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콩을 얹은 파스타로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알베르게가 소란스러워졌다. 옆방에 묵었던 아가씨 한 명이 몹시 화가 난 표정으로 뛰어나왔고 알베르게 오스피탈레로도 이곳저곳 분주히 움직였다. 간밤에 옆방에서 사건이 하나 발생한 것이었다. 60대 후반의 노인네 한 명이 술에 취해 잠을 자다가 한밤중에 용변을 본다는 것이 그만 방 안에 있는 그 아가씨 배낭에다 두 차례나 쉬를 한 것이다. 경찰을 불러라, 둘이 합의를 해라 하며 알베르게가 한동안 시끄러웠다.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어수선한 가운데 먼저 알베르게를 떠났기 때문이다. 베가 데 발카르세(Vega de Valcarce)도 한 눈에 보기에 예쁜 마을 같아 보였지만 비가 내리는 탓에 좀 스산해 보였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걷다가 라스 에레리아스(Las Herrerias)를 지나면서 오솔길로 접어 들었다.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비를 맞으며 산을 오르는 기분은 사실 별로다. 사방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데 비구름이 그 풍경을 가리는 경우엔 더욱 그렇다. 오늘이 딱 그랬다. 마지막 산을 오르는데 비가 내리다니 이게 뭔 조화냐 싶었다. 좁은 오솔길엔 밤송이가 지천으로 떨어져 있었다. 한해 열심히 영양분을 만들어 밤송이를 만들었건만 차에, 소에 그리고 사람에 밟혀 씨앗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밤나무의 심정을 생각하니 공연히 내 속이 탄다. 알이 실한 밤을 몇 십 개 골라 배낭에 넣었다. 어디 목이 좋은 곳이 나타나면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를 대신해 씨를 뿌려줄 생각이었다. 길엔 소똥 역시 무척 많았다. 소들의 왕래가 잦은 것을 보면 이 마을은 목축이 주요 생계 수단인 모양이다.

 

계속 오르막이 이어졌다. 해발 1,300m까지만 오르면 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앞으로 이런 산악 지형은 나타나지 않는다. 레온 주의 마지막 마을 라 라구나(La Laguna)를 지났다. 어느 정도 고도를 높이자 시야가 탁 트이기 시작했다. 촉촉하게 비에 젖은 가을 정취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능선을 따라 비구름이 춤을 추고 산기슭은 군데군데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다. 날이 맑았더라면 꽤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었을텐데 좀 아쉽다. 능선 위로 올라서 갈리시아(Galicia) 자치주의 루고(Lugo) 주로 들어섰다. 갈리시아 문장을 새겨넣은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순례길의 종착점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가 갈리시아 자치주에 있으니 이제 목적지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갈리시아 지방에서 세운 첫 표지석에도 산티아고까지 151.5km가 남았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산 꼭대기 부근에 있는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에 닿았다. 안개가 짙고 여름에도 눈이 온다는 곳인데 다행스럽게도 잠시 비가 그쳤다. 산타 마리아 성당은 깔끔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했던 성배가 여기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의 진위는 나도 잘 모른다. 돌로 지은 집 외에도 둥근 초가 지붕을 얹은 파요싸(Palloza) 몇 채가 눈에 들어왔다. 켈틱 전통의 파요싸에는 사람과 가축이 함께 기거하기도 했고 소시지나 햄을 훈제하기도 했단다. 순례길은 바로 하산하지 않고 비슷한 고도를 유지하며 오르내림을 계속해야 했다. 해발 1,270m의 산 로케 고개(Alto do San Roque)를 지나고 오스피탈(Hospital)이란 볼 것 하나 없는 마을도 지났다. 해발 1,335m의 포이오 고개(Alto do Poio)도 가볍게 넘었다. 그 후론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까지 긴 내리막 길이 시작됐다.

 

갈리시아의 전형적인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완만한 구릉이 넘실대고 그 경사면에 조성한 푸른 초지와 목장이 눈에 들어왔다. 한가롭게 그 위를 거니는 소들도 보였다.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꼭 알프스의 초원 같다며 갈리시아의 아름다움을 칭송하지만, 난 자연을 훼손한 현장을 보는 것 같아 속이 편하지 않았다. 생계가 최우선이라고 하면 할말은 없지만 말이다. 오후의 지루함이 덮쳐올 즈음,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며 빗줄기가 얼굴을 때렸다. 고개를 숙이고 발걸음을 빨리 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비를 맞기 시작해 하루 종일 비를 맞았다. 오후 4시경에 트리아카스텔라에 도착해 알베르게를 찾느라 시간을 좀 허비했다. 공립 알베르게는 취사 시설은 없었지만 방은 4인실로 꾸며 아늑하고 깨끗했다. 이태리 친구와 한 방을 썼다.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가지 않고 빵과 사과, 삶은 계란에 와인으로 알베르게에서 대충 해결을 했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라스 에레리아스 마을은 차분하면서도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라스 에레리아스를 지나 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이 나타났다.

 

라 파바(La Faba)란 마을에서 만난 어느 시골집의 벽면 모습

 

 

 

 

어느 정도 고도를 높이자 비에 젖은 가운데도 가을 정취를 풍기는 산악 지형이 나타났다.

 

라 라구나 마을에서 초가 지붕을 얹은 건물 한 채를 발견했는데 그 용도는 잘모르겠다.

 

 

다시 산으로 오르는 중에 계곡 아래 자리잡은 마을 하나가 보였다.

 

 

능선 위에 올라 바라본 풍경. 풍경에 큰 변화는 없었지만 더 넓은 지역이 한 눈에 들어왔다.

 

 

갈리시아 지치주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나타났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리는 표지석은 500m 간격으로 하나씩 세워져 있었다.

 

 

 

바람의 마을이란 별명을 가진 오 세브레이로에 올랐다. 파요사란 특이한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오 세브레이로를 내려서면서 잔잔한 풍경과 마주쳤다.

 

 

비를 맞으면서도 멈추지 않고 순례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들

 

산 로케 고개엔 바람을 헤치고 나아가는 순례자 형상을 묘사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포이오 고개를 넘어 만난 조그만 성당 하나가 순례자에게 비를 피할 휴식처를 제공했다.

 

하산길에 갈리시아 지방의 전형적인 풍경을 만났다.

 

트리아카스텔라로 들기 직전에 만난 어느 마을의 성당 입구에 두 송이의 꽃이 꽂혀 있었다.

 

 

 

트리아카스텔라 마을의 모습. 산티아고 성당과 순례자상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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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5.12.16 23: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을 단풍 멋져요 ㅎ
    젖소도 한가롭고 산악지형 넘느라고
    고생하셨어요 엄지발가락 주물르세요

    • 보리올 2015.12.17 0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을 단풍과 농촌 풍경을 좋아하시는 것을 보면 그런 소재에 정감을 많이 느끼시는 모양입니다. 농돌이님도 저와 취향이 비슷한 것 같군요. 저도 자연이나 시골 풍경에서 마음이 푸근해짐을 많이 느낍니다.

    • 농돌이 2015.12.17 09: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 지금 시골 소읍에서 생활하는데도 휴일이면 산으로 들로
      나갑니다 어렸을 적에 몰랐던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에
      행복해합니다 조그만 들풀꽃에서도 큰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늦게 알았습니다 ㅎㅎ

    • 보리올 2015.12.17 16: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삶의 경륜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 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원숙해졌다는 의미겠죠. 조용히 관조할줄 아는 지혜도 터득하신 것 같고요. 부럽습니다.

    • 농돌이 2015.12.17 18: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과하신 말씀이구요, 정신없이 잡으려고 뛰다가 잠시
      돌아보고, 다시 생각하니까, 삶이 짧고 아까운 거죠?
      몇 년 전부터 시작해서 산에 가면서도 책 한권 가지고 가서 점심 먹고 읽고, 졸리면 자고,,,
      삶에 순도를 높여서,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좀 완성된 모습으로
      지구별 여행을 마무리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좀 큰가요?

    • 보리올 2015.12.18 02: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닙니다. 크지 않습니다. 그리 소망하면 언젠가 이루어질 겁니다. 산에 책을 들고 가신다는 말씀은 저에게 각성제 같은 이야기네요.

  2. Justin 2016.03.15 1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파요사라는 건물이 꼭 사람의 더벅머리 형상 같습니다 ~
    (참고로 사진 설명글 밑에 갈리시아 자치주가 아니라 지치주라고 적혀있습니다.)

    • 보리올 2016.03.15 23: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도 저 특이한 건축양식이 왜 생겼는지 궁금했지만 그 내막을 알아보진 못했다. 더벅머리 형상이란 표현이 재미있구나.

 

밤새 비가 오더니 새벽에서야 그쳤다. 어느 새 비가 일상이 되었다. 파스타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이영호 선생이 다리에 통증이 심해 걷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두열 선생에게 먼저 간다고 작별을 고하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구름의 이동이 심상치 않았다. 어제 구경했던 도심에서 좁은 골목길을 지나 폰페라다를 빠져 나왔다. 폰페라다 외곽으로 나왔을 때 일출이 시작되었다. 두꺼운 구름과 묵중한 산세에 가려 일출은 그다지 볼 것이 없었다. 가로수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도로를 지나고 구획 정리가 잘 되어 있는 마을을 빠져 나오니 한적한 시골길이 시작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르키는 표식도 새로워졌다. 지자체마다 개성있는 디자인을 택하기 때문에 획일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건물들이 큼직큼직한 캄포나라야(Camponaraya)로 들어섰다. 길가에 알록달록한 공장 건물이 들어서 있어 무엇을 만드는 곳일까 궁금했는데 비냐스 델 비에르쏘(Vinas del Bierzo)라는 와이너리였다. 테이스팅 룸이 마련되어 있어 와인 한잔을 시켰다. 핀초(Pincho)라는 타파스를 곁들여서 1.50유로를 받는다. 아침부터 술기운으로 걷게 되었다. 카카벨로스(Cacabelos)에 이르는 길 옆으로 포도밭이 즐비했다. 리오하(Rioja) 지역과 비슷하게 여기도 들판 대부분을 포도밭이 차지하고 있었다. 카카벨로스는 스스로를 유럽 와인의 중심지라 칭했다. 프랑스의 보르도나 부르고뉴에서 들으면 펄쩍 뛸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꿀밤을 먹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포도 품종은 멘시아(Mencia)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 초입에 와인 등급을 매기고 원산지를 증명하는 관청도 있었다. 조그만 성당을 박물관으로 바꿔놓은 곳도 있어 1유로를 기부하고 들어가 보았다.

 

피에로스(Pierros)를 지나서 발투일레 데 아리바(Valtuille de Arriba)로 우회하는 길 역시 포도밭 사이를 누비며 한없이 이어졌다. 노랗게 또는 붉게 물든 단풍이 포도밭을 뒤덮고 있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포도나무를 사람 무릎 높이로 길러 놓은 것이었다. 다른 지역은 지지대와 와이어를 이용해 사람 키만한 높이로 기르는데 말이다. 마을을 벗어나면서 언덕 경사면에 조성된 포도밭을 만났는데, 언덕 위에 세워진 하얀집과 나무 몇 그루가 포도밭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쏘(Villafranca del Bierzo)는 크진 않았지만 꽤나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용서의 문(Puerta del Perdon)을 가진 산티아고 성당과 성채를 지나 도심으로 들어섰다. 미로처럼 좁은 골목길을 걸어 마을 한 바퀴 돌아보고 길가 벤치에서 빵과 과일, 삶은 계란으로 점심을 먹었다.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로 올라야 하는 순례자들은 여기서 하루를 묵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난 좀더 올라가기로 했다. 경사는 심하지 않았지만 꾸준한 오르막이 이어졌다. 발카르세(Valcarce) 강을 따라 놓여진 도로를 걸어 페레헤(Pereje), 트라바델로(Trabadelo) 등 몇 개 마을을 지났다. 대부분 산골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라 볼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마을마다 조그만 성당이 있었지만 대개 문을 잠가 놓았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해 우의를 꺼내 입었다. 하루도 봐주는 날이 없다고 연신 투덜대면서 말이다. 날이 어두워지려는 시각에 베가 데 발카르세(Vega de Valcarce)에 도착했다. 산 아래 자리잡은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었다. 거의 10시간 가까이 걸어 순례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40km를 넘게 걸었다. 알베르게부터 찾았다.

 

비가 그치질 않아 마을 구경도 생략했다. 부식을 사러 가게에 갔다가 박인자 선생을 만났다. 혼자서 순례길을 걷고 있는 용감한 주부였다. 간단하게 수프를 준비할테니 함께 저녁을 하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하지만 부엌이 워낙 작고 이미 다른 순례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우루과이에 온 젊은이 셋이 자기들이 마련한 저녁이 많다고 우리에게 꽤 많은 양의 음식을 건네주었다. 기소라 한다는 우루과이 볶음밥이었는데 그런대로 먹을만 했다. 거기에 박인자 선생이 준비한 수프를 더하고 내가 산 와인을 곁들이니 훌륭한 만찬이 되었다. 나중엔 보스턴에서 왔다는 아가씨 둘이 만든 요리도 한 접시 빼앗아 먹었다. 시금치에 떡볶이 떡 같은 것을 넣고 토마토 소스와 버무렸는데 그것도 맛은 괜찮았다.

 

파스타 면을 삶아 그 위에 통조림으로 파는 콩을 얹었다. 간편하게 만들 수 있어 아침에 자주 먹었다.

 

 

폰페라다를 벗어날 즈음 구름이 가득한 동녘 하늘로 해가 솟았다.

 

폰페라다 외곽에서 가로수 터널을 만났다.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콤포스티야(Compostilla) 성당

 

콜룸브리아노스(Columbrianos) 마을로 들어서는데 포도밭 가운데 산 에스테반(San Esteban) 성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지역에 설치된 산티아고 순례길 표식이 다른 곳과는 달라 눈에 띄었으나 그 숫자가 몇 개 되지 않았다.

 

 

인구 4,200명을 가진 캄포나라야

 

 

캄포나라야의 비냐스 델 비에르쏘 와이너리에 와인 테이스팅 룸을 마련해 놓아 들어가 보았다.

 

 

 

스페인의 와인 산지로 유명한 비에르쏘 지역의 중심지 카카벨로스

 

 

카카벨로스에 있는 조그만 성당 하나를 박물관으로 개조해 도네이션제로 운영하고 있었다.

 

 

 

카카벨로스 외곽으로 대규모 포도밭이 펼쳐져 특유의 풍경을 만들었다.

 

주택 벽면에 과감한 색깔을 칠해 마을 분위기가 밝아 보였던 발투일레 마을

 

발투일레 마을에서 고양이 다섯 마리가 경계의 눈초리로 나를 맞이했다.

 

 

 

 

산과 계곡, 강이 어우러져 아름다웠던 비야프랑카 마을. 마르케스(Marqueses) 후작의 궁전도 있었다.

 

비야프랑카를 벗어나 N-6 도로를 따라 걷는데 순례길을 알리는 이정표에 누가 등산화를 걸어 놓았다.

 

베가 데 발카르세 마을 직전에 있는 암바스메스타스(Ambasmestas)를 지났다.

 

 

암바스메스타스에 자리잡은 이름 모를 성당엔 한 커플이 의자에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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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광주랑 2015.12.15 09: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풍경이 장관이네요 ^^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광주광역시 공식 블로그 '광주랑'에도 많은 방문 부탁드려요 ~

    • 보리올 2015.12.15 1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관심을 가지고 봐주셔서 고압습니다. 광주랑이란 블로그는 엄청 방대하고 내용도 다양하던데 어떻게 그걸 다 관리하시는지 놀랍습니다. 애 많이 쓰시네요.

  2. ::리뷰:: 2015.12.15 11: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게.. 포도밭이었군요.. 아름답네요. 마치 들판인듯 아닌듯...

  3. Justin 2016.03.11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집집마다 색깔이 돋보여서 분위기도 밝고 상큼합니다 ~ 우리나라도 옛날 골목길을 저렇게 이쁘게 색만 칠했어도 이뻤을텐데말이죠~

    • 보리올 2016.03.11 1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애초부터 집을 지을 때 외관의 색상을 고려했다면 가능한 일이었겠지. 너무 인위적으로 칠을 하니까 오히려 보기가 흉하더구나.

 

아침에 일어나 날씨부터 살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일출은 물 건너갔고 이제는 비나 어서 그치라고 빌어야 할 판이다. 비가 오는 줄 알았더라면 어제 만하린(Manjarin)으로 바로 올라가는 것인데 그랬다. 빵과 과일로 간단히 아침을 때웠다. 우의를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꾸준히 오르막길을 걸어야 했다. 점차 날은 밝아오지만 운무가 세상을 집어 삼켜 눈에 보이는 것은 별로 없었다. 크루쓰 데 페로(Cruz de Ferro)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돌무덤 위에 십자가가 높이 세워져 있었다. 켈트족에 이어 로마인도 봉우리나 고개에 돌을 쌓는 전통이 있어 그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레온에 닿기 전에 준비한 돌을 올리고 나도 기도를 했다. 비 내리는 날씨라지만 사람과 십자가를 함께 찍기 위해 뒤따라 올라오는 사람을 기다렸다. 십자가 아래서 기도를 하거나 돌을 올려놓는 사람들의 경건한 태도에서 종교의 힘이 느껴졌다.

 

만하린으로 내려섰다. 토마스란 오스피탈레로(Hospitalero)가 폐허가 된 집을 재건해 알베르게를 만들었다. 형편없는 시설에 치장도 유치찬란했지만 그래도 중세의 분위기를 풍겨 정감이 갔다. 여기 오스피탈레로는 아침에 순례자가 알베르게를 떠날 때마다 종을 울린다고 한다. 순례자가 다시 길 위로 나섰음을 산티아고에게 알리는 의식이라 했다. 오스피탈레로에게 말 한 마디 건네려 했지만 다른 순례자들과 수다를 떠느라 나에겐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순둥이 강아지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알베르게를 떠났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더니 몇 분 후에 가장 높은 지점인 해발 1,517m 지점을 찍고는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아주 긴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기슭 일부에 단풍이 들어 산색에 변화를 주고 있었지만 그리 요란하지는 않았다. 가을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니 비가 잦아 들면서 발걸음에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엘 아세보(El Acebo)의 가옥 구조가 산 건너편 마을과는 좀 차이가 있었다. 집집마다 2층에 테라스를 만들어 놓았고 그 대부분이 집 밖으로 튀어나온 구조였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도 밖에 있었다. 검은 석판을 지붕에 얹은 것도 특이했다. 이런 것이 엘 비에르쏘(El Bierzo) 지역의 특징인 모양이다. 언덕에서 깃발이 여러 개 휘날리는 집을 보고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새로 지은 알베르게였다. 한적한 산골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산 아래 첫 마을이라 바에는 비에 젖은 순례자들로 만원이었다. 리에고 데 암브로스(Riego de Ambros)에도 벽이나 창가에 화분을 걸어놓은 집이 많았는데, 산골 벽지에 살아도 주민들 마음은 여유로워 보였다. 어느 집에는 티벳불교의 불경을 적은 룽다를 걸어 놓기도 했다. 리에고의 성당 벤치에 앉아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경사는 급하진 않았지만 내리막 길은 계속됐다. 멀리 마을이 보였다. 아름다운 산세와 계곡, 사람사는 마을을 한꺼번에 굽어보며 산길을 걷는 묘미를 어디다 견줄까 싶었다. 몰리나세카(Molinaseca)도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여기도 검정색 석판으로 지붕을 해서 마을이 좀 어둡게 보였다. 마루엘로(Maruelo) 강을 건너는 페레그리노(Peregrino)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섰다. 좁은 골목 양쪽으로 카페와 바, 그리고 주택이 늘어서 있었다. 산 니콜라스 성당도 들렀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몰리나세카를 벗어나 인도를 따라 걸었다. 아스팔트 도로를 걷는 대신 캄포(Campo)로 향하는 우회로로 들어섰다. 포도밭이 많이 나타났는데, 포도나무가 단풍이 드니 의외로 아름다웠다. 햇빛이 나기에 우의를 벗었더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물에 빠진 생쥐 모습으로 폰페라다(Ponferrada)에 도착했다. 비에르쏘(Bierzo) 지역의 경제 중심지라 규모도 꽤 컸다. 알베르게부터 찾았다. 도네이션제로 운영하고 있었다. 비가 그치길 기다려 시내구경에 나섰다. 폰페라다 외곽은 아파트와 콘도 등 현대식 건물이 많은 반면 도심은 중세풍의 건물이 많았다. 그룹으로 움직이는 관광객도 많이 보였다. 엔시나(Encina) 성모상이 모셔져 있는 바실리카부터 들렀다. 정문 입구에 템플 기사단의 십자가가 붙어 있었다. 템플 기사단의 요새였던 성채는 그 웅장한 모습에 시선이 끌렸으나 문을 닫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주마간산으로 도심을 둘러보고 수퍼마켓에서 부식을 구입했다.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이영호 선생이 스파게티에 돼지목살을 구웠다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나도 방금 산 와인에 계란을 삶아 테이블에 내놓았다. 꽤 푸짐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폰세바돈을 출발해 운무에 가린 산길을 걸어 올랐다.

 

 

 

십자가에 도착한 순례자들이 돌무덤에 올라 기도를 하거나 가져온 돌을 올려놓곤 했다.

 

 

십자가가 세워진 고개엔 조그만 성당이 하나 세워져 있었고 그 앞 공터엔 누군가 돌로 원을 그려 놓았다.

 

 

 

그리 요란스럽진 않았지만 산기슭에 단풍이 들어 가을 분위기를 풍겼다.

 

 

템플 기사단의 십자가가 여기저기 걸려 있던 만하린 알베르게. 산티아고까지 222km 남았다는 이정표도 있었다.

 

 

발걸음도 가벼운 하산길에 비가 잦아들면서 덩달아 풍경도 살아났다.

 

산 아래 첫 마을인 엘 아세보 마을

 

 

리에고 마을도 엘 아세보 마을과 비슷하게 2층에 테라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마루엘로 강을 끼고 자리잡은 몰리나세카 마을도 아름다웠다.

 

몰리나세카에서 캄포로 내려서다 만난 포도밭에 가을이 찾아왔다.

 

폰페라다에 있는 알베르게에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중세풍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폰페라다의 도심을 둘러보았다.

 

 

바실리카(Basilica de Santa Maria)는 폰페라다를 대표하는 성당이었다.

 

성채 입구에 위치한 산 안드레스(San Andres) 성당

 

 

13세기 템플 기사단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카스티오 데 로스 템를라리오스(Castillo de los Templarios)

 

저녁은 스파게티에 돼지 목살, 삶은 계란으로 푸짐하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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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5.12.16 2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걸으셨습니다
    20일이 넘었으니ㅡㅡ
    포도밭 가을이 예뻐요
    여긴 폭설입니다
    홧팅!

    • 보리올 2015.12.17 01: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티아고 순례길이 이제 막판으로 접어듭니다. 가을철 포도밭이 예쁘단 생각을 이번에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드넓은 들판이 노랗고 붉은 색으로 물드는데 웬만한 단풍 저리 가라더군요. 봄에는 밀밭도 괜찮다고 하고요.

    • 농돌이 2015.12.17 09: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럽쪽이 단풍나무는 못봤는데,,, 중간중간 포도밭, 플라타너스
      등이 단풍들으니까 그런대로 멋지던데요!

    • 보리올 2015.12.17 16: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캐나다 동부 지역은 가을 단풍이 대단합니다. 우리나라 산하의 단풍과는 느낌이 좀 다릅니다. 언제 캐나다 단풍보러 한번 오시죠.

    • 농돌이 2015.12.17 18: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싶습니다
      전 농사도 짓고, 직장도 다니고,,, 집안 대장손이라서
      내 인생에 내가 희미합니다
      ㅠㅠㅠ

    • 보리올 2015.12.18 02: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는 일도 많고 집안에서의 위치를 감안하면 자유롭게 사시기가 쉽진 않겠습니다. 그래도 꿈을 꾸시면 언젠가 이루어질 겁니다. 건승을 빌겠습니다.

  2. Justin 2016.02.25 1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름답다는 표현이 가장 많이 나온 날인것 같아요 ~ 아침에 날씨가 흐려서 애독자로서 걱정했는데 사진을 보니까 너무 이쁩니다!

 

오늘 새벽을 기해 섬머타임이 해제되어 새벽 3시가 2시로 바뀌었다. 아침이 한 시간 일찍 찾아온 것이다. 수프를 끓이고 거기에 과일과 요구르트를 더해 아침을 때웠다. 밤새 비가 많이 내린 것 같았다. 알베르게를 나설 때는 비가 그쳤지만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기세였다. 아스토르가를 빠져나오며 현대식으로 지은 산 페드로 성당을 지났다. 여기도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날씨도 스산하고 풍경도 단조로워 카메라를 꺼낼 일이 거의 없었다. 그 덕분에 걷는 속도는 제법 빨랐다. 마을 몇 개를 예상보다 빨리 통과한 것이다. 엘 간소((El Ganso)의 성당 입구에 젖지 않은 벤치가 있어 거기 앉아 과일로 간식을 했다. 어제 알베르게에 함께 묵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내 앞을 지나쳐 먼저 가버렸다.

 

길을 걷다가 이두열 선생을 다시 만나 함께 걸었다. 연배도 나보다 위였고 대기업과 신문사, 중소기업 등에서 근무한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나라 젊은이들이 요즘 이 순례길에 왜 그리 열광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화제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 새 라바날 델 카미노(Rabanal del Camino)에 도착했다. 이두열 선생은 다른 일행이 있어 여기서 쉬고 가겠다 해서 다시 혼자 걷게 되었다. 라바날은 인구 50명이 사는 조그만 마을이지만 알베르게는 네 개나 될 정도로 순례자들이 많이 묵고 가는 마을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높은 지점으로 오르기 전에 여기서 나름대로 각오를 다진다고나 할까.

 

라바날은 마라가테리아(Maragateria)에 속하는 고장이다. 마라가테리아란 마라가토라 불리는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말하는데, 레온 주의 남서쪽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다. 그들이 짓고 살던 특유의 돌집을 마라가토 스타일이라 하기에 관심을 가지고 봤지만 그리 대단하진 않았다. 그들의 가옥을 보면서 여긴 돌이 흔한 모양이로군, 돌로 튼튼하게도 집을 지었네 하는 생각만 잠시 스쳤다. 난 라바날에 머무르기보다는 가능하면 정상 가까이로 올라갔으면 했다. 라바날을 벗어나는 지점에 샘이 있어 거기서 홀로 점심을 먹었다. 어제 수퍼마켓에서 산 멕시칸 토르티야에 땅콩버터를 발라 먹었다. 산 속으로 캠핑을 갈 때 식량 무게를 줄이기 위해 자주 써먹던 방식인데 어제 수퍼마켓에서 멕시칸 토르티야를 처음 발견해 구입을 했었다. 거기에 사과와 삶은 계란을 추가하니 점심으로 충분했다.

 

라바날부터는 계속 오르막이 이어졌다. 생장 피드포르에서 출발하는 카미노 프란세스, 즉 프랑스 길엔 큰 산 세 개가 있다고 보면 되는데, 피레네 산맥은 이미 초반에 넘었고 이번이 두 번째 산을 오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산을 넘는 것에 걱정이 많지만 난 전혀 신경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라바날이 해발 1,150m고 폰세바돈(Foncebadon)1,400m, 철제 십자가가 있는 최고점은 1,500m로 그리 높지가 않다. 오르막 경사도 심하지 않은 편이다. 해발 고도는 좀 있지만 험산은 아니란 이야기다. 잔돌이 많은 노면 상태와 비 내리는 날씨, 쌀쌀한 기온이 복병이라면 복병일 것이다. 늘 비슷한 날씨겠지만 오늘도 운무가 자욱해 시야를 가렸고,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내 흥미를 끌지 못했다.

 

오늘의 목적지로 삼은 폰세바돈에 도착했다. 알베르게와 가게, 식당만 있을 뿐, 사람 사는 집은 폐허가 된 채로 흉물스럽게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다. 거기에 안개까지 자욱하니 스산한 느낌마저 들었다. 유령 마을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순례자들이 늘어나면서 마을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들었다. 새로 신축하고 있는 건물도 분명 알베르게일 것이다.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1987년에 쓴 <순례자>라는 작품 속에 이 마을이 언급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개와 싸웠다고 하는데 난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진 못했다. 다섯 개나 되는 알베르게 중에 하나를 골라 들어갔더니 이두열 선생과 이영호 선생이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제 아스토르가 알베르게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던 독일 젊은이 셋도 이 알베르게로 들어왔다.

 

저녁은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순례자 메뉴로 하기로 했다. 배에선 쪼로록 소리가나는데 저녁은 7시에나 준단다. 낮잠을 한숨 잤다. 그래도 5시가 되질 않았다. 구름이 많고 날씨가 쌀쌀했지만 밖으로 나가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차가운 공기 때문인지 밖으로 나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저녁으로 파에야가 나왔다. 지름이 1m나 되는 쟁반에 파에야를 요리해 모두 17명이 나눠 먹었다. 샐러드와 함께 먹으니 궁합이 아주 잘 맞았다. 와인을 곁들여 배불리 먹었다. 우리 테이블에선 한국인 셋과 독일 젊은이 셋이 함께 식사를 했다. 독일에서 5년을 살았던 기억 때문인지 독일에서 왔다니 더 정감이 갔다. 헨드릭스라는 청년과 슈테피, 그리고 다른 아가씨는 뭐라 이름을 알려줬는데 너무 길어서 기억할 수가 없었다.

 

 

 

첫 마을인 발데비에하스(Valdeviejas)에 도착하니 에세 오모(Ecce Homo) 성당이 길가에 자리잡고 있어

유리창을 통해 성당 안을 구경했다. 신앙은 건강의 샘’이란 한글 문구도 보였다.

 

 

순례길 옆으로 숲이 나타났다. 인공 조림한 숲도 있었고 자연적으로 조성된 숲도 있었다.

그나마 숲에서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길 위에 선 순례자들에겐 한걸음 한걸음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산타 카탈리나(Santa Catalina)엔 돌로 지은 성당과 집들이 있었다. 파란색 칠을 한 대문이나 창문도 눈에 띄었다.

 

 

허물어진 돌집이 유난히 많았던 엘 간소. 산티아고 성당도 문이 닫혀 있었다.

 

라바날 초입에 자리잡은 벤디토 크리스토(Bendito Cristo) 성당

 

 

이 지역 특유의 마라가토 스타일을 보여주는 라바날의 가옥들

 

 

라바날의 아순시온(Asuncion) 성당은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을 지니고 있었다.

 

라바날에 있는 또 하나의 성당을 지났는데 이름도 모른 채 그냥 지나쳤다.

 

운무가 자욱한 길을 걸어 폰세바돈으로 오르고 있다.

 

 

 

무너져내린 폐가가 많아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폰세바돈 마을

 

 

폰세바돈의 가게에 들렀더니 가격표에 한글로 상품명을 적어 놓은 것이 보였다. 한국인이 많다는 반증이리라.

 

 

 

 

알베르게에서 순례자 메뉴로 내놓은 파에야가 커다란 쟁반에 담겨 나왔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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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2.17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먼 기억이지만 정말 저도 독일 사람들을 만나면 방갑더라구요. 아버지께서도 독일어를 아직 많이 기억하고 계세요?

    • 보리올 2016.02.17 16: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독일에서 살았던 기억 때문에 독일 사람들이 더 반가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냐. 그들도 내가 독일에서 산 적이 있다면 반가워 하더구나. 그래서 대화를 이어가기가 쉬워지지. 내 독일어는 서바이벌 수준이라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

 

아침에 야곱에게 한국 라면을 끓여 줄까 물었더니 사양을 한다. 라면을 끓여 혼자 먹어야 했다. 야곱이 먼저 출발하고 나는 나중에 알베르게를 나섰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한 때문인지 날은 밝았지만 해는 보이지 않았다. 일출도 없었다. 아침부터 빗방울이 떨어져 배낭 커버를 씌웠더니 바로 그친다. 가끔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동차 도로를 따라 산 마틴 델 카미노(San Martin del Camino)를 지났다. 도로 폭이 꽤 넓었고 우주선 같이 생긴 저수조가 세워져 있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줄곧 도로를 따라 걷다가 가끔 터널같이 생긴 숲길로 들어서기도 했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Hospital de Orbigo)에 닿기 전에도 무슨 탑처럼 생긴 건물이 세워져 있는데 이것의 용도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엔 오르비고 강을 건너는 아주 긴 다리가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길다는 푸엔테 데 오르비고(Puente de Orbigo)13세기에 지어졌는데, 이 다리에 돈 수에로(Don Suero)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사랑을 얻기 위해 수에로는 이 다리에서 유럽의 내노라하는 기사들과 결투를 벌여 300개의 창을 부러뜨리겠다고 맹세를 했다. 수에로는 1434년 이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룬 후 순례를 떠나 자기 목걸이를 산티아고 상에 걸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Don Quixote)에도 영감을 주었다. 요즘도 매년 6월이면 다리 옆에서 창으로 하는 시합이 열린다. 마을은 다리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다리 건너편이 중심인 것 같았다. 산 후안 성당은 문을 열지 않아 밖에서만 올려다 보았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를 벗어나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오른쪽 길로 들어섰다. 이 길은 비야레스 데 오르비고(Villares de Orbigo)로 향하는데, 1km를 더 돌아가지만 풍광이 좋다고 해서 택한 것이다. 밭에서 일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는 농부의 자전거를 따라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가운데 있는 성당에 들렀다가 벤치에 앉아 빵과 과일로 점심을 먹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오더니 스페인어로 뭐라 묻는다. 내 추측으론 배낭 무게가 얼마나 되냐고 묻는 것 같은데 나도 정확히 몰라 그냥 웃어주고 말았다. 메세타가 끝을 보이는지 마을을 벗어나 구릉으로 올랐다. 산티바녜쓰(Santibanez) 마을은 농사 준비로 바빠 보였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 새로 씨앗을 뿌리기 위해 밭을 갈아엎기도 하고 어떤 트랙터는 씨앗을 가득 싣고 밭으로 가고 있었다. 늦가을에 심으면 아마 보리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산티바녜쓰에서 아스토르가(Astorga)까진 11km 거린데 의외로 오래 결렸다. 오늘 걷는 거리는 28km로 다른 날보단 짧은데 피로도는 더 했다. 오른쪽 발가락의 티눈은 여전히 신경이 쓰였다. 오후가 되면 통증이 심해져 다리를 딛기도 어려울 때가 있었다. 꾸준히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도네이션제 매점도 나타났지만 그냥 통과했다. 돌로 만든 성 토르비오 십자가(Cruceiro de Santo Toribio)가 세워진 고개에 섰다. 산 후스토(San Justo)와 아스토르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뒤에 버티고 선 칸타브리카(Cantabrica) 산맥도 보였다. 눈에 들어오면 다 온 것이라 생각했는데 산 후스토에서 아스토르가까지 3km 거리가 꽤 멀었다. 아스토르가는 세비야(Sevilla)에서 올라오는 순례길, 즉 은의 길(via de la plata)을 만나는 곳이었다. 여기서 메세타 지역과 작별을 했다.

 

아스토르가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에 들었다. 한국인도 몇 명 보였다. 침대 정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알베르게 바로 앞에서 무슨 유적 발굴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스페인어 설명만 있어 뭔지는 모르겠다. 시청 앞 에스파냐 광장을 지나 대성당으로 갔다. 대성당은 규모가 꽤 컸지만 아쉽게도 문이 닫혀 있었다. 그 옆에 있는 에피스코팔 궁전(Palacio Episcopal)도 문이 닫혔다. 이 궁전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가 설계한 것으로 가우디가 카탈로니아 밖에 지은 건축물 세 개 중의 하나라 했다. 1889년에 착공해 1913년에 완공했다. 원래는 주교의 거처로 지어졌으나 한때는 팔랑헤라는 프랑코 시대의 정당 사무실로 쓰였고 지금은 순례 박물관(Museo de los Caminos)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대성당이나 궁전 모두 겉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수퍼마켓에 들러 시장을 봤다. 엄청 다양한 물품들이 있어 무엇을 해먹을지 머릿속이 분주했다. 빵과 과일에 캔으로 된 생선, 그리고 맥주와 와인을 샀다. 캔맥주는 하나에 35센트, 와인은 한 병에 2유로도 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사재기를 하고 싶었지만 배낭에 지고 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다음에 도착하는 마을에도 대형 수퍼마켓이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모처럼 냄비에 밥을 해서 배불리 먹었다. 서울에서 온 이두열 선생, 이영호 선생을 식당에서 만나 와인을 같이 나누어 마셨다. 며칠 전에 길에서 만났던 권영익 선생도 합류를 했다. 이 양반은 이번이 여섯 번째 산티아고 순례라 했다. 순례길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전역을 하고 순례에 나선 젊은이 둘과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입대일자와 제대일자가 같은 동기생을 여기서 만났다고 신기해 했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 탓에 일출도 대충 넘어가고 말았다.

 

이른 시각에 산 마틴 델 카미노를 지나쳤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로 향하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걷다가 가끔 숲길로 들어서기도 했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는 중세 시대에 놓여진 멋진 다리 양쪽에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다.

 

 

 

 

비야레스 데 오르비고에 도착해 마을에 있는 성당에도 들렀다.

 

 

들판에 씨앗을 뿌리기 위해 분주했던 산티바녜쓰 마을

 

허물어진 흙담 옆에 도네이션제 매점을 차려 놓았지만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십자가가 세워진 고개 위에선 산 후스토와 아스트로가가 내려다 보였다.

 

산 후스토는 별다른 특징은 없었으나 초입에 순례자 상이 세워져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대성당 첨탑을 따라 아스토르가로 들어섰다. 여기도 순례자 상이 있었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아스토르가 시청사는 세 개의 타워를 가지고 있었다.

 

 

가우디가 설계한 에피스코팔 궁전. 가우디는 이 건물 신축에 이견이 많았던것으로 보인다.

 

 

 

 

아스토르가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걸작품이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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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2.15 1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 역사, 미술시간에 배웠던 고딕, 바로크 양식이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그때는 시험 잘 보기 위해 열심히 외웠는데 정말 그때 그 순간인것 같습니다.

    • 보리올 2016.02.16 0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찌 배웠다고 그 모든 것을 다 알겠냐. 그런 것을 배웠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만 해도 대단하지. 살아가면서 그게 궁금한 경우가 생겨 다시 책을 보면 그땐 확실히 기억을 하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