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의 하나뿐인 국립공원인 트리글라브(Triglav) 국립공원에서 가장 큰 호수인 보힌 호수(Bohinjsko Jezero)는 해발 526m에 위치해 있다. 여름철에도 무더위를 느끼긴 어려운 고도인데다 청청한 호수에서 각종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어 현지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만 했다. 하지만 산 속에 자리잡은 호수라 그런지 날씨 변화는 제법 심한 편이었다. 아침엔 안개가 자욱할 때가 많았고 화창한 날씨에 뭉게구름까지 더해져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하다간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와 비를 피할 곳을 찾게 만들곤 했다. 한번은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 텐트가 쓰러질 것 같더니 한두 시간 뒤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시치미를 뗀다. 보힌 호수의 풍경이 청정하고 아름답기는 했지만 다채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변덕스러운 날씨 덕에 다양한 면모를 과시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날씨가 궂어 보겔 스키 센터(Vogel Ski Center)로 오르는 것을 망설이다가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 같아 30유로 가까운 금액을 투자해 해발 1,535m에 있는 전망대까지 케이블카로 오르기로 했다. 하늘에 가득한 구름은 케이블카로 이동하는 시간에 사라지기를 기원하면서 말이다. 보힌 호수가 눈 아래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 정도 고도를 올리자, 호수 뒤로 줄리안 알프스(Julian Alps)에 속하는 산군이 물결을 이루며 나타났다. 슬로베니아 최고봉인 트리글라브 산(Mt. Triglav, 2864m)도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전망대에서의 풍경도 비슷했다. 마음 속으로 기대했던 대단한 파노라마 풍경은 끝내 보여주질 않았다. 기왕에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산책이나 하며 주변을 둘러보려 했으나 갑자기 몰려드는 구름에 사위가 점접 어두워지는 것이 아닌가. 케이블카로 철수해 하산을 서둘렀다. 공연히 올라왔다는 생각이 들며 케이블카 비용이 아깝게 느껴졌다.
[슬로베니아] 보베츠 ~ 보힌 호수 (6) | 2025.02.05 |
---|---|
[슬로베니아] 노바 고리차 ~ 보베츠 (7) | 2025.01.30 |
[이탈리아] 고리치아 (9) | 2025.01.25 |
[이탈리아] 우디네 (11) | 2025.01.20 |
[이탈리아] 발 가르데나, 셀바 디 발 가르데나 (10) | 2025.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