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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2.09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② (5)
  2. 2019.12.04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① (6)
  3. 2019.11.30 [슬로베니아] 크란 (6)
  4. 2019.11.22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 ② (2)
  5. 2019.11.18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 ① (4)


프레셰레노브 광장으로 이동해 맥도널드에서 아침을 먹었다. 구시가지 구경은 프레셰레노브 광장에서부터 시작했다. 전날 밤에 조명을 받아 야경을 뽐내던 광장 모습과는 느낌이 좀 달랐다. 꿈에서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고나 할까. 바로크 양식에 핑크빛 외관을 가진 프란체스코회 교회부터 찾았다. 천장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도 눈에 담았다. 1895년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프레스코화가 상당 부분 손상을 입어 1936년에 새로 그린 작품이란다. 프레셰레노브 광장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슬로베니아 국민시인, 프란체 프레셰렌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광장 한 켠에는 그의 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머리 위로 월계수를 들고 있는 여인을 프레셰렌의 첫사랑 율리아라 생각했으나, 그의 시에 영감을 준 뮤즈라고 한다. 프레셰렌의 시선이 머무는 전면 건물 벽면에 율리아의 흉상이 새겨져 있다고 하던데, 내 눈에는 도통 들어오지 않았다. 당시 부유한 상인의 딸이었던 율리아를 사랑했지만 신분 차이로 인해 결국 그녀와의 사랑을 이루진 못 했다.

 

류블랴니차 강 위에 놓인 트리플 브리지(Triple Bridge)를 건넜다. 서로 다른 각도로 놓은 다리 세 개가 전체적으론 다리 하나를 이루는 묘한 구조다. 1932년 슬로베니아 유명 건축가인 요제 플레츠니크(Jože Plečnik)의 아이디어로 기존에 놓인 다리에 보행자 다리 두 개를 추가해서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 모든 다리엔 차량 통행을 금지하고 있었다. 시청사 앞에 있는 메스트니 광장(Mestni trg)으로 갔다. 삼각형 오벨리스크를 가운데 세운 분수가 자리잡고 있었다. 10m 높이의 오벨리스크는 슬로베니아의 3대 강을 상징하는 의미로 삼각형으로 만들었다. 1751년 이탈리아 조각가 프란체스코 로바(Francesco Robba)가 만든 분수라 해서 로바 분수라고도 불린다. 시계탑이 인상적인 시청사를 찾았다. 한 나라 수도의 시청사라 하기엔 너무나 소박했다. 건물 1층은 출입이 자유로워 실내도 구경했다. 우아한 자태의 회랑 외에도 역사적 장면을 담은 그림, 류블랴나 지도, 몇몇 조각품도 볼 수 있었다.

 

류블랴나 구시가지는 중세풍 건물과 골목이 많아 도시 전체가 꽤 마음에 들었다. 특히 시청사가 있는 거리는 어느 곳에 시선을 두어도 정감이 넘쳤다. 아름답게 꾸민 가게를 구경하며 거리를 걷다가 류블랴나 대성당(Ljubljana stolnica)에 닿았다. 오래 전에 지은 성당이 화재로 소실된 후, 1706년에 두 개의 종탑과 녹색 돔을 가진 바로크 양식의 성당으로 새로 지었다. 성당 안에 들어가 프레스코화와 파이프 오르간을 보고 싶었지만 문이 닫혀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류블랴나 도어라 불리는 청동문에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에수를 바라보는 여섯 명의 주교 조각상이 새겨져 있는데 제각각 표정이 달라 오래 기억에 남았다. 슬로베니아에 기독교가 전래된지 1,250주년을 기념해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 대성당을 다녀가기도 했다. 대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광장엔 마침 재래시장이 열려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이런 시장이 열려 꽃과 과일, 채소 외에도 슬로베니아 특산품을 팔고 있었다.

 

 

프레셰레노브 광장에 면해 있는 프란체스코회 교회는 외관을 핑크빛으로 칠해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띄었다.

 

 

 

프란체스코회 교회 안으로 들어서 천장의 프레스코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슬로베니아 국민시인으로 숭상을 받는 프란체 프레셰렌의 동상이 광장 한 켠에 세워져 있다.

 

 

다리 세 개로 구성된 트리플 브리지는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메스트니 광장에는 류블랴나 시청사와 오벨리스크 분수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소풍나온 꼬마들이 인솔교사에 이끌려 시청사 앞을 지나고 있다.

 

 

 

그리 크지 않은 류블랴나 시청사 내부를 관람할 수 있었다.

 

 

류블랴나 대성당의 돔과 종탑은 어디서나 볼 수 있어 류블랴나의 랜드마크로 통한다.

 

류블랴나 대성당의 청동문에는 20세기에 활약한 주교 여섯 명이 예수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조각상이 새겨져 있다.

 

 

 

류블랴니차 강가의 광장에선 일요일을 제외한 날이면 빠짐없이 재래시장이 열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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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투자를좋아하는지구별여행자 2019.12.09 07: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시내가 참 예쁘네요 :) 공감 누르고 갑니다 ^^

  2. 깜구 2019.12.09 1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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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Choa0 2019.12.09 19: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년 여름에는 시청 외관이 공사중이라
    가림막으로 가려져서 아쉬웠었는데
    공사가 다 끝났나보네요.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4. 따뜻한일상 & 독서 , 사진찍기 2019.12.09 2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슬로베니아도 다녀오셨군요 ㅎㅎㅎ
    정말 여러나라를 계속적으로 이동중이신듯 보입니다~
    슬로베니아는 이번 부다페스트 여행때 근교여행지로 꼭 가고 싶었는데 못가서 아쉬웠습니다^^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Ljubljana)에 입성했다. 류블랴나라는 말이 슬로베니아어로 사랑하다란 의미를 지녔다니 이름이 꽤나 낭만적이었다. 예전에 슬로베니아가 유고 연방의 일원으로 있었을 때 이곳을 스쳐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솔직히 기억나는 것은 도시 이름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류블랴나는 인구가 3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다른 나라 수도와 비교하면 작아도 너무 작았다. 하지만 도시 인구 가운데 대학생이 5만 명에 이른다니 젊은 피가 도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도심도 크지 않았다. 도심을 관통하는 류블랴니차 강을 따라 볼거리들이 몰려 있어 천천히 걸어다니며 감상하기에 좋았다. 게다가 이름있는 레스토랑이나 노천 카페가 강가에 자리잡고 있어 도심 풍경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있었다. 그 가운데 자리를 잡고 슬로베니아 전통 음식이나 커피, 맥주를 음미하며 가까이에서 도심을 즐길 수 있는 것이 류블랴나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사실 류블랴나에 도착한 시각이 어중간한 오후라 숙소부터 체크인을 하고 시내 구경을 겸해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딸이 웹에서 검색한 식당은 율리아(Julija)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프란체 프레셰렌 시인의 첫사랑 이름이 율리아였던 것이 떠올라 마음에 들었다. 율리아 식당이 있는 골목이 류블랴나의 먹자 골목인 모양이었다. 식당도 많았고 사람들 왕래도 잦았다.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길어 테이블도 간신히 잡았다. 이 식당에서 유명하다는 낙지 요리를 시켰다. 육질은 부드러웠지만 맛은 그리 뛰어나진 않았다. 식사를 마치곤 트리플 브리지라고도 불리는 트로모스토브예(Tromostovje) 다리로 산책에 나섰다.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연결하는 세 개의 다리가 있는데, 그 디자인이 특이하고 밤에는 조명이 비춰 독특한 풍경을 선사한다. 다리를 건너면 프레셰레노브 광장(Prešerenov Trg)이 나오는데, 거기서 프레셰렌 동상과 프란시스코회 성당을 비롯한 주변 건축물, 특수 조명으로 밝힌 야경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류블랴나 도심으로 걸어가는 길에 부드러운 햇살이 노란색을 칠한 건축물에 내려앉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슬로베니아를 대표하는 건축가 요제 플레츠니크(Jože Plečnik)가 설계한 국립 & 대학 도서관 건물은

책을 펼친 모양으로 창문을 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류블랴나 성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곧 류블랴니차 강에 닿았다.

 

 

 

 

 

류블랴니차 강을 따라 서점과 가게, 식당, 카페 등이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었다.

 

식당이 늘어선 골목에서 앞치마나 소품에 옛 재봉틀을 이용해 문자나 경구를 수놓는 가게, 베쩨니나(Vezenina)를 만났다.

 

우리의 먹자 골목에 해당하는지 식당이 줄지어 나타났다.

 

 

 

율리아 식당에서 슬로베니아산 와인과 요리로 저녁 식사를 즐겼다.

 

 

트리플 브리지와 프란시스코회 성당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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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건축창고 2019.12.04 17: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네 느낌이 너무 좋아요 ㅎㅎ

    건물 느낌도 좋구요~^^

  2. Choa0 2019.12.04 22: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작년 여름에 방문했었는데요.
    구시가도 예쁘고
    그렇게 크지 않아 도보로 충분히 돌아다닐 수 있어 좋았어요.^^

  3. 주연공대생 2019.12.05 0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지네요 정말!
    좋은 자료 잘보고 갑니다. 구독할게요!^^

    • 보리올 2019.12.05 16: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축구, 그 중에서도 EPL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잘 하지도 못 하면서 열심히 공을 차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멋진 댓글 감사합니다.

 

류블랴나(Ljubljana)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크란(Kranj)에 도착했다. 원래 계획엔 없던 도시였지만 어디선가 이름을 들어본 것 같아 잠시 쉬어갈 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크란은 인구 37,000명으로 슬로베니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라 했다. 지류인 코크라(Kokra) 강이 사바(Sava) 강으로 합류되는 지점 그 사이에 올드타운이 형성되어 있었다. 올드타운 양쪽으론 푹 꺼진 계곡이 자리잡고 있어 꼭 언덕배기에 세워진 도시같았다. 올드타운은 잘 보존된 중세도시라는 인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크란이 19세기 슬로베니아 문학을 대표했던 시인 프란체 프레셰렌(France Prešeren)의 생가가 있는 곳이라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 그는 좀 더 북쪽에 있는 브르바(Vrba)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마 그가 죽기 전에 크란에서 3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며 살았고, 1849년 사망하여 크란에 묻힌 것을 착각한 것이 아닌가 싶다. 프레셰렌은 현재 슬로베니아의 국민영웅으로 여겨진다. 그의 시 <축배>는 슬로베니아의 국가가 되었고, 그의 사망일 28일은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슬로베니아의 2유로 동전에도 그의 얼굴이 들어가 있다.

 

올드타운으로 걸어갔다. 초입부터 고색창연한 모습을 지닌 건물들이 나타나 도시 전체가 아름답게 다가왔다. 곧 올드타운의 메인 광장에 닿았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라 한 눈에 주변 정경이 들어온다. 기념탑이 세워진 분수대 앞에 사람 몇 명이 의자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소박한 공간에 한가로움이 가득했다. 그래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들은 외관에 다양한 색상과 장식을 더해 고풍스러움을 줬다. 올드타운 중앙에 위치한 성 칸티누스 교회(St. Cantinus Church)도 지났다. 14세기에 지어진 고딕 양식의 교회였지만 문이 닫혀 있어 안으로 들어가진 못 했다. 교회 옆으론 프레셰렌 극장(Prešeren Theatre)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앞을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는 프레셰렌 동상이 차지하고 있었다. 올드타운 끝에는 외관을 하얗게 칠한 타워와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16세기에 지어진 타워는 마을 방어용으로 썼다는데 지금은 카페와 어린이 놀이터로 쓰이고 있었다.

 

 

올드타운 양쪽은 강이 흐르는 계곡이라 강 건너편 풍경을 바라보기 좋았다.

 

올드타운 초입에 있는 공립 도서관

 

건물 외관을 다양한 색깔로 칠해 마을에 생동감을 주었다.

 

 

다른 도시에 비해 그 규모가 크지 않았던 올드타운의 메인 광장

 

 

 

고딕 양식의 웅장함을 한껏 뽐내는 성 칸티누스 교회

 

 

크란에는 프레셰렌의 과거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여기는 프레셰렌 극장과 그 앞에 세워진 그의 동상.

 

 

 

 

 

 

 

마을 한 가운데를 지나는 도로를 따라 아름다운 마을을 눈에 담으며 올드타운 끝에 있는 타워까지 걸어갔다.

 

 

 

뒷골목으로 들어서 눈에 띄는 정겨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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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묭수니 2019.11.30 1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건물들이 알록달록 예쁜 곳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 보리올 2019.11.30 23: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크란을 관통하는 도로를 달리다가 잠시 들른 곳인데 올드타운이 꽤 아름다워 마음이 흡족했었죠. 유럽엔 이런 도시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2. 한러커플 2019.12.01 02: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 진짜 예술이네요.. 한국에서는 저런거 볼수없죠 ㅠㅠㅠ

    • 보리올 2019.12.01 2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마운 댓글이네요. 우리는 재개발한다고 옛것을 몽땅 부수고 콘크리트로 건물을 새로 짓는 개념이라 이런 낭만적인 곳을 갖기가 어렵죠.

  3. 토요미대장1 2019.12.01 15: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레드 호수 외에도 예쁜 것들이 참 많군요~

    • 보리올 2019.12.01 2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슬로베니아의 시골 마을도 좋은 곳이 많을텐데 시간 제약 때문에 가보지를 못 했습니다. 그나마 크란을 들른 것이 얼마나 다행이던지요.

 

블레드 성에서 나와 호수 한 켠에 자리잡은 블레드 섬(Bled Island)을 가기 위해 차를 몰았지만 주차할 공간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거리가 꽤 떨어진 주차장에 차를 대고는 블레드 호수까지 10분 정도를 걸어야했다. 율리안 알프스 산자락에 파묻혀 있는 블레드 호수는 해발 475m의 높이에 길이 2.1km, 1.4km 크기를 가진 호수로 그 특유의 비취빛 물색깔로 유명하다. 호수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주변 산자락과 어우러진 풍경도 뛰어나지만, 그 안에 그림 같은 블레드 섬이 있고 호숫가 바위 절벽엔 블레드 성이 자리잡고 있어 더 유명해졌다. 한 가지 흠이라면 여길 찾는 사람이 워낙 많아 호젓함을 누릴 수 없는 것이 좀 아쉬웠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7km 트레일을 걷거나 뒷산에 올라 호수 전체를 조망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으나 오래 걷는 게 불편한 동행이 있어 여의치가 않았다.

 

블레드 섬으로 가려면 플레트나(Pletna)라는 나무로 만든 나룻배를 타야 한다. 선미에서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가는 이 배는 1590년부터 운행을 했다고 한다. 한 사람에 15유로를 받는데 인원이 찰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다. 블레드 섬에는 종탑이 높이 솟은 성당이 하나 있다. 멀리서 보면 무척 운치가 있어 보였다. 플레트나가 섬으로 다가갈수록 가슴은 점점 설렘으로 두근거렸다. 사공이 40분 시간을 줬다. 하지만 섬에는 의외로 볼 것이 없었다. 배에서 내려 바로 99계단을 오르면 나타나는 조그만 카페와 성당이 전부였다. 성당은 입장료를 따로 내라고 해서 들어가지 않았다. 성당에 있는 종을 세 번 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어 그런지 끊임없이 종이 울렸다. 섬을 돌며 시간을 보냈다. 여기선 좀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진으로 접했던 블레드 호수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누군가 여행은 환상을 깨는 일이라 했는데 정말 그런 모양이다.

 

 

 그 유명한 블레드 호숫가에 도착해 아름다운 호수를 처음으로 접했다.

 

 

 

호숫가 풍경을 눈에 담으며 여유롭게 플레트나 탑승장으로 걸어갔다.

 

 

 

 

플레트나에 올라 블레드 호수를 건너 블레드 섬으로 다가서고 있다.

 

 

블레드 섬에 있는 선착장엔 손님들이 되돌아오길 기다리는 플레트나로 가득했다.

 

블레드 섬은 신혼부부의 예식장소로 유명한데, 신랑이 신부를 안고 99계단을 오르면 행복하게 산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블레드 섬의 꼭대기에 세워진 성당은 그 입지 덕분에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블레드 섬을 도는 오솔길을 걸으며 호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블레드 섬을 벗어나 블레드에 있는 플레트나 선착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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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nformation Sharing 2019.11.22 2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눈으로 슬로베니아 여행 잘 했어요!^^

 

오스트리아를 지나쳐 바로 슬로베니아로 들어섰다. 슬로베니아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자 쉥겐조약에 가입한 국가라 국경을 넘는다는 느낌도 없이 통과해 버렸다. 블레드 호수(Lake Bled)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름다운 에머랄드 호수 색깔에 블레드 성과 블레드 섬이 포진하고 있는 블레드 호수에 닿았다. 이 호수는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붐비는데, 그 중에는 한국인 관광객도 꽤 많았다. 천천히 호숫가를 드라이브하며 지형을 익힌 다음에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작고 아름다운 블레드 성부터 찾았다. 호숫가에 139m 높이로 솟은 바위 절벽 위에 요새처럼 지어놓은 중세 시대의 성이 우릴 맞았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하인리히 2(Heinrich II)가 브릭센(Brixen)의 주교를 위해 로마네스크 양식의 타워를 지었고 그 뒤 브릭센 주교에 의해 1011년 성이 완공되었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내려 경사길을 좀 걸어올라야 했다. 입장료로 1인당 11유로씩 받는다. 볼거리에 비해 좀 비싸단 느낌이 들었지만 성에 올라 블레드 호수와 율리안 알프스(Julian Alps)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대하곤 입장료가 아깝진 않았다.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몇 군데 있었다. 조그만 박물관도 하나 있어 과거에 사용했던 가구나 생활용품, 도자기, 금속제품, 화석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예배당과 레스토랑, 인쇄소, 기념품가게, 와인셀러 등이 있었으나 특별히 시선을 끄는 것은 많지 않았다. 와인셀러 앞에 꽤 큰 와인병 세 개가 모두 목이 잘려있는 것은 관심을 끌었다. 성벽을 따라 망루까지 오른 후에 아래로 내려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서 맥주 한 잔하면서 주변 풍경을 맘껏 눈에 담았다. 청순한 느낌을 주는 호수는 오래 지켜보아도 질리지가 않았다.

 

 

 

 

주차장에서 경사길을 걸어 블레드 성으로 들어섰다.

 

 

 

 

우물 옆에는 호수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카페가 있어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중세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각종 전시품들이 놓여있던 박물관

 

박물관 창문을 통해 눈에 들어온 풍경

 

성벽을 따라 조성된 망루에 오르면 블레드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와인셀러 입구엔 목이 잘린 와인병을 전시하고 있었다.

슬로베니아에선 주빈이 칼로 와인병을 잘라 축제 시작을 알리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블레드 성은 1961년 최종 복구가 되었음에도 외관은 무척 고풍스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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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인 2019.11.21 1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년에 저도 방문 예정인 블레드 호수!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 장에 매료되서 구글 네이버 한 참 뒤져봤었더랬죠.. 😂 오늘도 좋은 정보 얻어갑니다~ 제 스타일의 블레드도 내년에 공유하겠습니다!

    • 보리올 2019.11.21 19: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호, 내년에 슬로베니아를 간다고? 크로아티아를 가면서 두루 들릴 예정이구나. 이 블로그가 훌륭한 지침서가 되길 빈다.

  2. justin 2019.11.22 2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절벽 위에 성을 짓는다는 것이 절대 쉽지 않았을텐데...성을 지은 노동자들이 참 고생했겠어요. 그 덕을 후손들이 누리고 있네요~

    • 보리올 2019.11.30 10: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호수에서 보면 성이 절벽 위에 위치하지만 그 뒤쪽으로 접근로가 있어 자재 운반에는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쉽지 않은 공사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