 현지에선 이탈리아 알프스가 알프스 산맥에 속한 북부 산악 지역 전체를 의미하기보다는 북서쪽의 아오스타 밸리(Aosta Valley)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남티롤 지방에 속하는 돌로미티는 그냥 돌로미티란 이름으로 불린다. 예전에 우리는 돌로미테라 부르곤 했는데, 이탈리아에 속하는 땅인만큼 이탈리아 발음에 맞춰서 돌로미티라 부르는 것이 타당해 보였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 돌로미티를 영화에서 먼저 접했을지도 모른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산악구조대원으로 나오는 <클리프행어(Cliffhanger)>를 촬영한 곳이 바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클리프행어를 보면서도 로케이션이 돌로미티인 줄은 나도 전혀 눈치채지 못 했다.

 

돌로미티 트레킹은 트레치메를 한 바퀴 도는 당일치기 코스부터 시작을 했다. 공식적으론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라 불리는 곳인데, 트레치메란 세 개의 거대한 바위산을 일컫는 말이고 라바레도는 그냥 지명이다. 돌로미티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돌로미티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라 볼 수 있다. 작은 봉우리란 의미의 치마 피콜로(해발 2,856m)와 가장 높은 봉우리를 의미하는 치마 그란데(3,003m), 동쪽에 있는 봉우리란 의미의 치마 오베스트(2,972m)가 나란히 붙어있다. 우리 식으로 삼형제봉이라 이름을 붙이면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우리가 첫날 걸은 지역은 모두 트레치메 자연공원(Parco natuale Tre Cime)에 속했다.

 

아우론조 산장(Rifugio Auronzo)까진 차로 오를 수 있었다. 산장 앞에 서면 시야가 탁 트이며 울퉁불퉁한 산세가 눈 앞에 펼쳐진다. 돌로미티란 명성이 명불허전이란 것을 첫날부터 확인시켜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날씨 또한 쾌청해서 발걸음이 가벼웠다. 넓고 평탄한 길을 따라 라바레도 산장으로 향했다. 산 속에 홀로 서있는 조그만 교회 앞에는 옛날 군복 차림의 노병들이 모여 산악 전쟁에서 죽은 영령들을 추모하고 있었다. 우리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함께 묵념을 올렸다. 두 아이를 데리고 홀로 걷는 젊은 엄마가 눈에 띄었다. 한 아이 손을 잡고 또 한 아이를 등에 업은 엄마라 절로 눈길이 갔다. 엄마 손을 잡았던 네댓 살 여자 아이가 갑자기 3m 높이의 바위를 기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졸지에 여자 아이의 볼더링 실력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 같으면 위험하다고 뜯어말릴 판인데 이 엄마는 아이에게 격려를 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덩달아 옆에서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라바레도 산장을 지나 날망에 오르니 로카텔리 산장(Rif. Locatelli)이 눈에 들어온다. 산장으로 내려서며 바라본 트레치메의 모습이 위풍당당하게 다가왔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럴 때면 늘 집에 두고 온 가족이 생각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환상적인 풍경을 함께 즐기지 못 하는 것이 아쉬웠다. 산장 앞에는 돌탑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거기엔 산장을 세운 제프 이너코플러(Sepp Innerkopler)의 흉상이 새겨진 동판이 있었다. 이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산악부대를 이끌었던 사람으로 전쟁 중에 사망했다. 이 주변엔 1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가 싸운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트레치메를 한 바퀴 돌아 아우론조 산장으로 돌아옴으로써 첫날 트레킹을 마쳤다. 해질녘에 바위가 붉게 물드는 순간을 보지 못한 것은 좀 미련으로 남았다.

 

 

첫날 트레킹을 시작한 아우론조 산장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산 속에 외롭게 교회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마침 그곳에서 산악 전쟁에서 죽은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라바레도 산장을 향하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네댓 살쯤 되었을 어린 꼬마가 볼더링 실력을 뽐내며 조그만 바위를 오르고 있다.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는 트레치메의 위용에 절로 가슴이 떨렸다.

 

 

 

로카텔리 산장에서 바라본 트레치메의 모습. 산장 앞에는 이너코플러의 흉상이 새겨진 동판이 있었다.

 

 

트레치메 뒤쪽을 돌다가 의외로 많은 에델바이스를 발견했다.

 

 

 

 

 

 

트레치메를 한 바퀴 돌며 돌로미티의 다양한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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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달 2019.06.19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과 글 잘읽었습니다...
    산행기가 좋네요~

 

무척 오랜만에 베르겐(Bergen)을 다시 찾았다. 베르겐 하면 추위에 덜덜 떨었던 기억이 내겐 전부였다. 1989 3월인가, 부활절 휴가를 맞아 홀로 독일에서 차를 가지고 여기까지 올라온 적이 있었으니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 당시 노르웨이는 3월 말임에도 한겨울이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산악지대의 좁은 도로를 엄금엉금 기다시피 운전하다가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누군가는 뒤로 비켜줘야 교행이 가능했다. 한쪽은 바다로 뚝 떨어지는 벼랑이었으니 눈길에 후진하는 것이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솔직히 겁도 많이 났다. 그렇게 송네 피오르드(Sognefjord)로 향하다가 중도 포기를 하고 베르겐으로 돌아왔더니 설상가상으로 호텔 대부분이 문을 닫은 것이었다. 결국 어느 호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 안에서 덜덜 떨며 쪽잠을 잤던 기억이 있는 이 도시는 19세기까지는 노르웨이 최대도시였으나 현재는 오슬로 다음으로 밀려났다.

 

베르겐 공항에서 차를 빌려 시내로 향하는데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뺑뺑 돌아서 도심에 있는 호텔에 닿았다. 짐을 풀곤 저녁 식사를 겸해 시내 구경에 나섰다. 브뤼겐(Bryggen)의 옛건물만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브뤼겐 지역과 토르겟 어시장(Torget Fish Market)을 중심으로 시내 구경을 마쳤다. 어시장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고래고기 스테이크를 시켰다. 원래는 현지인이 추천한 식당을 가려 했지만 빈 자리가 없었다. 포장마차에서 일하는 한 아가씨가 우리 말로 인사를 하기에 깜짝 놀라 쳐다보았더니 어버지가 한국인이라 했다. 포장마차에서 제공한 고래고기는 성의도 없었고 맛도 없었다. 어시장 물가는 바가지 요금이라 느껴질 정도로 비쌌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거의 찾지 않는다고 한다. 어둠이 내리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칙칙한 날씨에 베르겐의 아름다움이 좀 가리긴 했지만 그래도 브뤼겐 지역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베르겐 항구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었기에 이 지역이 베르겐 도심에 속한다.

 

 

베르겐 관광지 가운데 첫손에 꼽하는 브뤼겐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베르겐의 명물로 불리는 토르겟 어시장. 관광객을 주로 상대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싼 것이 흠이었다.

 

 

어시장의 길거리 식당은 우리의 포장마차와 비슷했지만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곳이라 바가지 상혼이 심했다.

고래고기 스테이크와 스페인 음식인 파에야를 시켰는데 솔직히 본전 생각이 났다.

 

 

 

 

저녁을 먹고 다시 도심 구경에 나섰다. 바다에 비친 야경도 꽤나 운치가 있었다.

 

 

브뤼겐의 옛건물은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한자동맹의 한 축으로 번영을 누렸던 흔적이라 보면 된다.

 

 

브뤼겐에 있는 기념품 가게. 산이나 동굴에서 산다는 전설 속의 괴물, 트롤(Troll)의 인형이 눈에 띄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시각에도 베르겐의 어시장엔 사람들로 붐볐고 포장마차는 밝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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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ar and life 2 2016.11.26 16: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 너무 이쁘네요~ 굳! 공감눌리고 갑니다^^

  2. justin 2016.11.27 2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그럼 예전에 독일에서 차를 몰고 가실때도 덴마크, 노르웨이 오슬로를 거쳐서 베르겐까지 가신거에요? 얼마나 걸리셨어요? 지도로 보니까 상당히 오래 걸리셨을거같아요. 그나저나 아버지께서는 고래고기 스테이크와 인연이 없으신가봅니다. 저랑 같이 가면 맛있을거에요~

    • 보리올 2016.11.28 1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독일에서 덴마크로 넘어가 유틀란트 반도 북쪽 끝에 있는 항구에서 페리를 타고 오슬로로 갔지. 오슬로에서 베르겐까지 얼마 걸렸는지는 기억에 나지 않는구나. 중간에 어디선가 하룻밤 묵은 것 같은데...

 

이제 제네바의 구시가지를 둘러볼 차례다. 종교개혁 기념벽(Reformation Wall)이 있는 바스티옹 공원(Parc des Bastions)과 성 피에르 대성당(St. Pierre Cathedral)만 지도에 동그라미 표시를 했을 뿐, 나머지는 발길 닿는대로 우연에 맡기기로 했다. 가능하면 두 발로 걸으려 했으나 먼 거리는 부득이 트램이나 버스를 이용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노틀담 바실리카(Basilica Norte-Dame). 코르나뱅(Cornavin) 기차역에서 가까웠다. 제네바는 16세기부터 종교개혁의 선두에 선 도시인지라 카톨릭의 위세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이 카톨릭 교회가 완공된 것도 1857년의 일이었다. 성당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스테인드 글라스로 만든 창문은 그런대로 볼만 했다.

 

종교개혁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빼놓을 수 없는 도시가 제네바다. 16세기에 독일의 마틴 루터(Martin Luther)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은 장 칼뱅(Jean Calvin)을 비롯한 종교개혁자에게 이어져 제네바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제네바는 자연스레 개신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개신교의 로마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뇌브 광장(Place de Neuve)에 인접한 바스티옹 공원에는 종교개혁 기념벽이 세워져 있다. 이것은 종교개혁에 앞장 섰던 제네바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칼뱅 탄생 400주년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구시가로 걸어가다가 메이슨 타벨 박물관(Maison Tavel Museum)에 잠시 들러 중세시대의 유물을 관람하기도 했다.

 

 

 

 

 

종교개혁에 앞장선 제네바에선 개신교의 세력에 밀려 카톨릭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성 피에르 대성당이 개신교 교회로 쓰이면서 1857년에야 노틀담 바실리카 성당이 세워졌다.

 

무료 승차권을 이용해 트램과 버스를 타고 어느 곳이든 이동할 수 있었다.

 

 

오랜 기간 제네바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한 뇌브 광장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았다.

광장 한 가운데 스위스 영웅인 앙리 뒤푸르(Henri Dufour)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장 칼뱅이 세웠다는 제네바 대학 안에 자리잡은 바스티옹 공원은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 안에 종교개혁 기념벽이 자리잡고 있다.

 

 

 

 

 

100m 길이의 종교개혁 기념벽에는 모두 10명의 종교개혁가들이 조각되어 있다.

가운데 4명은 5m 크기고 좌우에 3명씩 있는 조각상은 3m 크기다. 장 칼뱅은 가운데 조각상 중 왼쪽 두 번째에 있다.

 

  

 

 

 

 

 

메이슨 가문이 12세기에 지었다는 메이슨 타벨 박물관은 제네바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라 한다.

재는 제네바 시에서 인수해 중세시대의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쓰고 있다. 입장은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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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10.20 1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네베가 그런 종교개혁의 중심 도시인 줄 몰랐습니다. 장 칼뱅, 마틴 루터는 역사시간때 들어서 기억하는데 제네바는 잊어먹었나봅니다..

 

오래 전에 스위스 알프스를 방문하는 길에 잠시 스쳐 지나간 제네바를 다시 찾았다. 스위스에선 취리히 다음으로 큰 도시다. 제네바는 세계적인 국제도시다. 도시의 규모가 그렇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국제기구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의 유럽본부, 국제적십자 본부 등 22개의 국제기구가 여기에 위치한다. 네 개나 되는 스위스 공용어 가운데 불어권을 대표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스위스에선 가장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쭉한 땅덩이가 프랑스로 깊게 파고 든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제네바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비스 호텔(Ibis Hotel)에 짐을 풀었다. 예전에 독일 근무할 때 다른 지방으로 출장을 가게 되면 많이 묵었던 비즈니스 호텔이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호텔에서 다시 무료 승차권을 발급받아 공항에서 얻은 임시 승차권을 대체했다. 이런 소소한 배려가 제네바에 대한 인상을 좋게 만들어주었다.

 

스위스는 유럽연합(EU)에 가입하지 않은 까닭으로 스위스 프랑을 여전히 자국 화폐로 사용하고 있다. 화폐 가치는 유로보단 좀 약하지만 그래도 미달러보단 강세다. 예전부터 스위스는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했는데, 이번에 잠시 머무르는 동안에도 그 비싼 물가를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코르나뱅역(Gare de Cornavin)에서 걸어서 찾아간 한국식당 <서울>에서 메뉴판을 보는 순간 음식 가격에 눈이 휘둥그레진 것이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같은 단품요리가 1인분에 30프랑으로 30유로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비싼 김치찌개는 난생 처음이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음식은 맛있게 먹었다. 음식 가격이 엄청 비싼 편인데도 식당엔 손님들이 꽤 많았다. 좀 더 겪어 보니 한국식당만 비싼 것이 아니라 케밥도 비쌌고, 서브웨이 샌드위치도 미국이나 캐나다보다 훨씬 비쌌다. 여기 주민들은 소득이 얼마나 높기에 이 물가에 버티고 사는지 궁금했다.

 

비행기에서 제네바 호수와 마을들이 내려다 보였다.

 

 

 

제네바 국제공항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이용객들이 많아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제네바 국제공항으로 입국한 사람이면 무료 승차권을 얻을 수 있어 버스나 트램 뿐만 아니라 제네바 도심의

코르나뱅역까지 가는 열차도 무료로 승차할 수 있었다.

 

 

 

제네바 중앙역인 코르나뱅 기차역. 스위스나 프랑스 각 도시를 기차로 연결한다.

 

 

 

 

제네바 교통 지도와 무료 승차권 덕분에 시내버스와 트램을 무료로 무한정 이용할 수 있었다.

 

 

 

 

 

제네바 서울식당에서 먹은 김치찌개와 제육복음.

 

 

제네바 공항 인근에 위치한 이비스 호텔은 비즈니스 호텔이라 비싸지 않은 편인데도 깔끔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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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6.10.03 2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여행도시길!
    지금쯤 스위스 풍광이 늦가을 정취 아닐까 합니다만? 상상해봅니다

    • 보리올 2016.10.04 0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 지내셨죠? 이건 샤모니를 중심으로 여름에 다녀온 기록입니다. 거기도 지금쯤이면 가을이 한창일 겁니다. 높은 산에는 눈도 제법 왔을 거고요.

  2. justin 2016.10.16 1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독일에 있었을때 스위스를 종종 왔었나요? 그때랑 지금이랑 물가가 많이 다르겠죠? 저도 언젠가 가서 몸소 느껴보겠죠!

    • 보리올 2016.10.17 0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다. 가족이 스위스를 여행한 적이 두세 번 있었다만 스위스를 모두 둘러보았다 하긴 어렵겠지. 물가는 그때도 비쌌는데 지금도 여전하더라.

  3. 김치앤치즈 2016.10.20 01: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0 유로 김치찌개라...
    스위스인들이야 고물가에 맞는 고임금을 받으니 우야던등 살겠지만, 저희같은 외국 여행자들은 어디 겁나서 가겠나 싶습니다.^^
    그래도 맛있었다니 다행입니다. 그 돈에 맛까지 별로 없었다면 저는 짜증날 것 같아요.ㅋ

    • 보리올 2016.10.20 09: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 캐나다 로키를 자주 가는 편인데 지금까지는 거기 물가가 비싸다고 불평을 많이 했었거든요. 헌데 제네바나 노르웨이 같은 유럽 물가를 보곤 이제부턴 캐나다 물가 이야긴 안 하기로 했습니다.

 

프놈펜에서 시아누크빌(Sihanouk Ville)로 가는 버스를 탔다. 지도 상으로 그리 멀어 보이진 않았는데 무려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 호텔에 짐을 부리고 밖으로 나섰다. 타이 만에 면해 있는 시아누크빌은 일단 공기가 맑아 살 것 같았다. 시엠립이나 프놈펜은 예상 외로 공기가 탁해 기침이 잦았다. 시아누크빌의 상징으로 통하는 황금사자상(Golden Lions)이 있는 로타리에서 해변으로 발길을 돌렸다. 젊은 친구들이 무리지어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고, 길거리나 해변엔 테이블을 펼쳐놓고 먹는 장사에 여념이 없었다. 해변이 온통 테이블로 덮여 있었다. 먹자판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해변이 아름답게 보이진 않았다. 아무리 관광지라 해도 이건 너무 하다 싶었다. 이래서 서양 친구들이 여길 많이 찾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해변에서 바닷바람을 쐬면서 맘껏 먹고 마셔도 큰 돈이 들지 않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버스 터미널 근처에 있는 <스파게티 하우스>란 곳에서 샐러드와 스파게티로 저녁을 먹었다. 스파게티가 단돈 2불이란 광고에 혹하고 들어온 것이다. 나이 지긋한 백인 남자과 캄보디아 여자가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 동석하게 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데이비드라 이름을 밝힌 이 친구도 밴쿠버에서 왔다고 해서 반갑게 악수를 했다. 나이는 마흔 전후로 보였다. 컴퓨터 관련한 일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이미 4년읋 살았다고 했다. 물가가 너무 싸서 밴쿠버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없단다. 이 세상엔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지나는 바이크 택시를 불러 호텔로 돌아왔다. 꽤 나이를 먹은 노인네였는데 뼈만 앙상하게 남아 뒤에서 어깨를 붙잡기가 좀 미안스러웠다. 이 양반도 2불을 벌자고 이 밤중에 나온 것일까?

 

 

시아누크빌로 가는 버스는 현대자동차에서 만든 차량이었는데, 우리 말로 된 안내판이 있는 것을 보아선

한국에서 중고차량을 수입한 것 같았다.

 

이틀을 묵은 비치 로드 호텔은 저렴한 가격에도 시설은 괜찮은 편이었다.

 

시아누크빌 중심에서 남쪽 해변으로 가는 로타리에 두 마리의 황금사자상이 자리잡고 있다.

 

 

 

길거리나 해변 모두 먹자판으로 변해 호젓한 해변 산책을 방해했다.

 

그 다음 날 코롱 삼로엠으로 가기 위해 페리 티켓을 미리 구입했다.

 

 

 

스파게티 하우스에서 저녁을 먹으며 밴쿠버에서 왔다는 데이비드와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스마일 게스트하우스. 한글로 상호가 적혀 있었고 태극기도 걸려 있었다.

여기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석양을 맞은 세렌디피티 비치(Serendipity Beach)의 비딧가 풍경

 

 

몽키 리퍼블릭(Monkey Republic)의 메뉴판에 슈니첼이 있어 선뜻 시켰는데 독일 본토의 맛과는 많이 차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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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6.03 2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맨 마지막에 슈니첼을 보니까 저희 동네 슈니첼이 너무 먹고 싶네요! 지금 너무 배고픕니다 ~

    • 보리올 2016.06.04 0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맛없어 보이는 슈니첼을 보고 허기를 느꼈냐? 아무리 바빠도 식사는 하고 일을 해야지. 뉴 웨스트에 있는 식당은 슈니첼을 아주 잘 하는 집이지. 독일계가 아니면 그 맛을 잘 못내는 것 같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