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Leon)으로 입성하는 날이다. 알베르게에서 차려준 빵과 커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성의 없이 차려진 아침상이라 그런지 대부분 커피 외에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나만 주어진 양을 충실히 먹어 치웠다. 어젯밤 코를 심하게 골았던 아가씨가 자기 때문에 잠을 설쳤으면 미안하다고 일행들에게 사과를 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버릇 때문에 잠을 자면서도 얼마나 신경이 쓰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카우에하를 빠져 나오는데 여명이 시작되었고 레온 외곽의 공장지대를 지날 즈음 해가 떠올랐다. 일출은 그리 거창하진 않았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레온으로 들어섰다. 상업 지역을 지나 한참을 걸어야 도심에 닿을 수 있었다. 레온도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대도시답게 중세풍의 건물들이 아름다웠고 대성당을 비롯해 볼거리도 많았다.

 

실제 레온은 1세기 로마 시대에 서쪽 지역의 금광을 보호하기 위해 로마인에 의해 세워졌다. 10세기에 오르도뇨 2세가 왕국의 수도를 오비에도(Oviedo)에서 레온으로 옮기면서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레온 왕국의 한 영지였던 카스티야가 11세기 독자적인 왕국으로 발전하고 1230년에는 카스티야 왕이었던 페르난도(Fernando) 3세가 레온의 왕위도 이어받으면서 두 왕국은 공식적으로 통합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카스티야 왕국이 레온 왕국을 압도하는 상황이 되자, 레온 사람들은 레온 신 카스티야(Leon sin Castilla) 또는 레온 솔로(Leon Solo), 카스티야 없는 레온 또는 레온 혼자와 같은 정치적 구호를 외치며 분리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바스크나 갈리시아 지방보다 독립 열기는 훨씬 약하지만 말이다.

 

도심으로 들어가 카사 데 보티네스(Casa de Botines)부터 들렀다. 이 건물은 가우디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은행으로 쓰고 있어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거기서 멀지 않은 대성당으로 향했다. 입장료로 5유로를 받는데 여긴 순례자 할인제가 없었다. 1205년 착공해 400년을 거쳐 완공한 고딕 양식의 대성당은 듣던대로 무척이나 화려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한 창문은 그 숫자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하나같이 현란하기 짝이 없었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고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성가대석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들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레온 왕국의 기틀을 마련한 오르도뇨 2세의 무덤도 보았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렇게 화려한 성당을 보고 나면 솔직히 마음이 그리 편하진 않다. 종교적 위엄을 보이기 위해 사람들 고혈을 짜낸 건물이 후대에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남는 것이 좀 아이러니했다.

 

대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바실리카 데 산 이시도로(Basilica de San Isidoro) 성당도 둘러보았다. 첫눈에도 그 크기가 대성당에 못지 않았다. 이 건물에는 성당 외에도 박물관과 로얄 판테온, 즉 판테온 데 로스 레이스(Panteon de las Reyes)가 있었다. 11세기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외양은 우아했으나 내부는 의외로 소박했다. 굳게 닫혀있는 용서의 문(Puerta del Perdon)도 보았다. 중세 시대에 순례자가 병이 나서 더 이상 순례를 할 수 없을 때 이 문을 통과하면 순례를 마친 것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 옆에 있는 판테온 데 로스 레이스는 유료라 들어가지 않았다.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프레스코 벽화와 페르난도와 그 후대 왕족이 묻힌 무덤이 있는 곳이라는데도 말이다.

 

카페와 바가 많은 레온에서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어느 식당에서 오징어 튀김을 시켰다. 오래 전에 스페인 여행할 때는 거의 매일 먹었던 음식이 오징어 튀김이었는데 이번엔 처음이었다. 먼저 감자 토르티야가 나오고 오징어 튀김은 그 뒤를 따랐다. 둘 다 아주 맛있게 먹었다. 시끄럽고 복잡한 도심을 지나 오스피탈 데 산 마르코스(Hospital de San Marcos)에 도착했다. 길고 거대한 건축물이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고 있었다. 1168년 순례자 병원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한때는 정치범 수용소로도 쓰였다가 지금은 한쪽은 호텔이, 그 반대편엔 성당과 레온 박물관이 들어서 있었다. 성당을 먼저 구경하고 박물관으로 갔더니 무료 입장이란다. 전시물로는 주교들 초상화와 조각이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길게 뻗은 회랑과 천장 장식에 더 많은 눈길이 갔다. 박물관을 나와 산 마르코스 다리를 건너 도시 밖으로 빠져 나왔다.

 

레온 외곽 지대는 의외로 복잡했고 도로엔 차들이 씽씽 달려 정신이 없었다. 시골로 들어서니 좀 살만했다. 16세기에 성모가 발현했다는 비르헨 델 카미노(Virgen del Camino)까진 쉽게 걸었다. 거기서 레온 대성당 앞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던 야곱을 다시 만나 비야단고스 델 파라모(Villadangos del Paramo)까지 함께 걸었다. 전에도 몇 번 만나 눈인사는 나눴지만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 인상이 선한 것이 꼭 예수님을 닮았다. 이 친구는 독일 바바리아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단다. 학교에서 은세공을 배웠는데 아직 아버지를 도와 일하고 있다고 했다. 비야단고스에 도착해 카페에 들러 맥주를 한잔 샀다. 원래 이 친구는 알베르게에 묵기보다는 야영이나 헛간 등에서 묵는데 오늘은 나를 따라 알베르게로 들어와 둘이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알베르게 비용을 대주려 했더니 자기도 돈 있다고 먼저 계산을 한다. 각자 저녁을 먹고는 와인을 한병 사서 야곱과 함께 마셨다.

 

 

알베르게를 나와 레온을 향해 걷는 도중에 해가 떠올랐다.

 

나지막한 고개를 오르자 멀리 레온 시가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선 큰 도시에 속하는 레온으로 들어서면서 시야에 들어온 도심 풍경

 

스페인이 낳은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가 설계한 카사 데 보티네스가 레온에 있었다.

동화속 궁전같은 건물이었다.

 

 

 

 

 

 

 

고딕 양식을 지닌 레온 대성당은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함이 돋보이는 아주 큰 성당이었다.

 

 

 

바실리카 데 산 이시도라는 성당과 박물관, 로얄 판테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용서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르네상스 양식의 커다란 건물 안에는 산 마르코스 성당과 레온 박물관이 붙어 있었고, 반대편에는 호텔이 들어서 있었다.

 

 

레온의 어느 식당에서 점심으로 감자 토르티야와 오징어 튀김인 칼라마르(Calamar)를 시켰다.

 

레온을 벗어나며 언덕배기에 땅을 파서 만든 와인 저장고를 여러 개 발견했다.

 

여러 번 길에서 만난 적이 있던 독일 청년 야곱을 레온에서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눴다.

독일 바바리아에서 80일을 걸어온 25살 청년이었다.

 

산 미구엘 델 카미노(San Miguel del Camino)의 어느 집 앞에 순례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과일과 비스켓이 놓여 있었다.

 

비야단고스에 도착했더니 산티아고까지 298km 남았다는 표식이 우릴 반긴다. 이런 속도면 열흘이 채 남지 않았다.

 

비야단고스에서 맞이한 일몰. 서쪽 하늘이 붉게 타올라 마치 거대한 화재가 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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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2.09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레온이라는 도시는 그 자체가 유적지 같습니다. 볼거리가 풍성하네요. 지금까지 봐왔던 성당들과 비교해봐도 양식이 굉장히 화려합니다. 하느님께서 국민의 혈세로 저렇게 으리으리하게 지은 성당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 보리올 2016.02.09 15: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레온이야 한때 레온 왕국의 수도였으니 그럴만도 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화려한 성당은 경외스럽긴 하지만 동시에 민초들의 애환도 느껴지지. 하지만 거기에 너무 민감해 하진 말거라. 그런 과정을 통해 인류가 발전을 해왔으니 말이야.

 

오전 630분에 아침 식사를 한다고 해서 부지런히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한국인 모녀만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 빵과 비스켓, 주스, 커피 등이 놓여 있었다. 이것으로 배를 채우긴 힘들지만 여기선 대부분 이렇게 아침을 때운다. 출발 준비를 끝내고 715분 알베르게를 나섰다. 밖은 깜깜했다. 어느 정도 날이 밝기를 기다릴까 했지만 한국 모녀가 먼저 출발하기에 나도 덩달아 따라 나섰다. 헤드랜턴을 밝히고 30분쯤 함께 걷다가 작별 인사를 하곤 앞으로 나섰다. 여명도, 일출도 그저 그랬다. 해가 솟은 직후에 엘 부르고 라네노(El Burgo Ranero)에 도착했다. 부드러운 햇살이 산 페드로 성당 종탑을 비춘다. 종탑엔 새들이 지은 집이 몇 채 남아 있었다. 성당 주변으로 떼지어 날아다니는 비둘기들이 보였다. 설마 비둘기들이 저 집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라네로에서 레리에고스(Reliegos)로 향하는 순례길은 아스팔트 도로와 나란히 놓여 있어 화살표도 필요 없었다. 순례길 왼쪽으로 가로수를 심어 놓았지만 너무 앙상해 제 역할을 하기엔 아직 어려 보였다. 사방으로 누런 벌판이 펼쳐진 풍경도 단조로워 심심하던 차에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친구가 있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폴란드 카토비체(Katowice)에서 온 잭이란 친구였다. 포르투갈의 파티마(Fatima)를 출발해 산티아고를 지나쳤고 계속해 루르드와 예루살렘을 향해 걷고 있다고 했다. 파티마에서 여기까진 한 달이 걸렸단다. 예루살렘에 닿으면 총 거리가 9,000km는 될 것이라며 수첩을 꺼내 지나온 도시에서 받은 스탬프를 보여줬다. 그런데 헤어지기 전에 이 친구가 돈을 달라고 손을 벌렸다. 순간적으로 멍했지만 주머니에 있던 1유로 동전 세 개를 건네주었다.

 

11 30분 레리에고스에 도착했다. 오전에 벌써 20km를 걸은 것이다. 좀 이르긴했지만 바에서 토르티야 두 개에 와인 한 잔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냉장 보관된 토르티야를 그냥 주기에 데워달라고 했더니 몇 분간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듯 했는데 그래도 차갑긴 마찬가지였다. 다시 부탁하기도 그래서 그냥 먹었다. 다음 마을인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Mansilla de las Mulas)는 중세시대의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였다. 마을 초입에 있는 비르헨 데 가르시아(Virgen de Gracia) 성당은 붉은색 바탕에 하얀색을 칠해 다른 성당과는 대조적이었고, 마을로 드는 성문은 허물어져 성벽만 조금 남아 있었다. 마을 가운데 위치한 산타 마리아 성당은 크진 않지만 깔끔했다. 에슬라 강(Rio Esla)을 건너며 뒤를 돌아보니 성곽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여긴 그래도 성곽이 오랜 세월 잘 버티고 있었다.

 

만시야에서 6km 거리에 있는 푸엔테 비야렌테(Puente Villarente)까진 꽤 멀게 느껴졌다. 또 다시 오후의 권태와 피로가 몰려오는구나 싶었다. 푸엔테 비야렌테로 알고 도착한 마을은 비야모로스(Villamoros)였고, 푸엔테 비야렌테는 거기서 2km를 더 걸어야 했다. 푸엔테란 이름이 들어간 마을답게 꽤나 긴 아치형 다리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알베르게가 눈에 띄지 않았다. 지금까지 지나온 어떤 마을에서도 내가 가고 싶었던 알베르게를 놓친 적이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마을을 벗어날 지점에 이르러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미 30km를 넘게 걸었는데 다시 알베르게를 찾으러 되돌아갈까, 아니면 레온까지 내처 달릴까를 저울질하다가 좀더 걷기로 했다. 5km를 걸어 아르카우에하(Arcahueja)에 도착했다. 하지만 거기서 레온 9km라는 표지판을 발견하곤 힘이 빠져 발걸음을 멈췄다.

 

조그만 방 두 개를 가진 알베르게에 들었다. 식당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석식과 조식을 포함해 18유로를 받는다. 석식으로 제공된 순례자 메뉴는 그리 훌륭하진 않았지만 3코스의 격식은 갖췄다. 네덜란드에서 온 안나와 둘이 식사를 했다. 행색이나 체형을 보고 처음엔 남자인줄 알았다. 2012년에 이어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며 이번엔 아주 여유롭게 걷고 있다고 했다. 어둠이 내려앉을 즈음에 여자 네 명이 추가로 들어왔다. 토론토에서 왔다는 크리스티나와 미국에서 온 여성 셋이었는데, 푸엔테 비야렌테에 있는 알베르게에 들었다가 너무 지저분하고 빈대도 있어 다시 짐을 싸서 여기까지 왔단다. 그 알베르게를 찾지 못한 것이 하늘의 뜻인 것 같았다. 여자 다섯 명을 호위해 자는 공간에서 의외의 난적을 만났다. 히스패닉 계통으로 보이는 미국 여자 한 명이 어찌나 코를 크게 골던지 웬만한 남자는 저리 가라였다. 진짜 지붕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어둠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면 길을 걷는 도중에 일출을 맞는다. 오늘은 일출이 좀 어설펐다.

 

엘 부르고 라네로 마을에서 만난 산 페드로 성당.

 

 

메세타 지역 특유의 풍경이 펼쳐졌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은 좀 휑해 보였다.

 

 

폴란드에서 왔다는 잭이란 친구는 파티마에서 예루살렘까지 장거리 순례를 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은 레리에고스 마을. 차가운 토르티야를 그냥 먹었던 기억만 남은 곳이다.

 

 

 

 

인구 2,000명도 되지 않는 시골 마을 만시야는 고풍스러움을 많이 가지고 있어 의외로 정감이 갔다.

 

레온과 카스티야 두 지방이 연합해 자치주를 이루고 있으나 그 사이에도 알력이 많은 모양이었다.

카스티야를 빼고 레온만으로 자치주를 만들자는 정치적 격문이 만시야 어느 벽면에 적혀 있었다.

 

 

 

다른 성당과는 모양새가 달라 기억에 남은 비르헨 데 가르시아 성당

 

 

 

만시야의 산타 마리아 성당은 특이점은 없었으나 깔끔하고 소박했다.

 

중세 성곽의 도시답게 만시야엔 성곽이 많이 남아 있었다.

 

만시야에서 푸엔테 비야렌테로 향하는 오솔길에서 발견한 가을 정취

 

비야모로스는 별다른 느낌없이 그냥 지나쳤다. 도로를 따르던 길이 마을로 들어와 한 바퀴 돌고 나간다.

 

푸엔테 비야렌테 초입에 20개의 아치를 가진 꽤 긴 다리가 놓여 있는데 순례자는 그 옆에 놓인 다리를 건너야 했다.

 

 

 

 

아르카우에하 마을의 유일한 알베르게에 들어 순례자 메뉴로 저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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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2.04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길에서 마주친 폴란드 사람과 막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중에 돈을 달라고해서 놀라셨겠어요. 무전여행인걸까요? 아니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물어보는걸까요?

    • 보리올 2016.02.04 15: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내가 말거는 것을 반긴 상황을 봐선 무전여행으로 순례를 하는 것 같았다. 예상밖으로 돈을 달라 손을 벌리니 그 때는 좀 당황스럽긴 하더구나.

 

배낭을 꾸려 아랫층 식당으로 내려왔다. 테이블 가운데 비스켓이 담겨 있는 바구니가 있어 몇 개 집어 먹었다. 처음엔 순례자들을 위해 누가 가져다 놓은 것으로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바구니 안에 통이 하나 놓여 있었다. 이것도 도네이션을 요구하고 있었다. 비스켓 값으로 2유로를 통에 넣었다. 알베르게를 나서니 구름이 역동적으로 움직여 일출이 장관일 것 같았다. 일출까지는 시간이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걸어가는 도중에 동이 트는 것을 보기로 했다. 마을을 벗어나 30분쯤 걸었을까. 붉게 물든 구름이 동녘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슴 설레는 장면이 드디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 자리에 서서 붉은 하늘에 푹 빠져 들었다.

 

예전에 템플 기사단의 영지였다는 테라디요스(Terradillos)에 도착했다. 벽돌로 지은 성당이 보였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돌로 지은 성당이었는데 여긴 벽돌로 지은 것이었다. 석조 건물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이렇게 건축 양식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돌을 구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문이 잠겨 있어 성당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다. 모라티노스(Moratinos)엔 조그만 언덕 아래 굴을 파서 그 안에 와인을 저장하는 셀러를 만들어 놓았다. 저장고 앞으로 갔더니 안은 들여다 볼 수 없었지만 와인 냄새는 풀풀 풍겨 나왔다. 화살 표식이 분명치 않아 마을에서 길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밭 사이로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길을 따라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San Nicolas del Real Camino)에 닿았다. 여기도 땅에 굴을 파서 와인 저장고를 만들었다.

 

산 니콜라스를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팔렌시아 주에서 레온(Leon) 주로 들어섰다. 순례길엔 이를 알리는 표지판이 없어 도로로 나가 차량용 표지판을 찍어야 했다. 멀리 사아군(Sahagun)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까닭인지 길을 우회해 작은 성당으로 향하게 했다. 비르헨 델 푸엔테(Virgen del Puente) 성당이라고 한다. 사아군도 큰 도시답게 성당이 무척 많았다. 현재는 알베르게로 사용하고 있는 트리니다드(Trinidad) 성당과 그 옆에 있는 산 후안(San Juan) 성당을 둘러보고 산 베니토(San Benito) 수도원의 잔재인 아치형 문도 보았다. 지금은 그 문 아래로 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가 놓였다. 베니토 수도원은 알폰소 6세를 지원하는 정치적 도박에 성공해 한때는 스페인에서 가장 큰 수도원으로 군림했었다. 오랫동안 엄청난 영화를 누리다가 18세기 대형 화재로 한 순간에 몰락하고 말았다.

 

산 베니토 수도원 뒤에 있는 산 티르소(San Tirso) 성당을 둘러보곤 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산 로렌쏘(San Lorenzo) 성당도 찾아갔다. 사아군은 무데하르 건축 양식의 태동지라 불리는데, 무데하르(Mudejar) 양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두 성당이었기 때문이다. 성당을 둘러보면서 무데하르 건축 양식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무데하르란 12~17세기에 유행한 것으로 유럽의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에 스페인을 점령했던 아랍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스페인만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말한다. 이 양식은 주로 벽돌을 사용하고 특히 종루에 벽돌과 타일을 세련되게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사아군에서 베르시아노스 델 카미노(Bercianos del Camino)까지 10km 구간이 무척 멀게 느껴졌다. 솔직히 오후가 되면 늘 그랬다. 왼쪽 발목은 거의 회복이 되었는데 이젠 오른쪽 발가락에 생긴 티눈이 문제다. 요즘 들어 통증이 상당했는데 이것도 오후가 되면 더 심해졌다. 칼싸다 델 코토(Calzada del Coto)에서 길이 갈라진다. 왼쪽 오리지널 루트를 택했다. 거기서 베르시아노스까지는 5km. 도네이션제로 운영하는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어떻게 운영하는지 한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 시설은 형편없는데도 침대는 거의 다 찼다. 사람은 도착하지 않았는데 누가 먼저 와 침대를 미리 잡아놓은 것 같았다. 나중엔 침대가 모자라 방바닥에 매트리스만 깔고 자기도 했다. 난 운좋게 침대 하나를 잡아 숙박비와 식사비로 10유로를 기부함에 넣었다.

 

밖으로 나가 석양을 촬영하고 식사 시간에 맞춰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알베르게에 투숙한 모든 사람이 식당에 모여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자원봉사자 두 명이 식사를 준비했는데, 저녁 메뉴는 렌틸콩을 넣은 파스타였다. 빵과 와인도 나왔다. 원래는 34명분을 준비했는데 사람이 늘어 45명이 먹어야 한다고 했다. 파스타도 양이 무척 적었고 빵과 와인도 마찬가지였다. 음식을 먹기 전에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하고 감사의 노래를 부른 다음에 식사를 하는 것은 꽤 인상적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쳤다. 음식은 적었지만 다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도네이션제 숙소는 확실히 젊고 가난한 순례자들이 많아 보였다. 도네이션을 하지 않는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조용한 분위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도네이션제 숙소는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칼싸디야를 벗어나 도로 옆으로 난 길을 걷다가 일출을 맞게 되었다.

 

정서 방향으로 향하는 순례길 위에 키가 큰 그림자 하나가 나를 반겼다.

 

테라디요스 마을을 벗어나 멀리서 뒤를 돌아보며 사진 한장 찍었다.

 

모라티노스에서 산 니콜라스 레알 카미노로 이어지는 순례길을 걷고 있다.

 

땅 속에 굴을 파고 그 안에 와인을 저장하는 와인 셀러가 자주 보였다.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 마을. 무데하르 양식을 사용한 산 니콜라스 성당을 지나쳤다.

 

카스티야 레온 자치주의 팔렌시아 주에서 레온 주로 들어섰다.

 

사아군으로 들어가면서 길을 우회해 방문한 비르헨 델 푸엔테 성당

 

알베르게로 쓰이는 사아군의 트리니다드(Trinidad) 성당 앞에 세워진 순례자 상

 

트리니다드 성당 옆에 있는 산 후안 성당은 문이 닫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베니토 수도원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정문으로 쓰였던 아치형 문만 남아 옛 영화를 대변하고 있었다.

 

베니토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 산 파쿤도(San Facundo) 수도원을 지었으나 지금은 시계탑만 남았다.

 

 

벽돌로 지은 산 티르소 성당. 사아군에서 무데하르 양식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건축물이다.

 

 

산 로렌쏘 성당 역시 이슬람 영향을 받아 벽돌로 지었다.

 

1085년 알폰소 6세에 의해 건립된 아치형 칸토 다리

 

칼싸다 델 코토 마을의 모습. 여길 지나면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난 오리지널 루트를 택했다.

 

아스팔드 도로 옆으로 나란히 놓인 순례길을 따라 가로수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순례길에서 멀지 않은 철로 위를 스페인 국영 철도(renfe)가 지나가고 있다.

 

베르시아노스 마을에 도착했다. 햇볕이 강한 때문인지 마을 노인들이 모두 해를 등지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고풍스런 모습의 베르시아노스 알베르게. 도네이션제로 운영하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 위로 해가 떨어졌다. 일출 못지 않게 일몰도 환상적이었다.

 

 

모든 투숙객이 알베르게 식당에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 두 명의 자원봉사자가 재미있게 진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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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2.02 1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땅 속에 굴을 파고 와인 셀러를 만들어놓으면 두더지가 가장 신날거같은데요?

 

알베르게에서 2.50유로를 주고 아침을 먹었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테이블에 차려놓은 음식이 형편 없었다. 가게에서 파는 조그만 빵 두 개에 주스팩 하나, 그리고 식은 커피 한잔이 전부였는데 성의가 없는 것은 그렇다 쳐도 이것을 먹자마자 바로 배고프단 생각이 들었다. 미국 자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어둠이 깔린 순례길로 먼저 나섰다. 도랑을 사이에 두고 도로와 평행하게 순례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쭉 뻗은 길엔 커브도 거의 없었다. 30여 분을 걸으니 사위가 밝아왔다. 하늘을 가린 우중충한 구름 사이로 해가 떠올라 시시한 일출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바람은 의외로 강했다.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사정없이 등을 떠밀어 저절로 속도가 붙는 것 같았다.

 

사람 그림자 하나 볼 수 없었던 포브라시온(Poblacion)을 지나 비야르멘테로(Villarmentero)도 지났다. 마땅히 구경할 것이 없었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오는데도 마을엔 사람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내가 부지런한 것인지, 여기 사람들이 게으른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비얄카싸르(Villalcazar)에는 블랑카 성모의 기적으로 유명한 성당이 있었다. 장님 순례자의 눈을 뜨게 하고 이탈리아 순례자를 바다 폭풍에서 구했다고 한다. 입장료를 내고 산타 마리아 데 블랑카(Santa Maria de Blanca) 성당으로 들어갔다. 제단 장식 한 가운데 블랑카 성모가 모셔져 있었고 그 옆 예배당에는 산티아고, 즉 성 야고보의 일생을 그려놓은 제단 장식도 있었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Carrion de los Condes)는 예상보다 큰 도시였다. 중세부터 번성했던 도시로 팔렌시아(Palencia)에선 꽤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한다. 또한 카미노 프란세스, 즉 프랑스 길의 중간에 위치한 까닭에 산티아고 순례길의 심장이라 불리기도 한다. 마을 초입에 자리잡은 산타 클라라(Santa Clara) 수도원은 알베르게로 운영되고 있었다. 한 켠에 성당이 있어 들어가 보았더니 수녀님 한 분이 기도를 하고 있어 바로 나왔다. 도심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도 들어가 보았다. 카리온에 있는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에서 발견한 문어 요리, 즉 풀포(Pulpo)와 와인 한 잔을 시켰다. 문어 요리에서 회색 머리카락이 두 개나 나와 주인을 불렀더니 그건 머리카락이 아니라 문어를 솔로 수선하는 과정에 흔히 발생하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여기 사람들은 음식에서 그런 것이 나와도 개의치 않는지 좀 궁금해졌다.

 

카리온을 벗어나 일차선 아스팔트 도로 위로 올라섰다. 갓길도 없는 아스팔트를 4km 넘게 걸어야 했다. 지나는 차량이 많진 않았으나 차가 오면 한 옆으로 내려서 길을 비켜줘야 했다. 오전에 걸은 거리가 20km고 오후에 16km를 더 걷는데 오늘따라 오후 시간이 무척 지루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 외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별다른 변화도 없는 심심한 풍경에 카메라를 꺼낼 일도 없었다. 산행을 하면서 종종 써먹었던 발걸음 세기를 여기서도 해보기로 했다. 1km 간격으로 있는 표지판 하나를 지나는데 몇 걸음이 나오는지를 세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1km1,230 걸음이 나왔다. 덕분에 지루한 구간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지나쳤다.

 

거센 바람이 구름까지 몰고 가 오후엔 푸른 하늘이 많이 보였다. 그늘조차 없는 길을 터덜터덜 걷는데 자전거 세 대가 추월해 가더니 바로 뒤이어 모터바이크 세 대가 나를 앞질러간다. 여기 사람들은 모터바이크로도 순례를 하나 싶었다. 평편한 길이 갑자기 푹 꺼지는 내리막에 칼싸디야 데 라 쿠에싸(Calzadilla de la Cueza)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 전에는 마을의 존재를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마을 초입에 알베르게가 있었다. 사립 알베르게에서 어서 오라 인사를 건넸지만 그 옆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로 들었다. 부엌이 없는 것을 빼곤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저녁으로 순례자 메뉴를 시켰더니 오후 7시에나 가능하다고 해서 바에 준비된 토르티야 등으로 대충 때웠다. 시골 식당이라 그런지 파리가 엄청 많았다. 음식에 앉으려는 파리에게 연신 손부채를 날려야 했는데, 손님 어느 누구도 파리에 개의치 않는 게 너무 신기했다.

 

 

강풍을 타고 구름이 요동치는 가운데 서서히 날이 밝아왔다.

 

P-980 도로 옆으로 순례길을 따로 만들어 놓았다. 쭉 뻗은 길에는 햇볕을 피할 그늘도 없었다.

 

 

순례자 벽화를 그려놓은 레벤가 데 캄포스(Revenga de Campos) 마을를 지났다.

 

어느 과수원의 죽은 나무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리는 조가비 표식을 달아 놓았다.

 

비야르멘테로에 있는 산 마틴 성당의 붉은 지붕이 푸른 하늘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비얄카싸르의 산타 마리아 데 블랑카 성당은 여러 가지 기적을 일으킨 블랑카 성모를 모시고 있었다.

 

산타 마리아 데 블랑카 성당 앞 광장에는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순례자 상이 세워져 있었다.

 

 

 

이런 풍경을 지닌 메세타 특유의 드넓은 평원을 하루 종일 걸어야 했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로 들어섰다.

모자이크를 설치한 건물 벽면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표식을 집어 넣은 문패가 눈에 띄었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초입에서 만난 산타 클라라 수도원은 현재 알베르게로 쓰이고 있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도심에 위치한 산타 마리아 성당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 있는 식당에서 문어 요리를 맛보았다.

 

 

중세 시대엔 순례자에게 빵을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는 산 쏘일로(San Zoilo) 수도원은 호텔로 변해 있었다.

그 앞에는 스페인 자치주의 문장을 새긴 표석들이 세워져 있었다.

 

 

심심한 풍경 속에서 해바라기과 풀이 자라는 들판이 눈에 들어왔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걷는데 자전거 순례자들이 나타나 순식간에 추월해 갔다.

 

칼싸디야 데 라 쿠에싸에 도착해 순례자 메뉴 대신 저녁으로 먹은 메뉴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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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reya 2015.12.03 17: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례자의 길 걸을 계획이 있어서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_+

    • 보리올 2015.12.03 18: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얼마나 도움이 될런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소용이 되었으면 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평생 한번은 꼭 걸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획 잘 세우셔서 즐겁고 의미있는 순례가 되기를 빕니다.

  2. 2015.12.04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5.12.05 02: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먹는 거라든가 잠자리 크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좀 불편해도 그것이 매력이죠. 저것이 호밀였나요? 전 몰랐습니다. 늦가을 들판엔 작물이 거의 없더군요. 목장 풍경은 좀 있으면 나올 겁니다.

  3. justin 2016.01.18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베르게에서 준비해주는 순례자 메뉴는 많이 다른가요? 가격은 더 저렴하지요? 걷다보면 배고파서 어떤 음식이라도 감사히 먹을것 같습니다. WCT 때 처럼요.

    • 보리올 2016.01.18 18: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순례자 메뉴를 알베르게에서 준비하는 경우는 한 군데를 빼곤 없었다. 밖에 있는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를 취급하고 있지. 정상적인 메뉴에서 조금 싸게 내놓는 것 같더구나. 배고픈 탓도 있겠지만 스페인 음식은 대체적으로 우리 입맛에 잘 맞는 편이지.

 

어제 남은 밥으로 만든 누룽지를 삶아 감자국과 함께 아침으로 먹었다. 누룽지가 많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밤새 내리던 비는 아직도 그치질 않았다. 우의를 걸치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아무리 가랑비라 해도 빗속을 걷기 위해 밖으로 나서는 일에는 늘 용기가 필요했다. 처음엔 밭 사이로 난 길을 걷다가 곧 아스팔트 위로 올라섰다. 개울을 따라 심은 포플러 나무가 도열해 있었고, 아스팔트 도로에도 노랗게 물든 가로수가 길게 줄지어 있었다.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아침 풍경이 고마웠다. 산 안톤(San Anton)엔 무너진 성당이 남아 있었다. 잔재의 규모만 보아도 예전엔 꽤 컸을 것으로 보였다. 성당 아치 문을 지나 순례길은 이어졌다. 미국에서 온 자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장석민씨와 둘이 앞으로 나섰다.

 

산 안톤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평원 위에 봉긋하게 솟은 나지막한 산 하나가 나타났다. 산 위엔 성채 하나가 세워져 있었는데 멀리서 보기에도 성해 보이진 않았다. 그 아래 자리잡은 카스트로헤리쓰(Castrojeriz)도 눈에 들어왔다. 마을이 위치한 곳에서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어 로마시대엔 금 운송로를 보호할 목적으로 이 마을을 적극 활용했다고 한다. 마을 초입에서 산타 마리아 델 만싸노(Santa Maria del Manzano) 성당을 만났다. 이 아름다운 성당은 성 야고보가 사과나무에서 성모 마리아 상을 본 곳으로 유명하다. 문이 닫혀 있어 아쉽게도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카스트로헤리쓰는 성당이 몇 개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제법 컸다.

 

마을을 빠져 나와 평지를 좀 걷다가 오르막 길로 접어 들어 모스테라레스(Mostelares) 고개로 올랐다.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고개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이 훤히 보였다. 이렇게 가끔 뒤를 돌아보면 언제 저 먼 거리를 걸어왔는지 스스로가 대견해진다. 고갯마루엔 웬 탑이 하나 세워져 있었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쉩터가 있었다. 지붕만 있고 양쪽으론 뻥 뚫려 있어 바람은 피하기 어려웠다. 쉘터에 앉아 과일로 간식을 했다. 고개 건너편으로 내려서는 길도 무척 아름다웠다. 누런 평원을 하얀 줄 하나가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그 위를 걸어가는 순례자도 조그맣게 보였다.

 

오스피탈 데 산 니콜라스(Hospital de San Nicolas)는 이탈리아 봉사단체가 알베르게로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아무 생각없이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 아래서 식사를 한다고 해서 거기서 하룻밤을 묵을까도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되돌아 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테로 다리를 건너자 팔렌시아(Palencia) 주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나왔다. 카스티야 레온 자치주에 속하는 부르고스 주를 벗어나 팔렌시아 주로 넘어온 것이다. 이테로 데 라 베가(Itero de la Vega)가 그리 멀지 않았다. 어제, 오늘 함께 걸었던 젊은 친구는 여기서 묵겠다고 해서 헤어지기 전에 카페에 들러 간단하게 점심을 샀다. 난 평소 먹던 샌드위치 대신 참치 샐러드를 시켰더니 맛은 괜찮은데 양이 너무 적었다.

 

다시 호젓하게 길을 걷는다. 이테로 데 라 베가를 벗어나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이 쏟아져 우의를 입었음에도 금세 옷이 젖었다. 제주도 오름처럼 너른 평원 위에 여기저기 구릉이 솟아있는 풍경이 나타났지만 카메라를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저 발걸음을 빨리 해서 다음 마을에서 비를 피하고 싶었다. 보아디야 델 카미노(Boadilla del Camino)에 도착해 잠시 고민에 빠졌다. 옷은 이미 젖었고 빗줄기는 가늘어졌으니 내친 김에 조금 더 가기로 했다. 보스턴에서 왔다는 여자 둘이 물병 하나씩 들고 걷는다. 부르고스에서 레온까지 8일을 걷고는 돌아간다고 했다. 카스티야 운하(Canal de Castilla)를 따라 걸었다. 길을 따라 늘어선 가로수와 노랗게 물든 나뭇잎 덕분에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났다.

 

오후 5시가 가까워 프로미스타(Fromista)에 도착했다. 11세기에 지어진 산 마틴 성당은 한때 베네딕트 수도원이었지만 수도원은 이미 사라졌고 성당도 1904년에 개축을 하였다고 한다. 성당은 단순하고 검소해 보여 인상은 좋았다. 그런데 성당 안에 솔직히 볼 것도 없는데 왜 입장료로 1유로를 받는지 모르겠다. 성당 옆에 있는 알베르게에 들었다. 카페에서 토르티야와 와인으로 저녁을 먹고 왔더니 미국 자매가 35km를 걸어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장석민씨는 이테로 데 라 베가에서 두 자매와 만나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자매가 침대에서 빈대를 발견했다고 잠시 소동이 벌어졌다. 알베르게 직원이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하는 표정을 지었다고 분개한다. 약을 사다가 침대에 뿌렸다. 이 알베르게는 시설도 별로인데 직원들까지 불친절하다.

 

 

가랑비를 맞으며 빗길을 걸어 온타나스를 벗어났다.

 

 

콘벤토 데 산 안톤(Convento de San Anton) 성당은 오랜 세월을 폐허로 남아 있었다.

 

 

카스트로헤리쓰의 산타 마리아 델 만싸노 성당. 문이 닫혀 있어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다.

 

 

 

나지막한 산 아래 자리잡은 카스트로헤리쓰의 마을 정경. 마을 뒤로 다 무너진 성채가 보인다.

 

모스테라레스 고개에 올라 방금 지나온 카스트로헤리쓰를 뒤돌아 보았다.

 

 

메세타 지역을 지나는 순례길이 서쪽으로 끝없이 이어져 있다. 그 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들도 보였다.

 

 

 

이테로 다리를 건너면 부르고스 주를 벗어나 팔렌시아 주로 들어선다.

 

이테로 데 라 베가 마을. 하얀 색을 칠한 건물이 많아 깨끗해 보였다.

 

이테로 데 라 베가에 있는 카페에서 참치 샐러드로 점심을 해결했다.

 

다시 빗방울이 굵어져 옷이 젖은 채로 길을 걸어야 했다.

 

 

드넓은 벌판이 펼쳐진 평원을 지나 보아디야 델 카미노로 들어섰다.

 

 

 

다행스럽게 비가 그쳐 편한 마음으로 보아디야 마을을 둘러보았다.

 

 

 

카스티야 운하를 따라 가을 분위기 물씬 풍기는 가로수 길을 걸었다.

 

곡창지대 한 가운데 자리잡은 프로미스타에 도착했다.

 

 

 

11세기에 지어졌다는 산 마틴 성당은 20세기 초에 대대적으로 개축을 하였다고 한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실은 익히 알고 있는데

왜 프로미스타에 그 표식이 세워져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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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reya 2015.12.02 1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빈대 조심 +_+

  2. Justin 2016.01.14 1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 성당이나 성채의 잔재라하더라도 부서지면 부서진대로 그대로 두는 세월의 흔적이 자연스럽고 정감이 갑니다.

    • 보리올 2016.01.14 23: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떤 역사적 건축물이 무너졌다고 다 치워버리면 그와 연결된 이야기도 사라지는 것 같더구나. 그냥 두어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