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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플로나

산티아고 순례길 10일차(산 후안 데 오르테가~부르고스) 하룻밤 묵었던 마을엔 식당도, 가게도 없어 아침을 해결하기가 마땅치 않았다. 결국 자판기에서 1유로짜리 비스켓 하나 꺼내 먹고 나머진 물로 채웠다. 해가 뜨기 직전에 알베르게를 나섰다. 해발 고도가 1,000m나 되는 고지인지라 바깥 날씨는 무척 쌀쌀한 편이었다. 이제 장갑은 필수였다. 붓기와 통증은 남아 있었지만 발목을 움직이기가 훨씬 편했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를 빠져나오는데 동녘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갈림길에서 발을 멈추곤 마냥 하늘만 올려다 보았다. 내 뒤를 따르던 사람들도 이 광경에 취해 길가에 일열로 서서는 셔터 누르기에 바빴다. 언덕 위 초지로 올랐다. 정자 나무로 쓰이면 좋을 듯한 나무 한 그루가 덩그러니 서있었다. 능선 위로 떠오르는 해는 여기서 볼 수 있었다. 아게스(Ages.. 더보기
산티아고 순례길 9일차(빌로리아 데 리오하~산 후안 데 오르테가) 하룻밤이 지나도 발목엔 차도가 없었다. 일단 가는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아침 7시 이후에 기상하라는 알베르게 규정 때문에 일찍 깨어났음에도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빵과 잼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8시가 넘어 알베르게를 나섰다. 오리에타가 문을 열어주며 배웅을 해준다. 마을을 벗어날 즈음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눈앞의 풍경은 어제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두 시간을 걸어 벨로라도(Belorado)로 들어섰다. 마을 초입의 알베르게엔 일열로 각국 국기를 게양해 놓았는데 우리 태극기는 가운데가 찢어져 있었다. 10시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산타 마리아 성당으로 향했다. 소박한 장식이 마음에 들었다. 종탑 위에 새들이 집을 몇 채 지어 놓았다. 종소리가 시끄럽지도 않은 모양이다. 성당 뒤로 다 허물어진 성.. 더보기
산티아고 순례길 6일차(로스 아르코스~로그로뇨) 어제 파스타를 만들어준 젊은이에게 아침을 함께 하자고 했다. 팜플로나에서 산 신라면 두 개를 끓였다. 오랜만에 먹는 매콤한 라면이 입맛을 돋운다. 오전 8시 그 친구와 알베르게를 나섰다. 박재병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친구는 학군장교 출신으로 중위로 전역한 뒤 지난 1년 6개월간 세계여행을 하고 있었다. 돈이 떨어지면 여행지에서 일을 해 경비를 번다고 했다. 요리 솜씨가 뛰어난 것도 그와 무관하진 않았다. 그 친구의 장래 꿈을 들으며 길을 걸었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가 부럽기도 했고 한편으론 현실과의 괴리를 극복하려면 앞으로 어려움이 많겠구나 싶어 걱정도 되었다. 그 친구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눈 깜짝할 새에 7km나 떨어져 있다는 산솔(Sansol)에 도착했다. 내 .. 더보기
산티아고 순례길 5일차(비야투에르타~로스 아르코스) 아침 8시를 훌쩍 넘겨 눈을 떴다. 늦잠을 잔 것이다. 부리나케 출발 준비를 마쳤다. 시카고에서 온 마가렛과 함께 알베르게를 나서게 되었다. 길을 가면서 아침 먹을 곳을 찾자고 해서 따라 나섰는데 에스테야(Estella)를 지날 때까지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지 못해 결국은 아침을 굶었다. ‘먹은만큼 간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끼니를 챙겨 먹었는데 오늘은 뜻하지 않게 아침을 건너뛴 것이다. 에스테야는 8월 첫째주에 축제를 여는데 여기서도 소몰이 행사를 한다고 한다. 물론 팜플로나에 비해선 유명세는 많이 떨어지지만 말이다. 마가렛은 자전거를 끌고 가다가 내리막이 나오면 먼저 타고 가곤 했다. 그래도 곧 따라잡을 수 있었다. 60대 후반의 나이에 왜 혼자 왔냐고 물었더니 남편은 태국에서 골프에 반쯤 미쳐 산다고.. 더보기
산티아고 순례길 4일차(싸리키에기~비야투에르타) 과일로 아침을 때우곤 평소보다 빨리 알베르게를 나섰다. 헤드랜턴으로 길을 비추며 어두운 밤길을 걸어 페르돈 고개(Alto de Perdon)로 올랐다. 해가 뜨기 전에 고개에 오르기 위해 일찍 나선 것인데 예상보다 이른 시각에 도착해 한 시간 가까이를 기다려야 했다. 멀리 팜플로나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하늘이 밝아지면서 동이 틀 기미를 보였다. 트레일러를 뒤에 단 차 한대가 고개로 오르더니 트레일러를 열고 물품을 진열하는 것이 아닌가. 졸지에 순례자를 위한 매점이 세워진 것이다. 내가 첫 손님이라 그냥 지나치긴 좀 그랬다. 속으로 비싸단 생각이 들었지만 바나나 두 개를 2유로에 샀다. 철판을 잘라 만든 순례자 조형물과 능선 위를 독차지한 풍력발전기, 붉어오는 하늘과 무지개 등 페르돈 고개의 아침 풍..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