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13.12.11 태백산 시산제 (4)
  2. 2013.11.05 요호 밸리 백패킹 ① (2)
  3. 2013.06.28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EBC) – 2 (9)
  4. 2013.06.09 와이오밍 ⑤ ; 옐로스톤 국립공원 - 4 (2)
  5. 2012.12.31 군산 구불길

 

캐나다로 이주한 지 5년이 지난 시점에 고국에서 다녔던 회사로부터 다시 부름을 받았다. 고마운 마음을 안고 바로 고국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업무에 대한 브리핑을 받는 와중에 회사 산악회에서 준비한 태백산 시산제에 초청을 받았다. 예전에 산악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이 많아 낯을 가릴 일도 없었다. 혼자 차를 몰아 집결지인 태백 화방재로 향했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이미 몇 차례나 지나쳤던 곳이라 눈에 익은 곳이다. 시산제에 참석할 직원들을 싣고 서울에서, 거제도에서 버스 3대가 도착을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2월의 태백산은 아직 겨울이었다. 날씨는 좀 풀렸다 하지만 화방재엔 운무가 자욱했다. 산행을 시작할 무렵엔 운무가 더 짙어진다. 산길로 접어 들자, 밤새 나무에 맺힌 눈꽃이 우리 산행을 축복하는 듯 활짝 피었다. 눈도 거의 녹아 산행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가끔 얼음으로 덮힌 구간이 나타나 좀 미끄럽긴 했다. 펭귄처럼 뒤뚱거리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는 수밖에 별 수가 없었다. 얼마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산행을 하는지 모르겠다. 캐나다에선 이런 단체 산행은 꿈도 꾸지 못하는데 말이다. 옛 동료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유일사를 지나 능선 위로 올라서니 운무가 우리 발 아래를 덮고 있었다. 산자락은 운무에 가렸지만 그 봉우리는 구름 위로 삐쭉 솟아 있었다. 거기에 설화와 상고대까지 피어 우리 눈을 즐겁게 하지 않은가. 주목나무와 어우러진 자연 경관에 그저 고맙고 행복할 뿐이었다. 능선길은 사람들로 꽤나 붐볐다. 우리처럼 시산제를 지내러 산행에 나선 사람들도 있었다. 태백산 정상에 있는 천제단 앞에서 시산제를 올렸다. 참가 인원이 많아 부서별로 절을 올리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나도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과 절을 올리고 돼지 주둥이에 봉투를 하나 꽂았다. 하산은 망경사를 지나 당골매표소로 내려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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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3.12.12 08: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닝커피와 함께 산사진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는데요...그냥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들어요...^*^

  2. 보리올 2013.12.12 12: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웅장한 산세를 자랑하는 캐나다 산이 아기자기한 맛에 있어서는 한국의 산세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끔은 한국에 있는 산들이, 산친구들이 그립습니다.

  3. 설록차 2013.12.14 0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이들어 사귄 친구는 묵은 장아찌같은 깊은 맛이 덜한것 같아요...세월의 때가 더 묻으면 달라질런지~

  4. 보리올 2013.12.14 13: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어릴 적 친구들은 묵은 장아찌같은 맛이군요. 재미난 표현인데요. 아무래도 나이를 들어 친구를 사귀면 이해타산이 많이 들어가지 않갰습니까. 말도 쉽게 놓을 수 없고요.

 

난 운이 아주 좋은 사람이다. 왜냐 하면 나에겐 산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들과 동무가 되어 국내에 있는 많은 산을 올랐을 뿐만 아니라 그 녀석이 초등학교 6학년였을 때는 단둘이서 백두대간 구간 종주도 마쳤다. 이제 청년이 된 아들은 여전히 산에 드는 것을 좋아한다. 캐나다에서도 둘이서 종종 산에 오르기도 했고, 때로는 텐트와 침낭을 짊어지고 야영을 떠나기도 했다. 2009년 여름에도 서로 일정을 맞춰 캐나다 로키로 야영을 떠나자 합의를 보았다.  

 

캐나다 로키는 겨울철이 길고 눈이 많이 쌓여 산행에 좋은 시기는 통상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을 친다. 산행 대상지를 고르고 일정을 짜고 있는데 아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고국에 있는 고등학교 친구 두 명이 이번 여름에 캐나다를 오고 싶어 하는데 그 둘을 데리고 함께 야영을 가도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나야 아들하고 둘이서 호젓하게 보내는 시간을 원하지만 아들 친구들이 함께 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 않은가.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곁눈질해 보는 것도 나에겐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아들 친구 중 문환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곧 학사장교로 입대를 한다 했고, 승진이는 군복무를 마치고 이제 복학을 준비하고 있다 했다. 내가 그 친구들을 만난 적은 없었지만 아들을 통해 그들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던 터였다. 그렇게 해서 20대 초반의 젊은피들과 2 3일간 백패킹을 나서기로 했고, 커다란 배낭 4개와 텐트 2, 취사구와 식량을 준비해놓고 젊은 친구들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 4명이 요호(Yoho) 국립공원에 있는 타카카우 폭포 주차장에 모인 것은 2009 7 27일였다. 한국에서 온 두 젊은이는 이런 백패킹이 처음이라고 했다. 산행 경험이 많진 않지만 그래도 너희는 젊지 않으냐.며 젊은 친구들에게 무거운 짐을 맡겨 버렸다. 난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가볍게 메고 싶었다. 텐트 한 동, 식량 한 봉지의 무게가 나중에 어떤 부담을 줄지 전혀 감이 없는 이 친구들은 흔쾌하게 내 짐을 받아 배낭에 집어 넣었다. 산행에 임하는 자세는 일단 합격점이었다.    

 

요호 국립공원에서 유명한 트레일로는 아무래도 요호 밸리(Yoho Valley)와 오하라 호수(Lake OHara)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요호 밸리에 있는 트레일 몇 개를 연결해 걷기로 했다. 첫날 산행은 아이스라인(Iceline) 트레일을 걷는다. 산행 기점인 위스키 잭(Whiskey Jack) 호스텔 주차장부터 첫날 야영을 할 리틀 요호 캠핑장까지는 10.4km 거리에 등반 고도는 690m. 배낭 무게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그리 어려운 코스는 아니다.

 

낙차 254m를 자랑하는 타카카우 폭포의 우렁찬 포효 소리를 들으며 산행을 시작했다. 햇볕은 따가웠고 날은 무더웠다. 헉헉 숨이 막히고 땀이 비오듯 흘렀다. 초반부터 시작되는 오르막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요호 패스와 요호 호수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 산허리를 에둘러 에머랄드 빙하(Emerald Glacier) 아래를 횡단했다. 두 군데에서 신발을 벗고 빙하가 녹은 시냇물을 건너야 했다. 불과 1분이나 물에 발을 담갔을까. 너무나 차가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 섬뜻한 차가움에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빙하는 크레바스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 빙하 녹은 물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이 물에 빠지면 체온이 금방 떨어져 몇 분이면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6.4km 지점에서 해발 2,210m의 아이스라인 서미트(Iceline Summit)에 닿았다. 오늘의 최고점이다. 어느 새 날씨가 바뀌어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도 고산지대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모양이다.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리틀 요호 계곡에 걸려 있는 다리를 건너자, 아이스라인 트레일은 끝이 나고 리틀 요호 밸리 트레일로 올라섰다. 다리를 건너 바로 캠핑장을 만났다. 해발 2,075m 높이의 캠핑장에 텐트 두 동을 쳤다. 두 젊은이는 텐트치는 것도 서툴러 아들이 먼저 시범을 보여야 했다. 후두둑거리는 비를 맞으며 저녁을 준비한다. 어린 친구들에게 조리를 맡길 수 없어 식사 당번은 내 몫이다. 배낭에 눌린 어깨가 아프다곤 하지만 그 친구들 표정은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역시 젊음은 부러움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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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3.11.07 0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운도 있고 복도 많으십니다...산행에 선뜻 따라나서는 아드님, 따님도 있고요...배낭이 커보이는데 젊음이 좋긴 좋네요..^^

  2. 보리올 2013.11.07 08: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들은 산행에 잘 따라나서고 가끔은 녀석이 먼저 가자고도 하지만 딸들은 별로입니다. 이런 기회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조금 고생하면 평생 기억할 추억거리가 생기는데 산행이 너무 지루한 모양입니다.

 

허 대장과 협의해 아침 일정을 조율했다. 앞으로 매일 6시 기상, 6 30분 아침 식사, 그리고 7시 출발로 정한 것이다. 아침 식사도 모든 사람이 자리에 좌정하고 난 후, 우리가 예전부터 그랬듯이 대장이 식사 개시를 외치면 감사히 먹겠습니다로 화답하고 숟가락을 들었다. 모처럼 질서정연한 모습에 백두대간 종주 당시의 우리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첫 출발 신호는 박영석 대장이 울렸다. 모두들 배낭을 짊어지고 선두로 나선 박 대장을 따라 나섰다.

 

난 사진을 찍으며 걷다 보니 금방 뒤로 처지기 시작한다. 점심 때까지는 후미에서 후배들을 모델삼아 사진을 찍으며 발걸음을 서두르지 않았다. 일행 중에 공식 모델은 윤정원과 이민경, 촬영은 주명진이 맡았다. 하지만 명진이 카메라 못지 않게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성선이와 호준이도 촬영에 열심이고 나도 한 몫 거들었다. 산악 사진으로 유명한 이한구 작가도 박 대장을 따라왔다. 모델보다 카메라가 더 많은 상황이었다. 여기 서라, 저기를 봐라 하며 모델을 세워놓고 주문도 많다.

     

몬조(Monjo, 2835m)에서 수제비로 점심을 해결했다. 조르살레(Jorsalle)에서 사마르가타(Samargata) 국립공원 경내로 들어섰다. 여기선 에베레스트를 사마르가타라 부른다. 장정모가 직접 우리 인원을 세며 국립공원 입장료를 납부했다. 허 화백은 아들 석균이를, 그리고 봉주 형님도 아들 우중이를 동반해 참가했다. 부자가 다정하게 대화를 하며 나란히 걷는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 난 언제 아들 녀석 데리고 히말라야를 걸을 수 있을 것인가?

 

남체 바자르(Namche Bazar, 3440m)에 이를 때까지 두드 코시(Dudh Koshi) 강을 따라 꾸준히 고도를 높인다. 벌써 다섯 번인가 강에 놓인 출렁다리를 건넜다. 남체로 연결되는 마지막 급경사길을 힘겹게 오르고 있는데, 박 대장이 일행을 세우곤 에베레스트 정상을 가르킨다. 박 대장이 이야기해주지 않았더라면 어느 누구도 여기서 에베레스트가 보인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우리의 반가운 인사에 화답이나 하듯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걸려있던 구름이 살짝 벗겨지며 에베레스트가 얼굴을 내밀었다.  

  

남체 바자르는 쿰부 히말의 중심지다. 세르파로 대표되는 고산족 마을로 유명하다. 남으론 콩데 봉, 동으론 템세르쿠 봉(6608m)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 잡았다. 마침 남체에 난장이 섰다. 사진에서 보았던 남체의 아름다운 풍경은 어디 가고 실제로 내 눈에 비친 마을 풍경은 그저 그랬다. 장을 한 바퀴 돌며 구경을 했지만 살만한 물건은 없었다. 마을과 난장 모습을 스케치하듯 몇 장 찍었다.

 

히말라야 로지에 투숙했다. 남체에 도착하자 고산병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탁 형님 내외의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두 분 모두 약사이기 때문에 대원들의 건강 상태를 수시로 챙기신다. 저녁을 먹기 전에 호준, 우중이와 함께 마을 구경을 나섰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자 날씨가 급격히 쌀쌀해졌다. 역시 고산지대임이 분명했다. 마을엔 PC방도 설치되어 있었다. 독일빵집에서 도너츠와 홍차로 시장기를 달랬다. 맛은 독일빵과는 거리가 멀었다. 네팔에서 독일빵을 찾은 우리가 잘못이지.   

 

오후 6시에 저녁을 먹고 소화시킨다는 핑계로 세 시간이나 식당에서 수다를 떨었다. 평소 보고 싶었던 얼굴들이라 아무나 붙들고 이야기를 하면 몇 십분은 금방이다. 방으로 돌아왔는데 박 대장이 맥주나 한 잔 하자고 부른다. 이미 3,000m가 넘었으니 모두들 고산병 걱정에 술을 마다하는 판이니 박 대장같은 사람은 무료할 수밖에.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을 함께 했던 이한구 작가가 그나마 옆에서 말동무를 해준다. 맥주 한 잔 마셨더니 머리가 띵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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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igi 2013.06.28 1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티스토리 블로그를 개설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초대장을
    좀 보내주세요 darklight1406@gmail.com . 감사합니다^^

    • 보리올 2013.06.28 14: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티스토리 초대장을 한 번도 보내본 적이 없어 어떻게 보내는지 알아봐야겠네요. 이메일로 간단히 보낼 수 있다면 곧 보내드리도록 하지요. 알차고 멋진 블로그 만드시기 바랍니다.

    • 보리올 2013.06.28 14: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초대장을 보내드리려 했으나 이미 초대를 받은 이메일 주소라고 발송이 되지를 않네요. 즐겁고 재미있는 블로그 만드시기 바랍니다.

  2. 무념이 2013.06.28 1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정말 멋진 풍경이네요~ 꼭 가보고 싶습니다~ ^-^

    • 보리올 2013.06.28 14: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방문해 주신 것도 고마운데 댓글까지 남겨주셨네요. 무념이님 블로그를 들렀더니 엄청 잘 꾸며 놓으셨더군요. 앞으로 참조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3. 설록차 2013.07.19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구모자 노란 상의와 줄무늬 모자 연두색 상의가 모델입니까...ㅎㅎ 이름만 독일빵집이라니~ 부산에 '부산서울뉴욕제과' 라는 빵집도 있었어요...구름다리에 색색깔 천을 메달아 놓은게 무슨 의미가 있는거지요?

  4. 보리올 2013.07.19 1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델은 일곱 번째 사진에 있는 두 아가씨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다 들러리고요. 다리에 매달린 천조각은 '룽다'라 해서 다섯 가지 색깔의 천에 불경을 찍어 만들지요. 다리나 고개같은 곳에 매달아 평화를 기원하는 일종의 티벳 불교의 종교 의식입니다.

  5. 봄사랑 2013.07.21 1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모아저씨, 핀죠아저씨...모습도 보이네요^^ 여기서 뵈니 더 반갑네요....

  6. 보리올 2013.07.21 22: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이렇게 정모와 핀조 아는 분을 온라인에서 만나네요. 그렇다면 히말라야를 다녀오셨단 의미겠죠? 봄사랑님, 반갑습니다.

 

캠핑장을 나서며 옐로스톤 호숫가를 좀 걸었다. 이미 해가 높이 떠 구름에 걸렸다. 호수는 엄청나게 컸다. 그 둘레 길이만 177km이고 면적은 360 평방킬로미터라고 한다. 서울특별시 면적이 600 평방킬로미터이니까 대략 그 절반보다는 조금 크다고 생각하면 된다. 호수의 끝이 보이질 않았다. 이 호수 주변으로 둘레길 하나 만들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옐로스톤의 해발 고도가 2,400m 정도이니 북미 지역에선 이런 높이에 있는 가장 큰 호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웨스트 썸 가이저 베이신(West Thumb Geyser Basin)으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저 앞 숲 속에서 연기가 난다. 그것도 여기저기서 말이다. 처음엔 산불이라 생각했다. 911에 신고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웨스트 썸 간헐천이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 속으로 분출되는 수증기가 더욱 짙어 마치 연기 같았다. 간헐천을 제대로 보고 싶으면 이른 새벽에 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무가 타는 듯이 수증기를 뿜어 올리는 장관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웨스트 썸 간헐천을 둘러 보면서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는 예전에 여기 간헐천 중 하나인 빅콘(Big Cone) 바로 옆에서 물고기를 낚시로 잡아올려 간헐천에서 요리해 먹었다는 설명이었다. 그것을 훅 앤드 쿡(Hook & Cook)’이라 불렀단다.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바로 끓는 물에 삶아 먹는다는 발상이 신기했다. 요즘은 공원 당국에서 허용할 리가 없으리라. 그만큼 낭만이 줄었단 의미겠지. 

  

따로 간헐천을 한 바퀴 돈 집사람은 판자길 위에서 다람쥐 한 마리가 재롱떠는 것을 보았던 모양이다. 내게 다가와 혼잣말처럼 하는 말이 미국산이라 더 예쁜가?”였다. 여기 다람쥐가 미국 태생이란 것을 그 때 알았다. 그 미국산이란 말에 옛 추억 하나를 떠올렸다. 월남에 파병되었던 사촌형이 귀국하면서 선물로 건네준 미제 파카 만년필. 그 때는 미제라면 최고로 쳤다. 친구들 앞에서 자랑하면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으니. 지금은 쓸만한 미제가 별로 없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올드 페이스풀(Old Faithful) 간헐천으로 가다가 옐로스톤을 지나는 컨티넨탈 디바이드(Continental Divide)를 만났다. 일반인들에겐 좀 생소한 지리적 개념일 수도 있겠다. 캐나다 로키가 이에 해당되기에 산행하면서 자주 만났던 개념인데, ‘대륙분수령이라면 쉽게 이해하려나? 물줄기를 동해, 서해, 남해로 가르는 우리 나라 백두대간처럼 북미 대륙의 물줄기를 동서로 나누는 산줄기를 말한다. 한쪽은 대서양으로, 그리고 다른 한쪽은 태평양으로 물을 흘려 보낸다. 마침 옐로스톤에 세 군데 컨티넨탈 디바이드 표식이 있어 그 중 한 군데에 내려 일부러 사진 한 장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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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인 2013.06.12 0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호호. "미국산이라 더 이쁜가?" 웃고가요~ :) 아빠도 미제 만년필을 받으시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니시던 때가 있었군요! 헤헤.

  2. 보리올 2013.06.12 1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날엔 미제라면 사족을 못쓰는 사람들이 많았지. 미군부대를 통해 나온 물건을 구하려 줄을 섰던 사람들도 많고. 그러고 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네.

 

 

<침낭과 막걸리>란 모임의 2010 1월 정기모임에 참가해 군산을 다녀왔다. 이 모임은 2002 11월 시작한 허영만과 함께 떠나는 백두대간 종주에 참여했던 대원들이 종주를 마치고 매월 한 차례씩 비박에 나서면서 결성된 모임이다. 30명이 넘는 인원이 모여 시끌법적했던 모임이 1월 모임에는 좀 한산했다. 열 댓명이 전부. 산행은 김성선의 추천으로 전북 군산 구불길로 정했다. 군산에 사는 마이클이 강력 추천한 모양이었다. 구불길 홍보 차원에서 군산시청 직원들이 캠핑장을 찾아와 서로 인사를 나눴고 구불길 트레킹에도 직원 한 명이 직접 안내를 맡았다.

 

2010 1 22, 대전에서 송정모를 만나 그의 차로 군산으로 향했다. 사람들 들이닥치기 전에 미리 준비할 일이 있다고 몇 시간 일찍 군산에 도착한 것이다. 가창오리의 군무를 볼 수 있다는 김성선의 이야기에 나도 한껏 기대감에 고조되어 있었는데, 여유시간에 사진을 찍으러 나갔더니 가창오리는 무슨 가창오리? 10만 마리가 떼지어 다닌다는 이야긴 말짱 거짓이었다. 금강 하구둑에 나가 눈을 부릅뜨고 찾아낸 가창오리의 수가 50여 마리나 될까? 그것도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물에 퍼져 놀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우리가 하룻밤 묵을 곳은 군산 나포면 서포리의 옹고집쌈밥집. 넓은 잔디밭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거나 야영 준비가 부족한 사람은 폐교를 개조한 식당을 쓰기로 했다. 속속 일행들이 도착한다. 호준이가 허영만 화백을 모시고 왔고, 치상이는 대전에서 기탁 형님을 만나 모시고 왔다. 서산 친구들도 도착을 했다. 서로 껴안기도 하면서 시끌법적한 재회 장면을 연출했다. 각자 준비한 음식도 옮겨졌다. 나도 동생이 보내준 막걸리와 귤을 전달했다.

 

야외 대형 텐트에서 술판이 벌어졌다. 옹고집쌈밥집 주인장께서 자꾸 뭔가를 가지고 나오신다. 군산시청에서 나온 직원 3명과 인사도 나눴다. 불판에는 삼겹살에 이어 석화와 조개가 구워졌다. 마이클이 마술가 한 명을 초청해 잔디밭에서 마술쇼를 벌였다. 추운 날씨에 손이 얼어 쇼가 쉽지 않았을텐데 그래도 실수없이 잘 마쳤다. 바깥 날씨가 너무 차가워 실내로 술자리를 옮겼다. 치상이가 데려온 익산 아가씨가 솜씨좋게 팥죽을 끓여낸다. 자정이 지나자 술자리를 일찍 파했다. 허 화백이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 8시에 일어나 9시 구불길로 들어섰다. 구불길은 모두 네 개 코스로 이루어졌는데 하루 한 구간씩 걸으면 모두 4일이 필요하단다. 우리는 1구간 중간에서 시작해 2구간 중간에서 끝내기로 했다. 군산시 관광진흥과 임현씨가 앞장을 서 안내를 자청했다. 비단강 길이라 불리는 구불1길은 군산역에서 시작해 자연학교까지 18.7km에 이른다. 우리는 중간 지점인 금강 하구둑에서 출발해 금강 철새 조망대, 원나포 마을을 지나 2구간으로 들어선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철새의 숫자가 너무 적어 실망을 금치 못했다. 올겨울이 너무 추워 철새들이 남쪽으로 더 내려갔단다. 겹겹이 얼어붙은 금강을 따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힘이 거의 들지 않아 너무 밋밋한 감도 들었다. 바람은 차지만 햇살은 따사로워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수다를 떨며 걷는 재미도 대단했다. 구불2, 일명 햇빛길로 들어섰다. 잠시 백인농장에 들렀더니 사장님이 나오셔서 시원한 요구르트 한 병씩을 준다. 직접 우유를 짜서 요구르트를 만든다 했다. 평소에 먹던 요구르트보다 훨씬 걸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불주사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의사소통이 잘못 되었던지 취소한단다. 모처럼 절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라 기대감에 들떴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불주사는 전북 사적지로 백제 의자왕 때 창건된 절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오래된 절인지 순간 머리 속이 분주해졌다. 산불로 사적지가 붙타는 것을 막아보갰다고 주변에 있던 나무들을 모두 베어 버렸단다. 그렇게 해서 과연 산불을 제대로 막을 수 있을까 싶었다.

 

망해산과 축성산 능선에 올라서니 제대로 된 트레킹을 즐기는 듯 했다. 이 정도는 백두대간 능선길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능선에서 바라다 보이는 나포십자들, 금강, 그리고 둑방이 어우러진 경치에 저절로 발걸음이 늦어진다. 벤치가 준비된 곳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엉덩이를 붙이고 수다떨기에 다들 바빠 보였다.  

 

축성산에서 축산리 저수지로 내려서는 길이 의외로 아름다웠다. 멀리서 보니 구불구불 산허리를 에둘러 가는 임도가 종국엔 마을로 내려서고 있었다. 여기서 구불길이란 이름이 나왔을까? 이름 하나는 정말 잘 지었단 생각이 들었다. 저수지에 도착해 쏘가리 매운탕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옹고집쌈밥집 주인장의 도움으로 출발점으로 되돌아왔다. 서둘러 우리가 묵었던 흔적을 지우고 주인장에게 작별 인사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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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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