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 적응을 위한 예비일이다. 모처럼 늦잠을 잤다.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해 7시 아침 식사, 8시 출발로 하던 일정을 두 시간 늦추었더니 엄청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두 분 스님은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았다. 웬만하면 숙소에서 쉬라고 했더니 고소 적응을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가겠다고 한다. 포터 중에 가장 어린 리다가 오늘따라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 친구는 올해 15살이다. 우리로 치면 중학생인 셈인데 일찌감치 학교를 때려치우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늘 웃는 얼굴이라 일행들로부터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트레킹 초기부터 기침을 콜록콜록 해대더니 어제는 열이  끓었다. 스님들이 아침, 저녁으로 감기약을 먹이며 이 친구 상태를 체크한다.  

 

강가푸르나 호수를 지나 전망대까지 오르는 코스와 그 반대편에 있는 프라켄(Praken) 곰파까지 오르는 코스 두 가지를 놓고 고민하다가 프라켄 곰파를 택했다. 안나푸르나 산군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엔 곰파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왕복 4시간 걸린다니 소요시간도 적당했다. 포터들은 숙소에서 쉬도록 하고 우리만 길을 나섰다. 마을을 벗어나 급경사 오르막을 어느 정도 치고 올랐더니 조망이 좋아진다. 왼쪽부터 안나푸르나 2, 4, 3봉이 차례로 보이고 그 오른편에는 강가푸르나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강가푸르나에서 생성된 빙하가 길게 아래로 뻗어 있었고, 그 아래에 빙하가 녹은 물이 모여 에메랄드빛 호수를 만들어 놓았다. 호수가 많지 않은 히말라야에서 이렇게 큰 호수를 보는 것은 일종의 행운이라 할만했다.

  

강가푸르나 호수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틸리초(Tilicho) 호수에 닿는다. 그쪽으로 가도 결국은 좀솜에 닿지만 그 코스엔 로지가 없어 텐트를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그 코스를 눈으로 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프라켄 곰파로 오르는 길은 꽤나 가팔랐다. 해발 3,900m에 있는 곰파까지 가려면 400m 높이를 단숨에 치고 올라야 한다. 그리 쉽지는 않았다. 풍경도 처음 보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곰파 아래에 세워진 불탑 근처에서 점심을 준비했다. 미리 씻어온 잡곡을 코펠에 넣고 버너에 불을 붙였는데 고도가 높은 탓인지 잘 익지를 않는다. 네팔 요리사들이 압력밥솥을 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조금 설익긴 했지만 우리 입맛에 맞는 밥이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다른 팀을 수행했던 네팔인들이 절 안으로 들어가기에 나도 덩달아 따라갔다. 나이 지긋한 라마승 한 분이 방문객을 맞아 축복을 내려준다. 사진 몇 장 찍으려다 공짜로 차 한 잔 얻어 마신 죄로 스님 앞에 앉게 되었다. 불에 구운 곡식 몇 알과 노란색 물을 손바닥에 따라주며 먹으란다. 그리곤 내 머리에 경전을 대고 염불을 외우며 축원을 해준다. 불자도 아닌 사람에게 이런 황송할 데가 있나. 하지만 그 축원 의식은 공짜가 아니었다. 노승은 옆에 있는 비닐 봉지에서 가는 실로 만든 목걸이를 꺼내 내게 걸어주더니 손을 벌린다. 성의껏 100루피를 시주했다. 한데 이번에는 다른 봉지에서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목걸이를 꺼내더니 500루피를 달라고 한다. 정중히 사양하곤 밖으로 나왔다.

 

마낭으로 돌아와 이메일 확인한다고 인터넷 카페를 찾았다. 차메에 비해 여기는 고도가 좀더 높다고 1분에 20루피를 받는다. 한 시간을 사용하면 2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이제부터 인터넷 사용은 삼가야겠다. 저녁을 먹고 산책에 나섰다. 카페에서 커피나 한 잔 하자고 일행들을 데리고 나선 길이었다. 난로에 장작을 집어넣고 그 주위에 둘러앉아 이야기 꽃으로 시간을 보냈다. 저녁 7시면 달리 할 일이 없어 잠자리에 들곤 했는데 오늘은 꽤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카페가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서야 로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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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입맛을 잃고 누룽지만 찾는 사람들이 늘어 내심 걱정이 앞선다. 일행들 걷는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졌다. 고소 적응을 위해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고소에 몸이 점점 힘들어지는 모양이다. 물을 많이 마셔라, 천천히 걸어라 다시 한번 주문을 했다. 토롱 라(Thorong La)까진 며칠 더 고생을 해야 하는데 그 때까지 다들 아무 일 없이 버텨주어야 할텐데……. 피상을 벗어나자 길가에 추모탑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거기엔 우리 나라 영남대 산악부의 추모 동판이 있었다. 1989년 안나푸르나 2봉 원정시 대원 두 명이 사망했다고 적혀 있었다.

 

훔데(Humde)가 멀리 내려다 보이는 날망에 섰다. 마을을 따라 곧게 뻗은 하얀 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혹시 저것이 공항 활주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훔데에 공항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마을에 도착해서야 그것이 공항이 맞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그만 관제탑도 세워져 있었다. 1주일에 두 편의 비행기가 포카라로 연결된다 했다. 우리 일행 중에 어느 누가 도저히 토롱 라를 넘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비행기로 돌아서야 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마을을 벗어나면서 또 한 군데의 검문소를 통과했다.    

 

안나푸르나 지역은 티벳과 접경을 이루는만큼 티벳인들이 많이 모여 산다. 길을 걸으며 티벳 불교의 유적 또한 많이 만난다. 그들의 삶이 결코 종교와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도 스님 두 분이 고소 증세도 무척 힘들어 한다. 두통에다 속까지 메슥거리는 증상까지 나타났다. 누가 보아도 전형적인 고산병 증세다. 몸이 힘들면 자주 쉬는 게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이 아니던가. 예정보다 일찍 점심 식사를 하자고 일행들을 불러 세웠다. 안나푸르나 3봉 아래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걸음을 멈췄다. 안나푸르나 2봉과 4봉을 거쳐 3봉까지 왔으니 그래도 많이 온 셈이다. 식당 한 켠엔 빛바랜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다. 우리네 시골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기서부턴 길가에 얼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자락 폭포에도 하얀 얼음이 매달려 있었다. 밤에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 아니겠는가. 앞으론 보온에도 신경을 써야 할 판이다. 뭉지(Mungji)란 마을은 안나푸르나 연봉들을 보기에 아주 좋은 위치에 있었다. 안나푸르나 2봉과 3, 4봉이 모두 한 눈에 보인다. 그 동안 2봉 뒤에 숨어 잘 보이지 않던 4봉까지 뚜렷히 보였다. 브라카(Braka)에 있는 곰파는 규모가 대단했다. 4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절이라 했지만 경내까진 들어가지 않았다. 그 대신 길가에 세워진 천상천하유아독존상을 돌아나왔다.

 

해발 3,540m에 자리잡은 마낭(Manang)에 도착했다. 토롱 라를 넘기 전에 있는 마을 중에선 가장 큰 동네다.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EBC)를 가는 길목에 있는 남체(Namche)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깊은 산골에 있으면서도 웬만한 편의 시설은 다 갖추고 있었다. 병원도 있고 빵집과 카페도 있었다. 산악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작은 영화관도 있다고 했다. 저녁을 먹기 전에 마을을 한 바퀴 휙 둘러보는 것으로 일차 구경을 마쳤다. 우리는 여기서 하루를 쉬며 고소 적응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렇다고 로지에서 마냥 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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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팩타민 2014.01.13 12: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래간만에 트래킹 다녀왔을대가 새록새록 하네요.. ^^
    힘들어도 보는 풍경이 좋아서 가끔 사진을 봐도 두고두고 좋은 곳이 되었어요 ^^

    • 보리올 2014.01.13 1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한 동경이나 향수, 추억을 모두 가지고 계시겠죠. 벌써 히말라야를 다녀오신 모양이군요. 좋은 추억이 되어 삶의 활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침을 먹고는 방에서 버너를 피워 따로 누룽지를 끓였다. 따뜻한 누룽지가 들어가자 뱃속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누룽지 한 그릇에 다들 이렇게 행복해 한다. 행복이 절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실감했다. 로지를 출발해 다시 길 위에 섰다. 어디서 이 많은 인파들이 쏟아져 나왔을까. 잰걸음으로 우리를 앞질러 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눈이 파란 서양인과 그들을 따르는 가이드, 포터들이었다. 좁은 골목에선 정체 현상까지 빚어졌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니면서 교통체증까지 경험할 줄이야 어찌 알았던가. 이렇게 인원이 많으면 로지 잡는데도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우리도 포터 한 명을 먼저 보내 숙소를 잡아 놓으라 했다.

 

밤새도록 스님 두 분이 고소 증세로 고생을 한 것 같았다. 자세하게 증상을 이야기 하진 않았지만 표정을 보면 대충 알 수 있었다. 2,700m에서 벌써 증세가 나타났으니 5,400m까지 무사히 올라갈 수 있을지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간밤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런대로 잘 걷는 편이었다. 점심 식사도 하신다. 다행스런 일이다. 고도계가 정확히 3,000m를 가르키는 지점에서 다들 손가락 세 개를 펼쳐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난생 처음 3,000m 높이까지 오른 이진우 선배과 김우인님에겐 하이파이브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이 높이까지 올라온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흔하겠는가.

 

점심을 먹은 두쿠레 포카리(Dhukure Pokhari)에서 피상(Pisang)까지는 불과 한 시간 거리였다. 계곡을 따라 걷던 길이 절벽 아래를 통과하기도 했다. 하늘이 점점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산골 마을을 지날 때마다 마주치는 아이들이 피곤을 가시게 한다. 그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에 힘을 얻어 다시 걷곤 했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어 피상의 로지에 도착했다. 미리 포터를 보내 숙소를 잡은 덕에 괜찮은 로지를 얻었다. 저녁 식사까지는 시간이 남아 일행들은 방에서 쉬라 하고 혼자 곰파가 있다는 피상 윗마을에 올랐다. 안나푸르나 2봉을 배경으로 일몰을 찍으려 했는데 풍경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

 

아침, 저녁으로 볶음밥, 만두, 계란 프라이가 단골 메뉴였다. 달리 고를만한 메뉴가 없었다. 오늘은 모처럼 피자를 시켜봤는데 한 입 깨물고는 바로 후회를 했다. 세상에 이런 피자도 먹어 보는구나 싶었다. 로지 주인에게 마당에서 본 양배추를 삶아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오케이 한다. 삶은 양배추를 우리가 들고간 쌈장에 찍어 먹었다.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우리 입맛을 살린 히트작이었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마치 환각 상태 비슷하게 희한한 장면들이 머릿속을 떠돈다. 나도 이럴진대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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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테에서 다라파니까지는 한 시간 거리. 다라파니 초입에서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다. 일행을 먼저 보내고 내가 대표로 남아 검사를 받았다. 검문이라기보다는 허가증을 제시하면 거기에 스탬프를 찍고 장부에 인적사항을 적는 그런 요식 행위였다. 경찰은 그리 친절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트집을 잡지도 않았다. 검문소를 지나면 마나슬루와 안나푸르나 가는 길이 갈린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라르케 패스(Larke Pass) 방향으로 오르면 마나슬루가 나온다. 여기선 4~5일은 잡아야 마나슬루 베이스 캠프에 닿을 것이다. 몇 년 전에 그 길을 걸어 내려온 적이 있어 기억이 났다.

 

학생들의 등교길 행렬을 지나치고 선한 눈빛을 가진 꼬마들과 마주쳤다. 담장에 쌓아놓은 나무 위에 종이를 펴놓고 공부하는 여자아이도 만났다. 이들이 바로 네팔의 미래 희망 아니겠는가. 티망(Temang)까진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되었다. 뒤로는 마나슬루가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채 우리를 굽어보고 있었다. 우람한 산세가 단연 독보적이었다. 조금 있으니 하얀 뭉게구름이 정상을 가려 버렸다. 손목에 찬 고도계로는 해발 2,600m가 넘었지만, 지도에는 티망베시(Temang Besi)라 하여 2,270m라 표기되어 있었다. 지도가 잘못된 것인지, 서로 다른 마을을 의미하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히말라야 다른 곳보다 안나푸르나는 말똥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다. 여기선 운송 수단으로 말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길바닥엔 말라붙은 말똥이 즐비하고 거기서 나는 냄새 또한 하나의 상징물이 되었다. 우리 옆으로 크고 작은 말떼들이 지나가면서 뽀얀 먼지를 일으킨다. 탄촉(Thanchok)을 지나며 우리 앞으로 또 다른 설산이 나타났다. 포터 긴딩의 설명으로는 안나푸르나 3봉이라 하지만 아무리 봐도 지도상으론 안나푸르나 2봉이다. 3봉은 앞으로 2~3일 더 걸어야 우리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네팔 사람들 이야기라고 무조건 믿으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묵을 차메(Chame)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은행도 있고 인터넷 카페도 몇 개 있었다. 급히 메일을 보낼 일이 있어 인터넷 카페에 갔더니 한글 자판은 물론 없었다. 접속 속도가 너무 느려 사이트 하나 여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장난이 아니었다. 겨우 다섯 줄짜리 메일 하나 보냈는데 220루피를 달란다. 1분에 10루피씩 받으니 이 메일 하나 보내는데 22분을 썼다는 이야기다. 우리 나라에 비하면 무척 비싼 셈이다. 하기야 히말라야까지 와서 인터넷을 하겠다는 내가 잘못이지, 인터넷을 하려면 위성을 사용해야 하는 이들을 탓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로지에 든 일행들이 슬슬 신체적 변화를 느끼면서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두 분 스님은 벌써부터 약한 두통을 호소한다. 해발 2,700m의 고도를 넘겼으니 긴장감이 조금씩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부터는 나도 술을 마시지 말자 마음을 먹었지만 포터들에게 네팔 막걸리 창을 사주면서 나도 덩달아 한 잔을 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창을 한 잔 더 마셨다. 이러다가 내가 가장 먼저 뻗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일부턴 3,000m 위로 오르니 무조건 금주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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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으로 팬케이크와 짜파티, 만두, 계란 프라이 등을 시켰다. 꽤나 푸짐한 편이었다. 맛으로 먹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먹을만해서 다행이었다. 로지 주인이 쓰레기를 출렁다리로 가져가더니 강으로 휙 던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대부분 음식물 쓰레기였는데 말이다. 강이 그에겐 쓰레기 처리장이었다. 현지인들의 환경 의식 수준을 보곤 심히 걱정이 되었다. 히말라야가 그들의 생활 터전이긴 하지만 이제 그들만의 소유물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그들에게 쓰레기를 지고 산 아래로 내려가라고 할 수도 없는 일. 산 속에서 쓰레기를 처리할 묘책은 과연 무엇일까. 가슴이 답답했다.

 

산사태 지역에 길을 내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히말라야 산골 마을까지 굴착기를 들여와 시끄러운 기계음을 내고 있었다. 압축공기를 만들기 위해 컴프레서도 요란하게 돌아간다. 예전에는 도로를 놓기 위해 사람들이 망치나 해머로 돌을 깨던 방식에서 이제는 폭약을 사용한 발파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실 재해 복구라기보다는 안나푸르나 라운드 코스 대부분을 잇는 도로를 놓고 있는 것 같았다. 조만간 안나푸르나를 차로 돌아볼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태라면 이 코스를 다시 오기가 힘이 들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제부터 마르샹디(Marsyangdi) 강을 따라 꾸준히 올라서고 있다. 강의 수량도 엄청났고 물이 흐르며 만들어 내는 함성소리도 대단했다. 산길 양쪽으론 수백 미터 낙차를 가진 폭포들이 연이어 나타나 우리 눈을 즐겁게 했다. 우리 나라에 있었다면 대단한 이름을 얻었을텐데 이곳 히말라야에선 그저 이름없는 무명폭포일 뿐이다. 자가트(Jagat)를 지나자 멀리 하얀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산자락을 휘감고 있는 구름인줄 알았는데, 머지 않아 산불이란 것을 알아챘다. 급사면을 태우며 올라가는 산불이라 진압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이럴 때는 시원한 빗줄기가 최고인데 비 내릴 기색은 전혀 없다.

 

(Tal)이란 마을은 강이 에돌아가는 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산자락에 기댄 마을만 보다가 강바닥에 있는 마을을 대하니 기분이 새로웠다. 마을로 내려서면서 높은 위치에서 마을을 내려다 보면 더 아름답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조그만 마을이 하얀 모래, 에메랄드빛 강물과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히말라야에서는 그리 흔치 않은 풍경이었다. 예전에 마나슬루를 돌고 나올 때도 여기를 지나며 이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했는데 다시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일정 상으론 다라파니(Dharapani)까지 가려 했지만 진행 속도가 좀 느렸다. 카르테(Karte)에 있는 로지에 짐을 풀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로지 입구에 맛있는 김치가 있습니다란 한글 표지판이 붙어 있어 순간적으로 입에 침이 고였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네팔에서 네팔인들이 담근 김치가 어떤 맛일까 궁금했다. 더구나 여긴 히말라야 산속 아닌가. 그런데 짐을 풀고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김치가 떨어졌다고 오리발이다. 그렇다고 다시 짐을 쌀 수도 없고. 우리가 결국 이 표지판에 낚인 셈이었다. 온수에 샤워를 한다고 다들 부산하다. 상행 구간에서 샤워가 가능한 마지막 지점이 아닐까 싶어 나도 마지막으로 샤워장을 들어섰는데 차가운 물만 나와 낭패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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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rima bella 2014.01.06 06: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말라야에도 이런 시원한 물줄기의 폭포가 있군요.
    등반할 맛이 날 것 같아요^^

    • 보리올 2014.01.06 07: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히말라야엔 폭포가 그리 발달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곳인데 폭포가 아주 없을 리는 없지요. 엄청 큰 폭포도 이름이 없다 해서 좀 놀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접근은 그리 쉽지 않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