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스코샤 동해안(Eastern Shore)으로 가는 길은 과거로의 여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00년 전인 20세기 초와 비교해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과거로의 여행에 가장 적합한 곳이 셔브룩 빌리지(Sherbrooke Village)가 아닐까 싶다. 우리 나라 민속촌에 해당하는 살아있는 역사 박물관이라 불러도 좋을 듯했다. 셔브룩은 가이스보로 카운티(Guysborough County)에 속해 있다. 원래 셔브룩 마을은 이 지역을 관통하는 세인트 메어리 강(St. Mary’s River)에서 1861년 금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이 몰려와 20여 년간 꽤나 흥청댔던 곳이다. 하지만 금이 고갈되면서 마을은 예전처럼 조용했던 시골 마을로 되돌아가 버렸다. 1970년대 들어서 100년이 넘는 가옥 80채 가운데 25채를 복구하면서 노바 스코샤의 민속촌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현재는 복구를 마친 25채만 방문객에게 공개하고 있어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입장료를 내고 빌리지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빨간색을 칠한 마차가 방문객을 기다린다. 여유롭게 걸어가면서 구경할 수도 있으나 우리는 마차에 올라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마부로부터 대략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 오리엔테이션으론 제격이었다. 건물 내부는 나중에 천천히 돌아보기로 하고 주요 건물의 위치와 지리부터 익혔다. 마을 한 가운데 있는 교회에선 마침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왁자지껄한 결혼식 모습이 보기 좋았다. 대장간 앞에서 특이한 모양새를 한 자전거가 우리 눈길을 끌었다. 앞바퀴가 크고 뒷바퀴는 무척 작은 1880년대의 이 자전거를 페니 파씽(Penny-Farthing)이라 부른다. 앞이 페니, 뒤가 파씽인데, 둘 다 동전이지만 파씽이 페니에 비해 1/4 가치에 크기 또한 훨씬 작았던 데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대장간에서 일하는 젊은이가 방문객을 위해 이 자전거를 타고 주변을 오고 가며 시연을 벌이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셔브룩 빌리지에 도착해 입장료를 내고 마을 입구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마부의 안내를 받으며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마차에서 주요 건물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셔브룩 빌리지와 첫 인사를 나눴다.

 

 

셔브룩 빌리지에 있는 교회에선 이처럼 결혼식도 종종 올린다고 한다.

 

 

 

 

 

 

셔브룩 빌리지의 주요 볼거리 가운데 하나인 대장간에선 실제 쇠를 녹여 연장이나 말굽을 만들고 있었다.

 

 

 

페니 파씽이라 불리는 옛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내 눈에는 꽤나 신기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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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부르크 올드타운은 세월의 흐름이 깃든 건물이 많아 어딜 가나 눈이 즐거웠다. 황금 지붕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호프부르그(Hofburg)는 과거 합스부르크 가의 왕궁으로 쓰였지만,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그문트 대공과 막시밀리안 1세가 후기 고딕 양식으로 지은 건물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로코코 양식으로 재건했다고 한다. 시간이 많지 않아 내부 관람은 다음으로 미뤘다. 대학로를 따라 걷다가 인스부르크 대학 부속 성당인 예수회 성당(Jesuit Church)이 나타나 내부로 들어가보았다. 인스부르크 도심에 있는 스와로브스키 매점도 지났다. 이미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월드를 다녀왔기에 매점 안으로 들어가진 않고 윈도우 쇼핑으로 끝냈다. 골목길을 돌아다니다 다리쉼을 위해 잠시 들른 티롤러 스페케리아(Tiroler Speckeria)가 기억에 남았다. 돼지 삼겹살을 훈제해서 만든 스펙은 와인 안주로 좋을 것 같았지만 우린 맥주를 시켜 안주로 삼았다. 좁은 골목 안에는 예쁜 레스토랑과 카페가 많아 꽤 인상적이었다.

 

관광객을 싣고는 인스부르크 올드타운을 구석구석 마차가 활보하고 있다.

 

 

 

 

바로크 양식의 예수회 성당은 1640년에 지어진 건물로 우아하면서도 장엄함이 넘쳤다.

 

 

 

 

 

예전에 왕궁으로 사용됐던 호프부르그는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인스부르크 올드타운에 있는 스와로브스키 매장 또한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장소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인만큼 인스부르크에는 아름다운 골목길이 많았다.

 

 

 

 

 

돼지 뱃살을 훈제해서 만든 스펙을 맥주와 함께 먹어본 티롤러 스페케리아는 사람들로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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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휘게라이프 Gwho 2020.04.15 10: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출check! :-)
    오늘도 글 잘 보고 갑니다..
    항상 정성스러운 글 감사드려요~ =)
    수요일 시작도 행복하세요~~♥

  2. Briley JIN 2020.04.15 1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의 유럽 최애 오스트리아 부럽습니다 구독하고 가요




기차를 타고 밤새 달려 아침 이른 시각에 멜버른(Melbourne)에 도착했다. 멜버른은 호주 빅토리아 주의 주도다. 1835년에 영국 이주민들이 건설한 도시로 광역으로 치면 현재 490만 명의 인구를 지니고 있다. 호주에선 시드니 다음으로 큰 도시다. 역사적으로 여러 면에서 시드니와 경합을 벌인 사이라 두 도시는 그리 감정이 좋지 않다. 요즘도 보이지 않는 자존심 싸움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이 멜버른이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니트(Economist Intelligence Unit)에 의해 7년이나 연속해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혔다는 사실에 과연 그런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무척 궁금했다. 또한 시드니와는 얼마나 다른 분위기인지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도시 곳곳에 정원이 많아 정원의 도시라 불린다는 이야기에 도착하기 전부터 인상이 좋았다.   

 

서던 크로스(Southern Cross) 역에서 내려 멜버른을 처음 접했다. 한 눈에도 역의 규모가 상당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Flinders Street Station)이라 적혀 있어 순간 당황을 했다. 여긴 서던 크로스 역과 구분되는 것 같았다. 1909년에 완공된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은 호주에서 이용객이 가장 많은 역으로 꼽히고 있다. 주로 근교를 운행하는 열차가 이용을 하는데, 이 역의 돔형 지붕과 아치형 문은 멜버른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아치형 문 위에는 9개의 시계가 나란히 걸려 있는데, 이는 각 노선의 출발시각을 표시하고 있다. 이 시계는 멜버른 사람들에겐 꽤 유명한 랜드마크로 여겨져 시계 아래서 만나자, 계단에서 만나자는 이야기는 모두 이 아치형 문 입구를 의미한다고 한다. 도로로 나와서 바라보는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의 모습 또한 꽤나 인상적이었다.

 

큰 길을 건너니 페더레이션 광장(Federation Square)이 나왔다. 시민들을 위한 각종 문화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마침 1~2백 명이나 되는 관중을 모아 놓고 남녀 한 쌍이 유쾌한 코미디를 공연하고 있었다. 잠시 눈요기를 하곤 다시 길을 건너 세인트 폴스 대성당(St. Paul’s Cathedral)으로 들어섰다. 영국 성공회 대주교좌 성당이었다. 1891년에 완공된 이 성당은 우뚝 솟은 첨탑도 위엄이 있었지만, 고풍스런 실내 분위기도 내겐 꽤 위엄이 넘쳤다. 1986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르 2세가 이 성당을 방문해 카톨릭 교회와 성공회 간에 대화를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밖으로 나와 대성당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잔디밭에 삼삼오오 앉아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는 시민들이 많았고, 그 옆에는 매튜 플린더스 선장(Captain Matthew Flinders) 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는 대영제국의 해군으로 호주를 한 바퀴 돌곤 하나의 대륙으로 인정한 사람이다.




이른 시각에 멜버른 서던 크로스 역에 도착해 멜버른 구경에 나섰다.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은 고풍스런 외관에 우아한 자태를 지니고 있어 마음에 들었다.


관광객을 실은 마차 한 대가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 앞을 유유히 지나가고 있다.




페더레이션 광장에서 남녀 한 쌍이 관중을 모아 놓고 왁자지껄하게 코미디 공연을 벌이고 있었다.





좀 더 떨어진 위치에서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과 그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페더레이션 광장 건너편에 위치한 세인트 폴스 대성당



시민들 휴식처인 대성당 잔디밭과 매튜 플린더스 선장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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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8.05.23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건물들이 큼직큼직하네요~! 기차역도 색깔도 독특해서 눈에 바로 띕니다! 그런데 왜 시드니랑 멜버른이랑 서로 으르렁 거릴까요? 선의의 경쟁이죠? 아버지는 그러면 시드니와 멜버른 둘 중에 어느 도시가 마음에 드세요?

    • 보리올 2018.05.24 02: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도시 규모가 비슷한 두 곳이 서로 경쟁 심리가 작용해서 그러지 않을까 싶다. 축구에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다투는 것과 비슷하겠지. 난 무조건 멜버른 편이다. 시드니는 별로야.



온타리오 워털루(Waterloo)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메노나이트(Mennonite) 마을이 있다고 해서 세인트 제이콥스(St. Jacobs)로 방향을 틀었다. 오래 전부터 펜실바니아의 아미쉬(Amish)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어 그와 뿌리가 비슷한 메노나이트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 문명과는 좀 거리를 두고 생활하며 독특한 옷차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호기심도 일었다. 검정옷 차림의 사람들이 마차를 몰고 가는 모습을 기대했건만, 우리가 찾아간 주말엔 그런 풍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차 여행도 운행하지 않았고 파머스 마켓마저 열리지 않아 완벽하게 허탕을 치고 말았다. 대신 세인트 제이콥스 마을만 오르내리며 여유롭게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메노나이트 또는 아미쉬라 부르는 기독교인은 아이가 태어나면 당연히 세례를 받던 구습을 거부하고 성인이 되어 본인의 입으로 신앙 고백을 한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다. 재세례파(Anabaptist)란 이름으로 불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로 인해 카톨릭과 기독교의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비폭력 평화주의를 주장하고 전쟁을 반대하며 병역을 거부함에 따라 정부로부터도 모진 탄압을 받았다. 이런 박해와 탄압을 피해 네덜란드, 스위스, 남부 독일에서 우크라이나로 이주했지만 러시아 공산혁명으로 다시 미국과 캐나다, 남미로 이동해 정착한 사람들이다. 캐나다에선 매니토바와 사스캐춰원, 알버타 등지에 흩어져 농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이곳 온타리오에 정착한 메노나이트는 본래 펜실바니아로 이주했다가 미국 독립에 불안을 느껴 온타리오 키치너(Kitchener) 주변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밴쿠버로 돌아가기 위해 본격적인 북상을 시작했다. 인구 16만 명의 서드베리(Sudbury)에 잠시 들렀다. 빅 니켈(Big Nickel)이란 서드베리 랜드마크를 보러온 것이다. 1951년에 나온 5센트짜리 동전을 9미터 크기로 재현한 것인데, 그다지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휴런 호수에 면한 스패니시(Spanish)에서 잠시 쉬었다. 인구 700명의 작은 마을이 왜 스패니시란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수생마리를 지나 와와(Wawa)로 가는 길에 아가와 베이(Agawa Bay)에서 수페리어 호수를 만났다. 차를 세우고 호숫가 비치로 걸어갔다. 오대호에서 가장 큰 수페리어 호수는 말 그대로 엄청 컸다. 끝없는 수평선이 펼쳐져 바다를 보는 듯 했다. 바람은 차고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도 만만치 않았다. 방문자 센터나 캠핑장도 시즌이 끝나 황량함만 물씬 풍겼다.










온타리오 대표적인 메노나이트 마을인 세인트 제이콥스를 돌아보았다.

검정옷과 마차는 보지 못 했지만 크지 않은 마을은 나름 아름다웠다.




세상에서 가장 큰 동전으로 불리는 서드베리의 빅 니켈은 한때 이곳에서 호황을 누렸던 니켈 광산을 기념해 만들었다.




미국 땅에 살던 스페인어를 하는 여인이 붙잡혀와 오지브웨이(Ojibway) 부족 추장과 결혼해 생겨난 것이란 설이 유력한

스패니시 마을의 마리나를 찾았다.





아가와 베이는 수페리어 호수 주립공원(Lake Superior Provincial Park) 안에 있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단풍으로 유명한 아가와 캐니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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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7.12.11 08: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노나이트 같은 마을이 지어진 나름 구구한 역사적 배경이 존재하네요~ 저는 재세례파 같은 방식이 더 이성적이고 타인의 결정을 존중해주는 것 같습니다.

    • 보리올 2017.12.12 05: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워털루에서 공부할 때 길거리에서 메노나이트를 만나지 않았나? 종교적인 이유로 박해와 탄압을 받으며 떠돌던 사람들이라 안 되었기도 하더라.



티톤 패스(Teton Pass)를 지나 와이오밍 주로 들어섰다. 아이다호와 와이오밍의 주 경계선을 이루는 티톤 패스에서 잭슨(Jackson)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잭슨은 타운을 둘러싸고 있는 잭슨 홀 밸리와 혼동하여 잭슨 홀(Jackson Hole)이라 불리기도 한다. 인구 10,000명의 조그만 관광도시지만 티톤 카운티에선 그래도 가장 큰 도시다. 인근에 몇 개의 스키 리조트가 있어 겨울철이면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로 꽤나 붐빈다.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Grand Teton National Park)의 관문도시이기도 하다. 잭슨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니라 도심 한 가운데 있는 공원 네 귀퉁이에 엘크 뿔로 만든 아치(Elk Antler Arch). 엘크가 많이 서식한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표현했다. 관광객을 태운 마차가 도심을 지나가고 서부 영화에나 나올 법한 건물들이 길가에 즐비해 우리 눈이 즐거웠다.

 

남쪽에서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으로 들어섰다. 옐로스톤 국립공원 바로 아래에 있어 국립공원 입장료도 두 공원을 묶어서 받는다. 그 길이가 64km에 이르는 티톤 산맥이 길게 뻗어 있어 자연 장관이 뛰어나다. 1925년 나무로 지은 조그만 교회(Chapel of the Transfiguration)부터 들렀다. 소박하고 정갈한 느낌이 들었다. 십자가 아래에 커다란 창문이 있어 그것을 통해 그랜드 디톤의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제니 호수(Jenny Lake) 주변을 산책한 뒤에 해발 2,355m의 시그널 산(Signal Mountain) 전망대까지 차를 가지고 올랐다. 사방이 트여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콜터 베이 마리나(Colter Bay Marina)는 그랜드 티톤의 중심지라 부를 만했다. 카누나 카약을 타고 호수로 나갈 수도 있지만 우린 눈으로만 구경을 했다. 여기에 있는 캠핑장에서 하루 묵었다. 저녁을 먹고 야경을 보기 위해 다시 호수를 찾았다.


아이다호와 와이오밍의 주 경계선을 이루는 티톤 패스에 닿았다.







잭슨 도심을 둘러 보았다. 잭슨을 유명하게 만든 엘크 뿔로 만든 아치도 카메라에 담았다.



트랜스피규레이션 채플로 불리는 목조 교회는 유리창을 통해 산봉우리를 볼 수 있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에서 유명 관광지에 속하는 제니 호수에선 보트에 올라 아름다운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차를 타고 오를 수 있는 시그널 산 전망대



잭슨 호수는 원래 자연 호수였는데 댐에 의해 그 크기가 늘어났다. 산봉우리를 배경으로 두고 있어 뛰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잭슨 호수의 야경을 보기 위해 늦은 시각에 호숫가를 걸었다.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을 빠져 나오며 국립공원 표지판을 찍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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