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이 어느 정도 진정 기미를 보이자, 아이슬란드나 영국 등 유럽 국가부터 해외 여행 규제를 서서히 풀기 시작했다. 지난 2년 동안 억눌렸던 여행 욕구가 일시에 터져나오면서 그 기회를 놓칠세라 웨스트 하일랜드 웨이(West Highland Way; WHW)를 걷기 위해 고등학교 친구들과 스코틀랜드(Scotland)로 향했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웨스트 하일랜드 웨이는 1980년 10월 6일에 공식 오픈한 장거리 트레일이다. 1960년대 잉글랜드에서 페나인 웨이(Pennine Way)를 오픈한 것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 트레일은 스코틀랜드 최대 도시인 글래스고(Glasgow) 북쪽에 있는 멀가이(Milngavie)에서 시작해 포트 윌리엄(Fort William)까지 154km를 걷는다. 빨리 걸으면 5~6일에 주파가 가능하지만 보통은 8일 정도 여유롭게 잡는다. 우리는 첫날 구간과 마지막 3일 구간은 트레킹팀과 함께 걸었고, 중간에 건너뛴 4일 구간은 그 뒤에 친구 둘과 셋이서 3일에 걸었다.
글래스고에서 첫날 밤을 묵은 호텔은 시설이 좀 별로였다. 원래 예약했던 호텔이 도착 직전에 갑자기 방이 없다고 일방적으로 취소해 아야 소리도 못 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단다. 아직은 여행업계가 정상을 찾기는 시기상조로 보였다. 조촐한 조식을 마치고 멀가이로 이동했다. 멀가이는 웨스트 하일랜드 웨이 시작점이란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시골답지 않게 사람이 제법 붐볐다. 점심으로 수퍼마켓에서 구입한 샌드위치와 음료, 과일을 배급받았다. 마을을 관통해 웨스트 하일랜드 웨이의 공식 출발점에 섰다. 오벨리스크 앞에서 전원이 기념사진도 찍었다. 개울을 따라 만들어진 트레일로 들어섰다. 드리먼(Drymen)까지 거리는 19km. 처음 10km 구간은 길이 평탄해 걷기가 편했다. 쉬엄쉬엄 걸어도 두세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았지만 나무숲에 초원, 호수가 펼쳐져 발걸음을 재촉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트레일 양쪽으로 웃자란 고사리가 지천이었고, 이름 모를 야생화도 많았다. 그렇게 머그독(Mugdock) 컨트리 공원을 지났다.
트레일에서 5분 정도 벗어나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Single Malt Scotch Whisky)를 만드는 글렌고인 양조장(Glengoyne Distillery)을 들렀다. 뒤뜰에서 점심을 먹고 위스키 판매장에 들러 시음도 했다. 한 병에 4천 만원이 넘는 위스키도 있었다. 저녁에 친구들과 마실 요량으로 위스키 한 병을 샀다. 다시 트레일로 돌아와 초원을 가로지르고 아스팔트 길도 걸었다. 드리먼에 도착하기 직전에 트레일은 로크 로몬드 & 트로삭스(Lock Lomond & Trossachs) 국립공원 경내로 들어섰다. 그리 높지 않은 둔덕을 넘어 A811 도로를 만나면서 하루 구간을 모두 마쳤다. 도로를 따라 드리먼 마을까지 30여 분 걸었다. 트레킹팀은 여기서 구간을 건너뛰기 때문에 차로 틴드럼(Tyndrum)에 있는 호텔로 이동했다. 저녁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해결했다. 양의 내장을 갈아 곡물과 섞어 만든 스코틀랜드 전통 음식, 하기스(Haggis)를 애피타이저로 시켰고, 메인은 피시앤칩스(Fish & Chips)로 했다. 하기스가 양 내장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시키는 사람이 많진 않았으나 내 입맛에는 꽤 잘 맞았다. 거기에 로컬 맥주 한 잔을 곁들이니 하루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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