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스코샤의 케이프 브레튼 섬(Cape Breton Island) 남단에 있는 루이스버그(Louisbourg)는 인구 1,000명 남짓한 작은 도시다. 이 도시가 유명한 이유는 캐나다 역사 유적지인 루이스버그 요새(Fortress of Louisbourg)가 여기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1713년 이곳을 발견한 프랑스 군대는 여기에 루이스 14세의 이름을 따서 요새를 지었다. 1720년에서 1740년 사이에 담장을 쌓으면서 공고한 요새를 구축한 것이다. 북미 지역에 건설된 당시 요새로는 꽤 규모가 컸다고 한다. 1745년 영국군의 공격으로 함락되었다가 1748년 프랑스에 반환되었지만, 1758년에 다시 영국군이 점령하여 요새를 허물고 정착촌을 없애 버렸다. 그 뒤 영국계 정착민이 루이스버그로 들어오고 1780년대 미국을 등진 로얄리스트(Loyalist)들이 가세함으로써 마을 규모가 커졌다. 1961년 들어 허물어진 요새를 부분적으로 복구해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당시 복장을 한 사람들이 근무하며 18세기 프랑스 요새이자 무역 도시를 재현해내고 있다.

 

요새로 들어가기 전에 루이스버그 마을부터 간단히 둘러보았다. 크지 않은 마을이라 볼거리가 많지는 않았다. 1895년에 세워진 루이스버그 역사는 1968년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현재는 역사 유적지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마을에서 좀 떨어져 있는 루이스버그 등대도 들렀다. 1734년에 세워진 등대는 캐나다 최초 등대로 불렸지만 1758년 영국군 공격으로 파손되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우리가 찾아간 등대는 1923년에 다시 세워진 네 번째 등대로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다. 루이스버그 요새 방문자 센터에서 입장권을 끊고 셔틀버스에 올랐다. 개별 차량을 이용해 요새까지 갈 수는 없다. 버스에서 내리면 데로시 하우스(Desroches House)를 먼저 만나는데, 이곳은 과거에 대구를 손질해 말리던 곳이었다. 정문에 해당하는 도팽 게이트(Dauphin Gate)로 향했다. 위병이 지키는 게이트를 지나 요새로 들어선다는 의미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1740년대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석재를 사용한 우아한 건축물, 옛날 복장을 한 사람들이 도처에서 과거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루이스버그에 도착해 루이스버그 역부터 찾아갔다. 시드니(Sydney)로 가는 열차가 다녔으나 1968년부터 운행을 중지했다.

 

캐나다 최초의 등대가 있던 자리에 다시 세워진 이 등대는 1923년부터 현재까지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방문자 센터 벽에 붙은 사진 자료를 통해 사전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루이스버그 요새로 이동하는 중에 저 멀리 요새가 시야에 들어왔다.

 

 

 

셔틀버스에서 내리면 과거 대구를 손질하고 말리던 데로시 하우스를 먼저 만난다.

 

 

 

루이스버그 요새에 있던 네 개 게이트 중에 가장 통행이 많았던 도팽 게이트는 위병이 지키고 있다.

 

 

 

 

 

 

 

도팽 게이트를 통과해 루이스버그 요새 안으로 들어섰다. 18세기 풍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방문객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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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질주하는호두 2020.05.31 17: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여행 정보 감사합니다. 자주 들를게요 :)

  2. abatel 2020.05.31 2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포스팅 감사합니다^^ 소통하며 지내요!^^

  3. MingSugar 2020.05.31 21: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포스팅 잘 보고갑니다.
    남은 주말 즐겁게 보내시고, 좋은밤 되세요 :D

  4. 휘게라이프 Gwho 2020.06.01 14: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휘게 출첵이요~ 도장 쿵쿵 !!~ :-)
    월요일도 힘차게 화잇띠잉~ ㅎㅎ

 

 

페기스 코브 등대와 더불어 노바 스코샤의 자랑거리로 불리는 루넨버그(Lunenburg)를 소개한다. 18~19세기에 지어진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건물과 가옥들로 구시가를 이뤄 꽤 인상적인 도시다. 1753년에 설립된 루넨버그는 나중에 독일인들이 들어오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어업과 수산물 가공업, 조선업이 주요 산업이었다. 1995년에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바닷가에 위치한 아틀랜틱 어업 박물관(Fisheries Museum of the Atlantic)은 건물 전체를 빨간색으로 칠해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띄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아담한 규모의 수족관이 있고, 어선과 어구를 전시하는 공간도 있다. 조그만 목선을 만드는 목공소도 있었다. 박물관에서 부두 쪽으로 나오면 몇 척의 배가 묶여 있다. 운이 좋으면 블루노즈 II호에도 오를 수 있다. 수리 중이거나 출항을 한 경우엔 볼 수가 없다. 테레사 코너(Theresa Conner)란 이름의 범선과 케이프 세이블(Cape Sable)이란 어선에도 올랐다.

 

위에 잠시 언급한 블루노즈 II호에 대해선 간단한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루넨버그는 노바 스코샤, 나아가 캐나다 사람들의 긍지를 높인 블루노즈(Bluenose)의 고향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노바 스코샤 사람들을 블루노즈라 부르기도 할까. 먼저 캐나다 동전 가운데 10센트짜리 라임의 뒷면을 보면 날렵한 모습의 배가 그려져 있다. 바로 블루노즈다. 블루노즈는 1921년 루넨버그에서 건조되어 평소엔 고기잡이에 사용하다가 때가 되면 경주용 배로 변신하곤 했다. 범선 레이싱에서 미국에게 번번히 패하다가 이 블루노즈가 등장하면서 17년 동안 적수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미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캐나다의 자존심을 살린 범선이라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블루노즈는 노바 스코샤의 아이콘으로 여겨졌다. 1946년 하이티에서 침몰한 이후 그 설계를 그대로 사용해 1963년 재현해낸 것이 블루노즈 II이고, 이 또한 노바 스코샤 사람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루넨버그 구시가로 들어서면 이름다운 가옥과 특이한 장식들이 길가에 줄지어 나타난다.

 

 

 

 

 

빨간색을 칠한 목재 창고들이 늘어선 루넨버그 워터프론트는 늘 활기가 넘친다.

 

 

 

 

 

 

북미에선 꽤 유명한 루넨버그의 아틀랜틱 어업 박물관은 5월에서 10월까지만 문을 연다.

 

블루노즈의 옛 영광을 기리기 위해 1963년 재현해 만든 블루노즈 II의 모습

 

 

 

루넨버그 워터프론트를 내려다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그랜드 뱅커(Grand Banker) 식당은 아무래도 해산물 메뉴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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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를 대표하는 스키 리조트가 있는 휘슬러(Whistler)에 도착했다. 여름엔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인파로, 겨울엔 스키나 스노보드를 즐기는 사람들로 꽤나 붐빈다. 연중 어느 시즌에 가도 즐길거리가 많아 나 또한 수시로 찾는 곳이다. 이번엔 BC주 관광청 주선으로 피크투피크 곤돌라(Peak2Peak Gondola)를 타기로 했다. 휘슬러 산에 있는 라운드하우스 로지(Roundhouse Lodge)까지 곤돌라로 오른 다음 거기서 피크투피크 곤돌라를 탔다. 휘슬러 산과 블랙콤(Blackcomb) 산을 연결하는 이 곤돌라는 그 길이가 무려 4km나 되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계곡을 건너 블랙콤에 있는 랑데부 로지(Rendezvous Lodge)에 닿았다. 길이 1.6km의 짧은 트레일인 알파인 워크(Alpine Walk)를 걸었다. 전혀 힘들지 않은 쉬운 코스지만 수목한계선에 위치한 관계로 조망이 무척 좋았다. 휘슬러 산과 피치먼스 밸리(Fitzsimmons Valley)가 연출하는 대단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피크투피크 곤돌라를 타고 라운드하우스 로지로 되돌아왔다. 곤돌라에 산악자전거를 싣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우리는 휘슬러 정상으로 오르는 도로를 걸어 티하우스가 있는 리틀 휘슬러(Little Whistler)로 올랐다. 점점 고도를 올리면서 발 아래 풍경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싱잉 패스(Singing Pass)에서 뮤지컬 범프(Musical Bumps)를 타고 올라오는 트레일도 만났다. 도로를 따라 정상 쪽으로 조금 더 올랐다. 계곡 건너편으로 조망이 탁 트이는 리지에 올랐다. 검은 엄니’란 닉네임을 가진 블랙 터스크(Balck Tusk)가 멀리 모습을 드러냈고, 옥빛을 자랑하는 치카무스(Cheakamus)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사방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휘슬러로 들어서면서 백미러에 비친 산악 풍경을 잡아 보았다.

 

 

 

라운드하우스 로지에서 계곡 건너 블랙콤으로 가는 피크투피크 곤돌라를 탔다.

이 곤돌라는 2008년에 설치되어 역사는 길지 않다.

 

블랙콤 산기슭에 있는 랑데부 로지에 도착했다.

 

 

 

랑데부 로지 인근에 있는 알파인 워크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도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기 충분했다.

 

알파인 워크를 걷는 동안 바위 틈에서 모습을 드러낸 피카(Pika) 한 마리가 우릴 반긴다.

 

 

다시 피크투피크 곤돌라를 타고 라운드하우스 로지로 돌아오는 길이다.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리틀 휘슬러로 오르는 도중에 마주친 풍경

 

 

 

 

치카무스 호수가 있는 치카무스 계곡 건너편에 블랙 터스크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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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템(Totem)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던컨(Duncan)은 나나이모에서 빅토리아로 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자주 들르는 곳이다. 코위찬 밸리(Cowichan Valley)의 중심지이면서 코위찬 원주민 부족의 생활 거점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코위찬 부족의 토템 폴(Totem Pole)이 도처에 세워져 있다. 모두 80여 개의 토템 폴이 세워져 있다고 들었다. 토템 폴이란 북미 북서부 지역에 사는 살던 원주민들이 마을 입구나 집 앞에 전승 신화 등을 새겨 놓은 나무 기둥을 말한다. 우리 나라의 장승과 비슷하다. 토템 폴에는 주로 범고래와 곰, 까마귀, 연어 등이 등장한다. 던컨에는 또한 코위찬 부족이 운영하는 코위찬 문화센터도 있다. 코위찬 부족은 코위찬 스웨터란 특산품을 만들어 파는데, 유명한 제품이라 그런지 제법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던컨에서 다시 남으로 향하다가 1번 하이웨이에서 벗어나 코위찬 밸리로 들어섰다. 그 안에 사과주를 생산하는 양조장, 즉 메리데일 사이더리(Merridale Cidery)가 있기 때문이다. 포도주를 만드는 와이너리와는 여러모로 비슷하면서도 뭔가 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먼저 사과나무에 매달린 사과를 둘러보았다. 우리가 먹는 사과완 달리 볼품이 없었고 알도 무척 작았다. 자리를 옮겨 사과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양조 시설도 구경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시음장에서 몇 가지 사과주를 맛보는 시간도 가졌다. 빅토리아로 바로 갈까 하다가 방향을 바꿔 수크(Sooke)로 차를 몰았다. 밴쿠버 아일랜드 최남단에 자리잡은 조그만 항구 도시에서 한적한 바닷가를 산책한답시고 잠시 여유를 부렸다.

 

 

1912년에 지어진 던컨 기차역은 2011년 이후 열차 운행이 전면 중지되었다.

현재는 역사 유적지로 지정되어 손님 대신 관광객을 맞고 있었다.

 

 

 

 

 

던컨 기차역 주변에 세워진 토템 폴을 통해 이 도시가 토템의 도시라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코위찬 문화센터를 둘러보러 들어갔더니 마침 그 안에서 코위찬 부족의 한 청년이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다.

 

 

 

 

 

메리데일 사이더리에서 사과주 만드는 과정을 둘러보고 몇 종류의 사과주를 시음까지 했다.

 

 

 

수크에 있는 위핀 스피트(Whiffin Spit) 공원은 땅끝이 바닷속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등대까지 이어진 한적한 트레일을 여유롭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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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6.09.15 0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행복한 추석 보내세요!

  2. justin 2016.09.28 1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코위찬 부족들도 결혼식은 서양화가 많이 되어있네요 ~ 사과주 맛은 어떠셨어요?

    • 보리올 2016.09.28 15: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세태 변화야 누가 막을 수 있겠냐. 복장은 양복이지만 결혼식 진행은 좀 특이하더구나. 그들 고유의 방식이 많은 것 같았다. 사과주? 달달한 와인하고 맛이 비슷해.

 

나나이모에서 빅토리아(Victoria)로 내려가면서 처음 들른 곳이 바로 슈메이너스였다. 이 도시는 참신한 아이디어 하나로 보잘 것 없던 마을을 꽤나 유명한 관광지로 탈바꿈시킨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슈메이너스는 한때 목재산업으로 번창했던 마을이었다. 하지만 이 도시를 지탱하던 홀슈베이 제재소가 문을 닫으면서 마을 전체가 경제적인 위기에 봉착하자,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던 차에1982년부터 해마다 건물 외벽에 벽화를 몇 점씩 그려 넣어 이제는 캐나다를 대표하는 문화마을로 탄생한 것이다. 벽화로 마을을 도배했다고나 할까. 40여 점의 벽화를 보기 위해 매년 40만 명의 관광객이 여기를 찾아와 돈을 쓰기 때문에 경기도 어느 정도 살아났다고 한다. 마을에 도착해 관광 안내소에서 나눠준 지도를 들고 벽화를 찾아 나섰다. 코위찬(Cowichan) 원주민 부족 얼굴부터 초기 탐험가나 벌목공들의 생활상, 주민들의 일상을 그린 벽화를 둘러보며 마을을 한 바퀴 둘러 보았다.

 

북미를 여행하다 보면 한때는 광산이나 벌목으로 호황을 누리다가 광산이 폐쇄되거나 벌목이 중지되면서 하루 아침에 유령도시도 변한 마을을 만난다. 고스트 타운(Ghost Town)으로 전락해 사람도 없이 지도 상에나 겨우 이름을 남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역경을 지혜롭게 이겨낸 경우도 많다. 슈메이너스처럼 주민들이 모여 그들의 미래 테마를 결정하고 마을을 새롭게 꾸미는 것이다. 캐나다 온타리오(Ontario) 주에도 슈메이너스의 케이스를 그대로 모방한 곳이 있다. 조지안 베이(Georgian Bay)에 면해 있는 미드랜드(Midland)라는 도시는 경제를 이끌던 조선소가 문을 닫고 철도마저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 1991년부터 예술가를 고용해 건물 외벽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미국 워싱턴 주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독일 바바리안 마을로 변신한 레벤워스(Leavenworth)나 옛날 풍의 서부도시로 마을을 꾸민 윈스롭(Winthrop)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마을 전체에 벽화를 그려 변신에 성공한 슈메이너스는 첫눈에도 깔끔하고 잘 정돈된 마을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에 벽화를 그려 놓아 인간과 건축물을 잘 조화시키고 있었다.

 

 

 

 

 

 

 

 

 

 

벽화를 통해 마을의 역사와 문화, 옛 생활상을 보여주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벽화 하나하나에 이름이 붙어 있지만, 슈메이너스 바닷가로 들어오는 레인디어(Reindeer)란 배를 바라보는 원주민 여인,

이 지역에 살았던 원주민 부족의 얼굴을 그린 벽화는 꽤나 유명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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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9.26 0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미술이 슈메이너스의 몫을 톡톡히 하네요! 참 매력있습니다 ~ 저도 최근에 미술 전시회를 종종 가곤합니다.

    • 보리올 2016.09.26 07: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 마을이나 도시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이 이처럼 아이디어라면 아이디어의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지. 인생 경륜이나 여행이 아이디어를 풍부하게 하는데 일조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