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맑은 대신 바람이 무척 강했다. 이 바람을 뚫고 헬기가 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위성 전화로 카트만두에 연락해 헬기를 요청했다. 이 정도 날씨면 헬기 뜨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는 회신도 들어왔다. 한 대장과 김덕환 선배가 남아 원 선배를 보내고 뒤쫓아오기로 했다. 나머지 일행은 당말 베이스 캠프(해발 4,800m)로 출발했다. 완만한 오르막 길을 따라 오르는 중에 헬기가 계곡 사이를 통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랑레 카르카를 지나면서 고산 식물들의 키가 현저히 작아진 것을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나무는 대부분 시야에서 사라졌고 땅에 바짝 웅크린 식생들만 조금 남았다. 히말라야의 수목한계선을 넘어선 것이다. 그에 비해 시야는 훨씬 넓게 트였다. 멀리 눈을 뒤집어쓴 설봉과 거기에 둥지를 튼 빙하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우리가 가는 방향 저 앞에 곧 마칼루가 나타난다고 해서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처음으로 마칼루의 진면목을 대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영광스런 순간인가.
빙하 위 모레인 지역을 걸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고도 4,000m를 넘어서면 하루에 고도 700m를 올리는 것도 솔직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 다리며 머리 모두 무거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운행 속도를 늦추고 심호흡을 자주하는 방법 외에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오른쪽으로 크게 방향을 틀어 작은 고개 위에 올라서자, 우리 눈 앞에 거대한 설산 하나가 떡하니 나타난 것이다. 시야를 꽉 채우며 다가오는 저 산이 정녕 마칼루란 말인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솟구치는 감동을 추스려야 했다.
그 다음엔 오르막도 거의 없었다. 한 시간은 걸어야겠지만 저 끝에 당말 베이스 캠프가 보였다. 당말 베이스 캠프는 마칼루 남벽 아래에 바룬 계곡이 갑자기 확 넓어지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마칼루와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어 어떤 원정대가 여기를 베이스 캠프로 쓸까 궁금했다. 바룬 강은 이제 폭 2~3m의 작은 개천으로 변해 있었다.
이른 오후에 당말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아직도 서편에 햇살이 많이 남아 있어 그 동안 사용했던 텐트, 침낭을 꺼내 말렸다. 야영지도 크고 평평해서 텐트 간격을 널찍하게 쳤다. 우리 도착에 앞서 매점이 문을 열었다. 어제 만났던 다와 부자가 우리 소식을 듣고는 급히 올라온 것이다. 하지만 맥주 한 병에 600루피씩 달라니 누가 그 비싼 맥주를 사먹겠는가. 더구나 고산병 걱정에 다들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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