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스타운은 뉴질랜드 남섬의 오타고(Otago) 지방에 있다.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풍경이 빅토리아 여왕에 어울린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니 영국에 대한 해바라기는 가히 놀랄만하다. 그렇다고 퀸스타운이 아름답지 않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와카타푸(Wakatipu) 호숫가를 산책하며 일견해 보아도 마치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풍경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 사는 주민보다 관광객이 더 많은 복 받은 도시였다. 1860년대 이 근방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골드러시가 일어났고 그 사건으로 외지에서 사람들이 유입되어 생겨난 도시라는데 지금은 금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퀸스타운에서 보낸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액티비티를 즐기진 못 했다. 그래서 와카티푸 호수를 따라 걸은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80km에 이르는 호수에서 우리가 본 것은 빙산의 일각이겠지만 이 호수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퀸스타운이 탄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호텔 창문을 통해 바라본 와카티푸 호수

 

 

 

 

와카티푸 호숫가를 산책하며 퀸스타운의 풍경을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퀸스타운 가든스(Queenstown Gardens)18홀의 프리스비 골프(Frisbee Golf) 시설이 있었다. 골프와 비슷한 룰에 따라

프리스비란 원반을 던져 횟수를 기록하는 이 골프는 1980년대 초에 시작해 1996년 영구 시설로 인정받았다.

 

 

 

 

와카타푸 호숫가에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많았다. 호숫가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호숫가에 위치한 배쓰 하우스 카페에서 맥주 한 잔 했다.

그레이마우스에서 생산되는 몬티스(Monteithj) 맥주를 마셨는데 의외로 맛이 좋았다.

 

 

퀸스타운의 명물인 퍼그버거(Fergburger)를 찾아갔지만 주문을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어 지레 포기를 했다.

 

고급 와인을 포함해 80종 이상의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와인 바가 있어 들러 보았다.

 

 

저녁 식사를 하고는 늦은 시간에 도심을 걷다가 맥주 한 잔 하기 위해 들어간 식당도 젊은이들로 꽤나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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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5.12 1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도 퍼그버거를 못 먹은것이 미련이 남습니다.

 

하룻밤 묵었던 마을엔 식당도, 가게도 없어 아침을 해결하기가 마땅치 않았다. 결국 자판기에서 1유로짜리 비스켓 하나 꺼내 먹고 나머진 물로 채웠다. 해가 뜨기 직전에 알베르게를 나섰다. 해발 고도가 1,000m나 되는 고지인지라 바깥 날씨는 무척 쌀쌀한 편이었다. 이제 장갑은 필수였다. 붓기와 통증은 남아 있었지만 발목을 움직이기가 훨씬 편했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를 빠져나오는데 동녘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갈림길에서 발을 멈추곤 마냥 하늘만 올려다 보았다. 내 뒤를 따르던 사람들도 이 광경에 취해 길가에 일열로 서서는 셔터 누르기에 바빴다. 언덕 위 초지로 올랐다. 정자 나무로 쓰이면 좋을 듯한 나무 한 그루가 덩그러니 서있었다. 능선 위로 떠오르는 해는 여기서 볼 수 있었다.

 

아게스(Ages)를 지나 아타푸에르카(Atapuerca)까지 6km를 걸었다. 아타푸에르카는 1970년대 선사시대의 유물이 발견된 곳으로 1997년에는 80만년 전에 살았던 원시 인류의 유골도 발굴되었다. 이 유골엔 호모 안테세서(homo antecessor)란 이름이 붙여졌다. 그런 유물 덕분에 이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마을로 들어서기 전에 순례길을 벗어나 전시관까지 다녀왔다. 왕복 2km 거리라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전시관이 빤히 보여 용기를 냈다. 전시관은 인류의 진화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는데 실제 유물을 전시하기보다는 글로, 화면으로 설명하는 자료가 더 많았다. 원시인의 섹스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다시 순례길로 돌아와 아타푸에르카 마을을 지났다. 나지막한 고개를 하나 넘었다. 고개 위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고 그 옆 공터엔 돌로 여러 개의 원을 그려 놓았다. 누가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공을 들여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카르데뉴엘라(Cardenuela)의 한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침도 부실하게 먹어 하몽이 들어간 샌드위치 하나에 소시지를 넣은 토르티야(Tortilla)를 추가로 시켰다. 같은 스페인어를 쓰는데도 토르티야는 멕시코와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멕시코에선 옥수수가루나 밀가루로 만든 전병을 일컫는데, 여기선 두툼한 빈대떡 같이 생긴 계란 오믈렛을 의미하고 있었다.

 

부르고스(Burgos)로 들어서는 길은 무척이나 지루했다, 더구나 공단 지역을 지나기 때문에 볼거리도 없었다. 고르지 않은 보드블럭을 걸어야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팜플로나 다음으로 큰 도시라 부르고스 도심은 사람들로 꽤 붐볐다. 물론 시골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대도시의 활력도 느껴졌다. 도심을 관통해 알베르게에 이르는 길도 멀게 느껴졌다. 알베르게는 규모가 엄청 컸다. 15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취사는 할 수 없지만 크고 깨끗한 식당이 있었고 파티션을 이용해 한 공간에 이층 침대 두 개씩 넣은 배치도 마음에 들었다. 옆 침대는 뉴욕에서 왔다는 한인 부부가 쓰고 있었다. 침대 정리를 끝내고 밖으로 나섰다.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성당부터 들렀다. 1221년 건축을 시작해 1567년에 완공되었다 한다.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이 크고 볼거리가 많아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영어로 안내하는 오디오 가이드를 들고 다녔는데 설명도 무척 길었다. 역사적인 예술품들이 정말 많았다. 치마를 입은 예수상도, 엘 시드(El Cid)의 무덤과 관도 보았다. 벽면에 걸린 대주교 십자가, 1523년에 지었다는 황금계단, 그리고 매 정시에 입을 벌리고 종을 치는 파파모스카스(Papamoscas)도 보았다. 고풍스런 도시답게 대성당 밖에도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아 눈이 즐거웠다. 대성당 옆에 있는 니콜라스(San Nicolas) 성당에서는 결혼식이 막 끝났는지 하객들이 성당 앞에서 갓 결혼한 커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랑, 신부가 문에서 나오자 쌀과 색종이를 던져 결혼을 축하했다.

 

케밥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식당에 한국인들이 십 여명 모여 있어 인사를 했다. 뉴욕에서 왔다는 한인 부부도 있었다. 울산에서 온 중년 부부는 오늘 걷는 것을 끝내고 내일 마드리드로 이동해 귀국길에 오른다고 했다. 이 모임이 일종의 송별연이었다. 아침에 먹을 과일을 사러 다시 밖으로 나갔다가 큰일 날 뻔 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데 슬리퍼를 신고 나갔다가 경사진 내리막 길에서 꽈당 뒤로 넘어진 것이다. 엉덩이가 축축하게 다 젖었다. 머리가 돌에 부딪히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저 창피한 마음에 벌떡 일어나 다시 걸어가는데 지나가던 스페인 아줌마가 괜찮냐며 물어왔다. 그 아줌마가 지갑 떨어졌다고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더 큰 낭패를 볼 뻔 했다. 왜 이런 내리막 길에 대리석처럼 반질반질한 돌을 깔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를 벗어나는데 동녘 하늘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초지가 펼쳐진 완만한 언덕에 올라 능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했다.

 

 

해바라기 밭에도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 찾아 들었다.

 

 

 

아게스 마을을 지났다. 산티아고가 518km 남았다는 표시가 있었다.

 

 

 

 

아타푸에르카는 호모 안테세서란 원시 인류의 유골이 발굴된 곳이라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아타푸에르카를 지나 언덕 위로 오르니 십자가와 돌로 그린 원들이 나타났다.

 

 

카르데뉴엘라 마을에서 샌드위치와 토르티야로 점심을 먹었다.

 

 

 

 

 

대도시의 활력과 고풍스러움이 넘치는 부르고스 도심도 볼만 했다.

 

 

 

 

 

 

스페인 3대 성당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는 부르고스 대성당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산 니콜라스 성당에서 있었던 결혼식 장면. 신랑, 신부가 성당을 나서자 하객들이 쌀과 색종이를 던지며 축복을 빌었다.

 

저녁으로 먹은 케밥. 스페인 대도시엔 케밥을 파는 곳이 의외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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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광주랑 2015.12.01 09: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젠가 꼭 걸어보고 싶은 길인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광주광역시 공식 블로그 '광주랑'에도 많은 방문 부탁드려요 ~

    • 보리올 2015.12.01 11: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누구나 평생 한번쯤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내서 한번 다녀오시지요. 광주광역시 공식 블로그라 그런지 엄청 나네요. 가끔 들러 보겠습니다.

  2. 스페니 2015.12.02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까운 장래에 산티아고순례를 다녀오려고 해요
    정해지지 않은 그 때가 정말 기다려집니다 그래서 보리울님의 글이 더 생동적으로 다가오네요^^
    스페인에 살때는 왜 안갔는지...쩝

    • 보리올 2015.12.02 1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스페인에 사신 적이 있으시군요. 저도 오래 전에 독일에서 5년을 살았습니다. 스페인에 사셨으면 산티아고 순례길이 더 친숙하게 여겨지겠네요. 잘 준비하셔서 평생 잊지못할 좋은 추억 많이 남기시기 바랍니다.

  3. justin 2016.01.11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당의 위용이 대단하네요! 결혼식때 던지는 쌀과 색종이의 의미는 뭘까요? 쌀은 먹을 복이구 색종이는 돈일까요?

  4. 지성의 전당 2018.08.11 22: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성인들의 발자취에 대해 관심 있어 하는 것 같아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한번 검토 부탁드립니다.
    인류의 근원적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와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단언컨대 최고의 상근기는 어떤 사람이냐 하면 정말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이러한 의제를 놓고, 숙고하고 탐구하는 사람입니다.

    최고의 상근기는 카르마도 아니며, 공덕도 아니며, ‘선택’을 받아서도 아니며, 특정 민족도 아니며, 특정 종교적 신앙심도 아니며, 특정 수행과 고행도 아니며, 특정 지역도 아니며, 특정 문화도 아닙니다.

    대다수의 구도자와 수행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자기는 태어난 ‘누구와 무엇’으로 여기며, 즉 육체와의 동일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즉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고 여기면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어린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를 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뭐냐 하면, 정말 나는 ‘무엇’일까? 정말 나는 ‘누구’일까? ‘이것이(육체) 정말 나일까?’하고 스스로 자기에 대해서 한 번 더 의심해 보고, 의문을 가져 보는 것입니다.

    자기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거듭날 수가 있겠습니까?

    자기가 자기를 오해하고 있으며, 그 오해로 인해서 ‘거짓된 자기’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통찰은 ‘자기 불신’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지금의 자기’를 의심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최고의 상근기는 ‘도가 이렇다, 깨달음이 이렇다, 진리가 이렇다’ 이런 말을 늘어놓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니 이제는 ‘나는 무엇이다’에 머물지 말고 “나는 누구인가?”로 넘어오세요.

    이 말이 이해되지 않는 이유가 뭐냐 하면 ‘나는 누구이다’, ‘나는 무엇이다’에만 자기 ‘스스로’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순수합니까!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즉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 ‘자각’으로 이어지며, ‘자각’함으로 모든 것이 출발하고 ‘시작’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을 안다는 것이고, 자신을 안다는 것은 ‘홀로 독립적이다’라는 이해를 갖는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해서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존재’적인 측면에서는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해야만 하며, 설혹 ‘답’을 구했다 할지라도 그 ‘답’의 진위여부는 영원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지금까지의 동일시가 사라지고 나면, ‘나’는 ‘비존재’적인 측면으로서, ‘존재’적인 측면의 ‘주인’임을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인’에 대한 자각은 완전한 ‘자유’라 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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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침으로 인스턴트 해장국에 면을 넣어 수프를 끓였다. 대전에서 온 의사 부부를 불러 함께 식사를 했다. 너무 허접한 음식으로 아침을 대접한 것 같아 마음이 좀 찜찜했다. 두 사람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겠다 해서 나만 먼저 출발했다. 어둡던 하늘이 점점 밝아온다. 산티아고를 향해 정서 방향으로 걷기 때문에 늘 뒤에서 해가 돋는다. 긴 그림자 하나를 내 앞에 만들어 놓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청명한 가을 날씨를 보여줬고, 길가에 자라는 풀잎이나 꽃망울엔 밤새 서리가 내려 하얀 옷으로 갈아 입었다. 손이 너무 시려 처음으로 장갑을 껴야만 했다. 이렇게 맑은 날씨에 판초 우의를 걸친 한국인을 한 명 만났다. 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섯 번이나 왔다고 하는 그는 목례만 하곤 뚜벅뚜벅 길을 재촉한다.

 

두 시간을 걸어 시루에냐(Ciruena)에 도착했다. 현대식 건물로 조성된 마을엔 골프장도 있어 마치 리조트 같았다. 쉬지 않고 그냥 걸었다. 마을을 막 벗어나려는데 뭔가가 갑자기 내 발뒤꿈치를 무는 것이 아닌가. 뒤돌아 보았더니 포인터 한 마리가 등산화를 문 것이었다. 나를 향해 꼬리를 흔드는 것을 봐서는 공격 의사는 없어 보였다. 주인인 듯한 할아버지는 20여 미터 떨어져 나에게 손 한번 들어 보이곤 가만히 있었다.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곤 강아지를 주인에게 보냈다. 저 멀리 산세가 눈에 들어오니 가슴이 트이는 것 같았다. 사방으로 펼쳐진 들판은 마치 파스텔을 칠해놓은 듯 했다. 추수가 끝난 벌판은 황량해 보이기도 했지만 낮게 깔린 햇살을 받아 묘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싸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가 멀리 보였다. 순례길은 자연스럽게 대성당으로 연결되었다. 빌로리아 출신의 목동였던 산토 도밍고는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퇴짜를 맞았다. 그럼에도 순례자를 돕고 순례길을 닦는데 여생을 바쳤다. 기도를 드리기 위해 잠시 일을 멈추면 천사가 내려와 일을 대신했다고 한다. 대성당에서 기르는 닭 두 마리에도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하녀의 계략에 빠져 금잔을 훔친 도둑으로 누명을 쓴 독일 청년이 교수형을 당했는데 함께 순례를 떠났던 청년의 부모는 슬픔을 견디며 순례를 계속 했다. 산티아고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식이 교수대에 산 채로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시장에게 말했지만 시장은 식탁 위에 올려진 구운 닭이 어찌 살아날 수 있냐며 믿지를 않았다. 그 순간 식탁에 있던 닭 두 마리가 살아나 울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청년도 살아났다고 한다.

 

4유로의 입장료를 내고 대성당으로 들어갔다. 순례자라고 할인을 받았다. 전시물이 많았으나 아무래도 내 관심은 11세기에 만들어진 산토 도밍고 무덤과 성당 안에서 키운다는 닭 두 마리에 쏠렸다. 아무리 전설이라 해도 성당 안에서 닭을 키운다는 발상이 재미있었다. 성당을 나와 그 옆에 있는 70m 높이의 종탑도 올랐다. 조망은 기대보다 못 했지만 사방으로 걸려 있는 종들을 살펴보는 것도 괜찮았다. 그런데 아침부터 왼쪽 발목이 좀 이상하다 싶더니 종탑을 오르내리는데 통증이 심했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발목 앞부분이 아팠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잠시 여기서 쉬고 가자고 길가 벤치에 앉았다. 사과와 바나나를 꺼내 점심으로 먹었다. 어제 마시다 남은 와인도 모두 비웠다.

 

한국인들이 많이 머문다는 그라뇬(Granon)을 그냥 지나쳤다. 성당을 들어가 보았지만 그리 인상적이진 않았다. 그라뇬에서 2km쯤 걸었을까. 라 리오하 주를 벗어나 카스티야 레온(Castilla y Leon) 자치주로 들어섰다. 이 자치주는 떵덩이가 엄청 커서 다시 수많은 작은 주로 나뉜다. 우리가 들어선 곳은 부르고스(Burgos) 주였다. 안내판 두 개가 길가에 세워져 순례자들을 맞았다. 카스티야 레온 자치주로 들어섰더니 포도밭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대신 해바라기를 심은 밭이 나타났다. 다 익어 고개를 숙인 해바라기를 수확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더 영글기를 기다리는 것인지, 수확을 포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먹이가 풍부해 참새들은 신이 났다.

 

레데시야(Redecilla), 카스틸델카도(Castildelcado)를 지나 빌로리아 데 리오하(Viloria de Rioja)에 닿았다. 산토 도밍고가 태어난 곳이 바로 여기다. 알베르게가 두 개 있는데 모두 도네이션 제도로 운영하고 있었다. 아카시오 오리에타(Acacio Orietta)란 이름의 알베르게에 들었다. 아카시오는 브라질 남편, 오리에타는 이태리 부인의 이름이었다. <연금술사>를 쓴 코엘료(Paulo Coelho)가 여기서 묵었다고 그와 찍은 사진을 걸어 놓았다. 코옐료의 책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숙박비로 6유로를 받고 식사비는 도네이션이라 해서 따로 10유로를 주었다. 저녁 식사는 여섯 명이 모여 함께 했다. 수프가 먼저 나왔고 메인으론 쌀밥 위에 렌틸콩을 얹어 샐러드와 함께 먹었다. 맛도 괜찮았고 가정집 분위기가 풍겨 푸근한 느낌이 들었다.

 

8일 동안 쉬지 않고 걸은 것이 원인이었을까? 양말을 벗으니 왼쪽 발목이 퉁퉁 부어 있었다. 며칠 쉬라는 의미인지, 천천히 걸으란 의미인지 저 윗분의 뜻을 도통 모르겠다. 사실 조그만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첫날 길을 걷고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을 때, 오른쪽 두 번째 발가락에 티눈이 난 것을 발견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쉬지 않고 걸으니 거기서도 통증이 생겼다. 명색이 순례라 하면서 이 정도 통증도 없이 어찌 순례를 마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 그냥 참기로 했다. 하지만 발목 부상은 티눈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칫하면 며칠 쉬어야 할지도 모르고 그러면 앞으로의 일정이 모두 꼬이기 때문이다. 좀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자고 나서 다시 상태를 보기로 했다.

 

 

아쏘프라를 빠져 나오면서 일출을 맞았다.

 

 

풀잎과 꽃망울에 서리가 내려 앉았다. 날씨도 제법 쌀쌀했다.

 

한 자전거 순례자가 아침 일찍 페달을 밟으며 앞질러 갔다. 처음엔 시카고에서 온 마가렛인 줄 알았다.

 

 

 

 

 

 

멀리 산세가 보이는 가운데 드넓은 벌판이 펼쳐졌다. 붉고 푸른 색조가 어우러져 나름 아름다웠다.

 

벌판 뒤로 저 멀리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싸다가 보인다.

 

 

 

 

 

산토 도밍고 성인의 무덤이 있는 대성당. 성당 안에 닭 두 마리가 사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대성당에서 좀 떨어진 곳에 따로 세워져 있는 종탑에도 올라가 보았다.

 

그라뇬에서 집집마다 물병을 문 앞에 내놓은 모습을 목격했다. 처음엔 순례자에게 제공하는 식수인가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렇게 물병을 문앞에 놓으면 고양이가 거기엔 오줌을 싸지 않는단다.

 

카스티야 레온 자치주에 속하는 부르고스 주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판

 

주 경계선을 넘으면서 포도밭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대신 해바라기 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르고스 주로 들어와 처음 만난 마을인 레데시야를 지났다.

 

웬 물동량이 그리 많은지 이 시골 도로에도 화물차의 움직임이 부산했다.

 

 

파울로 코엘료가 묵었다는 알베르게. 알베르게 앞에서 코엘료와 함께 찍은 사진을 걸어 놓았다.

 

 

알베르게 여주인 오리에타가 준비한 저녁. 수프와 렌틸콩을 얹은 밥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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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페니 2015.11.27 0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량하고 아름다운 색채의 들판이 떠오릅니다
    다음 포스팅 고맙게 기다리겠습니다^^

    • 보리올 2015.11.27 07: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티아고 순례길의 풍경은 기대보단 못했습니다. 이 황량한 들판의 아름다움마저 없었더라면 꽤나 실망할뻔 했지요. 누군가가 제 포스팅을 기다린다는 것이 제겐 큰 힘이 되네요.

  2. 2015.12.05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5.12.05 16: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평소 산행이나 아웃도어를 즐기신다면 겨울이라 하더라도 그리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 봅니다. 그런 경험이 없다면 재고를 하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메세타 지역의 겨울이 혹독하다 해도 엄청 추운 날씨는 아닙니다. 1~2월 낮기온이 섭씨 7~10도, 밤기온이 영하 1도에서 0도 사이입니다. 물론 아주 추울 때는 영하 14~17도를 기록하기도 했다더군요. 추운 것은 장비가 좋으면 어느 정도 커버가 될 겁니다. 알베르게는 겨울철에 닫는 곳도 많지만 어느 도시나 한두 개는 연중 상시 오픈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야긴 거리를 잘 조정하면 알베르게는 충분히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겨울철에 가보질 않아서 100% 자신은 못하고요. 더 많은 정보는 <대한민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를 조회하셔서 확인해 보시고 필요하시면 직접 문의해보시기 바랍니다.

  3. justin 2016.01.06 1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때부터 발목이 많이 안 좋아지셨군요. 산토 도밍고는 유명한 사람이었나요? 검색해도 썩 만족할만한 답이 안 나옵니다.

    • 보리올 2016.01.07 0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날부터 딱 3일간은 발목이 꽤 아팠지. 그나마 다행이었다. 산토 도밍고는 순례길에서나 유명하지. 순례자들은 그 이름을 듣고 그가 한 일을 되새기곤 한단다. 카톨릭 성인 반열에 들어간 분이니 말이야.

 

솔덕 온천 캠핑장에 텐트를 그대로 두고 차에 올라 포크스(Forks)로 향했다. 인구 3,200명을 가진 조그만 동네였지만 뱀파이어 영화로 유명한 트와일라잇(Twilight)을 촬영한 무대라 해서 잠시 차를 세웠다. 길가에 있는 로컬 식당으로 커피 한잔 하러 들어갔다. 여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밖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지 식당 안엔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다들 수다에 정신이 없었다. TV에선 브라질 월드컵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지만 크게 관심이 있는 매치는 아니었다. 밖으로 나와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트와일라잇 기념품으로 도배한 어느 선물가게 외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간단히 눈으로 구경만 하고 바로 포크스를 떴다.

 

호 우림(Hoh Rain Forest)에는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 손을 잡고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홀 오브 모시스(Hall of Mosses) 트레일을 좀 걸었다. 1km 조금 넘는 루프 트레일이었는데, 하늘을 가릴 정도로 숲이 울창해 마치 정글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스프루스(Spruce)와 메이플(Maple) 고목이 많아 침엽수와 활엽수가 묘한 조화를 이뤘다. 나무 줄기엔 푸른 이끼들이 자라고 있었고 가지엔 라이킨이 더덕더덕 붙어있어 마치 괴기영화에나 나올 법한 풍경을 연출했다. 예상 외로 집사람은 그 풍경이 멋있다고 연신 감탄사를 쏟아낸다. 난 좀 음산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말이다.

 

홀 오브 모시스를 한 바퀴 돌고 출발점으로 나왔다. 기왕 걷는 김에 스프루스 트레일을 좀 더 걷기로 했다. 여기도 숲이 꽤나 울창했고 푸른 색으로 도배한 것 같아 눈이 아주 시원했다. 집사람도 숲길을 걸으며 난 초록이 너무너무 좋아!”하고 한 마디 툭 던진다. 집사람이 초록을 좋아하는지를 여기 와서야 알게 되었다. 숲을 빠져 나오다가 여간해서 보기 힘든 올빼미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낮에는 수풀에 숨어 미동을 않는 녀석들인데 이 녀석은 대낮에 해바라기를 즐기는 별종 같았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멀리서 사진 한 장 찍었다. 호 우림 캠핑장의 피크닉 테이블을 찾아 거기서 밥을 지어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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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4.09.30 0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괴한 모양의 나무가 영화 촬영에 어울리게 생겼어요..저 영화에 열광하는 젊은이의 성지가 될 터이니 방문객이 늘어나겠지요..
    그리고 쭉쭉 뻗은 나무만 보면 심심하잖아요..ㅎㅎ

    • 보리올 2014.09.30 0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숲이 울창하고 나무에 기생하는 이끼와 라이킨 때문에 좀 음산해 보였습니다. 전 쭉쭉 뻗은 나무숲이 더 좋던데요.

    • 설록차 2014.10.01 0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마침 티비에서 트와일라잇을 하기에 아들을 불러 보리올님 사진을 보여 주면서 여기에서 촬영했단다~아는 척을 좀 했습니다..ㅎㅎ
      주라기 공원이나 반지의 제왕을 저기서 찍었으면 좋았겠다 이럽디다..
      영화는 제 취향이 아님.

    • 보리올 2014.10.01 09: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트와일라잇과 같은 괴기영화는 좀 별로입니다. 영화 포스터는 본 적이 있지만 영화는 아직입니다. 쥬라기 공원은 봤죠.

    • 설록차 2014.10.06 0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The Lord of Rings 3부작은 원작을 읽은 사람도 실망하지 않는 명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지금 봐도 10여년 전에 만들어졌다는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에요...극장판 감독판 자막판 다 가지고 있는데 볼 때 마다 감탄이 나옵니다...감독이 달변이라 해설판도 재미있구요..소설에서는 어두운 숲에 대한 묘사가 무려 30 페이지..참 힘들게 읽었습니다...
      사람 냄새가 물씬한 영화를 좋아 하지 SF는 즐기지 않습니다..

    • 보리올 2014.10.06 0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지의 제왕은 아이들 볼 때 어깨너머로 보는 정도였지, 제가 직접 찾아보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숲에 대한 설명이 그렇게 많다니 소설이든, 영화든 한번 보고 싶군요.

  2. Justin 2014.10.17 2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곳 나무 동네는 부자 동네같습니다. 각자마다 개성있는 고급 코트를 입었습니다.


 

루마니아를 살짝 스쳐 지난 여행이었다. 루마니아 수도인 부카레스트(Bucharest; 루마니아 현지에선 부쿠레스티 Bucuresti라 부른다)에 도착해 콘스탄짜(Constanta; 이것도 콘스탄타로 발음해야 할 것 같지만 여기선 콘스탄짜가 정확한 발음이란다)와 망갈리아를 바삐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2011 11 13일 도착해 11 16일 루마니아를 떠났으니 모두 합쳐 3 4일의 짧은 출장이었다. 루마니아를 둘러볼 시간이 전혀 없었기에 이것을 여행이라 부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잘 안다. 그래서 루마니아에 대한 내 첫 인상은 이랬다 정도로 정리하려 한다.   

 

부카레스트 공항에 내렸을 때 하늘엔 구름이 가득해 우중충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루마니아는 과거 동구권 국가 중에서도 경제 발전이 느린 나라에 속해 있어 주택이나 건물도 좀 우중충해 보였다. 부카레스트나 콘스탄짜, 망갈리아의 첫 인상도 좀처럼 활력이 없어 보였다. 공항에 마중 나온 앙드레이란 친구는 3일 전에 회사에서 새로 구입했다는 시트로엥 승용차를 몰고 왔다. A2 고속도로에선 시속 130km로 달려 2시간 반만에 콘스탄짜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로 주변에, 심지어 고속도로 가까이에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강아지들이 많이 보였다. 모두 집없이 떠도는 유랑견이다. 오죽하면 강아지에게 물릴 가능성 때문에 아침 조깅을 나갈 수가 없다고 한다. 들개로 변신해 사람들을 위협한다고 하지만 루마니아 사람들은 크게 개념치 않는 것 같았다. 강아지에 대한 관대한 태도는 네팔과 비슷해 보였다. 왜 루마니아 사람들이 이런 유랑견에 관대할까 생각을 하다가 루마니아는 로마인의 후예라는 자긍심으로 살아가고 로마 사람들은 강아지를 시조로 모셨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고속도로 주변으로 끝없이 펼쳐진 평원이 나타났다. 이 드넓은 벌판에 무슨 농사를 짓느냐 물었더니 대부분 옥수수 농사를 짓는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농지 대부분이 국가 소유라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한다고 불만스런 목소리다. 이렇게 넓은 농지라면 분명 사람 손으로 불가능할텐데 이 나라에서도 기계화 영농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이 들판을 보면서 나는 왜 소피아 로렌이 주연을 맡았던 <해바라기>란 영화가 루마니아를 배경으로 찍었다고 생각을 했을까? 앙드레이에게 그 영화를 찍었던 해바라기 밭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당연히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고. 나중에야 그 배경이 우크라이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커피 한 잔 마셨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켰는데 에스프레소가 나왔다.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이람? 그럼 주문을 받을 때 아메리카노가 없다고 해야지, 일단 주문을 받아 놓고 다른 커피를 주다니? 그건 애교로 봐줄만 했다. 더 황당한 일은 휴게소 건물 안에서 마구 담배를 피워댄다는 것이었다. 루마니아 사람들 담배를 너무 좋아한다. 담배피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았다. 월급으로 800불을 받는 사람이 하루 한 갑씩을 핀다면 월급의 15%는 담배값으로 지불해야 한다.

 

 

 

콘스탄짜는 흑해(Black Sea)에 면해 있는 루마니아 제 2의 도시다. 인구 30만명이 사는 큰 도시며, 바닷가에 있어 해상 물동량이 집결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콘스탄짜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멈췄다. ‘라 프로탑(La Protap)’이라는 현지 식당에서 루마니아 식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이 식당은 꽤 유명한 곳인데, 이런데서 식사할 정도면 루마니아에선 부자에 속한다 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과 찍은 사진으로 건물 입구를 도배한 것을 보아선 이곳 주방장이 유명한 인물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식당에는 동물 박제 장식이 많았고 전체적으로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겨 맘에 들었다.

 

우선 식전주로 팔링카(Palinca)를 한 잔씩 시켰다. 도수가 30도를 넘는다 하는데 테킬라같은 향이 있다. 그리곤 로컬 맥주인 우르수스(Ursus)를 시켜 목을 축였다. 우르수스가 무슨 뜻이냐 물었더니 곰(Bear)이라 해서 더 정감이 갔다. 우리 곰탕과 비슷한 수프가 압권이었다. 시오르바 드 부르타(Ciorba de Burta)라 불리는 이 수프는 돼지 다리 뼈를 푹 고운 물에 소 위 일부인 양을 썰어 넣어 끓인 것이다. 큰 그릇에 담은 수프를 남기지 않고 모두 먹었다. 여기에 다대기만 넣으면 아주 훌륭한 곰탕이 될 것 같았다. 메인 메뉴로는 양고기(Mutton)를 시켰는데 양도 적고 음식이 좀 짰지만 맛은 그런대로 좋았다.

 

 

  

 

 

 

 

 

 

망갈리아에 있는 새턴(Saturn) 호텔에서 이틀을 묵었다. 시골에 있는 호텔이지만 별 다섯 개 호텔이라 자부심이 강했다. 호텔 외관과 룸은 그런대로 훌륭했다. 하지만 복도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방을 찾기가 어려웠고 방안에서도 카드키 꼽는 곳을 찾아 5분은 허비한 것 같았다. 시골 호텔다웠다. 출국 전날은 부카레스트로 나와 포엔샤 그랜드 호텔에 머물렀고 호텔 근처에 있는 다미란 한국 식당에서 소주를 겯들여 김치만두 전골로 푸짐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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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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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니카 2013.08.09 1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음 본 루마니아 사진, 다른 동유럽 국가와 분위기가 닮은 듯 다른 듯 ...꽤 흥미롭네요.

  2. 보리올 2013.08.09 14: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루마니아 사람들은 라틴계로 로마 후예라는 자부심이 무척 강하지요. 그들은 자기들 문화가 다른 슬라브계 동구 국가완 상당히 다르다 생각하지 않을까요?

  3. 테레비소녀 2013.08.09 2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잘보고갑니다..~오늘역시 뜨거운하루..잘보내셨나요?-_-;;;

  4. 보리올 2013.08.10 03: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월 초순이면 한여름 무더운 날씨에 폭염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여름 휴가도 시작되었겠네요. 이제 머지 않아 서늘한 날씨가 오지 않겠습니까? 무더운 여름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5. 설록차 2013.08.11 1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루마니아에도 한국식당이 있다니 교민들이 꽤 있나 봐요...덕분에 지도책을 펴보니 불가리아 위에 있는 나라네요...지도책을 놋북 받침으로 쓰고 있습니다..ㅎㅎ

  6. 보리올 2013.08.12 0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짧은 출장을 가서 먹고 자고 한 기록이라 내용이 없습니다. 부카레스트에는 한국식당이 몇 군데 있는 것 같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