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Leon)으로 입성하는 날이다. 알베르게에서 차려준 빵과 커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성의 없이 차려진 아침상이라 그런지 대부분 커피 외에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나만 주어진 양을 충실히 먹어 치웠다. 어젯밤 코를 심하게 골았던 아가씨가 자기 때문에 잠을 설쳤으면 미안하다고 일행들에게 사과를 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버릇 때문에 잠을 자면서도 얼마나 신경이 쓰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카우에하를 빠져 나오는데 여명이 시작되었고 레온 외곽의 공장지대를 지날 즈음 해가 떠올랐다. 일출은 그리 거창하진 않았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레온으로 들어섰다. 상업 지역을 지나 한참을 걸어야 도심에 닿을 수 있었다. 레온도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대도시답게 중세풍의 건물들이 아름다웠고 대성당을 비롯해 볼거리도 많았다.

 

실제 레온은 1세기 로마 시대에 서쪽 지역의 금광을 보호하기 위해 로마인에 의해 세워졌다. 10세기에 오르도뇨 2세가 왕국의 수도를 오비에도(Oviedo)에서 레온으로 옮기면서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레온 왕국의 한 영지였던 카스티야가 11세기 독자적인 왕국으로 발전하고 1230년에는 카스티야 왕이었던 페르난도(Fernando) 3세가 레온의 왕위도 이어받으면서 두 왕국은 공식적으로 통합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카스티야 왕국이 레온 왕국을 압도하는 상황이 되자, 레온 사람들은 레온 신 카스티야(Leon sin Castilla) 또는 레온 솔로(Leon Solo), 카스티야 없는 레온 또는 레온 혼자와 같은 정치적 구호를 외치며 분리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바스크나 갈리시아 지방보다 독립 열기는 훨씬 약하지만 말이다.

 

도심으로 들어가 카사 데 보티네스(Casa de Botines)부터 들렀다. 이 건물은 가우디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은행으로 쓰고 있어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거기서 멀지 않은 대성당으로 향했다. 입장료로 5유로를 받는데 여긴 순례자 할인제가 없었다. 1205년 착공해 400년을 거쳐 완공한 고딕 양식의 대성당은 듣던대로 무척이나 화려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한 창문은 그 숫자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하나같이 현란하기 짝이 없었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고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성가대석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들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레온 왕국의 기틀을 마련한 오르도뇨 2세의 무덤도 보았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렇게 화려한 성당을 보고 나면 솔직히 마음이 그리 편하진 않다. 종교적 위엄을 보이기 위해 사람들 고혈을 짜낸 건물이 후대에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남는 것이 좀 아이러니했다.

 

대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바실리카 데 산 이시도로(Basilica de San Isidoro) 성당도 둘러보았다. 첫눈에도 그 크기가 대성당에 못지 않았다. 이 건물에는 성당 외에도 박물관과 로얄 판테온, 즉 판테온 데 로스 레이스(Panteon de las Reyes)가 있었다. 11세기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외양은 우아했으나 내부는 의외로 소박했다. 굳게 닫혀있는 용서의 문(Puerta del Perdon)도 보았다. 중세 시대에 순례자가 병이 나서 더 이상 순례를 할 수 없을 때 이 문을 통과하면 순례를 마친 것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 옆에 있는 판테온 데 로스 레이스는 유료라 들어가지 않았다.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프레스코 벽화와 페르난도와 그 후대 왕족이 묻힌 무덤이 있는 곳이라는데도 말이다.

 

카페와 바가 많은 레온에서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어느 식당에서 오징어 튀김을 시켰다. 오래 전에 스페인 여행할 때는 거의 매일 먹었던 음식이 오징어 튀김이었는데 이번엔 처음이었다. 먼저 감자 토르티야가 나오고 오징어 튀김은 그 뒤를 따랐다. 둘 다 아주 맛있게 먹었다. 시끄럽고 복잡한 도심을 지나 오스피탈 데 산 마르코스(Hospital de San Marcos)에 도착했다. 길고 거대한 건축물이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고 있었다. 1168년 순례자 병원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한때는 정치범 수용소로도 쓰였다가 지금은 한쪽은 호텔이, 그 반대편엔 성당과 레온 박물관이 들어서 있었다. 성당을 먼저 구경하고 박물관으로 갔더니 무료 입장이란다. 전시물로는 주교들 초상화와 조각이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길게 뻗은 회랑과 천장 장식에 더 많은 눈길이 갔다. 박물관을 나와 산 마르코스 다리를 건너 도시 밖으로 빠져 나왔다.

 

레온 외곽 지대는 의외로 복잡했고 도로엔 차들이 씽씽 달려 정신이 없었다. 시골로 들어서니 좀 살만했다. 16세기에 성모가 발현했다는 비르헨 델 카미노(Virgen del Camino)까진 쉽게 걸었다. 거기서 레온 대성당 앞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던 야곱을 다시 만나 비야단고스 델 파라모(Villadangos del Paramo)까지 함께 걸었다. 전에도 몇 번 만나 눈인사는 나눴지만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 인상이 선한 것이 꼭 예수님을 닮았다. 이 친구는 독일 바바리아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단다. 학교에서 은세공을 배웠는데 아직 아버지를 도와 일하고 있다고 했다. 비야단고스에 도착해 카페에 들러 맥주를 한잔 샀다. 원래 이 친구는 알베르게에 묵기보다는 야영이나 헛간 등에서 묵는데 오늘은 나를 따라 알베르게로 들어와 둘이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알베르게 비용을 대주려 했더니 자기도 돈 있다고 먼저 계산을 한다. 각자 저녁을 먹고는 와인을 한병 사서 야곱과 함께 마셨다.

 

 

알베르게를 나와 레온을 향해 걷는 도중에 해가 떠올랐다.

 

나지막한 고개를 오르자 멀리 레온 시가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선 큰 도시에 속하는 레온으로 들어서면서 시야에 들어온 도심 풍경

 

스페인이 낳은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가 설계한 카사 데 보티네스가 레온에 있었다.

동화속 궁전같은 건물이었다.

 

 

 

 

 

 

 

고딕 양식을 지닌 레온 대성당은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함이 돋보이는 아주 큰 성당이었다.

 

 

 

바실리카 데 산 이시도라는 성당과 박물관, 로얄 판테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용서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르네상스 양식의 커다란 건물 안에는 산 마르코스 성당과 레온 박물관이 붙어 있었고, 반대편에는 호텔이 들어서 있었다.

 

 

레온의 어느 식당에서 점심으로 감자 토르티야와 오징어 튀김인 칼라마르(Calamar)를 시켰다.

 

레온을 벗어나며 언덕배기에 땅을 파서 만든 와인 저장고를 여러 개 발견했다.

 

여러 번 길에서 만난 적이 있던 독일 청년 야곱을 레온에서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눴다.

독일 바바리아에서 80일을 걸어온 25살 청년이었다.

 

산 미구엘 델 카미노(San Miguel del Camino)의 어느 집 앞에 순례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과일과 비스켓이 놓여 있었다.

 

비야단고스에 도착했더니 산티아고까지 298km 남았다는 표식이 우릴 반긴다. 이런 속도면 열흘이 채 남지 않았다.

 

비야단고스에서 맞이한 일몰. 서쪽 하늘이 붉게 타올라 마치 거대한 화재가 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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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2.09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레온이라는 도시는 그 자체가 유적지 같습니다. 볼거리가 풍성하네요. 지금까지 봐왔던 성당들과 비교해봐도 양식이 굉장히 화려합니다. 하느님께서 국민의 혈세로 저렇게 으리으리하게 지은 성당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 보리올 2016.02.09 15: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레온이야 한때 레온 왕국의 수도였으니 그럴만도 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화려한 성당은 경외스럽긴 하지만 동시에 민초들의 애환도 느껴지지. 하지만 거기에 너무 민감해 하진 말거라. 그런 과정을 통해 인류가 발전을 해왔으니 말이야.

 

밤새 비가 내렸다. 전날 수퍼마켓을 찾지 못해 빵집에서 산 빵과 햄으로 아침을 대충 때웠다. 우의를 입고 밖으로 나섰다. 빗방울이 굵지 않아 다행이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무슨 비석 세 개가 희미하게 보여 다가갔더니 엘 시드와 관련된 유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엘 시드로 알려진 로드리고 디아쓰 데 비바르(Rodrigo Diaz de Vivar)가 여기 출신이었고, 그의 무덤이 대성당 안에 있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세 개의 비석은 솔라 델 시드(Solar del Cid)라 불렸는데, 호세 코르테스(Jose Cortes)1784년에 엘 시드의 집이 있던 곳에 세운 건축물을 의미했다. 부르고스 대학교를 지나면서 구름 사이로 어설프게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볼 수 있었다. 해가 떠오르자 빗줄기가 점점 가늘어지더니 어느 순간 비가 그치고 말았다.

 

라베(Rabe)에 도착하니 오전 11시가 다 되어간다. 종소리를 듣고는 사람들이 하나둘 성당으로 몰려 들었다. 미사가 곧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마을을 벗어나 오르막 경사를 오르니 평평한 고원지대가 펼쳐진다. 본격적으로 메세타(Meseta)가 시작되는 것이다. 해발 800m에서 1,000m에 이르는 구릉 지대에 끝없이 밀밭이 펼쳐지는 곳이 메세타지만 지금은 벌판이 텅 비어 있었다. 여름이나 겨울에는 혹독한 기후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그런 까닭에 어떤 사람들은 부르고스에서 레온(Leon)에 이르는 구간을 건너뛰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늦가을이고 하늘엔 구름이 가득해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풍경이 단조로운 것이 흠이었지만 푸른 하늘이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타난 것만 해도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메세타 지역이라고 완전 평평한 것은 아니었다. 완만한 구릉지대에 걸맞게 오르막도, 내리막도 나타났다. 언덕에 올라서니 저 아래 자리잡은 오르니요스(Hornillos)가 눈에 들어왔다. 내리막 길을 지나 들판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들이 개미새끼처럼 조그맣게 보였다. 오르니요스에 있는 가게에 들러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샀다. 마을로 오다가 만난 한국인 젊은이와 함께 나눠 먹었다. 이 친구는 광고회사에 다니다 사직을 하고 조만간 창업을 한다는 30대 중반의 젊은이였다. 인상도 좋았고 실제 성격도 싹싹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르니요스에서 온타나스(Hontanas)에 이르는 11km를 함께 걸었다. 날씨도 점점 좋아져 푸른 하늘이 영역을 크게 넓히고 있었다.

 

아로요 산 볼(Arroyo San Bol)에 천연샘이 있다고 들어 유심히 찾아보았지만 마을 자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샘물에 발을 담그면 순례 중에 더 이상 발이 아프지 않다는 속설이 있다고 해서 은근 기대하고 왔는데 말이다. 사실 어느 허름한 건물 벽에 붉은 페인트로 산 볼이라 적힌 것은 보았지만 그것이 마을을 지칭하는 것인 줄은 몰랐다. 산 볼엔 실제 마을이 없었다. 알베르게로 쓰는 허름한 집 한 채가 전부였다. 예전에는 여기에 마을이 있었다고 하는데 무슨 이유인지 16세기 초에 갑자기 사라졌다고 한다. 전염병이 창궐했거나 아니면 여기 살았던 유대인들이 추방되면서 마을이 없어졌을 것이라 추정만 할 뿐이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온타나스가 보이지 않았다. 언덕에서 내리막으로 들어서니 그 아래에 마을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무니시팔 알베르게에 들었다. 관리를 맡고 있는 모녀가 둘다 불친절했다. 부엌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시설은 엉망이었다. 사람이 적은 이유를 알만했다. 순례 첫날 론세스바예스에서 만난 미국 한인 자매를 여기서 다시 만났다. 덴버에서 온 언니는 잘 걷는 편이지만 LA 동생은 무척 힘들어 해서 버스를 타고 앞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언니되는 이영애 선생이 라면에 감자, 양파를 넣고 찌개를 끓이고 밥을 해서 넷이서 함께 저녁으로 먹었다. 나도 배낭에 고히 모셔둔 고추장을 꺼내고 와인을 한 병 샀다. 남은 쌀로 밥을 해서 다음 날 먹을 누룽지를 만들었다.

 

엘 시드의 집이 있었던 곳에 세워진 솔라 델 시드

 

부르고스 대학교를 지나는데 구름 사이로 아침 햇살이 들어오면서 비도 그쳤다.

 

무슨 의미를 지닌 조형물인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부르고스를 벗어났다.

 

다른 성당과는 형태나 색깔이 달라 내 시선을 끌었다.

 

고속도로 위로 난 도로를 걸어 고속도로를 건넜다. 고속도로는 너무나 한산했다.

 

 

순례자 병원이 있던 곳에 세운 돌 십자가를 지나 타르다호스(Tardajos) 마을로 들어섰다.

 

 

 

라베 마을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에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어느 집 벽면에 쓰여진 낙서가 눈길을 끌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리는 내용 옆에 가스 시추공을 반대한다는 격문도 적어 놓았다.

 

아담한 누에스트라 세뇨라 모나스테리오 성당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메세타가 시작되었다. 고원지대에 드넓은 평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오르니요스로 향하는 순례길이 벌판 사이를 구불구불 지나고 있다.

 

 

시골의 조그만 마을 오르니요스를 지났다. 화분을 걸어놓은 모습에서 삶의 여유가 느껴졌다.

 

오르니요스의 산 로만 성당 앞 광장에는 수탉 조각을 올려놓은 탑이 세워져 있었는데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지나쳤다.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구입한 오르니요스 가게. 산티아고까지 469km 남았다 적혀 있었다.

벽면에 붙여놓은 각국 화폐 가운데 우리 돈 1,000원짜리 지폐도 있었다.

 

 

오후 들어 날씨가 좋아지면서 메세타 지역의 풍경이 살아나고 있었다.

 

길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인연으로 같이 점심도 먹고 온타나스까지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 젊은이 장석민씨.

 

 

하루 묵을 알베르게가 있는 온타나스에 도착했다.

 

 

알베르게에서 밥과 찌개로 넷이서 저녁 식사를 했다. 다음 날 먹을 누룽지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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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rney 2015.12.01 0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설 한 편을 읽는 것 같네요. 힘내세요! :)

  2. 2015.12.01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5.12.01 17: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제안 여러 번 받아 아직 마음에 없다고 답글도 남겼고 최근엔 삭제까지 했는데 여전히 계속되네요. 관심을 보여줘 고맙긴 합니다만 이제 그만 하시죠.

  3. Justin 2016.01.12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르니요스 가게의 화폐들을 보니 예전에 아버지께서 도와주셨던 저의 초등학교 방학 숙제가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룻밤 묵었던 마을엔 식당도, 가게도 없어 아침을 해결하기가 마땅치 않았다. 결국 자판기에서 1유로짜리 비스켓 하나 꺼내 먹고 나머진 물로 채웠다. 해가 뜨기 직전에 알베르게를 나섰다. 해발 고도가 1,000m나 되는 고지인지라 바깥 날씨는 무척 쌀쌀한 편이었다. 이제 장갑은 필수였다. 붓기와 통증은 남아 있었지만 발목을 움직이기가 훨씬 편했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를 빠져나오는데 동녘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갈림길에서 발을 멈추곤 마냥 하늘만 올려다 보았다. 내 뒤를 따르던 사람들도 이 광경에 취해 길가에 일열로 서서는 셔터 누르기에 바빴다. 언덕 위 초지로 올랐다. 정자 나무로 쓰이면 좋을 듯한 나무 한 그루가 덩그러니 서있었다. 능선 위로 떠오르는 해는 여기서 볼 수 있었다.

 

아게스(Ages)를 지나 아타푸에르카(Atapuerca)까지 6km를 걸었다. 아타푸에르카는 1970년대 선사시대의 유물이 발견된 곳으로 1997년에는 80만년 전에 살았던 원시 인류의 유골도 발굴되었다. 이 유골엔 호모 안테세서(homo antecessor)란 이름이 붙여졌다. 그런 유물 덕분에 이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마을로 들어서기 전에 순례길을 벗어나 전시관까지 다녀왔다. 왕복 2km 거리라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전시관이 빤히 보여 용기를 냈다. 전시관은 인류의 진화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는데 실제 유물을 전시하기보다는 글로, 화면으로 설명하는 자료가 더 많았다. 원시인의 섹스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다시 순례길로 돌아와 아타푸에르카 마을을 지났다. 나지막한 고개를 하나 넘었다. 고개 위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고 그 옆 공터엔 돌로 여러 개의 원을 그려 놓았다. 누가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공을 들여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카르데뉴엘라(Cardenuela)의 한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침도 부실하게 먹어 하몽이 들어간 샌드위치 하나에 소시지를 넣은 토르티야(Tortilla)를 추가로 시켰다. 같은 스페인어를 쓰는데도 토르티야는 멕시코와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멕시코에선 옥수수가루나 밀가루로 만든 전병을 일컫는데, 여기선 두툼한 빈대떡 같이 생긴 계란 오믈렛을 의미하고 있었다.

 

부르고스(Burgos)로 들어서는 길은 무척이나 지루했다, 더구나 공단 지역을 지나기 때문에 볼거리도 없었다. 고르지 않은 보드블럭을 걸어야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팜플로나 다음으로 큰 도시라 부르고스 도심은 사람들로 꽤 붐볐다. 물론 시골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대도시의 활력도 느껴졌다. 도심을 관통해 알베르게에 이르는 길도 멀게 느껴졌다. 알베르게는 규모가 엄청 컸다. 15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취사는 할 수 없지만 크고 깨끗한 식당이 있었고 파티션을 이용해 한 공간에 이층 침대 두 개씩 넣은 배치도 마음에 들었다. 옆 침대는 뉴욕에서 왔다는 한인 부부가 쓰고 있었다. 침대 정리를 끝내고 밖으로 나섰다.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성당부터 들렀다. 1221년 건축을 시작해 1567년에 완공되었다 한다.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이 크고 볼거리가 많아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영어로 안내하는 오디오 가이드를 들고 다녔는데 설명도 무척 길었다. 역사적인 예술품들이 정말 많았다. 치마를 입은 예수상도, 엘 시드(El Cid)의 무덤과 관도 보았다. 벽면에 걸린 대주교 십자가, 1523년에 지었다는 황금계단, 그리고 매 정시에 입을 벌리고 종을 치는 파파모스카스(Papamoscas)도 보았다. 고풍스런 도시답게 대성당 밖에도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아 눈이 즐거웠다. 대성당 옆에 있는 니콜라스(San Nicolas) 성당에서는 결혼식이 막 끝났는지 하객들이 성당 앞에서 갓 결혼한 커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랑, 신부가 문에서 나오자 쌀과 색종이를 던져 결혼을 축하했다.

 

케밥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식당에 한국인들이 십 여명 모여 있어 인사를 했다. 뉴욕에서 왔다는 한인 부부도 있었다. 울산에서 온 중년 부부는 오늘 걷는 것을 끝내고 내일 마드리드로 이동해 귀국길에 오른다고 했다. 이 모임이 일종의 송별연이었다. 아침에 먹을 과일을 사러 다시 밖으로 나갔다가 큰일 날 뻔 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데 슬리퍼를 신고 나갔다가 경사진 내리막 길에서 꽈당 뒤로 넘어진 것이다. 엉덩이가 축축하게 다 젖었다. 머리가 돌에 부딪히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저 창피한 마음에 벌떡 일어나 다시 걸어가는데 지나가던 스페인 아줌마가 괜찮냐며 물어왔다. 그 아줌마가 지갑 떨어졌다고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더 큰 낭패를 볼 뻔 했다. 왜 이런 내리막 길에 대리석처럼 반질반질한 돌을 깔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를 벗어나는데 동녘 하늘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초지가 펼쳐진 완만한 언덕에 올라 능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했다.

 

 

해바라기 밭에도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 찾아 들었다.

 

 

 

아게스 마을을 지났다. 산티아고가 518km 남았다는 표시가 있었다.

 

 

 

 

아타푸에르카는 호모 안테세서란 원시 인류의 유골이 발굴된 곳이라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아타푸에르카를 지나 언덕 위로 오르니 십자가와 돌로 그린 원들이 나타났다.

 

 

카르데뉴엘라 마을에서 샌드위치와 토르티야로 점심을 먹었다.

 

 

 

 

 

대도시의 활력과 고풍스러움이 넘치는 부르고스 도심도 볼만 했다.

 

 

 

 

 

 

스페인 3대 성당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는 부르고스 대성당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산 니콜라스 성당에서 있었던 결혼식 장면. 신랑, 신부가 성당을 나서자 하객들이 쌀과 색종이를 던지며 축복을 빌었다.

 

저녁으로 먹은 케밥. 스페인 대도시엔 케밥을 파는 곳이 의외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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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광주랑 2015.12.01 09: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젠가 꼭 걸어보고 싶은 길인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광주광역시 공식 블로그 '광주랑'에도 많은 방문 부탁드려요 ~

    • 보리올 2015.12.01 11: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누구나 평생 한번쯤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내서 한번 다녀오시지요. 광주광역시 공식 블로그라 그런지 엄청 나네요. 가끔 들러 보겠습니다.

  2. 스페니 2015.12.02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까운 장래에 산티아고순례를 다녀오려고 해요
    정해지지 않은 그 때가 정말 기다려집니다 그래서 보리울님의 글이 더 생동적으로 다가오네요^^
    스페인에 살때는 왜 안갔는지...쩝

    • 보리올 2015.12.02 1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스페인에 사신 적이 있으시군요. 저도 오래 전에 독일에서 5년을 살았습니다. 스페인에 사셨으면 산티아고 순례길이 더 친숙하게 여겨지겠네요. 잘 준비하셔서 평생 잊지못할 좋은 추억 많이 남기시기 바랍니다.

  3. justin 2016.01.11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당의 위용이 대단하네요! 결혼식때 던지는 쌀과 색종이의 의미는 뭘까요? 쌀은 먹을 복이구 색종이는 돈일까요?

  4. 지성의 전당 2018.08.11 22: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성인들의 발자취에 대해 관심 있어 하는 것 같아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한번 검토 부탁드립니다.
    인류의 근원적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와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단언컨대 최고의 상근기는 어떤 사람이냐 하면 정말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이러한 의제를 놓고, 숙고하고 탐구하는 사람입니다.

    최고의 상근기는 카르마도 아니며, 공덕도 아니며, ‘선택’을 받아서도 아니며, 특정 민족도 아니며, 특정 종교적 신앙심도 아니며, 특정 수행과 고행도 아니며, 특정 지역도 아니며, 특정 문화도 아닙니다.

    대다수의 구도자와 수행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자기는 태어난 ‘누구와 무엇’으로 여기며, 즉 육체와의 동일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즉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고 여기면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어린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를 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뭐냐 하면, 정말 나는 ‘무엇’일까? 정말 나는 ‘누구’일까? ‘이것이(육체) 정말 나일까?’하고 스스로 자기에 대해서 한 번 더 의심해 보고, 의문을 가져 보는 것입니다.

    자기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거듭날 수가 있겠습니까?

    자기가 자기를 오해하고 있으며, 그 오해로 인해서 ‘거짓된 자기’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통찰은 ‘자기 불신’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지금의 자기’를 의심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최고의 상근기는 ‘도가 이렇다, 깨달음이 이렇다, 진리가 이렇다’ 이런 말을 늘어놓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니 이제는 ‘나는 무엇이다’에 머물지 말고 “나는 누구인가?”로 넘어오세요.

    이 말이 이해되지 않는 이유가 뭐냐 하면 ‘나는 누구이다’, ‘나는 무엇이다’에만 자기 ‘스스로’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순수합니까!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즉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 ‘자각’으로 이어지며, ‘자각’함으로 모든 것이 출발하고 ‘시작’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을 안다는 것이고, 자신을 안다는 것은 ‘홀로 독립적이다’라는 이해를 갖는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해서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존재’적인 측면에서는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해야만 하며, 설혹 ‘답’을 구했다 할지라도 그 ‘답’의 진위여부는 영원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지금까지의 동일시가 사라지고 나면, ‘나’는 ‘비존재’적인 측면으로서, ‘존재’적인 측면의 ‘주인’임을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인’에 대한 자각은 완전한 ‘자유’라 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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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침으로 인스턴트 해장국에 면을 넣어 수프를 끓였다. 대전에서 온 의사 부부를 불러 함께 식사를 했다. 너무 허접한 음식으로 아침을 대접한 것 같아 마음이 좀 찜찜했다. 두 사람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겠다 해서 나만 먼저 출발했다. 어둡던 하늘이 점점 밝아온다. 산티아고를 향해 정서 방향으로 걷기 때문에 늘 뒤에서 해가 돋는다. 긴 그림자 하나를 내 앞에 만들어 놓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청명한 가을 날씨를 보여줬고, 길가에 자라는 풀잎이나 꽃망울엔 밤새 서리가 내려 하얀 옷으로 갈아 입었다. 손이 너무 시려 처음으로 장갑을 껴야만 했다. 이렇게 맑은 날씨에 판초 우의를 걸친 한국인을 한 명 만났다. 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섯 번이나 왔다고 하는 그는 목례만 하곤 뚜벅뚜벅 길을 재촉한다.

 

두 시간을 걸어 시루에냐(Ciruena)에 도착했다. 현대식 건물로 조성된 마을엔 골프장도 있어 마치 리조트 같았다. 쉬지 않고 그냥 걸었다. 마을을 막 벗어나려는데 뭔가가 갑자기 내 발뒤꿈치를 무는 것이 아닌가. 뒤돌아 보았더니 포인터 한 마리가 등산화를 문 것이었다. 나를 향해 꼬리를 흔드는 것을 봐서는 공격 의사는 없어 보였다. 주인인 듯한 할아버지는 20여 미터 떨어져 나에게 손 한번 들어 보이곤 가만히 있었다.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곤 강아지를 주인에게 보냈다. 저 멀리 산세가 눈에 들어오니 가슴이 트이는 것 같았다. 사방으로 펼쳐진 들판은 마치 파스텔을 칠해놓은 듯 했다. 추수가 끝난 벌판은 황량해 보이기도 했지만 낮게 깔린 햇살을 받아 묘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싸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가 멀리 보였다. 순례길은 자연스럽게 대성당으로 연결되었다. 빌로리아 출신의 목동였던 산토 도밍고는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퇴짜를 맞았다. 그럼에도 순례자를 돕고 순례길을 닦는데 여생을 바쳤다. 기도를 드리기 위해 잠시 일을 멈추면 천사가 내려와 일을 대신했다고 한다. 대성당에서 기르는 닭 두 마리에도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하녀의 계략에 빠져 금잔을 훔친 도둑으로 누명을 쓴 독일 청년이 교수형을 당했는데 함께 순례를 떠났던 청년의 부모는 슬픔을 견디며 순례를 계속 했다. 산티아고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식이 교수대에 산 채로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시장에게 말했지만 시장은 식탁 위에 올려진 구운 닭이 어찌 살아날 수 있냐며 믿지를 않았다. 그 순간 식탁에 있던 닭 두 마리가 살아나 울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청년도 살아났다고 한다.

 

4유로의 입장료를 내고 대성당으로 들어갔다. 순례자라고 할인을 받았다. 전시물이 많았으나 아무래도 내 관심은 11세기에 만들어진 산토 도밍고 무덤과 성당 안에서 키운다는 닭 두 마리에 쏠렸다. 아무리 전설이라 해도 성당 안에서 닭을 키운다는 발상이 재미있었다. 성당을 나와 그 옆에 있는 70m 높이의 종탑도 올랐다. 조망은 기대보다 못 했지만 사방으로 걸려 있는 종들을 살펴보는 것도 괜찮았다. 그런데 아침부터 왼쪽 발목이 좀 이상하다 싶더니 종탑을 오르내리는데 통증이 심했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발목 앞부분이 아팠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잠시 여기서 쉬고 가자고 길가 벤치에 앉았다. 사과와 바나나를 꺼내 점심으로 먹었다. 어제 마시다 남은 와인도 모두 비웠다.

 

한국인들이 많이 머문다는 그라뇬(Granon)을 그냥 지나쳤다. 성당을 들어가 보았지만 그리 인상적이진 않았다. 그라뇬에서 2km쯤 걸었을까. 라 리오하 주를 벗어나 카스티야 레온(Castilla y Leon) 자치주로 들어섰다. 이 자치주는 떵덩이가 엄청 커서 다시 수많은 작은 주로 나뉜다. 우리가 들어선 곳은 부르고스(Burgos) 주였다. 안내판 두 개가 길가에 세워져 순례자들을 맞았다. 카스티야 레온 자치주로 들어섰더니 포도밭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대신 해바라기를 심은 밭이 나타났다. 다 익어 고개를 숙인 해바라기를 수확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더 영글기를 기다리는 것인지, 수확을 포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먹이가 풍부해 참새들은 신이 났다.

 

레데시야(Redecilla), 카스틸델카도(Castildelcado)를 지나 빌로리아 데 리오하(Viloria de Rioja)에 닿았다. 산토 도밍고가 태어난 곳이 바로 여기다. 알베르게가 두 개 있는데 모두 도네이션 제도로 운영하고 있었다. 아카시오 오리에타(Acacio Orietta)란 이름의 알베르게에 들었다. 아카시오는 브라질 남편, 오리에타는 이태리 부인의 이름이었다. <연금술사>를 쓴 코엘료(Paulo Coelho)가 여기서 묵었다고 그와 찍은 사진을 걸어 놓았다. 코옐료의 책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숙박비로 6유로를 받고 식사비는 도네이션이라 해서 따로 10유로를 주었다. 저녁 식사는 여섯 명이 모여 함께 했다. 수프가 먼저 나왔고 메인으론 쌀밥 위에 렌틸콩을 얹어 샐러드와 함께 먹었다. 맛도 괜찮았고 가정집 분위기가 풍겨 푸근한 느낌이 들었다.

 

8일 동안 쉬지 않고 걸은 것이 원인이었을까? 양말을 벗으니 왼쪽 발목이 퉁퉁 부어 있었다. 며칠 쉬라는 의미인지, 천천히 걸으란 의미인지 저 윗분의 뜻을 도통 모르겠다. 사실 조그만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첫날 길을 걷고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을 때, 오른쪽 두 번째 발가락에 티눈이 난 것을 발견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쉬지 않고 걸으니 거기서도 통증이 생겼다. 명색이 순례라 하면서 이 정도 통증도 없이 어찌 순례를 마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 그냥 참기로 했다. 하지만 발목 부상은 티눈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칫하면 며칠 쉬어야 할지도 모르고 그러면 앞으로의 일정이 모두 꼬이기 때문이다. 좀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자고 나서 다시 상태를 보기로 했다.

 

 

아쏘프라를 빠져 나오면서 일출을 맞았다.

 

 

풀잎과 꽃망울에 서리가 내려 앉았다. 날씨도 제법 쌀쌀했다.

 

한 자전거 순례자가 아침 일찍 페달을 밟으며 앞질러 갔다. 처음엔 시카고에서 온 마가렛인 줄 알았다.

 

 

 

 

 

 

멀리 산세가 보이는 가운데 드넓은 벌판이 펼쳐졌다. 붉고 푸른 색조가 어우러져 나름 아름다웠다.

 

벌판 뒤로 저 멀리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싸다가 보인다.

 

 

 

 

 

산토 도밍고 성인의 무덤이 있는 대성당. 성당 안에 닭 두 마리가 사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대성당에서 좀 떨어진 곳에 따로 세워져 있는 종탑에도 올라가 보았다.

 

그라뇬에서 집집마다 물병을 문 앞에 내놓은 모습을 목격했다. 처음엔 순례자에게 제공하는 식수인가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렇게 물병을 문앞에 놓으면 고양이가 거기엔 오줌을 싸지 않는단다.

 

카스티야 레온 자치주에 속하는 부르고스 주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판

 

주 경계선을 넘으면서 포도밭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대신 해바라기 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르고스 주로 들어와 처음 만난 마을인 레데시야를 지났다.

 

웬 물동량이 그리 많은지 이 시골 도로에도 화물차의 움직임이 부산했다.

 

 

파울로 코엘료가 묵었다는 알베르게. 알베르게 앞에서 코엘료와 함께 찍은 사진을 걸어 놓았다.

 

 

알베르게 여주인 오리에타가 준비한 저녁. 수프와 렌틸콩을 얹은 밥이 나왔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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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페니 2015.11.27 0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량하고 아름다운 색채의 들판이 떠오릅니다
    다음 포스팅 고맙게 기다리겠습니다^^

    • 보리올 2015.11.27 07: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티아고 순례길의 풍경은 기대보단 못했습니다. 이 황량한 들판의 아름다움마저 없었더라면 꽤나 실망할뻔 했지요. 누군가가 제 포스팅을 기다린다는 것이 제겐 큰 힘이 되네요.

  2. 2015.12.05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5.12.05 16: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평소 산행이나 아웃도어를 즐기신다면 겨울이라 하더라도 그리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 봅니다. 그런 경험이 없다면 재고를 하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메세타 지역의 겨울이 혹독하다 해도 엄청 추운 날씨는 아닙니다. 1~2월 낮기온이 섭씨 7~10도, 밤기온이 영하 1도에서 0도 사이입니다. 물론 아주 추울 때는 영하 14~17도를 기록하기도 했다더군요. 추운 것은 장비가 좋으면 어느 정도 커버가 될 겁니다. 알베르게는 겨울철에 닫는 곳도 많지만 어느 도시나 한두 개는 연중 상시 오픈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야긴 거리를 잘 조정하면 알베르게는 충분히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겨울철에 가보질 않아서 100% 자신은 못하고요. 더 많은 정보는 <대한민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를 조회하셔서 확인해 보시고 필요하시면 직접 문의해보시기 바랍니다.

  3. justin 2016.01.06 1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때부터 발목이 많이 안 좋아지셨군요. 산토 도밍고는 유명한 사람이었나요? 검색해도 썩 만족할만한 답이 안 나옵니다.

    • 보리올 2016.01.07 0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날부터 딱 3일간은 발목이 꽤 아팠지. 그나마 다행이었다. 산토 도밍고는 순례길에서나 유명하지. 순례자들은 그 이름을 듣고 그가 한 일을 되새기곤 한단다. 카톨릭 성인 반열에 들어간 분이니 말이야.

 

어제 파스타를 만들어준 젊은이에게 아침을 함께 하자고 했다. 팜플로나에서 산 신라면 두 개를 끓였다. 오랜만에 먹는 매콤한 라면이 입맛을 돋운다. 오전 8시 그 친구와 알베르게를 나섰다. 박재병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친구는 학군장교 출신으로 중위로 전역한 뒤 지난 16개월간 세계여행을 하고 있었다. 돈이 떨어지면 여행지에서 일을 해 경비를 번다고 했다. 요리 솜씨가 뛰어난 것도 그와 무관하진 않았다. 그 친구의 장래 꿈을 들으며 길을 걸었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가 부럽기도 했고 한편으론 현실과의 괴리를 극복하려면 앞으로 어려움이 많겠구나 싶어 걱정도 되었다.

 

그 친구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눈 깜짝할 새에 7km나 떨어져 있다는 산솔(Sansol)에 도착했다. 내 딴에는 경험이 더 많다고 이런저런 조언을 했는데 행여 노파심이나 잔소리로 들리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산솔에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토레스 델 리오(Torres del Rio)가 빤히 내려다 보였다.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처음엔 한 마을인줄 알았다. 토레스 델 리오에는 산토 세풀크로(Santo Sepulcro)라 불리는 팔각형 모양의 아담한 성당이 있었다. 어찌 보면 에우나테의 산타 마리아 성당과 비슷해 보였다. 성당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고 있어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도로를 몇 번인가 횡단한 후에야 비아나(Viana)에 도착했다. 정오도 되지 않았다. 네 시간에 18km를 걸었으니 빨리 온 셈이다. 젊은이는 여기서 묵겠다고 해서 헤어지기 전에 점심이나 함께 하자고 했다. 엘 포르틸료(El Portillo)란 식당에서 참치와 미역, 하몽을 넣은 타파스 세 종류에 맥주 한 잔씩을 시켰다. 어느 것이든 맛은 훌륭했다. 한 입에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사이즈였는데 이것도 타파스라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다. 점심을 마치고 그 친구는 알베르게로 가고, 나는 비아나 도심을 둘러보기 위해 되돌아섰다. 시청사 앞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은 문을 닫아 들어갈 수가 없었지만 거의 다 허물어진 산 페드로 성당은 입장이 가능했다. 한 귀퉁이 건물에 천장 벽화만 남아 옛날의 영광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홀로 걷는다. 어떤 사안에 생각을 집중할 수 있어 외롭단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로그로뇨(Logrono)까진 12km를 더 가야 했다. 시커먼 구름이 몰려왔지만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비아나를 벗어나자마자 벌처(Vulture)라 부르는 독수리 한 마리가 퇴비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동물의 사체를 먹이로 한다는 녀석이다. 근데 이 녀석 배짱이 얼마나 두둑한지 내가 다가가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로그로뇨를 4km 남겨놓고 나바라 주에서 라 리오하(La Rioja) 자치주로 들어섰다. 거기서 다시 얕은 언덕을 하나 넘어서야 로그로뇨에 도착했다. 어느 알베르게에서 사람이 나와 열심히 호객 행위를 한다. 적극적인 자세는 인상적이었지만 난 무니시팔로 가겠다 미리 못을 박았다. 에브로 강(Rio Ebro) 위에 놓인 피에드라(Piedra) 다리를 건너 도심으로 향했다.

 

이곳 알베르게에도 한국인들이 꽤 많았다. 침대에 시트를 깔고는 시내 구경부터 나섰다. 로그로뇨 대성당과 메르카도(Mercado) 광장, 산티아고 성당, 산 바르톨로메(San Bartolome) 성당을 찾아 다니며 이곳저곳 기웃거렸다. 성당 세 군데가 모두 문을 열지 않아 좀 실망했는데 저녁이 되어서야 대성당과 산 바르톨로메 성당이 문을 열어 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알베르게로 돌아왔더니 독일에서 왔다는 모리츠가 스파게티를 준비할 예정인데 함께 하겠냐고 물어왔다. 배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내 식량부터 처치하고 싶어 정중히 사양을 했다. 냄비에 밥을 짓고 밥 위에 자반김을 뿌린 후에 고추장을 적절히 섞어 내 나름대로의 만찬을 즐겼다.

 

밤에 다시 밖으로 나섰다. 라우렐 거리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로그로뇨는 리오하 주의 주도인만큼 먹거리가 풍부했다. 특히 와인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리오하가 세계 5대 와인 생산지 중 하나라니 그럴만도 했다. 라우렐 거리의 타파스 바(Tapas Bar) 또한 로그로뇨의 자랑거리였다. 타파스는 식사 전에 술과 함께 먹는 간단한 음식으로 통상 바게트 위에 고기나 새우, 멸치, 버섯, , 치즈 등을 얹어 만든다. 여기 리오하에선 와인과 함께 먹는 안주라 보면 될 것 같았다. 가게마다 타파스를 개성있게 만들기 때문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맛을 보는 것이 좋다. 나도 여기저길 돌아다녔다. 사람들로 붐비는 골목을 헤집고 다니며 다양한 타파스가 준비되어 있는 바에서 와인 한잔에 타파스 한 조각 입에 무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로스 아르고스를 출발해 처음 만난 마을이 산솔이었다.

 

처음에 토레스 델 리오 마을을 보곤 산솔의 일부인줄 알았다.

마을 중앙에 별도의 성당이 있는 것을 보고 다른 마을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토레스 델 리오를 벗어나면 순례길 한 옆에 각종 메모들을 돌로 눌러놓은 곳을 지난다. 한글 메모도 많이 보였다.

 

어제 파스타를 요리해준 젊은이와 비아나까지 함께 걸었다.

원대한 꿈을 키우며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젊음이 마냥 부러웠다.

 

프랑스 르푸이를 출발해 산티아고를 찍고는 다시 르푸이로 돌아가고 있는 프랭키를 만났다.

왕복 3,400km의 장거리를 순례에 나선 것이다.

 

 

비아나로 들어서 시청사 앞에 있는 광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비아나에서 헤어지기 전에 젊은이에게 점심을 샀다. 참치와 미역, 하몽이 들어간 세 가지 타파스를 맛보았다.

 

 

외관이 이름다운 산타 마리아 성당은 문이 닫혀 밖에서 올려다만 보았다.

 

 

건물 대부분이 허물어진 산 페드로 성당은 정문과 성당 한 귀퉁이만 남아 있었다.

 

도로 아래를 지나는 지하 통로 벽면에 순례자들을 격려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동물의 사체를 먹고 산다는 벌처를 가까이에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라 리오하 자치주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길가에 서있다.

 

로그로뇨는 산티아고 순례길 표식을 특이하게 만들어 길에 박아 놓았다.

 

11세기 후반에 지어진 피에드라 다리.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와 그의 제자 산 후안 데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가 보수했다고 전해진다.

 

 

 

 

산타 마리아 라 레돈다(Santa Maria la Redonda)라고 불리는 로그로뇨 대성당.

성당 입구는 고딕 양식이지만 쌍둥이 탑은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고딕 양식의 산티아고 성당은 문을 열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정문 위에 산티아고 마타모로스(Santiago Matamoros)라 불리는 전사 산티아고의 기마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산 바르톨로메(San Bartolome) 성당의 아치 정문에는 화려한 조각들이 가득했다.

 

 

와인과 타파스 바로 유명한 라우렐 거리. 타파스 바에는 맛과 색깔, 모양이 서로 다른 타파스가 진열되어 있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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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1.25 0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5.11.25 0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걷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선생님도 그러시군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오래 전부터 가려고 했지만 이제사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의미가 없었기에 전반적으로 제 기대에는 못 미치더군요. 만약 다음에 다시 가게 된다면 북쪽길을 걷고 싶습니다. 포르투갈 길도 좋을 것 같고요. 댓글 남겨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2. Justin 2015.12.23 1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 그 젊은이가 아버지를 형님으로 모시는 저보다 더 어린 그분입니까? 저도 아버지 친구분들을 형님으로 모시면 반응이 어떨까요?

    • 보리올 2015.12.23 15: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 그 청년이 맞다. 둘 사이를 형, 아우로 부르는 것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마는 제 3자가 결부되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 그래서 그 친구에게 다른 호칭이 좋겠다 했더니 바로 선생님이라 부르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