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르드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루르드 성(Chateau fort de Lourdes)이었다. 언덕 위에 우뚝 솟은 성채는 마을 어디에서도 보이지만 성지로 가는 다리 위에서 특히 잘 보였다. 이 성은 8세기부터 난공불락의 요새로 사용하다가 17~18세기에는 감옥으로 쓰이기도 했고 19세기엔 군대 막사로 사용했다고 한다. 1921년부터는 피레네 산맥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의 풍습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루르드 피레네앙 박물관(Musee Pyreneen de Lourdes)으로 바뀌었다. 입장료로 7유로를 받았다. 매표소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성으로 올랐다. 성벽 위에 서니 루르드가 한 눈에 들어왔다. 마을 뒤로 펼쳐진 산자락도 보였다. 멀리 로사리오 노틀담 성당과 로사리오 축일 행사에 참석한 군중들도 눈에 띄었다. 여기서 바라보는 조망에 마음이 흡족했다. 가끔 성벽 사이로 틈새가 나타나곤 했는데 그 사이로 보이는 마을의 부분 조각도 무척 예뻤다.

 

성 자체도 꽤나 고풍스러웠고 그 속에 진열된 전시물도 많았다. 입장료가 결코 아깝지 않았다. 여기 사람들이 입었던 전통의상 외에도 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전시물이 많았다. 피레네 전통 문양이 새겨진 가구, 수공예품, 농기구, 옛 광고 포스터, 야생동물 박제 등을 차례로 돌아 보았다. 밖에는 지역별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건물 모형도 전시하고 있었다. 성 안에 조그만 예배당도 있었다. 1904년에 무너진 루르드의 베드로 성당 유물이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성 뒤로 좀 내려서면 가족묘지가 나오는데 거기엔 비석과 석관이 흩어져 있었다. 성을 둘러보다가 내 시선을 강하게 끈 것은 옛날 화장실이었다. 두 명이 쓸 수 있는 화장실에 문이나 칸막이가 없는 것도 신기했지만 용변을 성 밖으로 수직 낙하하게 만든 것을 보곤 입이 벌어졌다. 설마 그 밑에 사람들이 살진 않았겠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루르드 성 안엔 세월을 머금고 있는 건축물들이 많아 꽤나 고풍스러웠고 격조도 느껴졌다.

 

 

 

 

 

 

루르드 성에 오르면 사방으로 루르드 마을과 피레네 산맥이 눈에 들어왔다.

 

 

성벽 한 귀퉁이에서 옛날에 사용하던 화장실이 눈에 띄었다.

 

 

14세기에 세워진 탑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

 

성 안에도 조그만 예배당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루르드 피레니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각종 전시물들

 

 

성 뒤쪽으로 난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서면 가족 묘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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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을 한 바퀴 돌고 내려왔더니 성당 앞 광장에 이미 상당한 인파가 몰려들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또 포 강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계속해 들어오고 있었다. 무슨 행사가 있는 것은 분명했는데 무슨 행사인지는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성지 순례를 온 사람 외에도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나 병실용 침대에 누워 간병인과 함께 나온 환자들도 있었다. 그들을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다니 종교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몰려드는 인파를 안내하고 있던 자원봉사자에게 물었더니 오늘이 107일이라 곧 로사리오 축일 행사가 열릴 것이라 한다. 처음엔 로사리오 축일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잘 몰랐는데, 나중에 한국에서 온 신부님에게서 설명을 듣고 나서야 겨우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로사리오는 한 마디로 묵주 또는 묵주의 기도를 의미한다. 이 로사리오 축일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성 비오 5세가 교황으로 있던 1571년에 벌어진 레판토 해전에서 카톨릭 동맹군이 상대적으로 전력이 막강했던 오스만 함대를 물리친 것을 기념해 축일을 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황도 묵주 기도를 올렸지만 유럽 전역에 묵주 기도를 바칠 것을 권하기도 했으며, 이 전쟁의 승리가 묵주 기도에 대한 성모의 화답이라 생각했던 것 같았다. 성모에게 로사리오 기도를 열심히 바치는 로사리오 회원들은 그 이전인 15세기 말부터 107일에 로사리오 축일을 지내고 있었다 한다. 한데 내가 루르드를 방문한 날이 107일이라 뜻하지 않게 로사리오 축일 행사를 보게 된 것이다.

 

오전 9시가 가까워지자 성당 앞 그 넓은 광장을 사람들이 거의 다 차지했다. 행사장을 헤집고 다니며 행사 장면을 구경할 수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신자들이 고유 의상을 입고 바나나, 사과, 파인애플 등 공물을 들고는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고, 프랑스 각 도시의 깃발을 들고 단상으로 오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 행사가 모두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행사가 진행 중일 때 먼저 자리를 떴다. 성지를 빠져 나와 베르나데트 기념관을 찾았다. 베르나데트의 어린 시절과 성모 발현 장면 등을 설명하는 자료가 있었고, 수녀원에 입회한 이후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베르데나트가 태어나고 어릴 적에 살았던 방앗간도 둘러 보았다. 2층 건물로 그리 크진 않았으나 그 안에 방앗간과 부엌, 침실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로사리오 노틀담 성당 앞 광장에서 벌어진 로사리오 축일 행사

 

 

 

베르나네트 기념관에는 그녀가 겪었던 성모 발현 장면이나 수녀원에서 살았던 소박한 삶을 보여주는

자료와 유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베르나데트가 태어나고 자랐던 볼리 방앗간도 잘 보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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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23 16: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6.01.23 16: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방에 앉아 눈 내리는 밖을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신선놀음처럼 보입니다. 전 현재 유럽 여행에서 돌아와 뒷정리를 하고 있답니다. 사실은 그 사이에 오로라를 보러 북위 60도까지 차를 몰고 올라 갔지만 날씨가 도와주질 않더군요.

 

루르드가 성모 발현지로 어떻게 유명해졌는지는 이번에 루르드를 오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프랑스 남서쪽 피레네 산맥에 있는 작은 마을 루르드에 베르나데트 수비루(Bernadette Soubirous)라는 어린 소녀가 살았다. 글을 모르던 그녀가 14살 때인 1858211일부터 716일까지 마사비엘 동굴(Grotte de Massabielle)에서 18차례에 걸쳐 성모가 그녀에게 나타난 것이다. 바티칸에서 이 기적을 인정하여 루르드는 하루 아침에 카톨릭 성지로 변신하게 되었다. 전세계에서 성지 순례를 오는 사람들이 매년 600만 명에 이른다니 그 위세가 놀랍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가난한 방앗간집 딸이었던 베르나데트는 수녀원에 들어가 서른 다섯의 나이로 생을 마쳤고, 그녀가 죽은 후인 1933년에 성녀로 시성되었다.

 

호텔을 나서 다시 성지로 향했다. 날이 밝아지면서 빗방울도 점점 가늘어졌다. 우산 없이도 걸어다니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성 비오 10세 성당부터 들렀다. 성 비오 10세는 1903년부터 1914년까지 교황으로 있었고, 1954년에 성인으로 선포가 되었다. 성 비오 10세 성당은 성모 발현 100주년을 기념해 1958년에 봉헌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어디에서도 성당은 눈에 띄지 않았다. 분명 지도에는 표시가 되어 있는데 겉으로는 아무 흔적도 없이 잔디밭만 펼쳐진 것이다. 성당이 바로 지하에 지어졌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건축가들이 공동 설계한 이 성당은 콘크리트로 물고기를 형상화하였는데 중앙엔 기둥이 없었다. 길이 210m, 81m의 크기에 27,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세련된 현대 감각에 조형미도 뛰어났고 전반적으로 단순함이 돋보였다. 수많은 성인들 그림이 성당을 돌아가며 걸려 있었다. 성녀 베르다네트와 성녀 테레사의 그림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마사비엘 동굴 위에 있는 세 개의 성당을 찾았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성당처럼 보였지만 실제는 세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화려함에 있어서는 가장 아래에 있는 로사리오 노틀담 성당이 단연 앞섰다. 1889년에 지어진 것으로 비잔틴 양식의 영향을 받아 성당 입구가 무척이나 화려했다. 성당 외부 벽화엔 1531년 멕시코 테페약(Tepeyac) 언덕 위에서 인디오 후안 디에고(Juan Diego)에게 발현한 성모의 모습도 그려 놓았다. 내부 또한 여러 개의 채색 모자이크 종교화와 섬세한 장미 문양의 돔 지붕으로 아름답게 꾸며졌다. 그리 크지 않은 동굴 성당은 1866년 동굴 바로 위에 세워졌는데 세 성당 가운데 가장 먼저 지어졌다. 마사비엘 동굴과 함께 루르드의 심장이라 불린다. 무염시태 성당은 1872년에 완공된 신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높이 70m의 탑이 우뚝 솟아 있어 그 위용이 대단했다. 이 역시 동굴 성당에 비해선 화려한 편이었다.

 

성당 밖으로 나왔더니 비가 그쳤다. 루르드 성지 뒷동산에 위치한 십자가의 길로 들어섰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표현한 십자가의 길이 오르막을 따라 조성되어 있었다. 1.5km의 구간에 조성된 이 길은 모두 14개의 장면과 예수 부활을 의미하는 빈 무덤 등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빌라도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히고 무덤에 묻히는 과정까지를 14개의 장면으로 나눠 야외에 조각을 해놓았다. 인물 조각상 115개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다. 쇠로 조각한 실물 크기의 조각상은 1898년부터 1911년 사이에 제작해 설치했다고 한다. 이 길을 걷기 전에 성 비오 10세 성당 안에서 이미 추상화처럼 그림으로 그려진 십자가의 길을 본 적이 있고, 다른 지역을 여행을 하면서 이처럼 십자가의 길을 조성해 놓은 곳을 몇 군데 들른 적도 있어 그리 새로워 보이진 않았다.

 

 

 

 

 

 

 

지하에 지어진 성 비오 10세 성당은 간결함과 검소함이 돋보였다.

성인들을 그린 걸개그림이 끝없이 걸려 있었고, 독특한 모양의 파이프 오르간도 인상적이었다.

 

 

 

 

로사리오 노틀담 성당의 외관을 꼼꼼히 들여다 보았다.

외부 벽화의 의미를 모두 이해할 순 없었지만 멕시코 테페약 언덕에서의 성모 발현을 묘사한 벽화를 보게 되어 반가웠다.

 

 

 

 

70m의 첨탑을 자랑하는 무염시태 성당에선 마침 미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사를 14 장면으로 묘사한 루르드 십자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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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르드(Lourdes)는 세계 3대 성모 발현지로 유명한 곳이다. 난 카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기회가 된다면 루르드를 꼭 가보고 싶었다. 파리에서 비행기를 내려 몽파르나스 역까진 에어프랑스 리무진을 이용했다. TGV 열차를 예약할 당시만 해도 비행기 도착부터 4시간의 여유가 있어 느긋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리무진 안에서 안절부절 속을 태워야 했다. 열차 출발 20분 전에 몽파르나스 역이 눈에 들어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바욘(Bayonne) 역에도 30분이나 열차가 늦게 도착해 루르드로 가는 연결편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역무원이 나를 데리고 어느 사무실로 들어가더니 다른 열차편을 수배해준다. 닥스(Dax)로 되돌아가서 타르브(Tarbes) 행 기차를 타고 루르드에서 내렸다. 한 시간 가량 늦긴 했지만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루르드엔 빗방울이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루르드 역에서 시내로 걸어가면서 눈에 띄는 호텔마다 방이 있나 확인을 했지만 무슨 일인지 대여섯 개 호텔이 모두 만실이란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별 두 개짜리 호텔에서 구한 방은 허접하기 짝이 없었다. 한 사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 싱글 침대와 10인치 구식 TV가 놓여 있었다. 화장실과 샤워장도 그리 깨끗하지 않았다. 요금표에는 이 1인실이 35유로라 적혀 있었는데 프론트에서 스스로 알아서 30유로로 깍아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행 다니면서 먹고 자는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내 체질이라 그냥 쓰기로 했다. 그런대로 하룻밤 지낼만 했다. 이런 게 여행이 아닌가 싶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려 호텔 근처만 돌아다니다 먹을 것을 사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잠에서 일찍 깨어났다. 가로등 불빛이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와 방안이 무척 환했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섰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사람들이 삼삼오오 대성당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새벽 미사에 참석하러 가는 사람들 같았다. 나도 그들 뒤를 따랐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가는 성당을 중심으로 둘러보았다. 미사를 준비하고 있는 로사리오 노틀담 성당을 먼저 들렀다. 계단을 타고 그 위로 올라갔더니 두 개의 또 다른 성당이 나타났다. 동굴 성당과 무염시태 성당이었다. 동굴 성당에선 이미 미사를 진행하고 있었고, 무염시태 성당은 사람이 없이 적막강산이었다. 성모가 발현했다는 마사비엘 동굴(Grotte de Massabielle)에서도 미사가 열리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어떤 사람은 비를 맞으며, 어떤 사람은 우산을 쓰고서 경건하게 미사를 보고 있었다.

 

일단은 루르드 성지 순례의 주축을 이룬다는 마사비엘 동굴과 로사리오 노틀담 성당, 무염시태 성당을 일견했으니 날이 밝으면 다시 성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마사비엘 동굴에서 나오면서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샘에서 성수를 손으로 받아 몇 모금 마셨다. 이 성수는 질병 치료에 신통한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어 환자들이 많이 찾는다. 치유의 기적을 바라고 오는 순례객들이 의외로 많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샘에는 사람들이 한두 명밖에 없었다. (Pau) 강을 건너 호텔로 돌아왔다. 우선은 비에 젖은 옷을 좀 말리고 싶었고 간단하게나마 허기를 달래야 했다. 어제 저녁에 산 크로아상 두 개로 아침을 해결했다.

 

 

바욘 역에서 연결편을 놓쳐 다른 기차를 기다리면서 잠시 역 앞을 둘러보았다.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루르드 역에 도착하였다. 열차에서 내리는 사람들 대부분이 순례자들이었다.

 

어렵사리 방을 잡은 별 두 개짜리 르 밀란(Le Milan) 호텔의 초라한 싱글룸 모습

 

포 강 위에 놓인 다리에서 천혜의 요새로 알려져 있는 루르드 성이 보였다.

 

 

성지 입구에 마련된 안내소에는 성모 발현 내용을 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성지로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마주치는 십자가

 

 

 

 

 

 

로사리오 노틀담 성당은 비잔틴 양식의 입구와 화려한 돔 지붕, 모자이크 종교화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미사가 시작되어 잠시 참관을 했다.

 

 

 

 

동굴 성당에서도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무염시태 성당은 희미한 불만 켜져 있을 뿐 사람은 보이질 않았다.

 

 

마사비엘 동굴에서도 새벽 6시에 첫 미사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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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30분에 아침 식사를 한다고 해서 부지런히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한국인 모녀만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 빵과 비스켓, 주스, 커피 등이 놓여 있었다. 이것으로 배를 채우긴 힘들지만 여기선 대부분 이렇게 아침을 때운다. 출발 준비를 끝내고 715분 알베르게를 나섰다. 밖은 깜깜했다. 어느 정도 날이 밝기를 기다릴까 했지만 한국 모녀가 먼저 출발하기에 나도 덩달아 따라 나섰다. 헤드랜턴을 밝히고 30분쯤 함께 걷다가 작별 인사를 하곤 앞으로 나섰다. 여명도, 일출도 그저 그랬다. 해가 솟은 직후에 엘 부르고 라네노(El Burgo Ranero)에 도착했다. 부드러운 햇살이 산 페드로 성당 종탑을 비춘다. 종탑엔 새들이 지은 집이 몇 채 남아 있었다. 성당 주변으로 떼지어 날아다니는 비둘기들이 보였다. 설마 비둘기들이 저 집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라네로에서 레리에고스(Reliegos)로 향하는 순례길은 아스팔트 도로와 나란히 놓여 있어 화살표도 필요 없었다. 순례길 왼쪽으로 가로수를 심어 놓았지만 너무 앙상해 제 역할을 하기엔 아직 어려 보였다. 사방으로 누런 벌판이 펼쳐진 풍경도 단조로워 심심하던 차에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친구가 있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폴란드 카토비체(Katowice)에서 온 잭이란 친구였다. 포르투갈의 파티마(Fatima)를 출발해 산티아고를 지나쳤고 계속해 루르드와 예루살렘을 향해 걷고 있다고 했다. 파티마에서 여기까진 한 달이 걸렸단다. 예루살렘에 닿으면 총 거리가 9,000km는 될 것이라며 수첩을 꺼내 지나온 도시에서 받은 스탬프를 보여줬다. 그런데 헤어지기 전에 이 친구가 돈을 달라고 손을 벌렸다. 순간적으로 멍했지만 주머니에 있던 1유로 동전 세 개를 건네주었다.

 

11 30분 레리에고스에 도착했다. 오전에 벌써 20km를 걸은 것이다. 좀 이르긴했지만 바에서 토르티야 두 개에 와인 한 잔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냉장 보관된 토르티야를 그냥 주기에 데워달라고 했더니 몇 분간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듯 했는데 그래도 차갑긴 마찬가지였다. 다시 부탁하기도 그래서 그냥 먹었다. 다음 마을인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Mansilla de las Mulas)는 중세시대의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였다. 마을 초입에 있는 비르헨 데 가르시아(Virgen de Gracia) 성당은 붉은색 바탕에 하얀색을 칠해 다른 성당과는 대조적이었고, 마을로 드는 성문은 허물어져 성벽만 조금 남아 있었다. 마을 가운데 위치한 산타 마리아 성당은 크진 않지만 깔끔했다. 에슬라 강(Rio Esla)을 건너며 뒤를 돌아보니 성곽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여긴 그래도 성곽이 오랜 세월 잘 버티고 있었다.

 

만시야에서 6km 거리에 있는 푸엔테 비야렌테(Puente Villarente)까진 꽤 멀게 느껴졌다. 또 다시 오후의 권태와 피로가 몰려오는구나 싶었다. 푸엔테 비야렌테로 알고 도착한 마을은 비야모로스(Villamoros)였고, 푸엔테 비야렌테는 거기서 2km를 더 걸어야 했다. 푸엔테란 이름이 들어간 마을답게 꽤나 긴 아치형 다리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알베르게가 눈에 띄지 않았다. 지금까지 지나온 어떤 마을에서도 내가 가고 싶었던 알베르게를 놓친 적이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마을을 벗어날 지점에 이르러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미 30km를 넘게 걸었는데 다시 알베르게를 찾으러 되돌아갈까, 아니면 레온까지 내처 달릴까를 저울질하다가 좀더 걷기로 했다. 5km를 걸어 아르카우에하(Arcahueja)에 도착했다. 하지만 거기서 레온 9km라는 표지판을 발견하곤 힘이 빠져 발걸음을 멈췄다.

 

조그만 방 두 개를 가진 알베르게에 들었다. 식당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석식과 조식을 포함해 18유로를 받는다. 석식으로 제공된 순례자 메뉴는 그리 훌륭하진 않았지만 3코스의 격식은 갖췄다. 네덜란드에서 온 안나와 둘이 식사를 했다. 행색이나 체형을 보고 처음엔 남자인줄 알았다. 2012년에 이어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며 이번엔 아주 여유롭게 걷고 있다고 했다. 어둠이 내려앉을 즈음에 여자 네 명이 추가로 들어왔다. 토론토에서 왔다는 크리스티나와 미국에서 온 여성 셋이었는데, 푸엔테 비야렌테에 있는 알베르게에 들었다가 너무 지저분하고 빈대도 있어 다시 짐을 싸서 여기까지 왔단다. 그 알베르게를 찾지 못한 것이 하늘의 뜻인 것 같았다. 여자 다섯 명을 호위해 자는 공간에서 의외의 난적을 만났다. 히스패닉 계통으로 보이는 미국 여자 한 명이 어찌나 코를 크게 골던지 웬만한 남자는 저리 가라였다. 진짜 지붕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어둠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면 길을 걷는 도중에 일출을 맞는다. 오늘은 일출이 좀 어설펐다.

 

엘 부르고 라네로 마을에서 만난 산 페드로 성당.

 

 

메세타 지역 특유의 풍경이 펼쳐졌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은 좀 휑해 보였다.

 

 

폴란드에서 왔다는 잭이란 친구는 파티마에서 예루살렘까지 장거리 순례를 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은 레리에고스 마을. 차가운 토르티야를 그냥 먹었던 기억만 남은 곳이다.

 

 

 

 

인구 2,000명도 되지 않는 시골 마을 만시야는 고풍스러움을 많이 가지고 있어 의외로 정감이 갔다.

 

레온과 카스티야 두 지방이 연합해 자치주를 이루고 있으나 그 사이에도 알력이 많은 모양이었다.

카스티야를 빼고 레온만으로 자치주를 만들자는 정치적 격문이 만시야 어느 벽면에 적혀 있었다.

 

 

 

다른 성당과는 모양새가 달라 기억에 남은 비르헨 데 가르시아 성당

 

 

 

만시야의 산타 마리아 성당은 특이점은 없었으나 깔끔하고 소박했다.

 

중세 성곽의 도시답게 만시야엔 성곽이 많이 남아 있었다.

 

만시야에서 푸엔테 비야렌테로 향하는 오솔길에서 발견한 가을 정취

 

비야모로스는 별다른 느낌없이 그냥 지나쳤다. 도로를 따르던 길이 마을로 들어와 한 바퀴 돌고 나간다.

 

푸엔테 비야렌테 초입에 20개의 아치를 가진 꽤 긴 다리가 놓여 있는데 순례자는 그 옆에 놓인 다리를 건너야 했다.

 

 

 

 

아르카우에하 마을의 유일한 알베르게에 들어 순례자 메뉴로 저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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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2.04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길에서 마주친 폴란드 사람과 막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중에 돈을 달라고해서 놀라셨겠어요. 무전여행인걸까요? 아니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물어보는걸까요?

    • 보리올 2016.02.04 15: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내가 말거는 것을 반긴 상황을 봐선 무전여행으로 순례를 하는 것 같았다. 예상밖으로 돈을 달라 손을 벌리니 그 때는 좀 당황스럽긴 하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