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날이 밝았다. 마지막 결전을 앞둔 병사의 심정이 이랬을까. 새벽 3 30분에 기상을 했다. 밖은 아직 어두컴컴했다.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지만 일찍 출발하기로 한 것이다. 로지 식당은 벌써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삶은 계란과 삶은 감자, 토스트로 간단하게 아침을 때웠다. 대부분 식욕이 없어 드는둥 마는둥 음식을 건들이다 만다. 나만 혼자 식욕이 있다고 시건방을 떨 수가 없어 계란과 감자를 봉투에 담아 배낭에 넣었다. 말을 타고 토롱 라로 오를 두 사람은 5 30분 출발이라 로지에 남겨두고 우리만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아침 4 15분에 로지를 나섰다.  

 

이 지역은 묘하게도 새벽에는 바람이 불지 않는다. 춥고 세찬 골바람이 불어오면 토롱 라를 오르는데 엄청 애를 먹기 때문에 이른 새벽에 출발하는 것이 하나의 불문율이었다. 신기하게도 바람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적막강산 속에서 토롱 라쪽으로 헤드랜턴 불빛이 쭉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검은 산괴를 감아오르는 커다란 뱀의 형상 같았다. 하늘엔 반달이 떠서 헤드랜턴없이도 길을 식별할 수는 있었다. 고도계를 수시로 확인해가며 고도 5,000m 지점에서 일행들을 불러세웠다. 달랑 세 명뿐이었지만 지금까지 해오던대로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들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나를 제외하곤 모두가 5,000m를 처음 경험하는 순간인데도 표정은 도통 밝지 않았다. 기념 촬영도 그들에겐 성가신 듯 보였다.

 

산자락이 점점 밝아오더니 그 위를 장식한 다양한 형태의 구름이 나타났다. 구름만 찍어도 아름다운 사진이 될 것 같았다. 토롱 라에 가까워질수록 추위를 동반한 강풍이 점점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다.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의 가장 큰 장애물인 토롱 라가 어찌 그리 호락호락할 리가 있겠는가. 토롱 라를 20여분 남겨놓은 지점에서 말을 타고 올라온 두 분이 우리를 추월해 갔다. 표정을 보아하니 엄청난 추위에 떨었던 기색이 역력하다. 하이캠프를 출발해 네 시간을 쉬지 않고 걸어 해발 5,416m의 토롱 라에 닿았다. 너무 춥고 다리가 무거워 토롱 라에 오른 희열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었다. 그저 빨리 추운 곳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토롱 라 정상엔 찻집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사람들을 불러 찻집으로 들어섰다. 뜨거운 차 한 잔으로 추위를 녹이는 수밖에 없었다. 배낭 안에 있는 계란이나 감자를 먹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연히 짐만 만든 셈이다. 찻집은 사람들로 너무나 붐볐다. 추위에 시달렸던 사람들이 자꾸 들어오려고 해서 오래 앉아있기가 미안했다. 추위와 고산병에서 빨리 벗어나려면 하산이 최선의 방법이다. 우리도 토롱 라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는 하산을 서둘렀다. 토롱 라의 악명높은 강풍이 하산에 나선 우리의 등을 때린다. 이러다가 바람에 밀려 앞으로 고꾸라질 판이다. 새벽에 출발하지 않았더라면 이 바람과 하루종일 씨름했을 지도 모르겠다.  

 

제각각 컨디션에 따라 하산 속도가 달랐다. 최정숙 회장이 숨이 가프다며 자꾸 뒤로 처진다. 도저히 걸어 내려갈 수가 없으니 말을 불러 달라고 해서 사람을 페디로 먼저 내려보냈다. 하지만 그 마을엔 말이 없다는 것이 아닌가. 내가 뒤에서 부축하면서 천천히 내려왔다. 급경사를 내려와 페디에서 점심을 먹었다. 묵티나트까지는 여기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다. 길이 무척 편해졌다. 바람도 잦아들었다. 묵티나트는 힌두교에서도, 티벳 불교에서도 성지라 불리는 곳이라 일년 내내 성지순례를 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묵티나트를 유명하게 만든 절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티벳 불교와 힌두교가 공존하는 특이한 절이었다. 군인이 순직했는지 수십 명의 군인들이 몰려와 추모제를 지내고 있었다.   

 

묵티나트의 밥 말리(Bob Marley) 호텔에 투숙을 했다. 호텔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전에 묵었던 로지와는 격이 달랐다. 우선 뜨거운 물이 나와 샤워도 할 수 있었고 고장이 나긴 했지만 좌변기도 갖추고 있었다. 제법 고급 레스토랑 분위기를 풍기는 식당에서 만찬을 즐겼다. 정말 만찬이라 부를만 했다. 이 식당의 요리사가 호주 시드니에서 15년 경력을 쌓은 후에 이곳에다 식당을 열었다는 거창한 소개도 있었다. 특별히 치킨 시들러를 시켰다. 지금까지 먹었던 음식과는 맛에서, 가격에서 많은 차이를 보였다. 토롱 라를 무사히 넘은 안도감에 다들 자축하는 기분으로 치킨 시들러를 맛보았다. 우리가 치킨 시들러 먹는 모습을 눈으로만 봐야 하는 두 스님에겐 좀 미안하긴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런 조촐한 음식으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이것도 히말라야 트레킹의 묘미 아니겠는가. 그 동안 고산병으로 고생이 많았던 사람들 얼굴에서 안도감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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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치앤치즈 2016.08.10 09: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안나푸르나 등반하셨군요. 정말 특별한 추억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 보리올 2016.08.10 14: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솔직히 이건 안나푸르나 등반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의 유명한 트레킹 코스를 돈 것뿐이지요. 그래도 5,416m의 토롱 라를 넘어야 했기에 몸이 좀 고달팠던 기억이 납니다.

 

빗방울이 텐트를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비가 오면 비행기 운항에 차질을 빚을까 내심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지나가는 소나기였다. 짚 두 대에 짐을 싣고 마네반장을 출발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우리 출발을 지켜본다. 참으로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날씨는 아침부터 푹푹 찐다. 카트만두로 돌아가기 위해 툼링타르에서 다시 고르카 항공기에 올랐다. 두 대가 동시에 들어와 연달아 이륙을 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이는 계단식 논밭에서 네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산자락을 깍아 조그만 밭떼기를 만들었고 거기서 나는 소출로 몇 식구가 먹고 살 것이다. 그래도 이들이 우리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니 세상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닌가. 물론 힌두교나 티벳 불교같은 종교의 영향이 크다고는 하겠지만 네팔 사람들은 비록 초라한 행색임에도 마음만은 그리 초라하지 않다. 아마 행복지수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물질이 주는 달콤한 유혹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네팔에 오면 내 자신이 이율배반적으로 변하는 것을 느낀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네팔 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초라한 생활 터전이 못내 안쓰럽다가도 내 마음 한 구석엔 이들은 물질 문명을 탐하지 말고 자연 그대로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래야 내가 힘들 때마다 이곳에 와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비행기에서 산 위까지 한 평 밭을 일군 네팔 사람들의 삶을 보고 상념에 잠겼다가 깨어났더니 비행기는 어느 덧 카트만두에 도착해 있었다. 카트만두의 무더위가 우릴 반긴다. 안나푸르나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시내 구경을 나갈까 하다가 너무 더워 호텔에서 쉬기로 했다. 저녁은 대행사 장정모 사장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특별히 우설을 준비했는데 트레킹 마무리로서 너무 훌륭한 대접을 받았다.

 

<여행 요약>

한왕용 대장의 <클린 마운틴 캠페인>의 일환으로 마칼루를 다녀온 기록이다. 2007 4 22일 네팔 카트만두를 출발해 593일 카트만두로 되돌아왔다. 이 트레킹에 대해서는 <월간 마운틴> 2007 6월호에 기고한 바 있으며, KBS 일요다큐 산에도 두 차례에 걸쳐 방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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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심하진 않지만 나도 감기 기운이 있다. 비상약품 주머니를 뒤져 약을 복용했다. 한화정이 감기 몸살로 너무 힘들어 한다. 배낭을 뺏어들고 그 뒤를 따랐다. 레테에서 좀솜으로 오르는 이 길은 안나푸르나 라운드 구간의 일부다. 이 길엔 묵티나트(Muktinath)로 성지 순례를 다녀오는 인파들이 엄청 많았다. 묵티나트는 티벳 불교에서도, 힌두교에서도 성지로 친다. 그래서 멀리 인도에서도 성지 순례차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빨간 사리를 걸친 여자들이 유독 많아 푸른 산길이나 회색 마을과는 대조가 되었다.    

 

사과 재배로, 그리고 사과주로 유명한 투쿠체(Tukuche)에서 삶은 감자로 점심을 대신했다. 네팔 감자는 크진 않지만 맛은 꽤 좋은 편이다. 그래도 감자만 먹기엔 너무 퍽퍽해 두세 개 집어 들면 식사 끝이다. 김치나 동치미와 곁들이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로지에서 외국인을 위해 만든 메뉴는 천편일율적이라 우리가 택할 수 있는 폭이 그리 크진 않다. 현지인들이 먹는 달밧은 무척 싸지만 외국인이 똑같은 달밧을 시켜도 몇 배나 비싸게 받는 것이 그들 관례다.   

 

트랙터 두 대를 빌려 좀솜(Jomsom)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먼지를 풀풀 날리며 질주하는 트랙터 때문에 길을 걷는 행인들은 먼지를 뒤집어 쓴다. 한 시간 만에 좀솜에 도착했다. 좀솜은 마치 준사막 지대의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오히려 황량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마을이었다. 그래도 이 산골 마을에 은행도 있고 공항도 있다. 좀솜에서 하룻밤을 묵고 비행기로 포카라로 이동한 후, 다시 비행기로 카트만두로 이동하는 일만 남았다. 이번 트레킹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트레커스 인(Trekker’s Inn)이란 호텔에 투숙했다. 명색이 호텔이라 이름을 붙였기에 시설이 어떨까 궁금했다. 혹시가 역시로 바뀌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객실에 허름한 샤워실과 화장실이 있다는 것이 산속 로지와는 다른 점이다. 그래도 그 게 어디냐. 화장실 찾아 건물 밖으로 나가 헤매는 일만 없어도 훨씬 좋지 않은가. 네팔에는 이런 불편을 자연스레 감내하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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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지인 2013.01.14 1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아빠 감자사진보고 바로 감자 쪄먹은거 아세요? 너무 맛있게 생겼네요.. 그나저나..저 당나귀들은.. 얼마나 힘들까요..? 저렇게 무거운걸 들고 오래 걷는데도 불평한번 못하니....

  2. 이해인 2013.01.14 1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녀린 여자들이 슬리퍼만 신고서 저 가파른 산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내려오는 모습이 마냥 신기해요. 게다가 머리에 이는 무겁게 생긴 저 짐들은 또 어떻고요. 네팔의 우먼파워가 대단하네요!

  3. 보리올 2013.01.15 0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지인 ; 감자 사진을 본 김에 감자를 쪄 먹었다? 네 식욕을 돋구려면 앞으로 음식 사진을 많이 올려야겠다. 말라깽이 빨리 벗어나야지. 당나귀 신세가 가엾다고? 글쎄 말이다. 왜 하필이면 네팔에서 태어나 그 고생을 하는지... 네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근데 그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다 생각의 차이지.

    @ 해인 ; 네팔 여자들 무척 강하지. 남자들은 대충 놀고 먹고 여자들은 아이들 키우고 농사 짓고 밥하고. 힘도 무척 세단다. 20살 정도된 아가씨가 나뭇짐을 등에 지었는데 내가 한 번 머리로 메어 보려고 하다가 결국 못 들었단다. 너무 무거워서. 그네들은 그걸 들고 10리 길도 마다 않고 짐을 옮기지. 그들은 어쩌면 운명이라 생각하고 순응할지 모르지만 아빤 속으로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웠단다.

 

카트만두 도심에서 공항으로 가다 보면 바그마티(Baghmati) 강 왼쪽에 있는 화장터를 만난다. 네팔에서 아주 유명한 힌두교 사원인 파슈파티나트(Pashupatinath)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시신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하는 곳이라 비위가 약한 사람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 이곳 현지인들은 무료 입장이지만 외국인들에겐 입장료를 받는다. 예전에는 1인당 250루피를 주었는데 2009년부턴가 500루피로 대폭 인상했다고 들었다

 

 

 

사람들이 죽음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장례식의 분위기도 다르다고 본다. 네팔 사람들은 힌두교의 가르침에 따라 윤회설을 믿는다. 사람이 죽으면 동물로 태어났다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여긴다.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소나 개도 어찌 보면 우리 조상인 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이승을 떠나는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는 것이리라. 무척 엄숙할 것으로 여겼던 화장터 분위기가 그리 슬프지도, 요란하지도 않았다. 시신 앞에서 우는 사람이 없어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나 화장 의식을 지켜볼 수 있는 곳이라 관광객이라면 꼭 한 번은 들러보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시신을 들것에 실어 화장터로 옯기곤 강물을 떠다가 시신을 닦아낸다. 화장대 위에 쌓아놓은 나무 위에 시신을 올려 놓고 불을 붙인다. 화장이 모두 끝나면 시신을 태운 재와 타다 남은 장작을 바그마티 강으로 밀어 버리면 장례식이 끝이 난다. 때로는 타다 남은 신체의 일부가 물 속으로 그냥 버려지기도 한다.

 

 

 

 

화장터 건너편에선 돌아가신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추모제를 지내는 경우도 있다. 힌두교 사제가 의식을 주관한다. 이 지저분한 강물에서 사자에게 준 노잣돈을 찾으려는 아이들이 물로 뛰어들어 탐색 작업을 벌이는 광경도 가끔 볼 수가 있다. , 이 화장터 부근에 야생으로 살고 있는 원숭이 떼를 조심해야 한다. 손에 먹을 것을 가지고 있으면 언제 갑자기 달려들어 빼앗아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카드만두의 또 다른 명물, 원숭이 사원(Monkey Temple)에 들렀다. 이 사원의 정식 이름은 스와얌부나트(Swayambhunath). 카트만두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북서쪽 언덕 위에 위치해 있는 아주 고풍스런 사원이다.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이 사원은 티벳 불교와 힌두교가 함께 공존하는 묘한 곳이다. 여기 사람들은 왕왕 티벳 불교를 힌두교의 한 분파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사원 한 가운데 티벳 불교를 상징하는 황금빛 스투파()이 있는가 하면 그 옆엔 힌두 신을 모시는 탑도 세워져 있다. 사원 안에선 티벳 승려들이 염불을 하며 예불을 들이고 있는 가운데도 건물 밖에선 힌두교 신자들이 각자 음식과 꽃을 바치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곳이 원숭이 사원이라 이름 붙은 배경에는 반 야생 상태로 살아가는 원숭이들이 사원 주변에 들끓기 때문이다. 사원내 탑이나 계단에도 많아 사진 소재 역할을 하지만 언제나 그들의 기습에 조심해야 한다. 특히 음식을 들고 있는 경우는 그들의 목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공양이 끝나고 남은 음식이 많아 이곳을 떠나긴 어려울 것 같았다. 가끔은 떠돌이 개들과 영역 다툼도 벌인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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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종인 2013.01.03 2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종교의 영향을 크게 받은 문화 자체가 저희랑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우리 나라였으면 상상도 못 할 일들이었을텐데.
    특히 장례식의 절차가 신기했습니다.

 

 

남룽부터 티벳 냄새가 물씬 풍겼다. 티벳 절인 곰파와 스투파, 마니석들이 심심찮게 나타난다. 지금까지 지나온 마을과는 얼굴 생김이나 의상, 주거 형태도 사뭇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북부 산악지대에는 티벳에서 망명한 사람들이 많이 살기에 티벳 불교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며 날씨도 많이 쌀쌀해졌다. 이제 슬슬 고산병을 걱정해야 할 높이가 된 것이다. 물을 많이 마셔라, 술을 삼가라, 잠잘 때도 모자를 써라 등등 주문이 점점 많아졌다.

 

(Lho)를 지나면서 해발 3,000m를 올라섰다. 부디 간다키 강도 폭이 좁아져 계류 정도로 격이 낮아졌지만 격류가 만드는 굉음은 여전했다. 쉬얄라(Shyala)에서 오늘의 목적지, 사마 가운(Sama Gaun)까진 한 시간 거리라 적혀 있었다. 우리 출현에 동네 꼬마들이 우루루 몰려 나왔다. 그들에겐 좋은 구경감이 생긴 것이다. 아이들을 불러모아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바로 볼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가 마냥 신기한 모양이었다.

 

오후 3시가 넘어 해발 3,390m에 위치한 사마 가운에 도착했을 때에는 비가 함박눈으로 변해 온세상을 눈천지로 만들었다. 사마 가운은 인구 1,000명이 모여사는 꽤 큰 마을이었다. 이 산중에 드넓은 초원이 나타나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이 높이에서 야크와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전원 풍경을 만날 줄이야. 내일이면 마나슬루 베이스 캠프에 올라야 하는데 계속 퍼붓는 눈 때문에 어떨지 모르겠다.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온 트레킹 팀이 이미 마을을 점령하고 있었다. 텐트치기 좋은 장소는 그들이 이미 차지한 터라 우리는 로지안 대청마루같은 곳에 텐트를 쳤다. 눈을 직접 맞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부엌에 모여 화롯불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나눈다. 일본 원정대와도 인사를 나눴다. 이렇게 계속 눈이 내리면 내일 일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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