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4좌를 완등한 한왕용 대장으로부터 국제전화 한 통을 받았다. 국내외 산들을 소개하는 KBS <일요다큐 산>이란 프로그램에서 캐나다 로키를 취재하기 위해 촬영팀이 7월 말에 캐나다를 방문한다는 것이 아닌가. 한대장과 내가 함께 방송에 출연해야 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 때부터 무척 바빠졌다. 어떤 코스를 택할 것인지, 어떻게 권역별로 안배할 것인지를 한대장과 수차례 의견을 교환했다. 그리곤 우리가 선정한 코스를 미리 답사하는 것이 촬영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이 되어 그들이 도착하기 전인 7월 초순에 밴쿠버 산꾼 두 분을 모시고 미리 캐나다 로키로 산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마운트 롭슨(Mount Robson)이었다. 해발 3,954m로 캐나다 로키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라는 상징성이 있어 빼놓기가 어려웠다. 숲이나 빙하, 호수, 야생동물 등이 웅장한 산세와 조화를 이뤄 만들어내는 캐나다 대자연을 소개한다는 의미에서 버그 호수 트레일을 선택한 것이다. 밴쿠버를 출발해 5번 하이웨이를 타고 가다가 베일마운트(Valemount)를 지나 16번 하이웨이로 갈아탔다. 산 모퉁이 하나를 돌자,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롭슨의 자태가 나타났다. 정상은 구름에 가려 보이질 않았다. 빙하를 머리에 이고 있는 거대한 산괴를 볼 수가 없어 섭섭하긴 했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원래 롭슨 지역은 일기 변화가 심해 정상을 온전히 볼 수 있는 날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우리가 가는 버그 호수 트레일은 캐나다 로키에선 꽤나 유명한 트레일이다. 버그 호수까지는 빨리 걸어도 하루가 꼬박 걸리기 때문에 보통은 백패킹을 해야 한다. 편도 21km 에 등반고도가 780m나 되기 때문에 당일에 왕복은 어렵다. 우리는 애초부터 백패킹은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키니 호수(Kinney Lake)를 지나 화이트혼(Whitehorn) 캠핑장까지만 당일에 다녀오기로 했다. 산행 기점은 롭슨 공원 안내소에서 아스팔트길을 따라 1km를 더 들어가야 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산행을 시작했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했고 산자락도 구름 속으로 제 모습을 감췄지만 그 신비로운 모습을 모두 가릴 수는 없었다

 

롭슨 강을 건너 오솔길을 따라 올랐다. 산길은 넓고 완만해서 좋았다. 요란하게 흘러내리는 강물을 벗삼아 한 시간 정도 오르면 키니 호수에 닿는다. 키니 호수는 원래 상류에서 떠내려온 퇴적물이 부채 모양으로 쌓인 선상지(Alluvial Fan)에 의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산비탈에서 산사태로 굴러떨어진 돌무더기가 물길을 막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 했다.키니 호수의 에머랄드 색깔이 오묘했다. 키니 호수를 지나 작은 다리 몇 개를 건넜다. 한 번에 한 사람씩 건너라는 경고문도 보였다. 아이 둘을 데리고 백패킹을 온 부부를 만나 서로 악수도 나눴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바로 화이트혼 캠핑장에 닿는다. 일행들 얼굴에서 힘들다는 기색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시원한 풍경에 도취되어 피로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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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4.04.16 0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롭슨 표지판도 높은 산을 쳐다보기 힘들어서 비스듬하게 누워서 손가락질을 하네요...ㅎㅎ
    산세도 준수하고 산에서 만남 가족도 준수하게 생겼고~ 준수천지입니다...^^

  2. Justin 2014.04.22 14: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버지, 한대장님, 최PD님, 대성이와 함께 짖궃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산행을 갔다온 것이 기억납니다. 어린 대성이의 페이스가 느려서 촬영 분량때문에 다들 먼저 가시고 저와 대성이는 수다를 떨면서 씩씩하게 하산했었는데, 대성이는 하나도 기억 못 하겠죠?

    • 보리올 2014.04.22 15: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가 다녀온 기록은 다음에 포스팅할 예정인데 여기에 댓글을 달았구만. 작년인가 서울에서 한대장과 대성이를 만났는데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더구나. 대성이네 집에서도 몇 번을 보았는데 말이야. 너무 기대하지는 말거라.

  3. 2014.12.05 15: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4.12.05 20: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롭슨 트레킹을 염두에 두고 계시는군요. 키니 호수까지는 왕복 서너 시간 잡으면 될 겁니다. 호수 끝단까지는 4km 정도 되는데 대부분 거기서 더 들어가 쉘터가 있는 지점까지 가거든요. 그러면 편도 7km 정도 됩니다. 버그 호수 트레일로 들어가셔서 캠핑을 하지 않고 당일로 나오시면 예약같은 것 필요 없습니다. 예약은 야영할 사람만 필요합니다. 여름에 버그 호수에서 야영하려면 미리 예약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4. 설록차 2015.05.22 0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눈 시원하고 속 시원한 사진을 찾아 여기로 왔습니다...
    마치 제가 다녀온 곳인듯 착각을 하네요..ㅎㅎ

    • 보리올 2015.05.22 06: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눈이 시원하다는 표현은 저도 가끔 씁니다만 속이 시원하다는 말도 있었네요. ㅎㅎ 롭슨에는 마음을 편히 가라앉히는 차분한 풍경이 있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