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친구들이 새벽부터 ABC를 오른다고 부산을 떠는 바람에 새벽 5시도 되기 전에 잠에서 깼다. 그냥 침낭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6시가 되어서야 밖으로 나왔다. 안나푸르나 쪽으로 부드러운 햇살을 받은 봉우리들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부턴 하산이 남았다. 고도를 낮춰 산을 내려서는 일은 부담이 없어 좋았다. 올라올 때 이틀 걸렸던 거리를 하루에 걷는다. MBC를 출발해 점심은 밤부에서 먹고 촘롱까지 하루에 뺐다.

 

우리와 비슷한 일정으로 트레킹에 나섰던 대산련 경북연맹 산꾼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함께 걸었다. 주로 포항분들이 많았다. 이 인씨를 포함한 두 명은 이름있는 전문 산악인이었다. 32명의 대규모 그룹 때문에 MBC에서 로지를 구하지 못하고 텐트에서 묵게된 것 같았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런 대규모 산행 그룹에 익숙하지만 사실 외국에서 이런 규모는 보기 힘들다. 우리도 이제부턴 규모를 좀 줄여 다녔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밤부에서 시누와로 올라서는 일, 그리고 시누와에서 계곡을 건넌 후 촘롱으로 올라서는 일이 무척 고단했다. 끝없이 계단을 올라야 했다. 하산길에 이런 구간이 나타나면 짜증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촘롱 로지를 올라서기 전에 가게 하나가 있는데, 다른 가게에 비해 물건도 많았고 가격도 쌌다. 우리에게 가격이 싸다는 것을 한국어로 어떻게 발음하냐고 물어 아예 종이에 적어 주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지역인만큼 한국어로 표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촘롱 인터내셔널 게스트하우스는 한국 트레커들에게 제법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왜냐 하면 간판에 김치찌개와 김치볶음밥을 한다고 적어 놓았기 때문이다. 여길 올라올 때 지누단다에서 묵었던 로지 주인의 여동생이 운영하고 있었다. 이 로지의 주인은 숙부인 가지란 사람. 한국에서 6년을 체류하면서 돈을 벌었기 때문에 한국말이 유창하고 김치도 직접 담근다고 했다. 이 로지에서 바라보는 안나푸르나 남봉과 히운출리, 마차푸차레의 모습이 일품이었다. 석양에 붉게 물든 봉우리를 쳐다보는 일도 너무 좋았다. 산을 오를 때 여기에 묵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지가 담갔다는 김치를 넣어 만든 김치찌개와 김치볶음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김치는 좀 별로였고 그것을 넣어 만든 찌개와 볶음밥도 그저 그랬다. 그래도 깍두기는 아주 맛있게 먹었다. 이곳 히말라야에서 김치와 깍두기를 먹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가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밤하늘에 가득한 별들을 보며 동생과 위스키 한 잔씩 했다. 이번 히말라야 여행을 통해 동생이 어느 정도 머릿속 고민거리를 날려 보낸 것 같아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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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은 방 위층이 주방과 식당이라 밤새 시끄럽기 짝이 없었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신경이 곤두선 채로 밤을 보냈다. 전기도 없는 깜깜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딱딱한 나무 침대에서 몸을 뒤척거리는 짜증을 누가 알까. 6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 대충 씻고 6 30분에 식당으로 갔더니 아무도 없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부엌에서 잠자는 사람을 깨워 아침 준비를 부탁했다.

 

배낭 여행을 온 학생들과 작별을 하곤 길을 나섰다. 구름이 걷히고 날씨가 화창해졌다. 한국의 늦가을 날씨처럼 기온이 서늘해졌다. 날씨가 산행에는 아주 좋았다. 1시간 반 걸려 데우랄리(Deurali)에 도착했다. 어디서나 한국사람이냐고 물어오는 네팔 사람들. 데우랄리 어느 찻집에서도 우리에게 한국인이냐 물어온다. 그 덕분에 그 집은 우리에게 차 두 잔을 팔 수 있었다. 뜨거운 차 한 잔에 피로가 좀 풀리는 듯 했다.

 

데우랄리를 지나면서 해발 3,200m를 넘었다. 고소 증세에 신경을 써야 하는 고도가 된 것이다. 동생 컨디션을 유심히 살펴 보았으나 아직은 거뜬해 보인다. 햇빛은 따가웠지만 숲속을 걷는 경우가 많아 그리 덥지 않았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땀도 훨씬 줄었다. 히말라야에서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MBC, 3,700m)까진 꾸준한 오르막. 통상 4시간 걸린다는 거리를 우리는 유유자적하며 5시간에 주파했다. 누리가 MBC에는 숙소가 없으니 ABC까지 올라야 한다고 한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MBC에 숙소를 잡고 점심을 먹은 후 ABC를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누리만 더 고생을 하게 되었다. 근데 누리가 급했던 모양이다. 여기저기 다시 알아보더니 어느 로지에 방 대신 마당에 쳐놓은 텐트를 150루피에 묵으라 한다. 우린 당연히 그러마 했다.

 

다시 배낭을 들쳐 메고 ABC로 향했다. 우리 앞으론 안나푸르나 주봉과 남봉이 나타났고 뒤로는 마차푸차레가 버티고 서있다. 멀리서 볼 때보다 마차푸차레의 위용이 훨씬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두 시간을 걸어 ABC에 도착했다. 동생의 고소 적응 상태부터 확인했는데 이 친구 멀쩡하다. 히말라야에서는 쉬운 코스라 하지만 첫 방문인데도 이리 쌩쌩하다니? ABC에 있는 로지에서 차 한 잔을 시켰다. 간판에 한글을 병기해 놓아 반가운 마음에 일부러 들어온 것이다.

 

여기서 일몰을 보고 갈까 했지만 너무 어두워지면 하산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 해가 남아 있을 때 하산을 시작했다. 붉게 물든 봉우리를 앞뒤로 보면서 그 장관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뒤로 보이는 안나푸르나 주봉보다 오히려 앞에 있는 마차푸차레가 훨씬 멋져 보였다. 로지엔 프랑스 트레커들로 북적거렸다. 저녁을 먹고 식당에 남아 이야기 좀 하고 자려 했더니 포터들이 잠자겠다고 자리를 비워 달랜다. 그래서 8시도 되기 전에 텐트로 돌아왔다. 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프랑스 친구 한 명이 텐트를 두드리며 조용히 해달라고 해서 이야기를 중단하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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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단발머리를한남자 2013.05.07 18: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에서도 엄청난 크기의 산이 느껴지는군요ㅋ
    abc캠프라면 저도 한번 올라본 경험이 있어 무척 그립게 만드는 사진이네요ㅎㅎ

  2. 보리올 2013.05.08 0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ABC를 다녀오셨으면 안나푸르나 연봉과 마차푸차레의 위용을 직접 느껴보셨겠네요. 히말라야 어딜 가나 인간이 참으로 작아지는 느낌입니다.

 

히말라야 트레킹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와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그리고 랑탕 트레킹을 꼽는다. 그만큼 인지도나 유명세에서 앞서는 곳이다. 처음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서는 동생을 데리고 어디를 갈까 고민했지만 결론은 금방 났다. 바쁜 회사 생활로 오래 사무실을 비울 수 없는 동생의 입장을 고려해 가장 짧은 코스인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를 택한 것이다. 해발 고도도 다른 곳에 비해 부담이 적은 4,130m에 불과하다. 신체 건강한 사람이라면 일반인도 고산병에 대한 걱정없이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시도하는 코스가 대개 이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다. 이를 줄여서 보통 ABC라 부르기도 한다. 안나푸르나에는 남면과 북면에 각각 베이스 캠프가 있는데 정상에 도전하는 원정대는 주로 북면으로 간다. 물론 안나푸르나 남벽을 타려면 당연히 남면 베이스를 이용하지만 워낙 난코스라 원정대가 그리 많지 않다. 트레킹은 모두 남면 베이스로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코스엔 지나치는 마을마다 로지가 많아 어디에서나 숙박과 식사가 가능하다. 야영이나 취사 부담이 없어 너무 편하게 다녀오는 것 아닌가 싶어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카트만두에 도착해 비자 수속을 밟았다. 과거엔 길게 줄을 서서 두 시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었는데 이번에는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더구나 난 지난 봄에 받은 비자가 아직도 유효하다고 수수료 30불을 되돌려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네팔도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주 산꾼 박정헌 대장을 공항에서 만났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것이다. 공항에 마중나온 장정모에게서 포카라로 가는 국내선 티켓을 받았다. 고맙게도 집에서 김밥을 준비해 왔다. 포카라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국내선 청사에서 박대장과 같이 나눠 먹었다.

 

포카라행 20인승 경비행기가 하늘로 날아 오른다. 날씨가 맑아 설산이 우리 시야에 들어왔다. 포카라로 갈 때 비행기 오른쪽 좌석에 앉으면 이렇게 안나푸르나 연봉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포카라 공항에서 미리 도착해 있던 포터를 만났다. 이름이 누리라 했던 것 같다. 공항에서 택시를 잡고 나야풀(Nayapul)까지 가자고 흥정을 벌였다. 택시 표식과 미터기가 없는 것을 보아선 무면허 택시임이 분명하다. 1,000루피에 합의를 보았다. 달리는 택시 차창을 통해 붉게 물든 마차푸차레를 볼 수가 있었다.

 

날이 금방 어두워지면서 마차푸차레도 우리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둠을 달려 나야풀에 도착했다. 허름한 매점에서 식빵과 콜라로 일단 허기는 면했다. 나야풀에 있는 로지는 시설이 별로라 비레탄티(Birethanti, 1,025m)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로지를 잡고 허기진 배를 채웠다. 트레킹 첫날이라 누리를 불러 우리 식탁에서 밥을 먹였더니 이것도 외국인 가격을 받는다. 혹시가 역시가 되었다. 모디(Modi) 강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방에 들어 책을 읽다가 저녁 9시가 넘어 조금 일찍 잠을 청했다. 꽤나 피곤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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