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사는 후배로부터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다. 대구에서 생고기로 유명한 집에서 저녁을 산다고 하니 안 갈 수가 없었다. KTX로 왕복한 교통비만 따져도 꽤 비싼 저녁 식사였다. 대구가 자랑하는 명소 두세 군데 돌아보고 싶어 좀 일찍 내려갔다. 동대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반월당 역에서 내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대구에서 요즘 뜨고 있는 근대골목이었다. 대구 중구청에서 근대 역사가 살아 숨쉬는 문화유적과 명소를 엮어서 멋진 컨텐츠를 개발한 것이 바로 근대골목 투어다. ‘근대路의 여행이란 멋진 슬로건을 내건 것도 나름 운치가 있었다. 현대백화점 뒤로 들어서자, 영남대로 과거길이 나왔다. 실제로 과거를 보러 가는 유생들이 지났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벽화 몇 장 그려져 있어 그럴 듯 했다. 약령시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한약재를 취급하는 가게들이 늘어선 골목 한 켠에 한의약 박물관이 세워져 있었다. 파란 두건을 쓴 허준 선생을 만났고, 한의약 관련한 전시물보다 어려운 설명이 더 많은 전시장은 대충 지나쳤다.


대구제일교회는 대구, 경북 지역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개신교 교회로 1898년에 기와집 네 채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 종탑을 가진 교회 건물은 그 후 1937년에 지어졌다. 현재는 교회로 사용하진 않고 예전에 쓰였던 물품들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제일교회 건너편에 있는 교남 YMCA 건물도 잠시 둘러보고 계산성당으로 갔다. 성당은 1902년에 완공되었지만 주교좌성당으로 승격되면서 증축을 거쳐 1918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한다. 우리 나라 성당치고는 실내가 무척 우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족시인 이상화가 말년을 보냈던 고택도 들어가 보았고, 그 건너편에 있는 서상돈 생가도 구경을 했다. 서상돈이란 인물은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선 분이라 하는데 솔직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길을 물어 진골목을 찾아갔다. 대구의 토착지주였던 달성서씨들이 모여 살았던 곳으로 길다는 의미에서 진골목으로 불렀다 한다. 진골목식당에서 육개장 한 그릇 하는 것으로 대구 근대골목 투어를 마쳤다.


과거 보러 가는 유생이 집을 나서 한약방 앞을 지나는 벽화를 보면서 약령시로 들어섰다.





한의약 박물관은 그 이름에 비해선 전시물이 너무 빈약하지 않았나 싶다.





대구제일교회는 33m의 종탑을 가진 고딕 양식의 건물로 대구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14년에 지어진 교남 YMCA 회관은 3.1 독립만세운동 당시 지도자들의 회합장소로 쓰였다.


계산성당으로 가다가 만난 근대골목 이정표



서울의 명동성당, 전주의 전동성당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성당에 해당한다는 계산성당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 다수의 저항시를 남긴 이상화가 말년에 살던 집이다.



이상화 고택 바로 옆에 있는 서상돈 생가는 검박하면서도 격조를 느낄 수 있었다.



대구 도심에 있는 진골목은 세월을 간직한 옛 풍경을 지니고 있어 정감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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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8.01.25 1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 흐름이 옛 것을 복원하려는 추세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너무 보기가 좋습니다! 그런 곳들을 사람들이 더더욱 찾아주기 시작하면 흐름이 탄력을 받겠죠!

    • 보리올 2018.01.26 07: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젊은 나이에도 옛것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는 것을 보니 내 맘이 좋구나. 그런 것에 관심을 쏟고 감성을 풍부하게 키우는 것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보는 방법인 것 같더라.

 

포르투 서쪽 절벽 위에 자리잡은 크리스탈 궁전 정원(Jardins do Palacio de Cristal)을 둘러보고 다시 포르투 도심으로 돌아왔다. 모처럼 한적한 정원을 산책하는 것은 좋았는데 도우루 강을 내려다보는 조망은 좀 그랬다. 카르무 성당(Igreja do Carmo)은 제법 웅장했고 푸른 타일을 써서 장식한 외관은 꽤나 우아해 보였다. 그런데 하나의 성당인줄 알고 들어갔더니 성당이 두 개로 나누어져 있었다. 원래 한 건물이 아니라 두 건물이 붙어있는 것이었다. 정면에서 보아 오른쪽 건물은 카르무 성당, 왼쪽은 카르멜리타스 성당(Igreja dos Carmelitas)이었다. 거기서 멀지 않은 클레리구스 성당(Igreja dos Clerigos)으로 가서 성당을 먼저 돌아본 후 토레 도스 클레리구스(Torre dos Clerigos)라 부르는 종탑에 올랐다. 포르투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종탑에 오르니 포르투 도심이 한 눈에 들어왔다.

 

렐루 이르망(Lello & Irmao) 서점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내부 장식이 무척 뛰어났고 2층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은 물결 모양을 표현한 것인지 특이하기 짝이 없었다. 조앤 롤랑이 포르투에서 영어교사를 하면서 이 서점에서 영감을 얻어 해리포터를 탄생시켰다고 해서 그 유명세를 톡톡히 치루고 있었다. 영업중인 서점인데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우선 입장권에 해당하는 바우처를 사야 했고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한 사람이 나오면 한 사람을 들여보내는 식이었다. 바우처는 3유로를 받는데 서점에서 책을 사면 그 금액을 할인해주지만 포르투갈어로 된 책을 사서 어디에 쓰겠는가. 한 직원이 영어책 있는 곳을 알려주었지만 거기엔 어린이용 책이 대부분이었다. 3유로를 입장료라 생각하고 그냥 나왔다. 유명세를 묘한 방법으로 돈벌이에 이용하는 것 같아 입맛이 좀 씁쓸했지만 그래도 사진 촬영은 허용을 해서 그에 대한 대가라 생각하기로 했다.

 

 

 

 

돔형 경기장이 세워져있는 크리스탈 궁전 정원에 올라 바라본 도우루 강가의 풍경

 

 

 

 

카르무 성당과 카르멜리타스 성당이 나란히 붙어있어 처음엔 하나의 성당인줄 알았다.

성당 내부의 장식은 좀 달랐지만 구조는 비슷해 보였다.

 

 

 

 

클레리구스 성당과 종탑. 높이 76m의 종탑은 포르투갈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 한다.

200 계단을 걸어 종탑 꼭대기에 오르면 훌륭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

 

 

 

 

 

 

 

 

렐루 이르망 서점은 사람들로 엄청 붐볐다.

책을 사려는 사람들보다 관광객들이 훨씬 많아 바우처라는 입장권이 아닌 입장권을 고안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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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국경을 접하고 있지만 스페인과는 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스페인에 비해서는 더 조용하고 시골스럽다고나 할까. 그래도 15세기 대항해시대엔 식민지를 찾아 세계를 주유한 나라 중의 하나였다. 브라질과 마카오가 대표적인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 포르투갈의 대항해시대를 이야기할 때 보르고냐 왕조의 뒤를 이어 아비스 왕조를 연 동 주앙 1세와 그의 셋째 아들 동 엔히크(Dom Henrique) 왕자의 역할을 간과할 수는 없다. 포르투갈 어디에서나 엔히크 왕자와 관련된 유적을 접할 수 있지만 포르투에서 가장 큰 대성당(Se do Porto)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그의 청동 기마상을 만날 수 있었다.

 

대성당은 첫 눈에 보기에도 그 고색창연한 모습에 절로 외경심이 들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12세기에 지어졌다지만 여러 차례 개축을 하는 과정에서 각종 건축 양식이 접목되어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고딕 양식의 종탑 두 개가 먼저 눈에 띄고 회랑은 18세기 아줄레주로 장식되어 있었다. 실내는 그리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바로크 풍의 프레스코화와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들어왔다. 높은 언덕 위에 대성당이 지어져 그 앞 광장에 서면 포르투의 도심을 어렵지 않게 볼 수가 있다. 일종의 자연 전망대로 도우루 강도 내려다 보이고 하얀 벽과 붉은 지붕으로 지어진 많은 건축물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마침 해가 내려앉는 석양 무렵이라 포르투의 도심 풍경이 더욱 환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나 싶다. 내가 마치 동화속 마을에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줄레주 장식이 돋보이는 성 일데폰소 성당(Igreja de Santo Ildefonso)은 아주 멋진 건물이었다.

오래 전에 세워진 성당을 헐고 1739년에 이 성당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성 일데폰소 성당에서 포르투 대성당으로 가면서 마주친 도심 풍경

 

대성당으로 오르는데 항해왕자 동 엔히크의 청동 기마상이 먼저 손님을 맞는다.

 

 

 

대성당 앞 광장에서 석양을 맞았다. 포르투 도심을 보기에 아주 좋은 전망대였다.

 

대성당 앞 광장에 십자가처럼 세워진 페로우리뇨(Pelourinho)는 우아한 모습과는 달리 죄인을 묶어놓고

매질을 하던 곳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건축 양식이 혼재된 포르투 대성당은 포르투를 대표하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다.

 

산티아고 순례길 가운데 하나인 포르투갈 길이 대성당 앞을 지나고 있었다.

 

 

 

 

 

대성당 앞 광장에서 바라본 포르투 역사지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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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이 지나도 발목엔 차도가 없었다. 일단 가는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아침 7시 이후에 기상하라는 알베르게 규정 때문에 일찍 깨어났음에도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빵과 잼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8시가 넘어 알베르게를 나섰다. 오리에타가 문을 열어주며 배웅을 해준다. 마을을 벗어날 즈음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눈앞의 풍경은 어제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두 시간을 걸어 벨로라도(Belorado)로 들어섰다. 마을 초입의 알베르게엔 일열로 각국 국기를 게양해 놓았는데 우리 태극기는 가운데가 찢어져 있었다. 10시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산타 마리아 성당으로 향했다. 소박한 장식이 마음에 들었다. 종탑 위에 새들이 집을 몇 채 지어 놓았다. 종소리가 시끄럽지도 않은 모양이다. 성당 뒤로 다 허물어진 성채가 보였다. 한때 위세를 떨쳤을 건물도 세월을 이기진 못한다.

 

반대편에서 커다란 배낭을 메고 오는 순례자가 한 명 있었다. 왜 거꾸로 걷느냐 물었더니 한숨부터 쉰다. 자기는 체코에서 온 피터라 했다. 산티아고로 가던 중에 이탈리아 젊은이들과 어울려 야영을 했는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카메라, 지갑, 여권이 모두 사라졌단다. 경찰 도움으로 인근 CCTV를 확인한 결과, 이탈리아 친구 한 명이 물건을 가지고 달아난 것은 확인됐으나 그 친구를 잡을 수는 없었다고. 팜플로나 영사관에서 여권을 만들어 체코로 돌아갔다가 다음에 다시 올 예정이라 했다.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는 30년 전에 자기 아버지가 산티아고 순례를 할 때 직접 만든 것이라고 은근 자랑을 한다. 행색을 보니 끼니를 제대로 먹지 못한 것 같아 10유로를 건네며 식사를 하라고 했다. 적은 금액이라도 고난에 처한 친구를 도와준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에스피노사(Espinosa)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매운 맛 소시지를 넣은 오믈렛으로 알고 시켰는데 오믈렛이 아니라 샌드위치가 나왔다. 그 안에 계란 스크램블과 소시지가 들어 있었다. 내가 메뉴를 잘못 읽은 모양이었다. 비야프랑카(Villafranca)에서 산 후안 데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까진 12km의 산길로 이어졌다. 오르막을 타고 해발 1,200m 높이의 몬테스 데 오카(Montes de Oca)까지 줄곧 올라야 했다. 멀리 산 로렌쏘(해발 2,268m)도 보였다. 그리곤 한 동안 평지를 걷다가 지루한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발목 통증은 오르막보다 내리막에서 더 심했다. 그래도 참을만해서 다행이었다. 하긴 참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숲길 공터에 간이 매점이 차려져 있었고 사람도 몇 명 모여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매점에서 한 여자가 쫓아와 음료수를 권한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사양을 했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잔을 건네기에 순례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인가 생각하고 고맙게 받아 마셨다. 고맙단 인사를 하고 잔을 건네니 그제서야 도네이션 하라고 손을 벌린다. 그러면 미리 도네이션 이야기를 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따졌지만 인상이 너무 험악해 바나나 하나를 들고 1유로를 주었다. 순례자들을 상대로 하는 장삿꾼에게 보기좋게 낚인 것이다. 순례자들 주머니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하더니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에 도착했다. 하나밖에 없는 알베르게라 그런지 시설이 형편없었다. 산 후안은 산토 도밍고의 제자였다. 순례자를 위해 길을 닦고 성당과 숙소를 지었다. 여기에 있는 성당도 산 후안이 12세기에 직접 지은 것이다. 산 후안은 다산의 성인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무덤을 파니 하얀 벌떼가 쏟아져 나왔는데 벌은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상징한다고 했다. 이사벨 여왕이 여길 찾아와 두 차례나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오후 6시에 시작하는 순례자 미사에 참석했다. 미사가 끝나고 산 후안의 무덤 앞으로 참석자 모두를 불러내더니 신부님이 대주교 십자가를 본따 만든 목걸이를 일일이 목에 걸어주었다.

 

저녁 식사는 미사가 끝나고 알베르게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로 해결했다. 식당도, 음식도 그리 훌륭하진 않았다. 이 순례자 메뉴는 7.50유로를 받아 다른 곳보단 저렴했으나 정성으로 만든 음식은 아니었다. 맛도 그저그랬다. 존이 함께 식사하자고 옆에 앉았다. 영국에서 온 대학교수였다. 지난 해 부인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자신은 일이 있어 먼저 돌아가고 부인만 홀로 완주를 했단다. 올해 다시 와서 나머지를 걷고 있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난로 주변에 몇 명이 둘러앉았다. 워싱턴 DC에서 온 조지 부부, 아일랜드에서 온 에드 부부, 그리고 존과 나 모두 여섯 명이 나눈 화제는 의외로 축구 이야기였다.

 

여주인 오리에타의 배웅을 받으며 알베르게를 나섰다. 또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해가 떠오르며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이른 새벽부터 전투기들이 창공에 하얀 띠를 남겨 놓았다.

 

비야마요르(Villamayor)를 지났다. 허름한 농가 주택들이 눈에 띄는데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는 듯 했다.

 

 

 

 

벨로라도는 제법 규모가 큰 도시였다. 예전엔 성당이 여덟 개나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두 개만 남았다.

 

체코에서 왔다는 피터. 여권과 지갑을 도난당해 팜플로나로 여권을 만들러 간다고 했다.

아버지가 산티아고 순례를 할 때 사용했던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점심을 먹은 에스피노사 마을. 계란으로 만든 스크램블을 오믈렛이라 불러 주문에 약간 혼선을 빚었다.

 

 

수확을 하지 않은 해바라기 밭이 자주 나타났다.

 

 

누런 들판 사이로 난 순례길을 표지석 하나가 지키고 있다.

 

9세기에 세워졌다는 산 펠리세스(San Felices) 수도원 건물은 모두 무너져 버리고 이것만 남았다.

 

스페인 내전에서 숨진 희생자 추모비가 산길 한 켠에 세워져 있었다.

 

 

몬테스 데 오카를 넘는 지루한 산길이 계속되었다. 넓은 산길 위에 누군가가 돌로 부엔 까미노를 적어 놓았다.

 

산길에 매점을 차려놓고 도네이션 하라며 순례자들 주머니를 노리는 장삿꾼들이 있었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에 도착했다. 인구라야 겨우 25명이 전부인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성당에서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열렸다. 한글 안내문도 있었다.

미사가 끝나고 성당 안에 있는 산 후안의 무덤도 둘러 보았다.

 

 

마을엔 식당도 없고 알베르게엔 부엌도 없었다. 알베르게의 순례자 메뉴가 유일한 선택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른 순례자들과 난로 주변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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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랑방귀 2015.11.27 15: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순례 관련 책을 봤는데 올리브 나무가 참 많더라고요.이곳은 해라바기 밭이 인상적이네요.

    • 보리올 2015.11.27 16: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 올리브 나무도 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눈에 띄진 않더군요. 봄, 여름에는 밀밭이 장관이라 하던데 제가 걸었던 10월에는 모두 수확한 후라 볼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포도밭과 해바라기 밭을 많이 보았지요.

  2. 스페니 2015.11.29 0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그 때의 발목은 회복되셨는지요~=_=

  3. justin 2016.01.08 1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최근에 사진 찍는 일이 부쩍 늘었는데, 확실히 느끼는 것은 예전에 아버지께서 말씀해주신대로 일출때와 일몰때 햇살이 가장 부드럽고 따스하고 사진찍기에 좋은 것 같습니다. 아침 햇살 맞은 사진들이 색감이 틀리네요.

    • 보리올 2016.01.08 1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진 찍는 일은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좋은 취미라 생각한다. 누구나 쉽게 사진에 입문한다만 본격적으로 사진을 하려면 그것도 꽤나 고행이 따르지. 갈수록 어려워지고. 우선 사진의 세계를 두루 경험해 보려무나.

 

오늘도 아침으로 인스턴트 해장국에 면을 넣어 수프를 끓였다. 대전에서 온 의사 부부를 불러 함께 식사를 했다. 너무 허접한 음식으로 아침을 대접한 것 같아 마음이 좀 찜찜했다. 두 사람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겠다 해서 나만 먼저 출발했다. 어둡던 하늘이 점점 밝아온다. 산티아고를 향해 정서 방향으로 걷기 때문에 늘 뒤에서 해가 돋는다. 긴 그림자 하나를 내 앞에 만들어 놓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청명한 가을 날씨를 보여줬고, 길가에 자라는 풀잎이나 꽃망울엔 밤새 서리가 내려 하얀 옷으로 갈아 입었다. 손이 너무 시려 처음으로 장갑을 껴야만 했다. 이렇게 맑은 날씨에 판초 우의를 걸친 한국인을 한 명 만났다. 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섯 번이나 왔다고 하는 그는 목례만 하곤 뚜벅뚜벅 길을 재촉한다.

 

두 시간을 걸어 시루에냐(Ciruena)에 도착했다. 현대식 건물로 조성된 마을엔 골프장도 있어 마치 리조트 같았다. 쉬지 않고 그냥 걸었다. 마을을 막 벗어나려는데 뭔가가 갑자기 내 발뒤꿈치를 무는 것이 아닌가. 뒤돌아 보았더니 포인터 한 마리가 등산화를 문 것이었다. 나를 향해 꼬리를 흔드는 것을 봐서는 공격 의사는 없어 보였다. 주인인 듯한 할아버지는 20여 미터 떨어져 나에게 손 한번 들어 보이곤 가만히 있었다.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곤 강아지를 주인에게 보냈다. 저 멀리 산세가 눈에 들어오니 가슴이 트이는 것 같았다. 사방으로 펼쳐진 들판은 마치 파스텔을 칠해놓은 듯 했다. 추수가 끝난 벌판은 황량해 보이기도 했지만 낮게 깔린 햇살을 받아 묘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싸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가 멀리 보였다. 순례길은 자연스럽게 대성당으로 연결되었다. 빌로리아 출신의 목동였던 산토 도밍고는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퇴짜를 맞았다. 그럼에도 순례자를 돕고 순례길을 닦는데 여생을 바쳤다. 기도를 드리기 위해 잠시 일을 멈추면 천사가 내려와 일을 대신했다고 한다. 대성당에서 기르는 닭 두 마리에도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하녀의 계략에 빠져 금잔을 훔친 도둑으로 누명을 쓴 독일 청년이 교수형을 당했는데 함께 순례를 떠났던 청년의 부모는 슬픔을 견디며 순례를 계속 했다. 산티아고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식이 교수대에 산 채로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시장에게 말했지만 시장은 식탁 위에 올려진 구운 닭이 어찌 살아날 수 있냐며 믿지를 않았다. 그 순간 식탁에 있던 닭 두 마리가 살아나 울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청년도 살아났다고 한다.

 

4유로의 입장료를 내고 대성당으로 들어갔다. 순례자라고 할인을 받았다. 전시물이 많았으나 아무래도 내 관심은 11세기에 만들어진 산토 도밍고 무덤과 성당 안에서 키운다는 닭 두 마리에 쏠렸다. 아무리 전설이라 해도 성당 안에서 닭을 키운다는 발상이 재미있었다. 성당을 나와 그 옆에 있는 70m 높이의 종탑도 올랐다. 조망은 기대보다 못 했지만 사방으로 걸려 있는 종들을 살펴보는 것도 괜찮았다. 그런데 아침부터 왼쪽 발목이 좀 이상하다 싶더니 종탑을 오르내리는데 통증이 심했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발목 앞부분이 아팠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잠시 여기서 쉬고 가자고 길가 벤치에 앉았다. 사과와 바나나를 꺼내 점심으로 먹었다. 어제 마시다 남은 와인도 모두 비웠다.

 

한국인들이 많이 머문다는 그라뇬(Granon)을 그냥 지나쳤다. 성당을 들어가 보았지만 그리 인상적이진 않았다. 그라뇬에서 2km쯤 걸었을까. 라 리오하 주를 벗어나 카스티야 레온(Castilla y Leon) 자치주로 들어섰다. 이 자치주는 떵덩이가 엄청 커서 다시 수많은 작은 주로 나뉜다. 우리가 들어선 곳은 부르고스(Burgos) 주였다. 안내판 두 개가 길가에 세워져 순례자들을 맞았다. 카스티야 레온 자치주로 들어섰더니 포도밭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대신 해바라기를 심은 밭이 나타났다. 다 익어 고개를 숙인 해바라기를 수확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더 영글기를 기다리는 것인지, 수확을 포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먹이가 풍부해 참새들은 신이 났다.

 

레데시야(Redecilla), 카스틸델카도(Castildelcado)를 지나 빌로리아 데 리오하(Viloria de Rioja)에 닿았다. 산토 도밍고가 태어난 곳이 바로 여기다. 알베르게가 두 개 있는데 모두 도네이션 제도로 운영하고 있었다. 아카시오 오리에타(Acacio Orietta)란 이름의 알베르게에 들었다. 아카시오는 브라질 남편, 오리에타는 이태리 부인의 이름이었다. <연금술사>를 쓴 코엘료(Paulo Coelho)가 여기서 묵었다고 그와 찍은 사진을 걸어 놓았다. 코옐료의 책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숙박비로 6유로를 받고 식사비는 도네이션이라 해서 따로 10유로를 주었다. 저녁 식사는 여섯 명이 모여 함께 했다. 수프가 먼저 나왔고 메인으론 쌀밥 위에 렌틸콩을 얹어 샐러드와 함께 먹었다. 맛도 괜찮았고 가정집 분위기가 풍겨 푸근한 느낌이 들었다.

 

8일 동안 쉬지 않고 걸은 것이 원인이었을까? 양말을 벗으니 왼쪽 발목이 퉁퉁 부어 있었다. 며칠 쉬라는 의미인지, 천천히 걸으란 의미인지 저 윗분의 뜻을 도통 모르겠다. 사실 조그만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첫날 길을 걷고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을 때, 오른쪽 두 번째 발가락에 티눈이 난 것을 발견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쉬지 않고 걸으니 거기서도 통증이 생겼다. 명색이 순례라 하면서 이 정도 통증도 없이 어찌 순례를 마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 그냥 참기로 했다. 하지만 발목 부상은 티눈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칫하면 며칠 쉬어야 할지도 모르고 그러면 앞으로의 일정이 모두 꼬이기 때문이다. 좀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자고 나서 다시 상태를 보기로 했다.

 

 

아쏘프라를 빠져 나오면서 일출을 맞았다.

 

 

풀잎과 꽃망울에 서리가 내려 앉았다. 날씨도 제법 쌀쌀했다.

 

한 자전거 순례자가 아침 일찍 페달을 밟으며 앞질러 갔다. 처음엔 시카고에서 온 마가렛인 줄 알았다.

 

 

 

 

 

 

멀리 산세가 보이는 가운데 드넓은 벌판이 펼쳐졌다. 붉고 푸른 색조가 어우러져 나름 아름다웠다.

 

벌판 뒤로 저 멀리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싸다가 보인다.

 

 

 

 

 

산토 도밍고 성인의 무덤이 있는 대성당. 성당 안에 닭 두 마리가 사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대성당에서 좀 떨어진 곳에 따로 세워져 있는 종탑에도 올라가 보았다.

 

그라뇬에서 집집마다 물병을 문 앞에 내놓은 모습을 목격했다. 처음엔 순례자에게 제공하는 식수인가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렇게 물병을 문앞에 놓으면 고양이가 거기엔 오줌을 싸지 않는단다.

 

카스티야 레온 자치주에 속하는 부르고스 주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판

 

주 경계선을 넘으면서 포도밭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대신 해바라기 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르고스 주로 들어와 처음 만난 마을인 레데시야를 지났다.

 

웬 물동량이 그리 많은지 이 시골 도로에도 화물차의 움직임이 부산했다.

 

 

파울로 코엘료가 묵었다는 알베르게. 알베르게 앞에서 코엘료와 함께 찍은 사진을 걸어 놓았다.

 

 

알베르게 여주인 오리에타가 준비한 저녁. 수프와 렌틸콩을 얹은 밥이 나왔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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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페니 2015.11.27 0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량하고 아름다운 색채의 들판이 떠오릅니다
    다음 포스팅 고맙게 기다리겠습니다^^

    • 보리올 2015.11.27 07: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티아고 순례길의 풍경은 기대보단 못했습니다. 이 황량한 들판의 아름다움마저 없었더라면 꽤나 실망할뻔 했지요. 누군가가 제 포스팅을 기다린다는 것이 제겐 큰 힘이 되네요.

  2. 2015.12.05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5.12.05 16: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평소 산행이나 아웃도어를 즐기신다면 겨울이라 하더라도 그리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 봅니다. 그런 경험이 없다면 재고를 하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메세타 지역의 겨울이 혹독하다 해도 엄청 추운 날씨는 아닙니다. 1~2월 낮기온이 섭씨 7~10도, 밤기온이 영하 1도에서 0도 사이입니다. 물론 아주 추울 때는 영하 14~17도를 기록하기도 했다더군요. 추운 것은 장비가 좋으면 어느 정도 커버가 될 겁니다. 알베르게는 겨울철에 닫는 곳도 많지만 어느 도시나 한두 개는 연중 상시 오픈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야긴 거리를 잘 조정하면 알베르게는 충분히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겨울철에 가보질 않아서 100% 자신은 못하고요. 더 많은 정보는 <대한민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를 조회하셔서 확인해 보시고 필요하시면 직접 문의해보시기 바랍니다.

  3. justin 2016.01.06 1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때부터 발목이 많이 안 좋아지셨군요. 산토 도밍고는 유명한 사람이었나요? 검색해도 썩 만족할만한 답이 안 나옵니다.

    • 보리올 2016.01.07 0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날부터 딱 3일간은 발목이 꽤 아팠지. 그나마 다행이었다. 산토 도밍고는 순례길에서나 유명하지. 순례자들은 그 이름을 듣고 그가 한 일을 되새기곤 한단다. 카톨릭 성인 반열에 들어간 분이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