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거 국립공원을 빠져나와 블라이드 리버 캐니언 자연보호구역(Blyde River Canyon Nature Reserve) 아래쪽에 있는 사비(Sabie)란 도시에 닿았다. 도중에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해 사비에 도착할 때까지 그치질 않았다. 사비는 해발 고도가 1,000m가 넘는 고원 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산자락으로 둘러싸인 유럽의 어느 시골 마을에 온 듯한 느낌이 강했다. 사비에 있는 멋진 로지를 예약해 하룻밤 묵었다. 다음 날도 날씨는 좋아지지 않았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는 그렇다 쳐도 파노라마 루트 선상에 있는 모든 산세가 비구름에 가려 그 형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스콥(Graskop)을 지나 R534 도로를 타고 피너클(Pinnacle)과 신의 창(God’s Window), 원더뷰(Wonder View)에 차를 세웠지만 모두 허탕을 치고 말았다. 베를린 폭포(Berlin Falls)에 도착했더니 비가 좀 수그러들어 차에서 내려 폭포 앞에 설 수 있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수량은 제법 많았고 폭포의 위용도 나름 괜찮았다.

 

본래 블라이드 리버 캐니언은 드라켄스버그 산맥의 북쪽 산악 지역에 있는 협곡을 말한다. 해발 2,000m 가까운 산악 지형이 펼쳐지는 곳이라 날씨가 좋아지기를 고대하며 R532 도로를 타고 북상했다. 오래지 않아 버크스 럭 포트홀스(Bourke’s Luck Potholes)에 도착했다. 트레르 강(Treur River)이 블라이드 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있었다. 소용돌이치는 급류가 암반을 침식시켜 단지 모양의 포트홀을 만들어 놓았다. 협곡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 협곡과 포트홀을 구경했다. 다시 차를 몰아 쓰리 론다벨 뷰포인트(Three Rondavel Viewpoint)로 향했다. 협곡 건너편에 우뚝 솟은 세 봉우리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지만 이 역시 구름에 가려 형상이 분명치 않았다. 남아공 전통 가옥인 원통형 초가집, 즉 론다벨을 닮았다 해서 쓰리 론다벨이라 부른다. 바람에 구름이 걷히길 기다리며 차에서 얼마를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이제 블라이드 리버 캐니언을 떠난다. R36 도로를 타고 라이덴버그(Lydenburg)로 내려섰다. 여기서 케이프타운(Cape Town)까지 1,500km20시간에 걸쳐 운전해야 하는 고단한 일정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사비에 있는 플로리트 리버사이드 로지(Floreat Riverside Lodge)에서 하루 묵었는데 가격에 비해 시설이 아주 훌륭했다.

 

 

R534 도로에 있는 세 군데 명승지는 비구름 때문에 모두 허탕을 쳤다.

비가 좀 잦아들기에 길가에 차를 세우고 주변 풍경을 눈에 담았다.

 

 

 

비구름이 잠깐 걷힌 사이 운이 좋게도 베를린 폭포를 둘러볼 수 있었다.

 

버크스 럭 포트홀스가 있는 도시, 모레멜라(Moremela)가 우리 시야에 들어왔다.

 

 

공원 입장료를 내고 버크스 럭 포트홀스로 들어갔다. 블라이드 리버 캐니언 자연보호구역 본부와 기념품가게 등이

안에 있었다. 원주민 여성들이 노래와 춤으로 관광객들을 맞았다.

 

 

 

 

 

 

 

트레르 강이 블라이드 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버크스 럭 포트홀스는 격류가 암반을 침식해 만든

돌개구멍이 협곡 아래 여기저기 포진해 있었다.

 

 

 

가장 기대가 컸던 쓰리 론다벨의 웅장한 모습도 구름에 가려 희미한 형상만 겨우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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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캐시드럴 피크(Cathedral Peak, 3005m)를 오르는 날이다. 지난 1년 가까이 무릎에 통증이 있어 과연 오를 수 있을까 솔직히 의구심부터 들었다. 갈 수 있는 만큼만 가기로 했다. 오전 830분에 숙소를 나서 캐시드럴 피크 호텔의 하이커스 파킹에 차를 주차했다. 호텔로 걸어가다가 급커브에서 트레일 표식을 발견하곤 산길로 들어섰다. 댐으로 막힌 조그만 호수를 하나 지났다. 호수에서 캐시드럴 피크까지 20.5km란 이정표가 보였다. 편도인지, 왕복인지는 표시가 없었지만 왕복이 분명했다. 서서히 오르막이 시작되더니 나무 한 그루 없는 능선으로 올라섰다. 하늘엔 구름이 제법 많았지만 햇볕이 나면 그 뜨거움이 장난이 아니었다. 계속 오르막이 나타나 은근히 무릎에 신경이 쓰였다. 앞에서 걷던 친구도 자꾸 멈춰서는 뒤처진 나를 기다리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두 시간 가량 꾸준히 걸어 올랐을까. 왼쪽 무릎 통증은 그렇다 쳐도 돌계단이나 바위를 오를 때 줄곧 오른쪽 다리만 쓰게 되니 오른쪽 허벅지에서 쥐가 자꾸 났다. 앞서 가는 친구를 불러 세워 어디서 점심이나 먹자고 했다.

 

정상에 오르는 것이 내겐 점점 무리란 생각이 들었다. 9~10시간 산행에 두 발로 걸어 올라야 하는 등반고도가 1,600m라니 내 무릎으로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속이 쓰리지만 친구만 다녀오라고 했다. 정상을 앞에 두고 중도에 산행을 포기한 경우는 내 생애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혼자 쉬고 있으려니 한 젊은이가 엄청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있었다. 영국에서 왔다는 조(Joe)에게 먼저 오른 내 친구가 있으니 필요하면 도와주라고 부탁했다. 정상 부위에 기어올라야 할 벼랑이 몇 군데 있어 추락하면 위험하단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땡볕에서 무작정 몇 시간을 기다리기가 그래서 아픈 무릎과 허벅지를 달래며 천천히 해발 2,420m의 오렌지 필 갭(Orange Peel Gap)까지 오르기로 했다. 경사가 급했고 바위도 많았지만 느릿느릿 오렌지 필 갭에 올랐다. 능선 너머의 산악 풍경은 지금까지 보았던 풍경과는 사뭇 다르게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늘이 없는 곳이라 쉴 곳이 마땅치 않았다.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봉우리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해발 2,500m는 되어 보였다. 밑에선 뾰족해 보이던 봉우리는 의외로 정상이 평평했다. 맘껏 쉬고는 내 속도를 고려해 먼저 하산하기로 했다.

 

무척 지루한 하산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걸 어찌 올라왔나 싶었다. 수시로 멈춰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았다. 드라켄스버그 산맥에 속한 높다란 봉우리들이 커다란 장벽을 만들고, 그 안에는 푸른 잔디로 이뤄진 구릉과 계곡이 넘실대는 모습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아프리카에도 이런 산악 지형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만 바라보아도 힐링이 되는 것 같았다. 정상에 가지 못 한 섭섭함도 좀 가셨다. 조그만 물줄기가 지나는 벼랑 아래서 그늘을 발견했다. 성질이 고약하다는 원숭이 바분(Baboon)이 떼를 지어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여기서 3시간을 기다렸다. 가이드를 동반한 백인 남녀 5명이 내려오면서 네 친구 10분 뒤에 내려올 거다며 지나친다. 오후 5시가 훨씬 넘어 영국 젊은이 조와 친구가 함께 내려왔다. 친구도 길을 잘 못 들어 정상에 오르지는 못 했다고 한다. 두 번째 도전이었던 그 친구에겐 무척 아쉬운 일이었다. 조와 함께 디디마 리조트로 돌아와 시원한 맥주로 갈증부터 달랬다.

 

 캐시드럴 피크 호텔로 오르는 길목에서 만난 트레일 헤드

 

 

나무가 드문드문 자라는 계곡, 그 주변을 푸르게 꾸민 초지가 나타나 오르막 길의 고단함을 달래줬다.

 

 

 

 

바위로 이루어진 경사면을 지나 능선 위로 올라서면 웅장한 산악 지형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오른쪽에 캐시드럴 피크, 왼쪽엔 아우터 혼과 이너 혼이 구름에서 벗어나 모습을 드러냈다.

 

 

고도를 높일수록 캐시드럴 피크 밸리의 아름다운 풍경이 더 넓게 눈에 들어왔다.

 

 

트레일은 능선을 따라 계속 오르막으로 이어졌고, 해발 2,000m를 넘기자 더위도 좀 가셨다.

 

 

 

오렌지 필 갭을 오르기 전에 이른 점심을 먹으며 멋진 산사면과 봉우리를 눈에 담았다.

 

오렌지 필 갭에 올라 현지 가이드를 동반한 두 명의 하이커를 만났다. 정상을 밟고 기분 좋게 산을 내려가는 길이었다.

 

 

해발 2,500m 정도로 추정되는 이름 모를 봉우리에 올라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맘껏 쉬었다.

 

시간적인 여유가 많다 보니 산봉우리에 올라 여간해선 찍지 않던 셀피에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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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 스코샤는 55,284㎢의 면적에 인구는 1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캐나다에서는 무척 작은 주지만 그래도 남한 면적의 55%에 해당한다.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형상이라 동쪽에 위치한 케이프 브레튼 섬(Cape Breton Island)으로 가려면 몇 시간을 운전해야 한다. 케이프 브레튼 섬에 있는 캐보트 트레일(Cabot Trail)은 노바 스코샤, 아니 캐나다에서도 꽤나 유명한 시닉 드라이브 코스다. 트레일의 많은 부분이 케이프 브레튼 하이랜즈 국립공원(Cape Breton Highlands National Park)을 지난다. 산악 지형이 많지 않은 노바 스코샤라도 이 트레일을 달리면 꽤 옹골찬 산악 지형을 만날 수 있고, 대서양 연안을 따라 펼쳐진 해안 풍경도 맘껏 만끽할 수 있다. 캐보트 트레일의 길이는 298km에 이른다. 중간에 차를 세우고 하이킹에 나서거나 전망대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보는 시간을 감안하면 한 바퀴 도는데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가을이 한창인 시점에 단풍을 보려고 캐보트 트레일을 찾았건만, 우리 나라 단풍처럼 붉고 화려한 모습을 찾기 어려워 약간 실망스러웠다. 지명에 캐보트란 단어는 1497년 아틀랜틱 캐나다를 탐사한 존 캐보트(John Cabot)의 이름에서 땄다고 한다.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서 케이프 브레튼 섬에 닿았다. 고즈넉한 교회 한 채가 따스한 아침 햇살속에서 우리를 맞았다.

 

트랜스 캐나다 하이웨이를 벗어나 바덱(Baddeck)에서 캐보트 트레일로 들어섰다. 여기선 트렁크 30(Trunk 30)이라고도 불린다.

 

 

 

 

 

 

노스 리버 브리지 인근에 차를 세우고 노스 리버 윌더니스 에어리어(North River Wilderness Area)의 단풍을 찾아 나섰다.

 

 

 

잉고니쉬(Ingonish)를 지나면 캐보트 트레일은 바닷가에서 제법 높은 산악 지역으로 고도를 높인다.

 

 

2.3km 길이의 잭 파인 트레일(Jack Pine Trail)을 걸으며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대서양을 굽어보았다.

 

1899년에 세워진 닐스 하버 등대(Neil’s Harbour Lighthouse)10m 높이에 사각 모양을 하고 있었다.

 

 

캐보트 트레일에서 잠시 벗어나 화이트 포인트(White Point)를 다녀왔다. 한두 시간 하이킹하며 해안 풍경을 만끽하기 좋은 곳이다.

 

론 실딩(Lone Shielding)의 짧은 트레일에 350년 수령의 당단풍나무가 있다고 해서 잠시 산책에 나섰다.

 

 

 

노스 마운틴 전망대(North Mountain Look-off)에서 바라보는 단풍이 꽤나 유명하지만 시기가 맞지 않았는지 그리 뛰어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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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ngSugar 2020.07.30 07: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치가 참으로 아름답네요.
    덕분에 기분좋은 아침 시작합니다~^^

  2. 휘게라이프 Gwho 2020.07.30 1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을 잘 찍으시는건지 ..
    풍경이 이쁜건지~~
    대박 좋아서 공감누르게되네요 ㅎㅎ



우리가 걸은 오버랜드 트랙은 호주에서 가장 작은 주인 태즈매니아를 대표하는 장거리 트레일이다. 워낙 땅덩이가 큰 호주에선 작은 주라고 부르지만, 솔직히 그 크기가 대한민국의 70%에 이른다. 그 땅에 인구 52만 명이 살고 있다. 호주 본토에서는 남으로 240km 떨어져 있는데, 지도를 보면 하트 모양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사과 모양을 하고 있기도 하다. 호주 본토와 비교할 때 지형이나 풍경 측면에서 상당히 다른 느낌을 준다. 아름다운 해안선과 산악 지형을 가지고 있고, 그 안에 그림 같은 호수와 초원을 품고 있어 자연의 보고라 부를 만했다.

 

크레이들 밸리의 로니 크릭(Ronny Creek)을 출발해 세인트 클레어 호수까지 6~7일간 걸어야 하는 오버랜드 트랙의 전체 길이는 65km. 혹자는 세인트 클레어 호수 구간을 넣어 78km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오버랜드 트랙 끝지점에 있는 나르시서스 산장(Narcissus Hut)에서 보트를 이용해 호수를 건너면 65km, 하루 더 투자해 신시아 베이(Cynthia Bay)까지 걸으면 78km라 보면 된다. 대부분의 하이커는 나르시서스 산장에서 트레킹을 마치고 보트를 이용해 신시아 베이로 이동한다. 우리도 나르시서스 산장에서 트레킹을 마쳤다.

 

둘째 날 구간은 7.8km로 거리가 무척 짧았다. 오르내림도 심하지 않아 세 시간도 안 돼 윈더미어 산장(Windermere Hut)에 닿을 수 있었다. 거리가 짧다고 앞이나 뒤로 붙이기도 딱히 마땅치 않았다. 하루를 더 걷게 하려는 공원 당국의 절묘한 한 수로 보였다. 산장 앞에 우뚝 솟은 반 블러프(Barn Bluff, 1559m)에 햇살이 드는 것을 보며 산장을 출발했다. 중간에 윌 호수(Lake Will)를 다녀오는 트레일이 있었으나 멀리서 보기에도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어 보였다. 해발 1,000m에 이르는 고원지대를 쉬엄쉬엄 걸었다. 덕보드(Duckboard)라 불리는 판잣길이 잘 놓여 있었다. 이런 판잣길이 오버랜드 전체 구간의 1/3이 넘는다고 한다. 식생들이 등산화에 밟혀 훼손되지 않도록 일부러 설치한 것이다,

 

윈더미어 호수(Lake Windermere)에 닿으면 산장이 그리 멀지 않다. 먼저 산장에 도착한 일본 팀이 좋은 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와 규모가 비슷한 일본 팀과는 어제부터 은근히 자리 경쟁을 하게 되었다. 꼭두새벽에 출발하는 일본 팀에 비해 우린 좀 출발이 늦었다. 우리 산행 속도가 훨씬 빠르기에 쉽게 일본 팀을 따라잡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거리가 짧은 이 날은 일본 팀을 추월하지 못 했다. 16명 수용하는 산장의 좋은 자리를 모두 빼앗기고 하마터면 캠핑장으로 밀려날 뻔 했다. 우리 뒤에 도착한 사람들은 부득이 야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낭을 풀고 윈더미어 호수로 산책을 나갔다.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여유로움이 좋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지루함까지 모두 떨치진 못 했다.



우리가 지나친 반 블러프와 크레이들 산이 모습을 바꾸어 우리를 배웅했다.




덕보드 위를 걸어 해발 1,000m가 넘는 고원지대를 지나고 있다.




황량함이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지는 태즈매니아 특유의 풍경이 우리 눈 앞에 펼쳐졌다.



윈더미어 호수






야생화나 단풍이 든 나뭇잎, 라이킨이 자라는 바위, 하늘로 솟은 나무에도 자연의 신비가 깃들어 있다.



윈더미어 산장. 빗물을 받아 식수로 쓰는 물탱크도 보인다.


산장 주변에 있는 캠핑장에 학생들이 텐트를 치고 있다.


왈라비 몇 마리가 산장 주변에 머물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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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7.10.28 1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즈매니아가 그런 큰 섬인지는 글을 읽고 지도로 확인하고 알았습니다. 뉴질랜드랑 남극이랑 가깝네요~! 호주의 제주도 같습니다~

 

하나코아 밸리에서 칼랄라우 비치까지는 아직도 5마일이 남았다. 그리 힘이 들지는 않았지만 땀을 많이 흘린 탓에 갈증을 심하게 느꼈다. 수통에 담아온 생수는 이미 동이 난지 오래라 계곡에 흐르는 물을 그냥 마실 수밖에 없었다. 7마일 표식이 있는 지점부터 산길은 경사가 급한 낭떠러지를 따라 이어졌다. 칼랄라우 트레일은 호우가 내리면 급속히 수위를 높이는 계류 외에도 이 벼랑길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미국의 백패커 잡지에선 칼랄라우 트레일을 미국 내에서 위험한 트레일 10군데 중 하나로 꼽았다. 내 눈엔 그렇게 위험해 보이진 않았으나 그래도 중심을 잃고 벼랑에서 미끄러지면 바다로 곧장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는 했다. 전체 1마일 구간에 너댓 군데 낭떠러지가 나타났지만 발끝에 힘을 주며 조심조심 그 구간을 지나쳤다.

 

칼랄라우 트레일 상에는 이정표나 거리 표시가 그리 많지 않았다. 이정표라곤 갈림길에서나 겨우 볼 수가 있었고, 1마일 간격으로 돌에다 숫자만 달랑 적은 거리 표시도 쉽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그 아름답다는 나팔리 코스트의 진면목은 아무래도 칼랄라우 비치가 가까워지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실 그 동안은 산악 지형보다는 바다만 보면서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에둘러 칼랄라우 비치에 도착했다. 열대우림과 깊은 계곡, 깎아지른 절벽, 그리고 광할한 바다가 함께 어우러진 풍경이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주름잡힌 커튼 형태로 침식된 산악 지형은 이곳이 왜 유명한 지를 한 눈에 보여주는 상징 같은 존재였다. 석양녘의 낮게 깔린 빛을 받아 붉게 타오르는 봉우리들은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해변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는 캠핑장은 숲 속에 마련되어 있었다. 지정된 사이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평평한 곳을 찾아 아무데나 텐트를 치면 됐다. 텐트와 텐트 사이의 간격도 넓어 한적한 분위기를 풍겼다.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이들의 생활 철학이 여기서도 느껴졌다. 텐트부터 치고는 해변으로 석양을 보러 나갔다. 아쉽게도 해가 바다로 떨어지진 않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닷가 풍경이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을 찍다가 스마트폰 배터리가 모두 소진되고 말았다. 배터리 충전을 할 수 없어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가슴에 담기로 했다.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다시 어둠이 내려앉은 바닷가로 나갔다. 별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하늘을 가득 메우는 것이 아닌가. 비치에 홀로 앉아 한참을 미동도 않고 하늘만 바라보았다. 문득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이 생각났으나, 그 싯구만 입에서 맴돌뿐 한 구절도 제대로 기억나진 않았다.

 

   

 

 

위험 구간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면 낭떠러지 구간이 몇 군데 나타난다.

칼랄라우 트레일에선 위험한 구간으로 소문난 곳이다.

 

 

 

태평양에 면한 해안선은 여태 본 것과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파도는 더 거세게 밀려오는 것 같았다.

 

나팔리 코스트 산악 지형이 가까이 눈에 들어오면서 칼랄라우 비치가 멀지 않음을 알려주었다.

 

 

붉은 토양을 드러낸 구간도 몇 군데 있었다. 푸른 바다와 묘한 대조를 이뤄 잠시 눈이 즐거웠다.

 

칼랄라우 비치로 진입하는 초입에 칼랄라우를 알리는 표지판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영문 표기에 앞서 하와이 원주민들의 하와이어가 먼저 나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칼랄라우 비치로 내려서면서 목적지에 도착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이 몽돌 구간이 끝나는 곳에 해변이 있다.

 

나무에 해먹을 치고 낮잠을 즐기는 사람과 그 옆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진 사람, 모두 여유가 흘렀다.

 

낭만적인 잠자리를 제공한 1인용 텐트는 무겁지도 않고 부피도 적어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겐 제격이었다.

 

칼랄라우 비치에 서면 앞으론 태평양이 넓게 펼쳐지고 그 뒤론 나팔리 코스트의 산악 지형이 버티고 있다.

 

 

칼랄라우 비치가 끝나는 지점에 2단으로 된 칼랄라우 폭포가 나왔다.

이 근방에서 캠핑하는 사람들은 이 물을 식수로 사용한다.

 

폭포 가까이에 바닷물에 의해 형성된 해식 동굴이 있었다. 그 안에서 바라보는 바다도 꽤나 묘미가 있었다.

 

 

칼랄라우 비치에서 석양을 맞았다. 해가 바다로 떨어지는 대신 바다로 돌출한 땅 위로 살며시 내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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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치앤치즈 2016.12.14 01: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몽돌, 폭포, 해식동굴, 석양이 지는 해변...
    지형적으로도 봐도 골고루 다양하게 갖춘 지상낙원이 따로 없습니다.
    사진을 보면서 역시 하와이네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 보리올 2016.12.16 0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해안길을 걷는 것은 일반적으로 산을 오르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오르내림이 꽤 많고 풍경도 사뭇 다릅니다. 나팔리 코스트를 걸으며 아름다운 풍경에 기분이 많이 업됐지요.

  2. justin 2016.12.19 1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와이에 해변가 근처에 저런 산악 지형이 있을줄 몰랐네요~ 완전 민낯을 드러낸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풀로 가득찬 것도 아닌 솜털만 난것 같은 모습이에요~ 저런 해변에서 낮잠도 즐기고 책도 보고 사진도 찍고 캠핑하는 것이 전부 상상만해도 즐거울것 같아요~

    • 보리올 2016.12.20 13: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와이를 구성하는 주요 섬마다 산악 지형이 서로 다른 것은 사실이지. 나름대로 독특한 모습을 가지고 있단다. 이 풍경은 카우아이에만 있고.

  3. 칼랄라우 2017.12.13 1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칼랄라우 트레일 정보를 찾다가 블로그를 보게 되었습니다.
    몇가지 궁금한게 있어서 문의 드립니다.

    키에비치까지 접근 방법이 렌트카 이외에는 없나요?? 만약 그렇다면 렌트카를 주차장에 놓고 가도 괜찮은지요?? 어떤 여행에이전시 홈피에는 유리창을 부수는 강도가 있다 쓰여져 있어서,,

    두번째 한국에서 잠깐 가는 휴가이다보니 시간을 절약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칼랄라우 비치에서 1박 후 되돌아 오는 길은 가능하다면 생략하고 싶은데, 비치에서 접안하여 키에비치까지 가는 보트가 있나요??

    세번째 카우아이에서 버너에 연결할 가스를 구매 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요??

    혹시라도 아시는 부분이 있으면 답변 부탁드려요.

    • 보리올 2017.12.14 07: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곳을 가시는군요. 제가 아는 한도에서 답을 드리겠습니다.
      1) 소형차를 빌리면 렌트카가 싸고도 편한 방법입니다. 개인적으로 공항 픽업해서 트레일 입구까지 데려다 주는 서비스도 있다 합니다. 리후에에서 하날레이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있지만 배낭 사이즈에 시비를 걸고 시간 맞추기가 어렵고 하날레이에서 트레일 입구까지는 또 히치하이킹을 해야 합니다. 배낭 메고 걸어갈 거리는 아닙니다.
      2) 주차장이 그리 안전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근데 사고가 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보증할 수는 없지만 차 안에 귀중품이나 현금이 보이지 않도록 하면 괜찮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괜찮았으니까요.
      3) 칼라라우 비치에서 트레일 입구로 나오는 편을 픽업하는 업체나 원주민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이것은 시도해 보지 않아 잘 모르겠네요. 이젠 그런 서비스 없다는 이야기도 들리더군요.
      4) 리후에 다운타운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쿠쿠이 그로브(Kukui Grove) 쇼핑센터에 가면 큰 수퍼마켓이 있어 거기서 가스를 샀습니다.

  4. bikenara 2018.02.20 2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곳을다녀오셨군요.나도 올가을에 친구부부 하고 계획하고 있습니다만 1박 2일에 가능할지가 의문입니다.
    꾸준한 운동과 등산은 해오고 있는데 중간지점인 하나코아에서 하루 1박을 해야하는지 감이잡히지가 않네요.
    다른 오하우 섬이나 빅아일랜드등에서도 켐핑장에 텐트치고 백패킹할려고 합니다.
    먼저 다녀오신 경험을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보리올 2018.02.20 22: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 제가 님의 산행 능력을 몰라 1박 2일에 가능한지를 판단하기는 좀 어렵네요. 꾸준히 등산이나 백패킹을 하셨다면 충분히 해내리라 봅니다. 다른 섬은 산행은 했지만 백패킹을 하지 않아 큰 도움이 되지 못 합니다.

  5. bikenara 2018.02.28 2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답변감사드립니다.
    켐핑장퍼밋은 꼭해야되나요?

    • 보리올 2018.02.28 23: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칼랄라우 트레일에서 캠핑하려면 퍼밋 꼭 필요합니다. 온라인에서 쉽게 신청할 수 있습니다. 누가 검사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걸리면 벌금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