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두아에서 상큼한 아침 시간을 맞았다.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서늘하면서도 맑았다. 오전 6시 40분, 이른 시각임에도 아이들 네 명이 마당에 펼친 멍석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공책에 열심히 영어 단어를 적고 있는 아이들이 기특했다. 학교도 아니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멍석에 앉아 스스로 영어 공부를 하다니 이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이 아이들이 나중에 네팔의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여기서 가슴이 먹먹했던 순간도 있었다. 열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돌박이 아이를 등에 업고 있어서 처음엔 동생을 들처업고 나온 누나로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아기는 여자 아이의 아들이란다. 조혼 풍속이 있는 히말라야 일부 지역에서는 열 두셋이면 여자 아이들은 시집갈 준비를 한단다. 일찍 늙고 일찍 죽는 이유가 이 조혼 풍속에 있는 것 같았다. 남녀 모두 50, 60세를 넘기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내가 감 내놔라 팥 내놔라할 문제는 아니었지만 입안이 좀 씁쓸했다.
오늘은 다시 아룬 강을 건넌다. 이번 트레킹에서 마지막 고생길이라 할까. 해발 1,510m에 있는 세두아에서 고도 700m의 아룬 강으로 내려섰다가 강을 건넌 후 다시 1,500m 고도에 있는 눔으로 오른다. 등반고도 800m짜리 산을 하나 오르내리는 것과 같았다. 내리막으로 시작하는 것이 다르긴 했지만. 무더위 속에서 두 시간을 걸어 내려가 아룬 강에 도착했다. 내리막 구간이야 쉬웠지만 눔까지 세 시간 이상을 줄창 오르는 경사길은 꽤나 힘이 들었다. 세두아에서 눔까지 짚라인(Zipline)을 연결하면 단숨에 건너갈텐데 하는 실없는 생각도 해봤다.
눔에 도착해 점심을 먹었다. 오늘은 여기서 묵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많았다. 맥주 가격이 많이 싸진 탓에 맥주를 축내며 시간을 보내다가 카메라를 들고 학교를 방문했다. 꼬마들이 수업을 받다 내 출현에 모두들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수업을 계속하라 제스처를 쓰고는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히말라야에 사는 아이들이라고 더 순진무구하지는 않겠지만 여기 아이들 정말 천사같다. 보고 듣는 것이 제한되어 있어 그리 약지도 못하다. 그저 지나가는 외국인 트레커들을 좇아다니며 사탕이나 볼펜달라는 것이 전부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그다지 거부반응이 없어 솔직히 난 너무 좋았다.
오늘 저녁에도 염소 고기가 나왔다. 최고령 참가자인 정한영 교수께서 염소를 한 마리 사신 것이다. 매일 저녁 부식 기부가 줄을 잇는다. 한 대장 부탁을 받은 요리사 템바가 염소의 몇 가지 부위를 순서대로 요리해서 가지고 나왔다. 골부터 시작해 혀, 염통, 내장, 고기 순으로 나오다가 마지막은 국으로 장식을 했다. 한 대장 덕분에 별것 다 먹어 본다. 럭시가 돌면서 취기가 꽤나 올랐다. 텐트로 잠시 도망쳤다가 바로 잠에 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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