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유난히 염소똥이 많다고 느꼈는데 우리 앞에서 양떼를 몰고가는 목동들을 만났다. 몇 살쯤 되었을까? 한참 학교 다닐 나이에 목동으로 살아가다니 좀 안타깝기도 했다. 양들은 자꾸 산비탈로 오르려 하고 목동들은 그것을 막고 있었다. 회초리로, 때론 돌을 던져 말썽꾸리기를 즉석에서 단죄하기도 했다.
필림(Philim) 마을엔 전신주가 세워져 있었다. 전신주는 산골 마을에선 좀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마을 뒤에 있는 폭포의 낙차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해 이 마을만 쓴다고 한다. 이 발전기는 일본에서 기부했다고 적혀 있었다. 마나슬루는 8,000m급 고봉 중에 유일하게 일본이 초등한 봉우리라서 이 지역에 일본이 공을 많이 들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에클리 바티(Ekle Bhatti)에서 점심으로 칼국수가 나왔다. 요리사 덴지는 네팔에서 꽤 알아주는 한식 요리사다. 한국 원정대를 따라 다니며 그 까다로운 입맛을 맞춰준 베테랑이다. 한국말도 제법 한다.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포스가 느껴지는 친구다. 비가 쏟아질 듯 먹구름이 몰려와 발걸음을 재촉했다. 길은 벼랑 위를 돌아 위태롭게 이어진다. 잠시 한 눈을 팔면 벼랑 아래로 떨어져 급류에 휩쓸릴 판이다.
결국은 빗방울이 돋기 시작했다. 뎅(Deng)까지 세 시간을 쉬지 않고 걸었다. 길이 미끄럽긴 했지만 난 오히려 시원해서 좋았다. 천둥, 번개까지 치는 상황이라 자연 발걸음이 빨라질 수밖에. 선두에 선 홍일점 임선미의 속도를 따라 잡느라 딴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선두가 너무 빠르게 진행을 한다고 뒤에서 노익장들이 불만이 심했던 모양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한 대장이 야영 대신 로지에 묵자고 한다. 나무 침대 네 개씩 들어있는 방 두 개가 전부인 허름한 로지였다. 벽에 구멍이 숭숭 뚫려 바람이 들어온다. 입김이 나는 것을 보니 날씨가 꽤 쌀쌀해졌다. 우리 방에는 젊은 축에 속하는 대원 7명이 자리를 잡았다. 네 명은 침대에, 그리고 세 명은 바닥에 침낭을 깔았다. 젖은 옷을 말리고 카고백 속에 있던 짐들도 꺼내 말려야 했다. 내 침낭도 모두 젖어 부엌 장작불 주변에 널어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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