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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영국 최고봉, 벤 네비스를 오르다

산에 들다 - 유럽

by 보리올 2022. 12. 2.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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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최고봉이란 표현을 쓰니 제법 그럴싸하지만, 사실 벤 네비스(Ben Nevis, 1344m)는 오르기 어렵거나 고도가 높은 산은 아니다. 그래도 고산이 없는 영국으로서는 영국 최고봉이자 스코틀랜드 최고봉인 벤 네비스를 고도가 높지 않다는 이유로 낮게 평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스코틀랜드에서 해발 3,000피트, 914m가 넘는 282개 봉우리를 먼로(Munro)라 부르는데, 그 가운데 가장 높은 먼로란 상징성이 있어 현지에선 이 산을 평생 한 번은 올라야 하는 곳으로 대접하고 있었다. 우리도 처음부터 염두에 두긴 했지만, 웨스트 하일랜드 웨이(West Highland Way)를 끝내는 구간에서 벤 네비스의 위용을 보고는 첫눈에 반해 그 정상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장거리 트레일을 걸어 피로가 쌓인 친구들과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포트 윌리엄(Fort William)의 숙소를 나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침도 굶은 채 말이다.

 

택시를 불러 산행 기점인 글렌 네비스 방문자 센터(Glen Nevis Visitor Centre)로 향했다. 이곳의 고도는 해발 20m에 불과하니 벤 네비스의 해발 고도가 우리가 걸어 오를 등반 고도인 셈이다. 중간에 잠시 마트에 들러 아침,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와 생수를 샀다. 처음부터 경사가 가파른 돌계단을 만났다. 오락가락하는 비를 맞으며 걷는 데도 땀이 났다. 고도를 높일수록 가스가 심해져 시야를 가리기 시작한다. 해발 570m 높이의 하프웨이 호수(Halfway Lake)가 있음직한 위치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 시간이 많이 걸리진 않았다. 다시 계속되는 오르막. 700m의 고도를 이 구간에서 올려야 했다. 한 친구의 걸음이 무척 무거워보였다. 정상을 가자고 공연히 고집을 부렸나 싶어 컨디션을 물었더니 그래도 올라가겠단다. 가스로 시계가 엉망인 지점에서 처음으로 사면에 쌓인 눈을 만났다. 그리 높지 않은 산에, 그것도 6월 초순에 눈을 밟다니 좀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빗줄기가 현저히 줄어들어 우비를 벗는 행운도 있었다.

 

정상까지는 꽤나 길게 느껴졌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가끔씩 나타나는 돌무덤, 즉 케언(Cairn)이 전부였다. 눈이 쌓인 지점 몇 군데를 지나 정상에 도착했다. 여긴 눈대신 사방이 모두 돌덩이였다. 힘들게 정상에 오른 젊은이의 환호가 들려왔다. 해발 고도가 높지 않다고 깔보았던 사람들의 환호가 더 큰 것 같았다. 예전에 기상관측소로 사용했다는 건물은 폐허로 변했고, 허름하게 지은 대피소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돌탑 위에 세워진 정상석에서 셋이 기념 사진을 찍곤 하산을 서둘렀다. 우리도 남들처럼 여기 돌담 아래서 점심을 먹을까 했지만 시장기도 없는데다 날씨가 너무 추웠다. 온통 돌로 뒤덮인 지형이라 하산도 그리 쉽진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고도를 낮추자, 갑자기 바람에 구름이 밀려가면서 웅장한 산자락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정상에서 보지 못 한 풍경을 여기서라도 감상할 수 있어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자연의 배려에 감사한 마음으로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늦은 점심을 즐겼다.

 

산행을 시작해 네비스 강(River Nevis)을 건너면 첫 이정표를 만난다.

 

오른쪽으로 웨스트 하일랜드 웨이가 글렌 네비스를 따라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돌로 만든 계단으로 급경사를 오르는 고단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온통 돌이 가득한 지형이라 길을 찾기 어려운 곳에는 어김없이 돌무덤이 나타났다.

 

정상을 오르면서 겨우내 쌓인 눈이 녹지 않은 채 산길을 덮고 있는 현장도 지났다.

 

비와 바람, 구름 등 좋지 않은 날씨를 극복하고 벤 네비스 정상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면서 산악 풍경이 살아나자, 수시로 멈춰선 감탄사를 연발하는 호사를 누렸다.

 

산을 오르며 볼 수 없었던 하프웨이 호수를 하산길에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날씨가 좋아지면서 풍경을 감상한다고 수시로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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