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침낭 안에서 뒤치락거리다가 아침 준비나 하자고 일어났다. 어제와 같이 설렁탕 면에 누룽지, 떡점을 넣고 끓였다. 몇 끼를 먹은만큼 식자재가 줄어 배낭 무게가 많이 가벼워졌다. 우리가 만든 쓰레기를 모두 봉지에 담아 배낭에 넣었다. 여긴 가져온 쓰레기를 모두 들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 8시가 넘어 산장을 나섰다. 꿈같은 산장 생활을 마치고 문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하라 호수에 들러 잠시 얼음 위를 걸으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여름에 다시 한 번 왔으면 좋으련만 그 때 상황이 어떨지 모르겠다.   

 

다시 11km를 걸어 내려가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이 길을 오를 때 엄청 길었다는 느낌이 내리막에선 들지 않았다. 금방 1km씩 거리가 줄어드는 것을 나무에 걸린 거리 표식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배낭이 가벼워진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스노슈즈도 이젠 발에 익어 눈 위를 걷는 모양새도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마음이 뿌듯했다. 오랜만에 진짜 스노슈잉다운 겨울 산행을 즐겼기 때문이다. 밴쿠버로 돌아가도 당분간은 스노슈잉이 생각나지 않을 것 같았다. 4km를 걸어 7km 지점에서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또 쉬지 않고 4km를 걸어 3km지점에서 물 한 모금 마시며 쉬기도 했다.  

 

이제 주차장까지 단숨에 뻬자고 발걸음을 빨리 하고 있는데, 산 아래에서 크로스 컨트리 스키를 타고 올라오는 그룹을 만났다. 캘거리에서 그룹으로 온다는 이들 때문에 우리가 이틀만에 방을 빼는 것이었다. 20명 일행 중에는 75세 할아버지도 있었다. 그 나이에 크로스 컨트리 스키라니 참 젊게 사는 양반이다. 제일 뒤에서 스노슈잉을 하면서 홀로 올라오던 친구가 스키 트랙을 걷는 우리를 보고 잔소리를 한다. 스키 트랙을 망가뜨리지 말고 신설 위를 걸으라는 것이 아닌가. 예전에 배운 적이 있지만 아무 생각없이 앞사람이 만들어 놓은 트랙을 따라온 것이다. 속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이 친구 말하는 폼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스키 트랙을 벗어나 신설 위에 새로운 흔적을 남기며 열심히 걸었다. 이렇게 걷는 것이 훨씬 에너지 소모가 많아 종아리에 근육이 팍팍 생기는 것 같았다.  

 

11 40분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하라 호수에서 사진을 찍는다 늦장을 부린 것을 감안해도 하산에 3시간 30분은 걸린 셈이다. 전체가 12km 눈길이니 그 정도는 걸릴 것으로 보았다. 내 경험으론 겨울철 스노슈잉은 하루 10km 내외에 4~5시간 산행이 적당하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는 에머랄드 호수(Emerald Lake)로 이동해 호수 위를 걷는 스노슈잉을 한두 시간 더 하기로 했다. 이렇게 호수가 꽁꽁 언 때가 아니면 언제 호수 위를 걸어볼 수 있겠는가. 호수를 둘러싼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겨울철 로키 산행의 묘미를 연장하고 싶었다. 에머랄드 호수 주차장에 도착해 베이글로 점심을 때웠다. 날씨는 어제와 비슷해 약한 눈발을 날리고 있었다. 호수에는 크로스 컨트리 스키나 스노슈잉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끔 보였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트레일을 따라 걸었다. 아쉽게도 에머랄드 호수를 둘러싼 봉우리들이 대부분 구름에 가려 버렸다. 사람들이 많이 밟아서 그런지 눈에 빠지진 않았다. 트레일을 2km 정도 걸은 후에 호수로 들어섰다. 눈이 많지 않아 걷기에 너무 편했다. 기분도 상큼했다. 호수 위를 걷는다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레지 않는가. 거기에 호젓하기까지 하니 금상첨화다. 일행들 역시 이 분위기를 너무 좋아한다. 특히, 캐나다 로키 산행이 처음이라는 전영철 선생은 로키의 매력에 흠뻑 빠진 것 같았다. 다음에 동부인해서 에머랄드 로지에 묵고 싶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한다. 에머랄드 호수에 있는 로지와 선물가게는 겨울철에도 문을 열었다. 겨울 내내 도로 제설작업을 하니까 방문객이 꾸준하게 오는 것 같았다.  

 

우리는 골든(Golden)의 팀 홀튼스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으로 스노슈잉 일정을 마무리했다. 커피 한 잔을 이렇게 맛있게 마실 수 있었던 것도 추운 눈길을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의 마무리는 래디엄 핫 스프링스(Radium Hot Springs)에서 피곤한 몸을 온천수에 담그는 것으로 했다. 한겨울에 노천에서 온천욕이라니 이 또한 신선놀음 아닌가. 수온은 그리 뜨겁지 않았다. 보통 여기는 물 온도를 섭씨 39도나 40도에 맞추는데 우리 한국인들은 미지근하다고 느낀다. 그래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다는 것이 어딘가. 온천에서 날아오른 수증기가 나무에 설화를 만들어 밤하늘을 수놓았다. 스노슈잉을 마친 우리에게 주는 일종의 보너스리라.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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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sora 2014.01.23 16: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여행정보 잘봤구요 너무 부럽네요 ㅎㅎ

  2. 권선호 2014.02.13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자네처럼 그 Hut에서라면 분위기 때문에 잠을 못들 것 같네..ㅎ
    커피, 와인 한 잔 하면서 책 보고 음악 듣고..천국의 생활일 듯..

    Wiwaxy-Oesa-Opabin 트레킹하던 때를 생각하면
    햇살이 없는 겨울 설경은 좀 실망이네..
    그때의 그 색감 잊을 수가 없거든..

    Emerald, Golden의 커피집...자네도 역시 나를 고문하는 듯..

    날씨가 여의치 못했던 것이 좀 애석하지만 원없이 눈을 즐겼다니 좋았겠네..

    • 보리올 2014.02.13 17: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낙엽송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할 때가 색감으로는 최고일 걸세. 거기에 에머랄드 빛 오하라 호수가 더해지면 정말 장관이지. 겨울은 그에 비해 풍경이 좀 단조로운 편이야. 호수도 얼어붙고 온통 설경만 있으니 말이지. 설경 좋아하는 사람에겐 천국이겠지만.

  3. 설록차 2015.05.22 0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경이 마치 흑백사진 같아 운치가 있고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