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와는 달리 알베르게의 아침 풍경이 무척 여유로웠다. 일단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설치는 사람이 없었다. 먼 길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의 안도감, 아니 성취감에서 나오는 여유일지도 모른다. 난 대서양까지 이어지는 길을 내 발로 걸을 예정이라 남들처럼 마냥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간을 버스로 이동하는데 나만 홀로 유난을 떠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지하에 있는 부엌으로 내려갔더니 어느 한국인 여자분이 밥을 너무 많이 했다고 한 그릇을 그냥 준다. 밥을 태워서 냄새가 나긴 했지만 양파 볶은 것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오전 8 30분에 배낭을 꾸려 숙소를 나왔다. 평소보단 좀 늦은 출발이었다.

 

알베르게 건너편으로 아침 햇살을 받은 산티아고의 스카이라인이 빤히 보였다. 붉은색 지붕을 이고 있는 건물들이 고풍스러움을 한껏 뽐내고 있어 고도의 품격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대성당으로 가는 골목엔 사람들 왕래가 거의 없었다. 대성당 앞 광장에도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성당 뾰족탑으로 아침 햇살이 살포시 들어왔다. 호텔 앞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길로 접어 들었다. 본격적으로 카미노 데 피스테라(Camino de Fisterra)가 시작된 것이다. 외곽으로 빠지는 지점에 표지석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거기엔 무시아(Muxia)까지 86.337km란 거리 표시만 있었고 피스테라까지의 거리는 없었다. 무슨 이유로 소수점 세 단위까지 표시를 했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보고 절로 웃음이 나왔다. 스페인이 언제부터 이렇게 정확한 나라였던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산티아고를 완전히 벗어나 시골로 들어섰다. 오르막이 계속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산티아고의 스카이라인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벤토사(Ventosa)와 트라스몬테(Trasmonte) 등 작은 마을 몇 개를 지났다. 특별히 관심을 끄는 마을은 없었다. 시골에 있는 집치고는 규모가 꽤 컸고 붉은 지붕이 많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길가에는 유칼립투스 나무가 유난히 많이 보였다. 순례길을 나타내는 노란 화살표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와 같았다. 한 가지 차이점은 이 길을 걷는 사람이 현저히 적다는 것이었다. 산티아고에서 순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 피스테라나 무시아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길에서 만난 순례자가 대여섯 명에 불과하니 숫자가 줄긴 많이 줄었다. 그 덕분에 호젓하게 걸을 수 있어 좋았다.

 

푸엔테 마세이라(Puente Maceira)에서 탐브레(Tambre) 강을 건넜다. 근사한 다리에다 보를 넘은 강물이 마치 폭포처럼 쏟아졌다. 관광객들도 꽤 보였다. 네그레이라(Negreira)로 들어서기 전에 저택이 하나 나타났는데 담이 높아 안을 들여다 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쉐퍼드 두 마리가 담 위에 점잖게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지켜본다. 곁눈질도 하지 않고 쓸데없이 짖지도 않았다. 네그레이라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카페에서 햄버거를 하나 시켰다. 크기가 상당해서 두 손으로 들고 먹기가 힘들었는데 이렇게 맛이 없는 햄버거는 처음 보았다. 억지로 먹느라 정말 힘들었다. 이 마을에 혹시 수퍼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하나 있었는데 문을 닫았단다. 도대체 이렇게 큰 마을에서 빵이나 과일을 사기도 어려우니 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마을을 빠져 나오며 만난 산 마우로(San Mauro) 성당과 코톤 대저택(Pazo de Coton)이 인상적이었다. 대저택 아래에 있는 아치형 문을 지나야 했다.

 

오전에 이미 20km를 걸었고 빌라세리오(Vilaserio)까진 다시 13km를 걸어야 했다.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길을 걸었다. 눈앞에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축사에서 나오는 냄새도 다시 시작되었지만 마음은 무척 여유로웠다. 빌라세리오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더니 마침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구름을 붉게 물들이는가 싶더니 금방 어두워졌다. 알베르게 시설은 형편없었다. 침대가 없는 방에는 맨바닥에 매트리스만 깔려 있었다. 이런 알베르게는 솔직히 처음이었다. 특이한 경험이라 생각하고 하루 묵기로 했다. 숙박비는 도네이션이라 하지만 밤 늦은 시각에 관리인이 수금하러 와서 5유로씩 주지 않을 수 없었다. 크레덴시알에 스탬프도 받았다. 이 마을에 유일한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구운 햄과 계란 프라이, 감자 튀김이 나왔는데 성의도 없었지만 맛도 별로였다. 돈이 좀 아까웠다.

 

대서양 연안에 있는 피스테라로 향하는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

 

 

아침이 밝아오자 산티아고가 잠에서 깨어나 밝게 웃는 것 같았다.

 

 

산티아고 대성당과 시청사가 아침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다.

 

길가에 세워진 표지판에는 무시아까지 거리만 적어 놓았다.

 

산티아고를 벗어나 어느 언덕 위에서 산티아고의 스카이라인을 다시 보았다.

 

벤토스 마을에서 옥수수를 저장하는 오레오가 눈에 띄었다.

 

트라스몬테 마을에선 주민들이 겨울을 날 장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푸엔테 마세이라는 다리도 예뻤지만 폭포처럼 떨어지는 강물도 볼만했다.

 

길가에 네그레이라의 어느 알베르게를 선전하는 예쁜 그림 광고판이 걸려 있었다.

 

네그레이라 직전에 있던 어느 저택 담장 위에 쉐퍼드 두 마리가 근엄한 자세로 앉아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대부분의 스페인 음식은 입맛에 잘 맞았으나 이 햄버거는 솔직히 먹기가 좀 힘들었다.

 

네그레이라 도심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세워진 순례자 상

 

 

네그레이라의 코톤 대저택 아래를 통과하는 아치문. 산 마우로 성당은 코톤 대저택과 붙어 있었다.

 

 

네그레이라 성당은 시내에서 좀 벗어난 언덕 위에 홀로 세워져 있었다. 여기서 내려다 보는 마을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한적한 시골길이 다시 시작되었다. 산길에서 만난 표지석 위에 등산화 한쪽이 놓여 있었다.

 

페냐(Pena) 마을의 산 마메데(San Mamede) 성당

 

 

빌라세리오에선 학교로 쓰이던 건물을 공립 알베르게로 개조한 곳에 하루 머물렀는데,

침대가 아닌 매트리스에서 하룻밤을 자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빌라세리오에서 일몰을 맞았다. 그런대로 석양이 아름다웠다.

 

 

빌라세리오에 하나밖에 없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여직원은 불친절했고 가격에 비해 음식도 성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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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4.05 2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공식 산티아고 순례길이 끝나자마자 여러 방면에서 저리 비교가 될까요? 연장선일뿐인데 말이죠~ 새로운 여행을 떠나시는 기분이셨겠어요.

    • 보리올 2016.04.07 15: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순례길의 이름 자체가 달라서 그런지 시설도 그렇고 사람들 숫자도 많이 차이가 나는 것 같더구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친 사람들 대부분이 이 코스를 생략하거나 버스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지.

 

생장 피드포르에서 시작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25일 동안 꾸준히 걸어 오늘 산티아고로 입성한다. 그렇게 흥분되거나 가슴이 설레진 않았다. 더군다나 대서양에 면해 있는 땅끝마을 피스테라와 무시아까지 4일을 더 걸을 것을 생각하니 종점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남들을 깨울까 싶어 불도 켜지 않고 배낭과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와 다시 짐을 쌌다. 출발을 하기 직전에야 안경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알베르게로 돌아가 침대를 뒤졌는데도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배낭에 있는 짐을 모두 꺼냈더니 맨 밑바닥에서 나왔다. 한쪽 다리가 부러진 채로 말이다. 카운터에서 테이프를 빌려 임시로 붙여 놓았다. 살세다 마을을 통과해 나오는데 강아지들이 합창을 하듯 일제히 짖어댄다. 동녘 하늘에 붉은 기운이 퍼지더니 불쑥 해가 솟았다. 순례 마지막 날의 날씨가 화창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마을 간격이 많이 좁아졌다. km씩 떨어졌던 마을이 이제는 불과 몇 백 미터에 하나씩 나타났다. 오전에 벌써 크지 않은 마을을 몇 개나 지났다. 한 마을에선 문이 열린 오레오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 보관 중인 옥수수가 드러났고 배고픈 참새들이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가고 있었다. 참새의 굶주림까지 걱정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골 사람들의 인심이 느껴졌다. 내가 다가서는 것을 어찌 감지했는지 녹음된 음성이 갑자기 흘러 나와 날 놀래켰던 마을도 있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마지막 말, 부엔 카미노는 알아 들었다. 어느 곳에 있는 알베르게를 선전하는 내용 같았다. 어제부터 느낀 것인데 길가에 유칼립투스 나무가 부쩍 많이 보였다. 지금까진 참나무가 많았는데 말이다.

 

산티아고 경내로 들어섰다.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대성당까진 11km를 걸어야 했다. 공항 활주로가 끝나는 지점을 지나 라바코야(Lavacolla)에 도착했다. 예전 사람들은 순례를 하면서 거의 씻지를 못하다가 여기서 몸을 씻곤 산티아고로 들어갔다고 한다. 라바코야의 어느 성당을 지나는데 마침 미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그 앞에 있는 임시 가판대에서 꽈배기를 한봉 샀다. 도로를 건너다 발견한 가게에서 사과와 콜라를 사서 꽈배기와 함께 점심으로 먹었다. 산티아고를 10km 남겨놓은 지점부터는 거리를 알리던 표지석이 사라져 버렸다. 몬테 도 고쏘(Monte do Gozo)에 도착했다. 얕은 언덕 위에 교황 바오로 2세의 방문을 기념해 만든 탑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세워져 있었다. 순례길에서 가장 크다는 몬테 도 고쏘 알베르게는 무려 400명을 수용한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드디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들어섰다. 이곳을 순례한 유명인사들의 부조를 넣어 만든 높다란 탑이 순례자들을 맞는다. 갈리시아 자치주의 주도답게 건물이나 식당이 크고 화려했다. 조가비 표식을 따라 대성당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이 이리저리 엉켜 상당히 복잡했지만 내 눈엔 오히려 정겹게 보였다. 세월을 머금은 고풍스러움도 물씬 풍겼다. 그래서 산티아고의 올드타운이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것이다. 1075년에 착공해 1211년 완공된 대성당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백파이프 부는 사람의 환영을 받았다. 1유로를 기부했다. 대성당 앞 광장으로 들어갔다.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완주를 축하하거나 바닥에 앉아 대성당을 올려다 보며 감동의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아쉽게도 대성당 첨탑은 보수 중이라 거푸집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순례자협회에서 순례증서를 발급받았다. 증서 발급은 무료였지만 순례증서를 넣는 통은 2유로에 판다. 순례자협회에서 추천한 알베르게는 15분 거리에 있었다. 세미나리오 메노르(Seminario Menor) 188명을 수용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알베르게에서 석양을 지켜 보았다. 오후 7 30분에 예정된 순례자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대성당으로 갔다. 먼저 성당 내부를 한 바퀴 돌아보고 미사에 참석했다.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라 불리는 향로는 정해진 요일이나 누가 도네이션을 하는 경우에 좌우로 움직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움직이지 않았다. 순례자들이 풍기는 고약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이 향로를 피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순례자 미사도 마쳤으니 이제 공식적인 순례는 모두 끝났구나 싶었다. 시원섭섭하단 생각이 들었다. 누군 벅찬 감동에 절로 눈물이 났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나에겐 그런 감동은 없었다.

 

살세다 마을을 빠져나오며 일출을 맞았다.

 

옥수수가 들어있는 오레오 문이 열려 있어 참새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N-547 도로를 만나는 지점에서 햇빛에 비친 내 그림자를 찍어 보았다.

 

산타 이레네(Santa Irene)에 있는 작은 성당은 반쯤 숲속에 숨어 있었다.

 

산티아고 경내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석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길을 걸었다. 순례자들이 공항 외곽에 쳐놓은 철망에 나뭇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어 놓았다.

 

산 팔로(San Palo) 마을에 있는 이름 모를 성당을 지나쳤다.

 

 

라바코야의 베나발(Benaval) 성당에선 미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몬테 도 고쏘의 교황 바오로 2세 방문 기념탑

 

산티아고 도심으로 들어서면서 만난 기념탑에는 왕가의 인물이나 교황 등 유명인사들의 부조가 새겨 있었다.

 

 

산티아고의 도심 풍경

 

 

 

 

 

 

 

 

오브라도이로(Obradoiro) 광장에선 산티아고 대성당을 올려다 볼 수 있다.

시청사와 호텔 등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의 위용도 대단했다.

 

순례자협회에서 크레덴시알에 마지막 스탬프를 찍고 순례증서를 발급받았다.

 

산티아고 도심엔 알베르게가 없어 좀 걸어나가야 했다. 규모가 큰 세미나리오 메노르를 소개받아 하룻밤 묵었다.

 

세미나리오 메노르 알베르게는 언덕 위에 있어 산티아고 도심을 배경으로 석양을 볼 수 있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저녁에 순례자 미사가 열렸다. 무사히 순례를 마친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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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춘 호 2015.12.22 09: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가고싶게 만드는 후기인것 같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따뜻한 곳으로 떠나고 싶네요.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멋진 하루 되세요.

    • 보리올 2015.12.22 1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춘호님도 여행을 아주 좋아하시는 분이더군요. 앞으로도 재미있는 글 부탁 드립니다.

  2. Preya 2015.12.22 1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고하셨습니다 +_+/
    멋진 순례길이었네요.

  3. 농돌이 2015.12.23 08: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고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생을 살면서 기념비적인 획을 하나 그으셨습니다
    일이라는 것이 하나의 과정이 지나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오래 오래 행복할 것 같습니다
    지중해까지 가시는지요?

  4. Justin 2016.04.04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짝짝짝~ 일단 산티아고에 입성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티눈과 발목 상태가 좋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오셨네요! 대단하십니다!

    • 보리올 2016.04.07 15: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뒤늦게 이런 축하를 받는구나. 지금은 발목 부상도, 티눈도 다 잊었는데 말이다. 처음엔 왜 이 길을 걷나 싶었는데 다 끝내니 다시 걷고 싶더구나.

 

할로윈 데이인 10월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상한 꿈을 두 개나 꾸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그 의미 파악에 골몰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마치 하늘의 계시인 듯 해서 솔직히 하루 종일 머릿속이 꽤나 복잡했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뒤치닥거리다가 530분에 부엌으로 나왔다. 파스타에 렌틸콩을 얹어 아침으로 먹고 7시도 되기 전에 밖으로 나섰다. 깜깜한 어둠을 헤치고 한 시간 넘게 걸어야 했다. 하늘에 구름이 가득해 보였는데 구름이 살짝 벗겨지며 일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가 떠오른다는 느낌도 없이 허무하게 일출이 끝났고 말았다. 조금 있으니 시커먼 구름이 몰려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았다.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산 훌리안(San Julian) 성당은 전설에 비해서 너무 작고 보잘 것 없었다. 어느 가게엔 마을 이름을 산 쑬리안(San Xulain)이라 적어놓아 좀 헤깔렸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나도 모른다. 훌리안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어느 날 사냥을 가서 사슴을 잡았다. 그 사슴이 죽기 전에 언젠가 부모를 죽이게 될 것이라 훌리안에게 경고를 했다. 그 예언을 들은 훌리안은 고향을 떠났다. 몇 년 후에 그의 소재를 알아낸 부모가 그를 찾아 갔는데, 훌리안은 외출중이었고 훌리안의 아내는 피곤해 하는 두 노인을 자신의 침대에 재웠다. 외출에서 돌아온 훌리안은 침대 위의 두 사람을 보고 부인이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착각하고 칼로 두 사람을 죽인다. 나중에 전모를 알게된 훌리안은 로마로 순례를 떠나 순례자를 위한 병원을 짓고 회개를 하며 살았다. 몇 년이 지나 천사가 내려와 훌리안의 죄를 사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카사노바(Casanova)를 지나 갈리시아 자치주의 루고 주에서 코루냐(Coruna) 주로 들어섰다. 어제 본 가옥들은 검은 슬레이트 석판으로 지붕을 이었는데 여긴 가옥들이 모두 둥근 모양의 붉은 기와를 썼다. 레보레이로(Leboreiro)의 성당도 작고 초라했다. 이곳도 전설이 전해진다. 이 성당 자리에 원래 샘이 있었는데 낮에는 신비로운 향기가, 밤에는 반짝이는 빛이 흘러 나왔단다. 그 주변을 파보니 성모상이 나와 성당으로 모셨는데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원래의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샘터가 있던 곳에 성당을 지어 바쳤더니 다시는 성모상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지팡이 하나만 들고 내 앞으로 추월해가는 순례자들을 만났다. 짐이 없어 그런지 속도가 무척 빨랐다. 남자 둘, 여자 둘로 봐서는 두 부부로 보였다.

 

아치형 다리를 건너 푸레로스(Furelos)로 들어섰다. 산 후안 성당이 있었으나 문은 닫혀 있었다. 여기서부턴 행정구역상 멜리데(Melide)에 속하는 모양이었다. 공장지대를 지나 멜리데로 들어섰다. 도시 규모가 꽤 컸다. 풀포라 불리는 문어요리가 유명한 곳이라 원조격에 해당하는 풀페리아 에쎄키엘(Pulperia Ezequiel)을 찾아갔다. 큰 길에 접해 있어 쉽게 찾았다. 둥근 나무판에 문어를 이층으로 쌓아 그 위에 파프리카와 올리브 오일을 뿌려 나오는데 가격은 14유로를 받았다. 문어가 연하기도 했지만 맛도 뛰어났다. 와인은 한 병에 4유로를 받는데 난 반병만 먹겠다 해서 2유로만 냈다. 사기 그릇을 와인잔으로 사용하는 낭만도 누렸다. 멜리데 도심을 잠깐 둘러 보았다. 교구 성당과 그 옆에 있는 테라 데 멜리데(Terra de Melide) 박물관을 방문했다. 박물관은 무료였는데 1유로를 도네이션하니 직원이 활짝 웃어줬다.

 

아르쑤아(Arzua)도 제법 컸지만 현대식 건물이 많아 큰 관심을 끌진 못했다. 도심 한 가운데 있는 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을 뿐이다. 아르쑤아를 벗어나 작은 계곡이 많은 구간을 지나는데 의외로 오르내림이 심한 편이었다. 아르쑤아에서 살세사(Salcesa)까지 10km를 더 걸어 오늘 걸은 거리도 40km를 넘겼다. 다음 날 산티아고에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하기 위해서 오늘 조금이라도 더 걷자는 생각이었다. 살세다에 있는 투어리스트 알베르게에 들었다. 일종의 여행자 호텔인데 한 구석에 알베르게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침대 8개가 전부였다. 먼저 도착한 한국인 아가씨 두 명은 알베르게 비용으로 트윈룸을 배정받았다고 자랑하던데 나에겐 알베르게 침대를 준다. 이 방으로 한국인 젊은이 3명이 더 들어왔다. 점심으로 준비했다가 먹지 못한 빵과 계란, 과일로 혼자 저녁을 때웠다.

 

어둠 속에서 만난 이정표에 산티아고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산 훌리안의 전설이 서려있는 12세기 로마네스크 방식의 산 훌리안 성당

 

폰테 캄파냐(Ponte Campana)의 카사 도밍고(Casa Domingo)엔 커다란 조가비 장식이 있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속해 있는 코루냐 주로 들어섰음을 알려주는 표지석

 

 

레보레이로 마을과 산타 마리아 성당 앞에 설치된 카베세이로(Cabeceiro).

가난한 사람들의 오레오(Horreo)라 불리기도 하는데 버드나무로 광주리를 만들어 그 위에 짚을 얹었다.

 

레보레이로의 산타 마리아 성당. 성모상에 얽힌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관광 수입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멜리데의 도심 풍경

 

 

 

멜리데에서 문어요리로 유명한 식당인 풀페리아 에쎄키엘

 

 

멜리데 중심에 있는 상티 스피리투스(Sancti Spiritus) 교구 성당

 

 

 

교구 성당 바로 옆에 있는 테라 데 멜리데 박물관은 이 지역 민속 박물관이었다.

 

 

 

멜리데에서 1km 외곽지역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 안에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입장은 무료였지만 나올 때 도네이션을 받아 1유로를 주고 나왔다.

 

 

보엔테(Boente) 마을 중앙에 외관을 하얗게 칠한 산티아고 성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보엔테의 N-547 도로변에서 아이들이 소품을 가지고 나와 판매를 하고 있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는 가운데 다리 하나를 건너니 리오(Rio) 마을이 나타났다.

 

 

 

팔레스 데 레이와 더불어 치즈로 유명한 아르쑤아 마을. 현대적인 건물이 많은 마을이라 볼거리는 별로 없었다.

 

 

갈리시아 지역 특유의 옥수수 저장고인 오레오가 자주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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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3.24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떤 꿈을 꾸셨는지 궁금합니다 ~ 글과 사진을 보고나서도 아버지 꿈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배낭에 고히 모셔둔 마지막 신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모처럼 먹은 매운맛에 코에 땀이 났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에 일출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여명이 제법 아름다웠다. 비만 그쳐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말이다. 길을 가다가 땅에 떨어진 사과 몇 알을 주웠다. 이따가 간식으로 먹자고 배낭에 넣었다. 뉴욕 주에서 왔다는 60대 중반의 케빈과 함께 걸었다. 얼굴은 본 적이 있지만 오늘에서야 통성명을 했다. 뉴욕 주에서 낙농업 NGO로 활동하다가 얼마 전 은퇴를 했단다. 그는 돌로 지은 이 지역 주택이나 돌담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케빈과 함께 카사 수사나(Casa Susana)에서 커피를 한잔 했다. 수사나는 호주에서 온 수잔나의 스페인 이름이었는데, 이 집을 빌려 도네이션제로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실내도 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축사가 집안에 있는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포르토마린(Portomarin)으로 들어섰다. 1960년대 미뇨(Mino) 강에 댐이 건설되면서 옛 도시가 물에 잠기자 역사가 어린 건물들을 현재의 위치로 옯겼다고 한다. 성채처럼 생긴 산 후안(San Juan) 성당이 대표적인 경우다. 미뇨 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 시내로 향했다. 마을을 들르지 않고 왼쪽으로 빠져도 되지만 수잔나가 알려준대로 시내를 돌아보고 싶었다. 산 페드로(San Pedro) 성당에서 시작해 중심가를 따라 시내 구경에 나섰다. 산 후안 성당이 단연 돋보였지만 아쉽게도 문이 닫혀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성당 앞에 있는 광장엔 시청사와 순례자상이 세워져 있었다. 중앙로를 따라 상가가 마주보고 있는데 1층은 회랑으로 되어 있어 걷기에 편했다. 회랑 끝에 Km 88이란 바가 있어 여기서부터 산티아고까지 88km 남은 줄 알았다. 하지만 남은 거리는 88km가 아니라 90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포르토마린을 벗어난 오솔길에서 체코에서 왔다는 루시를 만났다. 배낭이 엄청 커서 무게가 얼마나 되냐 물었더니 15kg은 될 것이라 했다. 이 아가씬 길가에서 자라는 버섯에 대해 상당한 조예가 있었다. 이것저것 가르키며 이 모두가 식용 버섯인데 여기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했다. 이름도 모른 채 마을 몇 개를 지나쳤다. 풍경이 그만그만 해서 별 미련은 없었다. 소똥 냄새는 여전했지만 날씨가 점점 맑아져 기분은 절로 좋아졌다. 겨우 비 하나 그쳤다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사람 참 간사하다. 그 즐거움을 방해하는 일이 일어났다. 탁 트인 순례길에서 한 젊은 남녀가 길에 누워 포옹을 한 채로 열렬히 키스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명색이 순례길인데 대낮부터 이건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라 하진 못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 마지 못해 떨어진다. 발걸음을 빨리 해서 현장을 벗어났다.

 

곤싸르(Gonzar)에서 빵과 아침에 주운 사과로 점심을 먹었다. 먹는 것에 비해 열량 소모가 많은 때문인지 뱃살이 홀쭉해졌다. 이제부터 관리를 잘 해야할텐데 말이다. 오스피탈 다 크루쓰(Hospital da Cruz)로 들어서기 전에 아스팔트에 쭈구리고 앉아 송충이를 지켜보던 제이미를 만났다. 처음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라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나중에 K77 표지석이 있는 지점에서 다시 만나 통성명을 하곤 아까 아스팔트에서 무엇을 했냐고 물어보았다. 아스팔트를 지나는 송충이가 행여 지나가는 차량에 깔릴까 걱정이 되어 나뭇잎을 이용해 숲으로 유도하는 중이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그 아가씨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참으로 마음씨 착한 아가씨였다. 유타 주에서 왔다는 그녀는 평소에도 나비와 곤충을 좋아했다고 덧붙였다.

 

리곤데(Ligonde)를 지나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i)까진 꽤 멀게 느껴졌다. 팔라스 데 레이는 왕의 궁전이란 의미라던데, 여기가 예전에 어떤 왕국의 수도였던 모양이었다. 팔라스 데 레이는 인구 4,200명을 가진 제법 큰 도시였다. 마을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최신식으로 깨끗하게 꾸민 공립 알베르게라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이 없었다. 그 큰 시설을 나를 포함해 모두 5명이 썼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도심까진 1km를 더 가야 했고 도심에도 알베르게가 여러 개 있었다. 부식을 사러 도심으로 가는데 일몰이 시작되었다. 도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석양을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혼자서 부엌을 독차지하곤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단백질을 보충한답시고 고등어 통조림과 소시지를 고추장에 찍어 와인과 함께 먹으니 그 조합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페레이로스에서 아스팔트 길로 내려서면 만나는 산타 마리아 성당은 공동묘지를 끼고 있었다.

 

이름도 모른 채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찻길에 세워진 버스 정류장이 좀 낯설게 다가왔다.

 

 

돌로 지어진 주택들이 많았다. 둥글게 휘어도는 담장 처리도 뛰어났다.

 

회색 돌집에 빨간 대문을 달아 눈길을 끌었다. 그 옆에 화분을 놓아 구색을 맞춘 것도 보기 좋았다.

 

 

 

카사 수사나에서 커피 한잔 마셨다. 카페 주인인 수잔나가 집안도 구경시켜 주었다.

 

 

미뇨 강을 건너 포르토마린으로 들어섰다.

 

포르토마린의 산 페드로(San Pedro) 성당엔 특이하게도 스페인 국기가 걸려 있었다.

 

산 페드로 성당 앞에 조성된 작은 공원에 무슨 까닭인지 커다란 증류기가 세워져 있었다.

 

댐 공사로 수몰된 옛 마을에서 하나하나씩 해체해 현위치에 다시 조립한 산 후안 성당

 

 

포르토마린을 가로지르는 중앙로를 따라 형성된 상가와 주택

 

아스팔트에 10여 분을 쭈그리고 앉아 송충이를 다시 숲으로 되돌려보낸 제이미

 

벤타스 데 나론(Ventas de Naron) 마을에서 본 자판기에도 산티아고 순례길의 루트가 표시되어 있었다.

 

벤타스 데 나론의 막달레나(Magdalena) 예배당.

템플 기사단이 순례자를 위해 지은 병원이 19세기에 무너지자, 그 돌로 예배당을 지었다고 한다.

 

 

리곤데 마을. 건물 외벽을 장식한 절묘한 감각에 절로 감탄이 나왔고, 둥근 형태로 돌을 쌓고

그 위에 석판을 얹은 구조도 눈길을 끌었다.

 

나이 지긋한 여자 한 명과 여자아이 둘이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들도 순례에 나선 것일까?

 

소들이 풀을 뜯기 위해 들판으로 나가고 있다.

 

 

아이레쎄(Airexe)와 아 칼싸다(A Calzada)에 있는 성당들은 모두 공동묘지 옆에 세워져 있었다.

 

 

팔라스 데 레이의 산 티르소(San Tirso) 성당. 마침 미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팔라스 데 레이 도심에 있는 수퍼마켓을 가다가 맞은 석양에 가슴이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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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3.21 1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이미의 생명을 소중히하는 자세를 본받아야겠습니다. 모기와 샌드플라이는 아직...

  2. 2019.09.23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빵에다 피넛버터를 듬뿍 발라 아침으로 먹었다. 에너지를 축적한다 생각하고 와인 남은 것도 마저 비웠다. 이 마을에서 하루를 묵은 한국인이 꽤 많아 보였는데 이 알베르게엔 한 명도 투숙하지 않았다. 부엌과 와이파이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가랑비를 맞으며 알베르게를 나섰다. 비록 양은 많지 않다 해도 벌써 며칠째 비를 맞으며 걷는다. 어려움을 묵묵히 참아내는 것이 순례자의 태도라 하겠지만 며칠 동안 계속해서 비를 맞으니 기분이 그리 유쾌하진 않다. 갈리시아의 속담에 비를 대비하고 햇살을 원하면 기도하라란 말이 있다는데, 도대체 얼마나 기도를 해야 비가 그칠까 모르겠다. 이러다가 우중충한 날씨가 갈리시아의 첫 인상으로 각인될 것 같았다. 가끔 비가 그치긴 했지만 변덕이 너무 심해 우의를 벗을 수가 없었다.

 

트리아카스텔라 마을 끝에서 길이 갈렸다. 산 씰(San Xil)로 가는 오른쪽 길을 택했다. 사모스(Samos)로 가는 것보다 경치는 별로지만 거리가 짧다고 했다. 비오는 날씨라 앞뒤 생각없이 거리가 짧은 쪽을 택한 것이다. 구름이 많아 갈리시아 지방 특유의 구릉지대를 자세히 볼 수 없는 것이 유감이었다. 가파른 오르막 길을 걸어 산 씰에 도착했더니 잠시 비가 그치며 햇살이 내리쬐었다. 하지만 10여 분 뒤엔 다시 구름이 하늘을 가리더니 또 다시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낙엽이 잔뜩 떨어진 오솔길을 꾸준히 걸었다. 산길 자체는 꽤 정감이 갔다. 천천히 오르막을 걷고 있는 순례자들을 앞질러 가다가 프로미스타에서 헤어진 미국 자매를 다시 만났다. 내 앞에 선 것을 보니 일부 구간을 차로 건너뛴 모양이었다. 간단히 인사만 건네고 앞으로 나섰다.

 

조그만 마을을 여러 개 지났다. 마을 이름을 적어 놓은 곳도 없어 어디를 지나는지도 모른채 그냥 걸었다. 500m 간격으로 세워진 표지판이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가옥들 지붕이 좀 특이하게 생겼다. 전에도 몇 차례 보기는 했지만 여긴 지붕을 모두 커다란 석판을 이용해 집을 지은 것이다. 이렇게 얇으면서도 커다란 석판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 나라 너와집과 비슷하단 느낌이 들었다. 갈리시아로 들어와 느낀 것 가운데 하나는 길에 유난히 소똥이 많다는 것이었다. 마을마다 빠지지 않고 나타나는 축사를 지날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소똥 냄새가 진동을 했다. 입고 있는 옷에서도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시골이 고향인 사람에겐 소똥 냄새가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겠지만 그것도 너무 오래 맡으니 코가 마비되는 기분이었다. 소똥 냄새가 또 하나의 갈리시아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싶었다.

 

사리아(Sarria)로 들어섰다. 꽤 도시가 컸다. 고층 아파트도 보였다. 강을 건너 오르막 길로 들어서니 구시가 분위기가 풍겼고 알베르게도 거의 다 여기 모여 있었다. 그 숫자를 볼 때 순례자들이 이 지역 경제에 상당한 몫을 차지하는 것이 분명했다. 성당도 여기에 많았다. 산타 마리아 성당 벤치에서 빵으로 점심을 때웠다. 나무에서 떨어진 사과를 오다가 몇 개 주웠는데 맛은 시큼했으나 그래도 후식으로 먹었다. 사리아를 빠져 나오다 수도원을 만났다. 문이 닫혀 있어 외관만 살펴보고 있는데 할로윈 복장을 한 아이들이 수 십명 몰려오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무슨 행사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모레가 할로윈이다. 오늘이 몇 일인지도 모른 채 줄곧 걷기만 했는데 벌써 10월 말이 되었다.

 

머리 위로 고가도로가 지나가고 그 아래론 철도가 지난다. 이렇게 건널목을 이용해 철로를 건너가는 것은 순례길에서 처음이 아닌가 싶었다. 이름 모를 마을 몇 개를 또 지났다. 마을 규모도 굉장히 작았다. 어떤 마을은 집이 한 채에 불과한데도 별도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페레이로스(Ferreiros)에 도착하기 직전에 K100 표지판을 보았다. 산티아고가 100km 남았다는 표시라 배낭을 내려놓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이제 앞으로 3일만 더 걸으면 산티아고에 도착할 것이다. 페레이로스 알베르게에 들었다. 크진 않았지만 깨끗하고 부엌도 갖춰 놓았다. 육개장 수프에 파스타를 끓여 먹었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아 밖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와인 한잔 시켜놓고 시간을 보냈다. 다른 날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산 씰을 지날 때 잠시 비가 그치고 햇살이 나타났다.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오면서 가옥의 지붕이 검정색 석판으로 바뀌었다.

 

야곱을 다시 만난 어느 마을의 매장엔 파는 물품이 몇 가지 되지 않았다.

 

길가에서 발견한 순례길 이정표. 저 아래 문양은 무슨 의미인지 도통 모르겠다.

 

푸렐라(Furela) 마을에서 소를 몰고가는 목동을 만났다.

 

 

사모스에서 오는 길과 합류하는 아기아다(Aguiada) 마을, 조그만 성당이 문을 열어 놓아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사리아는 강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현대식 건물이 많았고 강 건너엔 구시가가 자리잡고 있었다.

 

 

사리아에서 만난 산타 마리아 성당과 산 살바도르 성당. 둘다 문은 닫혀 있었다.

 

길가에 벽을 파서 순례자상을 세워 놓았는데 왜 철창으로 보호해 놓았는지 모르겠다.

 

언덕 위에 오르니 사리아 마을 뒤로 펼쳐진 산도 눈에 들어왔다.

 

 

 

 

콘벤토 데 라 막달레나(Convento de la Magdalena) 수도원. 할로윈 복장을 한 어린이들이 몰려왔다.

 

 

개울을 건너는 돌다리도, 낙엽이 깔린 오솔길도 나름 운치가 있었다.

 

 

빌레이(Vilei) 마을. 소떼가 초지로 이동하고 있었고, 묘하게 생긴 담장 장식도 만났다.

 

 

갈리시아의 전형적인 시골 마을 모습. 밭에는 채소가 사람 키 크기로 자랐다.

 

집집마다 옥수수를 저장하는 창고를 하나씩 세워놓아 눈길을 끌었다.

 

모르가데(Morgade)를 지나니 길가에 작은 성당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바닥도 울퉁불퉁하고 벽에는 낙서도 많았다.

 

산티아고까지 100km 남았다는 표지석을 보고는 페레이로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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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5.12.16 23: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젖소가 홀스타인이네요
    기후가 따뜻한가 봅니다
    즐기시며 걸으세요

    • 보리올 2015.12.17 02: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하얀색과 검정색이 고루 섞인 소가 홀스타인이죠?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럼 그 아래 사진에 있는 누런 소는 고기를 목적으로 키우는 소인가요?

    • 농돌이 2015.12.17 09: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기를 목적으로 키우는 육용소로 보입니다
      브라만인듯 합니다 덩치가 크고 좀 싸납습니다
      뿔이 동물복지로 제각을 안했네요
      소들도 뿔을 자르거나 거세를 하면 조용해집니다 ㅋㅋㅋ
      내시?

    • 보리올 2015.12.17 15: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에 대해 해박하시네요. 제가 중학교 때 시골에서 농업을 배웠는데 지금까지 기억에 남은 것은 돼지의 임신기간뿐입니다. 앞으로 한수 가르쳐 주십시요.

    • 농돌이 2015.12.17 18: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상경을 공부했는데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 모두 축산쪽 입니다
      혹시 걸으시다가 치즈(젖소, 염소,양) 만드는 농가, 소세지만드는 곳
      생햄 만드는 곳 들리시면 사진 부탁해요
      관심이 있어서 지난달에 유럽 잠시 다녀왔습니다
      한국 농촌에 희망이 되는 일이 있어야 하기에 그냥 찿아봅니다

    • 보리올 2015.12.18 02: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취지가 너무 좋네요. 치즈 등을 만드는 생활 현장을 촬영하는 것 자체는 좋아합니다만 아쉽게도 그런 사진이 없네요. 예전에 네팔에서 야크 치즈 만드는 현장을 보기는 했지만 사진은 없습니다. 앞으로 염두에 두죠.

    • 농돌이 2015.12.18 06: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스페인은 하몽과 탄산들어간 포도주
      치즈가 유명합니다
      참고하셔요 전 삼실 가족들과 전주
      한옥마을 대둔산에 팀빌딩 갑니다
      계속되는 일정이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 보리올 2015.12.18 07: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 알겠습니다. 하몽은 샌드위치에 넣어 많이 먹었습니다. 유명한 치즈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먹어보진 않았고, 탄산 들어간 와인은 금시초문이군요. 동료들과 팀빌딩 가신다고요?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2. Justin 2016.03.17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할로윈을 미국, 캐나다에서만 하는 줄 알았는데 유럽에서도 하나보죠? 아니면 원래 유럽에서 넘어왔나봐요? 아이들이 귀엽습니다~

    • 보리올 2016.03.17 16: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할로윈은 원래 유럽에서 건너온 전통인데 미국 덕분에 널리 퍼지게 되었지. 유럽 켈트 족이 오래 전부터 행하던 축제거든.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이 행사를 보전해 오다가 감자 기근으로 미국 행을 택한 사람들이 많아 미국에서 널리 퍼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