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묵었던 마을엔 식당도, 가게도 없어 아침을 해결하기가 마땅치 않았다. 결국 자판기에서 1유로짜리 비스켓 하나 꺼내 먹고 나머진 물로 채웠다. 해가 뜨기 직전에 알베르게를 나섰다. 해발 고도가 1,000m나 되는 고지인지라 바깥 날씨는 무척 쌀쌀한 편이었다. 이제 장갑은 필수였다. 붓기와 통증은 남아 있었지만 발목을 움직이기가 훨씬 편했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를 빠져나오는데 동녘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갈림길에서 발을 멈추곤 마냥 하늘만 올려다 보았다. 내 뒤를 따르던 사람들도 이 광경에 취해 길가에 일열로 서서는 셔터 누르기에 바빴다. 언덕 위 초지로 올랐다. 정자 나무로 쓰이면 좋을 듯한 나무 한 그루가 덩그러니 서있었다. 능선 위로 떠오르는 해는 여기서 볼 수 있었다.

 

아게스(Ages)를 지나 아타푸에르카(Atapuerca)까지 6km를 걸었다. 아타푸에르카는 1970년대 선사시대의 유물이 발견된 곳으로 1997년에는 80만년 전에 살았던 원시 인류의 유골도 발굴되었다. 이 유골엔 호모 안테세서(homo antecessor)란 이름이 붙여졌다. 그런 유물 덕분에 이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마을로 들어서기 전에 순례길을 벗어나 전시관까지 다녀왔다. 왕복 2km 거리라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전시관이 빤히 보여 용기를 냈다. 전시관은 인류의 진화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는데 실제 유물을 전시하기보다는 글로, 화면으로 설명하는 자료가 더 많았다. 원시인의 섹스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다시 순례길로 돌아와 아타푸에르카 마을을 지났다. 나지막한 고개를 하나 넘었다. 고개 위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고 그 옆 공터엔 돌로 여러 개의 원을 그려 놓았다. 누가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공을 들여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카르데뉴엘라(Cardenuela)의 한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침도 부실하게 먹어 하몽이 들어간 샌드위치 하나에 소시지를 넣은 토르티야(Tortilla)를 추가로 시켰다. 같은 스페인어를 쓰는데도 토르티야는 멕시코와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멕시코에선 옥수수가루나 밀가루로 만든 전병을 일컫는데, 여기선 두툼한 빈대떡 같이 생긴 계란 오믈렛을 의미하고 있었다.

 

부르고스(Burgos)로 들어서는 길은 무척이나 지루했다, 더구나 공단 지역을 지나기 때문에 볼거리도 없었다. 고르지 않은 보드블럭을 걸어야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팜플로나 다음으로 큰 도시라 부르고스 도심은 사람들로 꽤 붐볐다. 물론 시골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대도시의 활력도 느껴졌다. 도심을 관통해 알베르게에 이르는 길도 멀게 느껴졌다. 알베르게는 규모가 엄청 컸다. 15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취사는 할 수 없지만 크고 깨끗한 식당이 있었고 파티션을 이용해 한 공간에 이층 침대 두 개씩 넣은 배치도 마음에 들었다. 옆 침대는 뉴욕에서 왔다는 한인 부부가 쓰고 있었다. 침대 정리를 끝내고 밖으로 나섰다.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성당부터 들렀다. 1221년 건축을 시작해 1567년에 완공되었다 한다.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이 크고 볼거리가 많아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영어로 안내하는 오디오 가이드를 들고 다녔는데 설명도 무척 길었다. 역사적인 예술품들이 정말 많았다. 치마를 입은 예수상도, 엘 시드(El Cid)의 무덤과 관도 보았다. 벽면에 걸린 대주교 십자가, 1523년에 지었다는 황금계단, 그리고 매 정시에 입을 벌리고 종을 치는 파파모스카스(Papamoscas)도 보았다. 고풍스런 도시답게 대성당 밖에도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아 눈이 즐거웠다. 대성당 옆에 있는 니콜라스(San Nicolas) 성당에서는 결혼식이 막 끝났는지 하객들이 성당 앞에서 갓 결혼한 커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랑, 신부가 문에서 나오자 쌀과 색종이를 던져 결혼을 축하했다.

 

케밥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식당에 한국인들이 십 여명 모여 있어 인사를 했다. 뉴욕에서 왔다는 한인 부부도 있었다. 울산에서 온 중년 부부는 오늘 걷는 것을 끝내고 내일 마드리드로 이동해 귀국길에 오른다고 했다. 이 모임이 일종의 송별연이었다. 아침에 먹을 과일을 사러 다시 밖으로 나갔다가 큰일 날 뻔 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데 슬리퍼를 신고 나갔다가 경사진 내리막 길에서 꽈당 뒤로 넘어진 것이다. 엉덩이가 축축하게 다 젖었다. 머리가 돌에 부딪히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저 창피한 마음에 벌떡 일어나 다시 걸어가는데 지나가던 스페인 아줌마가 괜찮냐며 물어왔다. 그 아줌마가 지갑 떨어졌다고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더 큰 낭패를 볼 뻔 했다. 왜 이런 내리막 길에 대리석처럼 반질반질한 돌을 깔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를 벗어나는데 동녘 하늘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초지가 펼쳐진 완만한 언덕에 올라 능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했다.

 

 

해바라기 밭에도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 찾아 들었다.

 

 

 

아게스 마을을 지났다. 산티아고가 518km 남았다는 표시가 있었다.

 

 

 

 

아타푸에르카는 호모 안테세서란 원시 인류의 유골이 발굴된 곳이라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아타푸에르카를 지나 언덕 위로 오르니 십자가와 돌로 그린 원들이 나타났다.

 

 

카르데뉴엘라 마을에서 샌드위치와 토르티야로 점심을 먹었다.

 

 

 

 

 

대도시의 활력과 고풍스러움이 넘치는 부르고스 도심도 볼만 했다.

 

 

 

 

 

 

스페인 3대 성당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는 부르고스 대성당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산 니콜라스 성당에서 있었던 결혼식 장면. 신랑, 신부가 성당을 나서자 하객들이 쌀과 색종이를 던지며 축복을 빌었다.

 

저녁으로 먹은 케밥. 스페인 대도시엔 케밥을 파는 곳이 의외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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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광주랑 2015.12.01 09: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젠가 꼭 걸어보고 싶은 길인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광주광역시 공식 블로그 '광주랑'에도 많은 방문 부탁드려요 ~

    • 보리올 2015.12.01 11: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누구나 평생 한번쯤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내서 한번 다녀오시지요. 광주광역시 공식 블로그라 그런지 엄청 나네요. 가끔 들러 보겠습니다.

  2. 스페니 2015.12.02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까운 장래에 산티아고순례를 다녀오려고 해요
    정해지지 않은 그 때가 정말 기다려집니다 그래서 보리울님의 글이 더 생동적으로 다가오네요^^
    스페인에 살때는 왜 안갔는지...쩝

    • 보리올 2015.12.02 1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스페인에 사신 적이 있으시군요. 저도 오래 전에 독일에서 5년을 살았습니다. 스페인에 사셨으면 산티아고 순례길이 더 친숙하게 여겨지겠네요. 잘 준비하셔서 평생 잊지못할 좋은 추억 많이 남기시기 바랍니다.

  3. justin 2016.01.11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당의 위용이 대단하네요! 결혼식때 던지는 쌀과 색종이의 의미는 뭘까요? 쌀은 먹을 복이구 색종이는 돈일까요?

  4. 지성의 전당 2018.08.11 22: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성인들의 발자취에 대해 관심 있어 하는 것 같아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한번 검토 부탁드립니다.
    인류의 근원적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와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단언컨대 최고의 상근기는 어떤 사람이냐 하면 정말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이러한 의제를 놓고, 숙고하고 탐구하는 사람입니다.

    최고의 상근기는 카르마도 아니며, 공덕도 아니며, ‘선택’을 받아서도 아니며, 특정 민족도 아니며, 특정 종교적 신앙심도 아니며, 특정 수행과 고행도 아니며, 특정 지역도 아니며, 특정 문화도 아닙니다.

    대다수의 구도자와 수행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자기는 태어난 ‘누구와 무엇’으로 여기며, 즉 육체와의 동일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즉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고 여기면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어린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를 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뭐냐 하면, 정말 나는 ‘무엇’일까? 정말 나는 ‘누구’일까? ‘이것이(육체) 정말 나일까?’하고 스스로 자기에 대해서 한 번 더 의심해 보고, 의문을 가져 보는 것입니다.

    자기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거듭날 수가 있겠습니까?

    자기가 자기를 오해하고 있으며, 그 오해로 인해서 ‘거짓된 자기’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통찰은 ‘자기 불신’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지금의 자기’를 의심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최고의 상근기는 ‘도가 이렇다, 깨달음이 이렇다, 진리가 이렇다’ 이런 말을 늘어놓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니 이제는 ‘나는 무엇이다’에 머물지 말고 “나는 누구인가?”로 넘어오세요.

    이 말이 이해되지 않는 이유가 뭐냐 하면 ‘나는 누구이다’, ‘나는 무엇이다’에만 자기 ‘스스로’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순수합니까!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즉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 ‘자각’으로 이어지며, ‘자각’함으로 모든 것이 출발하고 ‘시작’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을 안다는 것이고, 자신을 안다는 것은 ‘홀로 독립적이다’라는 이해를 갖는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해서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존재’적인 측면에서는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해야만 하며, 설혹 ‘답’을 구했다 할지라도 그 ‘답’의 진위여부는 영원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지금까지의 동일시가 사라지고 나면, ‘나’는 ‘비존재’적인 측면으로서, ‘존재’적인 측면의 ‘주인’임을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인’에 대한 자각은 완전한 ‘자유’라 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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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이 지나도 발목엔 차도가 없었다. 일단 가는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아침 7시 이후에 기상하라는 알베르게 규정 때문에 일찍 깨어났음에도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빵과 잼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8시가 넘어 알베르게를 나섰다. 오리에타가 문을 열어주며 배웅을 해준다. 마을을 벗어날 즈음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눈앞의 풍경은 어제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두 시간을 걸어 벨로라도(Belorado)로 들어섰다. 마을 초입의 알베르게엔 일열로 각국 국기를 게양해 놓았는데 우리 태극기는 가운데가 찢어져 있었다. 10시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산타 마리아 성당으로 향했다. 소박한 장식이 마음에 들었다. 종탑 위에 새들이 집을 몇 채 지어 놓았다. 종소리가 시끄럽지도 않은 모양이다. 성당 뒤로 다 허물어진 성채가 보였다. 한때 위세를 떨쳤을 건물도 세월을 이기진 못한다.

 

반대편에서 커다란 배낭을 메고 오는 순례자가 한 명 있었다. 왜 거꾸로 걷느냐 물었더니 한숨부터 쉰다. 자기는 체코에서 온 피터라 했다. 산티아고로 가던 중에 이탈리아 젊은이들과 어울려 야영을 했는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카메라, 지갑, 여권이 모두 사라졌단다. 경찰 도움으로 인근 CCTV를 확인한 결과, 이탈리아 친구 한 명이 물건을 가지고 달아난 것은 확인됐으나 그 친구를 잡을 수는 없었다고. 팜플로나 영사관에서 여권을 만들어 체코로 돌아갔다가 다음에 다시 올 예정이라 했다.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는 30년 전에 자기 아버지가 산티아고 순례를 할 때 직접 만든 것이라고 은근 자랑을 한다. 행색을 보니 끼니를 제대로 먹지 못한 것 같아 10유로를 건네며 식사를 하라고 했다. 적은 금액이라도 고난에 처한 친구를 도와준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에스피노사(Espinosa)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매운 맛 소시지를 넣은 오믈렛으로 알고 시켰는데 오믈렛이 아니라 샌드위치가 나왔다. 그 안에 계란 스크램블과 소시지가 들어 있었다. 내가 메뉴를 잘못 읽은 모양이었다. 비야프랑카(Villafranca)에서 산 후안 데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까진 12km의 산길로 이어졌다. 오르막을 타고 해발 1,200m 높이의 몬테스 데 오카(Montes de Oca)까지 줄곧 올라야 했다. 멀리 산 로렌쏘(해발 2,268m)도 보였다. 그리곤 한 동안 평지를 걷다가 지루한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발목 통증은 오르막보다 내리막에서 더 심했다. 그래도 참을만해서 다행이었다. 하긴 참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숲길 공터에 간이 매점이 차려져 있었고 사람도 몇 명 모여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매점에서 한 여자가 쫓아와 음료수를 권한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사양을 했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잔을 건네기에 순례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인가 생각하고 고맙게 받아 마셨다. 고맙단 인사를 하고 잔을 건네니 그제서야 도네이션 하라고 손을 벌린다. 그러면 미리 도네이션 이야기를 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따졌지만 인상이 너무 험악해 바나나 하나를 들고 1유로를 주었다. 순례자들을 상대로 하는 장삿꾼에게 보기좋게 낚인 것이다. 순례자들 주머니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하더니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에 도착했다. 하나밖에 없는 알베르게라 그런지 시설이 형편없었다. 산 후안은 산토 도밍고의 제자였다. 순례자를 위해 길을 닦고 성당과 숙소를 지었다. 여기에 있는 성당도 산 후안이 12세기에 직접 지은 것이다. 산 후안은 다산의 성인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무덤을 파니 하얀 벌떼가 쏟아져 나왔는데 벌은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상징한다고 했다. 이사벨 여왕이 여길 찾아와 두 차례나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오후 6시에 시작하는 순례자 미사에 참석했다. 미사가 끝나고 산 후안의 무덤 앞으로 참석자 모두를 불러내더니 신부님이 대주교 십자가를 본따 만든 목걸이를 일일이 목에 걸어주었다.

 

저녁 식사는 미사가 끝나고 알베르게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로 해결했다. 식당도, 음식도 그리 훌륭하진 않았다. 이 순례자 메뉴는 7.50유로를 받아 다른 곳보단 저렴했으나 정성으로 만든 음식은 아니었다. 맛도 그저그랬다. 존이 함께 식사하자고 옆에 앉았다. 영국에서 온 대학교수였다. 지난 해 부인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자신은 일이 있어 먼저 돌아가고 부인만 홀로 완주를 했단다. 올해 다시 와서 나머지를 걷고 있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난로 주변에 몇 명이 둘러앉았다. 워싱턴 DC에서 온 조지 부부, 아일랜드에서 온 에드 부부, 그리고 존과 나 모두 여섯 명이 나눈 화제는 의외로 축구 이야기였다.

 

여주인 오리에타의 배웅을 받으며 알베르게를 나섰다. 또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해가 떠오르며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이른 새벽부터 전투기들이 창공에 하얀 띠를 남겨 놓았다.

 

비야마요르(Villamayor)를 지났다. 허름한 농가 주택들이 눈에 띄는데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는 듯 했다.

 

 

 

 

벨로라도는 제법 규모가 큰 도시였다. 예전엔 성당이 여덟 개나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두 개만 남았다.

 

체코에서 왔다는 피터. 여권과 지갑을 도난당해 팜플로나로 여권을 만들러 간다고 했다.

아버지가 산티아고 순례를 할 때 사용했던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점심을 먹은 에스피노사 마을. 계란으로 만든 스크램블을 오믈렛이라 불러 주문에 약간 혼선을 빚었다.

 

 

수확을 하지 않은 해바라기 밭이 자주 나타났다.

 

 

누런 들판 사이로 난 순례길을 표지석 하나가 지키고 있다.

 

9세기에 세워졌다는 산 펠리세스(San Felices) 수도원 건물은 모두 무너져 버리고 이것만 남았다.

 

스페인 내전에서 숨진 희생자 추모비가 산길 한 켠에 세워져 있었다.

 

 

몬테스 데 오카를 넘는 지루한 산길이 계속되었다. 넓은 산길 위에 누군가가 돌로 부엔 까미노를 적어 놓았다.

 

산길에 매점을 차려놓고 도네이션 하라며 순례자들 주머니를 노리는 장삿꾼들이 있었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에 도착했다. 인구라야 겨우 25명이 전부인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성당에서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열렸다. 한글 안내문도 있었다.

미사가 끝나고 성당 안에 있는 산 후안의 무덤도 둘러 보았다.

 

 

마을엔 식당도 없고 알베르게엔 부엌도 없었다. 알베르게의 순례자 메뉴가 유일한 선택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른 순례자들과 난로 주변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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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랑방귀 2015.11.27 15: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순례 관련 책을 봤는데 올리브 나무가 참 많더라고요.이곳은 해라바기 밭이 인상적이네요.

    • 보리올 2015.11.27 16: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 올리브 나무도 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눈에 띄진 않더군요. 봄, 여름에는 밀밭이 장관이라 하던데 제가 걸었던 10월에는 모두 수확한 후라 볼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포도밭과 해바라기 밭을 많이 보았지요.

  2. 스페니 2015.11.29 0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그 때의 발목은 회복되셨는지요~=_=

  3. justin 2016.01.08 1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최근에 사진 찍는 일이 부쩍 늘었는데, 확실히 느끼는 것은 예전에 아버지께서 말씀해주신대로 일출때와 일몰때 햇살이 가장 부드럽고 따스하고 사진찍기에 좋은 것 같습니다. 아침 햇살 맞은 사진들이 색감이 틀리네요.

    • 보리올 2016.01.08 1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진 찍는 일은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좋은 취미라 생각한다. 누구나 쉽게 사진에 입문한다만 본격적으로 사진을 하려면 그것도 꽤나 고행이 따르지. 갈수록 어려워지고. 우선 사진의 세계를 두루 경험해 보려무나.

 

어제 파스타를 만들어준 젊은이에게 아침을 함께 하자고 했다. 팜플로나에서 산 신라면 두 개를 끓였다. 오랜만에 먹는 매콤한 라면이 입맛을 돋운다. 오전 8시 그 친구와 알베르게를 나섰다. 박재병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친구는 학군장교 출신으로 중위로 전역한 뒤 지난 16개월간 세계여행을 하고 있었다. 돈이 떨어지면 여행지에서 일을 해 경비를 번다고 했다. 요리 솜씨가 뛰어난 것도 그와 무관하진 않았다. 그 친구의 장래 꿈을 들으며 길을 걸었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가 부럽기도 했고 한편으론 현실과의 괴리를 극복하려면 앞으로 어려움이 많겠구나 싶어 걱정도 되었다.

 

그 친구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눈 깜짝할 새에 7km나 떨어져 있다는 산솔(Sansol)에 도착했다. 내 딴에는 경험이 더 많다고 이런저런 조언을 했는데 행여 노파심이나 잔소리로 들리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산솔에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토레스 델 리오(Torres del Rio)가 빤히 내려다 보였다.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처음엔 한 마을인줄 알았다. 토레스 델 리오에는 산토 세풀크로(Santo Sepulcro)라 불리는 팔각형 모양의 아담한 성당이 있었다. 어찌 보면 에우나테의 산타 마리아 성당과 비슷해 보였다. 성당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고 있어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도로를 몇 번인가 횡단한 후에야 비아나(Viana)에 도착했다. 정오도 되지 않았다. 네 시간에 18km를 걸었으니 빨리 온 셈이다. 젊은이는 여기서 묵겠다고 해서 헤어지기 전에 점심이나 함께 하자고 했다. 엘 포르틸료(El Portillo)란 식당에서 참치와 미역, 하몽을 넣은 타파스 세 종류에 맥주 한 잔씩을 시켰다. 어느 것이든 맛은 훌륭했다. 한 입에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사이즈였는데 이것도 타파스라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다. 점심을 마치고 그 친구는 알베르게로 가고, 나는 비아나 도심을 둘러보기 위해 되돌아섰다. 시청사 앞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은 문을 닫아 들어갈 수가 없었지만 거의 다 허물어진 산 페드로 성당은 입장이 가능했다. 한 귀퉁이 건물에 천장 벽화만 남아 옛날의 영광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홀로 걷는다. 어떤 사안에 생각을 집중할 수 있어 외롭단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로그로뇨(Logrono)까진 12km를 더 가야 했다. 시커먼 구름이 몰려왔지만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비아나를 벗어나자마자 벌처(Vulture)라 부르는 독수리 한 마리가 퇴비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동물의 사체를 먹이로 한다는 녀석이다. 근데 이 녀석 배짱이 얼마나 두둑한지 내가 다가가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로그로뇨를 4km 남겨놓고 나바라 주에서 라 리오하(La Rioja) 자치주로 들어섰다. 거기서 다시 얕은 언덕을 하나 넘어서야 로그로뇨에 도착했다. 어느 알베르게에서 사람이 나와 열심히 호객 행위를 한다. 적극적인 자세는 인상적이었지만 난 무니시팔로 가겠다 미리 못을 박았다. 에브로 강(Rio Ebro) 위에 놓인 피에드라(Piedra) 다리를 건너 도심으로 향했다.

 

이곳 알베르게에도 한국인들이 꽤 많았다. 침대에 시트를 깔고는 시내 구경부터 나섰다. 로그로뇨 대성당과 메르카도(Mercado) 광장, 산티아고 성당, 산 바르톨로메(San Bartolome) 성당을 찾아 다니며 이곳저곳 기웃거렸다. 성당 세 군데가 모두 문을 열지 않아 좀 실망했는데 저녁이 되어서야 대성당과 산 바르톨로메 성당이 문을 열어 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알베르게로 돌아왔더니 독일에서 왔다는 모리츠가 스파게티를 준비할 예정인데 함께 하겠냐고 물어왔다. 배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내 식량부터 처치하고 싶어 정중히 사양을 했다. 냄비에 밥을 짓고 밥 위에 자반김을 뿌린 후에 고추장을 적절히 섞어 내 나름대로의 만찬을 즐겼다.

 

밤에 다시 밖으로 나섰다. 라우렐 거리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로그로뇨는 리오하 주의 주도인만큼 먹거리가 풍부했다. 특히 와인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리오하가 세계 5대 와인 생산지 중 하나라니 그럴만도 했다. 라우렐 거리의 타파스 바(Tapas Bar) 또한 로그로뇨의 자랑거리였다. 타파스는 식사 전에 술과 함께 먹는 간단한 음식으로 통상 바게트 위에 고기나 새우, 멸치, 버섯, , 치즈 등을 얹어 만든다. 여기 리오하에선 와인과 함께 먹는 안주라 보면 될 것 같았다. 가게마다 타파스를 개성있게 만들기 때문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맛을 보는 것이 좋다. 나도 여기저길 돌아다녔다. 사람들로 붐비는 골목을 헤집고 다니며 다양한 타파스가 준비되어 있는 바에서 와인 한잔에 타파스 한 조각 입에 무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로스 아르고스를 출발해 처음 만난 마을이 산솔이었다.

 

처음에 토레스 델 리오 마을을 보곤 산솔의 일부인줄 알았다.

마을 중앙에 별도의 성당이 있는 것을 보고 다른 마을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토레스 델 리오를 벗어나면 순례길 한 옆에 각종 메모들을 돌로 눌러놓은 곳을 지난다. 한글 메모도 많이 보였다.

 

어제 파스타를 요리해준 젊은이와 비아나까지 함께 걸었다.

원대한 꿈을 키우며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젊음이 마냥 부러웠다.

 

프랑스 르푸이를 출발해 산티아고를 찍고는 다시 르푸이로 돌아가고 있는 프랭키를 만났다.

왕복 3,400km의 장거리를 순례에 나선 것이다.

 

 

비아나로 들어서 시청사 앞에 있는 광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비아나에서 헤어지기 전에 젊은이에게 점심을 샀다. 참치와 미역, 하몽이 들어간 세 가지 타파스를 맛보았다.

 

 

외관이 이름다운 산타 마리아 성당은 문이 닫혀 밖에서 올려다만 보았다.

 

 

건물 대부분이 허물어진 산 페드로 성당은 정문과 성당 한 귀퉁이만 남아 있었다.

 

도로 아래를 지나는 지하 통로 벽면에 순례자들을 격려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동물의 사체를 먹고 산다는 벌처를 가까이에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라 리오하 자치주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길가에 서있다.

 

로그로뇨는 산티아고 순례길 표식을 특이하게 만들어 길에 박아 놓았다.

 

11세기 후반에 지어진 피에드라 다리.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와 그의 제자 산 후안 데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가 보수했다고 전해진다.

 

 

 

 

산타 마리아 라 레돈다(Santa Maria la Redonda)라고 불리는 로그로뇨 대성당.

성당 입구는 고딕 양식이지만 쌍둥이 탑은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고딕 양식의 산티아고 성당은 문을 열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정문 위에 산티아고 마타모로스(Santiago Matamoros)라 불리는 전사 산티아고의 기마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산 바르톨로메(San Bartolome) 성당의 아치 정문에는 화려한 조각들이 가득했다.

 

 

와인과 타파스 바로 유명한 라우렐 거리. 타파스 바에는 맛과 색깔, 모양이 서로 다른 타파스가 진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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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1.25 0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5.11.25 0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걷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선생님도 그러시군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오래 전부터 가려고 했지만 이제사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의미가 없었기에 전반적으로 제 기대에는 못 미치더군요. 만약 다음에 다시 가게 된다면 북쪽길을 걷고 싶습니다. 포르투갈 길도 좋을 것 같고요. 댓글 남겨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2. Justin 2015.12.23 1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 그 젊은이가 아버지를 형님으로 모시는 저보다 더 어린 그분입니까? 저도 아버지 친구분들을 형님으로 모시면 반응이 어떨까요?

    • 보리올 2015.12.23 15: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 그 청년이 맞다. 둘 사이를 형, 아우로 부르는 것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마는 제 3자가 결부되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 그래서 그 친구에게 다른 호칭이 좋겠다 했더니 바로 선생님이라 부르더구나.

 

아침 8시를 훌쩍 넘겨 눈을 떴다. 늦잠을 잔 것이다. 부리나케 출발 준비를 마쳤다. 시카고에서 온 마가렛과 함께 알베르게를 나서게 되었다. 길을 가면서 아침 먹을 곳을 찾자고 해서 따라 나섰는데 에스테야(Estella)를 지날 때까지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지 못해 결국은 아침을 굶었다. 먹은만큼 간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끼니를 챙겨 먹었는데 오늘은 뜻하지 않게 아침을 건너뛴 것이다. 에스테야는 8월 첫째주에 축제를 여는데 여기서도 소몰이 행사를 한다고 한다. 물론 팜플로나에 비해선 유명세는 많이 떨어지지만 말이다. 마가렛은 자전거를 끌고 가다가 내리막이 나오면 먼저 타고 가곤 했다. 그래도 곧 따라잡을 수 있었다. 60대 후반의 나이에 왜 혼자 왔냐고 물었더니 남편은 태국에서 골프에 반쯤 미쳐 산다고 했다. 시카고에서 자전거를 좀 탔다곤 했지만 내가 보기엔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도 못한 것 같았다.

 

에스테야 외곽에서 이라체(Irache) 와이너리로 우회하는 길로 들어섰다. 거기엔 순례자를 위해 와인과 물이 나오는 두 개의 수도꼭지를 준비해 놓았는데 이것이 순례길의 명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길로 걷는다. 물통에 와인을 조금 담아 두세 모금 마셨다. 이렇게 소비되는 양도 꽤 많을텐데 돈보다는 순례자를 우선으로 하는 배려가 고마웠다. 어떤 사람은 와인 병을 가져와 병이 넘치게 받아갔다. 히피 차림의 한 젊은이는 2리터 콜라병에 와인을 가득 담더니 그 현장을 찍는 CCTV 카메라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고마움을 욕으로 갚는 식이라 눈쌀이 절로 찌푸려졌다. 와이너리에서 운영하는 와인 박물관도 잠시 둘러보았다.

 

이라체를 벗어날 즈음 도로 옆으로 캠핑장 시설이 나타나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땅 위에 텐트를 친 모습은 볼 수가 없었고 몇 명이 쓸 수 있는 방갈로가 죽 늘어서 있었다. 어린이 놀이터도 있고 각종 스포츠 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이 유독 많았다. 카페테리아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하나는 계란 스크램블이, 다른 하나는 하몽과 치즈가 들어간 보카타(Bocata)를 시키고 맥주 한잔도 주문했다. 아침을 굶었다는 핑계로 와이너리에서 아침부터 와인을 마시고 이제는 맥주까지 마셨으니 술 기운으로 순례길을 걷는 셈이다.

 

앞에서 혼자 걷던 제이슨을 만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일에서 잠시 쉬고 있다는 그는 본래 시애틀에서 알래스카를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화물선 선장이라 했다. 집도 밴쿠버에서 30분이면 닿는 벨링햄에 있단다. 국가는 다르지만 서로 가까운 곳에 산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친해졌다. 더구나 여행과 사진을 좋아한다니 취미도 둘이 비슷하지 않은가. 바에서 와인 한잔 사겠다고 나를 잡아 끌었다. 이러다가 진짜 술에 취해 걸을까 싶어 와인은 사양하고 애플 파이를 하나 시켰다.

 

비야마요르(Villamayor) 뒤로는 야트마한 산 위에 몬하르딘(Monjardin) 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얼마 전에 KBS 2TV <영상앨범 산>에서 방영한 산티아고 순례길 2부작에 나온 성이 바로 여긴 모양이구나 싶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후배 이상은이 몬하르딘 성에 올라 멋진 풍경을 보여준 적이 있어 나도 올라가고는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 길을 걷다보니 순례길에서 벗어나 산 정상까지 올라갈 마음은 나지 않았다. 아래에서 보는 풍경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길 양쪽으론 황토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새로 씨를 뿌리려는지 농기계가 열심히 땅을 고르고 있었다. 포도밭도 눈에 많이 띄었다.

 

예상보다 이른 시각에 로스 아르코스(Los Arcos)에 도착했다. 6유로를 받는 무니시팔 알베르게에 들었다. 한국인들이 엄청 많았다. 알베르게 정원이 70명인데 누구 말로는 그 중 1/3이 한국인이라 했다. 너무 연약하게 큰다고 걱정을 했던 젊은이들이 많은 것을 보곤 우리 나라 국운이 피려나 하는 기대도 갖게 되었다. 부엌에선 한국 젋은이들이 파스타를 만들고 있었다. 나에게도 함께 저녁을 하자는 제안이 들어와 그러마 했다. 나중에 보니 재료를 구입한 비용을 각자 나누는 방식이었다. 2~3유로면 한 끼가 해결되는 모양인데 그냥 5유로를 주었다. 그래도 밖에서 먹는 것보단 훨씬 싸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식사를 해결하긴 처음인데 괜찮은 방법 같아 보였다.

 

 

서둘러 알베르게를 나섰더니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마을에서 보는 일출이라 그런지 감동은 크지 않았다.

 

알베르게부터 한 시간 가량 동행이 되어준 마가렛. 자전거로 순례를 하는데 하루 운행거리가 내 걷는 거리와 비슷했다.

 

 

 

 

에스테야도 제법 큰 도시였지만 식당을 찾는데 정신이 팔려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지나치고 말았다.

 

에스테야의 어느 쓰레기통에서 발견한 문구. 바스크 지역의 독립 열기를 대변하는 듯 했다.

 

 

 

이라체 와이너리에는 무료로 물과 와인을 받을 수 있는 수도꼭지가 설치되어 있어 순례길의 명물이 되었다.

 

 

 

이라체 와인 박물관. 조그만 공간에 125년의 역사를 담았다.

 

 

도로에 인접한 캠핑장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텐트보다는 방갈로가 주를 이뤘다.

 

 

캠핑장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으로 먹은 샌드위치

 

미국 워싱턴 주 벨링햄에서 온 제이슨은 화물선 선장이라 배를 만드는 회사에 다녔던 나와는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비야마요르를 지나면서 저 위에 있는 몬하르딘 성을 갈까말까 망설임이 좀 있었다.

 

 

 

 

붉은 색깔의 들판이 끝없이 펼쳐진 나바라 지역은 황량하면서도 한편으론 아름다워 보였다.

 

 

꽤 이른 시각에 로스 아르코스에 도착했건만 먼저 온 사람들이 대낮부터 광장에서 맥주와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알베르게에서 한국 젊은이들과 어울려 파스타로 저녁을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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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5.12.16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인과 물을 공짜로 주는 주인장의 인심이 후하네요. 5일차는 아침밥을 거르셨지만 술의 힘으로 걸으셨겠어요.

    • 보리올 2015.12.17 02: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라체 와이너리는 이제 순례길의 명물이 된 듯 하더구나. 순례자에게 좋은 이미지를 많이 심어주었지. 종교적인 소신이 없으면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2. 제시카 2016.04.15 1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과의 소소한 대화들도 재밌게 들리네요~ 조용한 길을 둘이서 얘기하면서 걷고, 또 다음날은 다른사람과 걷고. 나름 매력이있네요~~ 친구사귀는것도 늘겠어요 ㅎㅎㅎ

    • 보리올 2016.04.16 09: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 막내에게 딱 어울리는 매력적인 곳이야. 이 길에 선 사람들은 모두 오픈 마인드라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거나 친구가 될 수 있지.

 

과일로 아침을 때우곤 평소보다 빨리 알베르게를 나섰다. 헤드랜턴으로 길을 비추며 어두운 밤길을 걸어 페르돈 고개(Alto de Perdon)로 올랐다. 해가 뜨기 전에 고개에 오르기 위해 일찍 나선 것인데 예상보다 이른 시각에 도착해 한 시간 가까이를 기다려야 했다. 멀리 팜플로나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하늘이 밝아지면서 동이 틀 기미를 보였다. 트레일러를 뒤에 단 차 한대가 고개로 오르더니 트레일러를 열고 물품을 진열하는 것이 아닌가. 졸지에 순례자를 위한 매점이 세워진 것이다. 내가 첫 손님이라 그냥 지나치긴 좀 그랬다. 속으로 비싸단 생각이 들었지만 바나나 두 개를 2유로에 샀다. 철판을 잘라 만든 순례자 조형물과 능선 위를 독차지한 풍력발전기, 붉어오는 하늘과 무지개 등 페르돈 고개의 아침 풍경을 여유롭게 카메라에 담았다. 여기 설치된 풍력발전기는 모두 아시오나 제품이었다. 캐나다에서 회사 생활을 할 때 아시오나가 우리 거래처였기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우르테가(Urtega)로 내려섰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무지개가 뜬 것이 좀 수상하다 했더니 결국 비를 뿌린다. 성당 처마 밑에서 배낭 커버를 씌우고 우르테가를 벗어났더니 금방 비가 그쳤다. 날씨가 청개구리 심보를 닮았나? 무루싸발(Muruzabal)을 지나는데 성당에서 10번 종을 친 후에 잠시 간격을 두더니 다시 10번을 친다. 오랜만에 가까이서 듣는 종소리가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무루싸발에서 에우나테(Eunate)를 다녀왔다. 왕복 4km를 더 걸은 것이다. 에우나테에 산타 마리아 성당이 있는데, 그 모양이 팔각형으로 특이할 뿐만 아니라 내부는 검소 그 자체였다. 가운데 성모 마리아 상이 제단 장식의 전부였다. 밖에서 빛이 들어오는 창문도 얇은 대리석을 유리 대신 사용했다.

 

기에르모의 전설이 서려있는 오바노스(Obanos) 성당을 찾았지만 마침 미사를 진행하고 있어 기에르모의 해골은 볼 수가 없었다. 여기서 잠시 기에르모의 전설을 들어보자. 기에르모 공작의 여동생 펠리시아(Felicia)는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곤 프랑스 궁궐로 돌아가지 않고 나바라 지방에서 은둔하고 싶어했다. 설득에 실패하자 기에르모는 동생을 죽인다. 회한에 찬 기에르모도 산티아고 순례를 떠났고 여생을 여기서 동생을 애도하며 살겠다고 마음 먹는다. 나중에 두 남매는 카톨릭 교회에 의해 시복이 되었다. 기에르모의 해골은 아직도 성당에 보관되어 있는데 매년 성목요일에는 해골에 와인을 담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의식이 진행된다고 한다.

 

오바노스에서 멀지 않은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로 들어섰다. 긴 도로를 따라 형성된 도시는 규모가 제법 컸다. 거기엔 큰 성당이 두 개나 있고 11세기에 지었다는 중세 다리도 있었다. 첫 번째 크루시피호(Crucifijo) 성당은 장식이 소박했으나, 두 번째 산티아고 성당은 제단 장식이 꽤나 화려했다. 특이하게도 왼쪽 제단에는 흑인 산티아고의 상이 있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시 비가 쏟아져 다리 밑에서 비를 피했다. 우중에도 다리를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가게에서 산 바게트에 훈제 돼지고기를 넣어 점심으로 먹는데 다리를 보러 온 사람들이 내 행색을 살펴본다. 그들이 행여 내 모습을 측은하게 생각하진 않았을까 궁금했다.

 

배낭도 없이 물 한 병 달랑 들고 이 길을 거꾸로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 스페인 사람들로 이 부근에 사는 주민들이 아닌가 싶었다. 가끔 산티아고에서 역으로 걸어오는 젊은이도 만나곤 했다. 오늘도 혼자서 걸어오는 젊은이가 있어 내가 먼저 부엔 까미노!하고 인사를 건넸더니 이 친구 정색을 하면서 자기에게 그런 말 하지 말란다. 도중에 도둑이라도 맞은 것 아닌가 싶었지만 귀찮은 표정까지 비친 친구에게 따로 물어보진 않았다.

 

마녜루(Maneru)를 지나면서는 포도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페인 포도주 하면 리오하(Rioja) 지방이 유명하지만 최근 들어 나바라 지방도 포도주 생산에 열을 올린다 들었다. 멀리 언덕 위에 아름다운 마을이 하나 보였다. 시라우키(Cirauqui)란 마을이었는데 내 생각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아름답기로 손꼽을만 했다.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서 하룻밤 묵고 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오늘 걸은 거리가 너무 짧아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애초엔 에스테야(Estella)까지 가려고 했지만 3km를 남겨놓고 비야투에르타(Villatuerta)에서 하루를 마감했다.

 

비야투에르타에 하나밖에 없는 사설 알베르게에 묵었다. 숙박비로 12유로, 저녁 식사비로 13유로를 받아 좀 비싸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요리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테이블에 앉아 직접 음식을 먹을 때는 그런 생각이 싹 가셨다. 비싼만큼 격식도 있었고 맛도 괜찮았다. 애피타이저도 훌륭했지만 메인으로 나온 빠에야는 정말 훌륭했다. 자전거로 순례 중인 시카고 출신의 마가렛, 둘다 몬태나 글레이셔 국립공원의 레인저인 트레이시, 제프 부부, 호주 아줌마 등 모두 여섯이 와인을 기울이며 멋진 만찬을 즐겼다.

 

 

 

 

 

일출 시각에 맞춰 페르돈 고개로 올랐다. 여기 설치된 순례자 조형물은 꽤나 유명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자전거로 순례에 나선 사람도 의외로 많았다. 순례는 두 발로 걷거나 자전거로 하는 경우만 인정을 한다.

 

 

 

 

순례길에서 벗어나 에우나테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을 다녀왔다.

팔각형 모양을 한 성당에 성모상만 모셔져 있는 검소한 장식이 마음에 들었다.

 

 

 

기에르모의 전설이 어려있는 오바노스

 

 

 

푸엔테 라 레이나 초입에서 만난 크루시피호 성당은 규모는 컸지만 장식은 단출했다.

 

 

 

푸엔테 라 레이나의 산티아고 성당. 얼굴이 검은 산티아고가 모셔져 있었다.

 

 

중세 시대에 놓여진 다리는 아직도 건재해 관광객을 부르고 있었다. 다리 이름이 도시명이 되었다.

 

 

 

멀리서 보고는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시라우키 마을. 포도밭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로마 시대 유적인 이 아치형 다리는 세월이 흘러 조만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로마 시대에 놓았다는 도로도 볼 수 있었다.

 

간편한 복장으로 걷는 사람들이 순례자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씨앗을 뿌릴 준비를 마친 들판이 양옆으로 끝없이 펼쳐졌다.

 

 

알베르게에서 석식으로 나온 순례자 메뉴. 애피타이저도 괜찮았지만 메인으로 나온 빠에야가 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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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im 2015.11.21 1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4일차에 많이도 가셨네요
    3년전에 걸었던 길을 다시 한번 걷는듯 합니다. 빠에야 생각도 나고요
    다음 여정도 기대 합니다.

    • 보리올 2015.11.21 14: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일정을 좀 짧게 잡는 바람에 여유를 부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하루도 쉬지 못하고 계속 걸어야 했습니다. 빠에야는 스페인 현지에서 먹는 것이 훨씬 맛이 있더군요.

  2. justin 2015.12.15 1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번에는 타파스가 저를 괴롭히더니 이번에는 빠에야 차례네요. 진정한 빠에야의 맛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 보리올 2015.12.15 16: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무래도 스페인에 한번 같이 가야겠구나. 아니면 내가 독학으로 배워서 해줄까? 파에야도 스페인 현지가 훨씬 맛있더구나. 해물 파에야도 좋지만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야채 파에야도 그런대로 괜찮았지.

  3. 제시카 2016.01.03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골으로 술을 따르다니.. 조금 섬뜩하네요.. 저는 못받아마실거같아요 ㅎㅎㅎ 빠에야가 참 심플해보이는데 훌륭했다니 비밀이 무엇일지 궁금하네요!

    • 보리올 2016.01.04 03: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해골이라도 성배라 생각하면 무서울 이유가 없지. 빠에야는 스페인에서 그들 방식으로 만들어서 더 맛있다고 느꼈을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