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과 둘이서 이 여행을 계획하게 된 것은 내가 큰 맘 먹고 끝까지 읽은 영문소설 <Latitude of Melt> 때문이었다. 이 책은 노바 스코샤 태생의 작가, 존 클락(Joan Clark)이 세인트 존스(St, John’s)에 정착해 2000년 출간한 것이다. 1912년 타이태닉호 침몰에서 살아남은 한 여자아이의 일생을 그렸다. 오로라란 이름의 아이는 어부 가족에 입양되어 드룩(Drook)이란 마을에서 성장했고, 등대지기와 결혼해선 케이프 레이스(Cape Race)에서 아이 둘을 낳아 키웠다. 이 케이프 레이스는 실제로 타이태닉호가 침몰하면서 보낸 조난신호를 처음으로 잡았던 육상기지였다. 마지막 장을 넘기며 이 책의 배경이 되었던 곳을 가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고 그것이 여행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었다.

 

핼리팩스에서 포터(Porter) 항공편을 이용해 세인트 존스(St. John’s)로 날아갔다. 포터 항공은 사실 처음 타보았다. 토론토를 중심으로 캐나다 동부에 많이 취항하는 포터 항공은 규모 면에선 캐나다에서 세 번째로 크다고 한다. 70인승 프로펠러 항공기에 올랐다. 포터 항공은 국내선임에도 기내 서비스로 맥주나 와인을 제공한다. 다른 항공사에선 적어도 6불은 받을 것이다. 밤늦게 도착하는 비행기인데도 무슨 이유인지 40분이나 연착을 했다. 공항에서 렌트카를 받았다. 600km밖에 뛰지 않은 새차라 기분이 좋았다. 세인트 존스 시내에 예약한 호텔로 향했다.

 

아침에 호텔을 나와 케이프 스피어(Cape Spear) 등대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도심을 벗어나 어느 정도 경사를 오르자, 세인트 존스 시내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했다. 알록달록한 색깔을 가진 집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케이프 스피어는 안개에 가려 겨우 형체만 식별할 수 있었다. 바다도 보이지 않았다. 원래 안개가 짙은 지역이라고 들었지만 이건 좀 너무했다. 그래도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새로 지은 등대와 옛 등대를 차례로 둘러보았다. 선물 가게나 다른 시설은 모두 문을 닫았다. 꽃피는 5월인데도 여긴 관광 시즌이 되기엔 너무 이른 모양이다.  

 

아발론 반도 남서쪽으로 향하는 10번 도로(Route 10)를 타고 남으로 이동했다. 내비나 지도의 도움없이 감으로 10번 도로를 찾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다. 먼저 페리랜드(Ferryland)부터 들렀다. 1621년에 마을이 형성되었다니 캐나다 여타 지역과는 생성연대가 완전 다르다. 황량한 해안가에 집 몇 채 있는 것이 전부였다.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는지 배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차를 세우고 빨간 등대가 서있는 곳까지 걸어 들어갔다. 여기도 온통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빨간 등대만 겨우 식별할 수 있었다. 여름철이면 이 등대에서 바구니에 넣어 파는 피크닉 런치(Picnic Lunch)가 유명하다고 하던데 이 마저도 문을 열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공짜로 나온 맥주 한 캔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미국이나 캐나다 국내선에선 이런 서비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세인트 존스는 도심 전체가 형형색색의 페인트를 칠한 건물과 주택들로 가득하다.

알록달록한 형상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도시다. 첫날은 그냥 맛보기로 그 일부를 보았을 뿐이다.

 

 

 

 

 

케이프 스피어는 세인트 존스에서 유명 관광지로 손꼽히는데 안개 속에 모습을 감추곤 우리 앞에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았다.

 

10번 도로는 아일랜드 이주민들의 고단한 숨결과 역사가 스며있는 곳이라 아이리쉬 루프 드라이브(Irish Loop Drive)라고 불린다.

 

 

 

 

 

 

 

 

  페리랜드는 인구 465명을 가진 조그만 어촌 마을이다. 하지만 해안 구릉위에 빨간 등대가 있어 유명해진 곳이다.

그 등대에서 파는 피크닉 런치를 먹어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문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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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4.10.10 09: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뭔가 미스터리 영화에 나올듯 한 으스스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5월이래도 꽤 추웠을 것 같아요..

    • 보리올 2014.10.11 0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뉴펀들랜드는 늘 안개도 짙고 대지도 황무지로 덮여 있으니 으스스한 분위기를 느낄만 할 겁니다. 그래도 전 그런 풍경에 마음이 편하던데요.

  2. justin 2014.11.10 09: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동차로 캐나다 횡단을 했지만 뉴펀들랜드를 앞에 놓고 노바스코샤에서 다음을 기약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아무래도 일정상 페리를 타고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너무 길었습니다. 아버지 블로그를 통해서 그 아쉬움을 달래야겠습니다.

    • 보리올 2014.11.10 22: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 그때 뉴펀들랜드까지 갔더라면 완벽한 캐나다 대륙 횡단이었는데 말이다. 나중에 나를 데리고 한번 더 하라는 신의 계시 아니겠냐?

 

세인트 존은 뉴 브런스윅(New Brunswick) 주에서 가장 큰 도시다. 주도인 프레데릭톤(Fredericton)보다도 크다. 세인트 존 자체 인구는 7만 명이라 하지만 광역으로 치면 12만 명에 이른다. 이 정도 인구로 한 주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되다니 우리 개념으론 이해하기 힘들다. 세인트 존은 1785년 미국 독립전쟁에 반대한 국왕파(Loyalist)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번영을 이뤘다. 그 해에만 모두 11,000명이 들어왔다고 하니 당시 인구로 따지면 엄청난 유입이다. 이 도시를 로얄리스트 시티라고 부르는 이유도, 당시 로얄리스트들의 이동 경로를 연결해 로얄리스트 트레일이라 부르는 것도 모두 이에 기인한다.

 

이 도시를 캐나다 가장 동쪽에 있는 뉴펀들랜드의 세인트 존스(Saint John’s)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두 도시는 이름이 비슷할 뿐, 엄연히 다른 도시다. 그래서 세인트 존 시의회에서는 1925년 세인트 존스와 혼동을 막기 위해 ‘St. John’이라 축약해 쓰지 않고 ‘Saint John’이라 표기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 혼동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막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우리는 마켓 스퀘어(Market Square) 인근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이 지역엔 고풍스런 건물들이 많았고 길거리에 세워놓은 목조상도 많았다. 마켓 스퀘어에는 또한 현대적인 쇼핑몰과 레스토랑이 밀집되어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무스헤드(Moosehead)란 맥주가 생산되는 곳도 여기다. 가끔씩 마셨던 맥주가 여기서 생산된다니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처음엔 핼리팩스에서 맥주를 만들다가 1917년 핼리팩스 대폭발 이후 세인트 존으로 장소를 옮겨 무스헤드란 브랜드를 생산하게 되었다고 한다.

 

트리니티 교회를 들렀다가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멕시코 식당을 찾았다. 타코 피카(Taco Pica)란 식당이었는데, 세인트 존에선 꽤나 유명한 모양이었다. 멕시코 스타일의 내부 장식이 먼저 눈에 띄었다. ‘Where to eat in Canada’에 소개된, 그리고 2008년 프로그레스(Progress) 지에 동부 지역 최고 식당으로 선정되었다는 식당치고는 너무 한산해 보였다.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검정 콩이 들어간 타코를 시켰는데 맛있었다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그런대로 먹을만 했다.

 

 

세인트 존 도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빅 핑크(Big Pink)라 이름 붙인 핑크빛 2층 버스였다.

핑크빛 색상이 도시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것 같았다.

 

 

사람이 끄는 인력거가 도심에 등장해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앙증맞은 등대 하나가 세워져 있는 워터프론트에선 마침 비치 발리볼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마켓 스퀘어 주변엔 고풍스런 건물들이 즐비했다.

특히 바버스 제너럴 스토어(Barbour’s General Store)란 가게가 눈에 띄었다.

이 가게는 원래 여기서 북쪽으로 100km 떨어진 곳에 있던 건물을

1967년 캐나다 연방 탄생 100주년과 회사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이곳으로 옮겨다 놓았다 한다.

 

 

마켓 스퀘어에 있는 알 하우스와 세인트 존에서 생산되는 무스헤드 맥주

 

 

 

 

 

세인트 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바로 이 조각공원이었다.

약간은 해학적 분위기를 풍기는 조각상들이 도심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너무나 맘에 들었다.

 

대화재로 소실된 트리니티 교회를 1880년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문이 닫혀 있어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다.

 

 

 

세인트 존에서 모처럼 멕시코 음식을 먹기 위해 찾아간 타코 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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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4.04.16 16: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두 도시를 착각했었어요...뉴 브런스윅과 뉴펀들랜드가 다른 주인지 몰랐었거든요...ㅜㅜ
    테잌어웨이도 아닌 식당이 종이컵을 쓰다니~품위없어 보이잖아요..
    한국 대도시 웬만한 동 인구도 10만이 넘을텐데요....^^

    • 보리올 2014.04.16 16: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두 도시의 이름이 워낙 비슷해서 여기 사람들도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캐나다에서 인구 10만이 넘는 도시는 그리 많지 않지요. 전부 50개 정도가 될 겁니다.

 

이런 것도 여행이라 하면 실소를 머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넓은 의미로 본다면 집을 떠나는 것이 모두 여행이 아닐까 싶다. 평소에 집사람과 여행을 함께 하는 경우가 드문 편이다. 밖으로 나도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집사람 성격에다 둘의 여행 스타일이 너무나 달라 보통은 나 혼자서 산에 오르거나 오지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 노바 스코샤에 살면서 해가 바뀌기 전에 아이들이나 보겠다고 밴쿠버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우리 둘만의 이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집사람을 동행하기는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밴쿠버에서 며칠을 보내고 노바 스코샤로 돌아가는 길에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 토론토에서 발목이 잡히게 되었다.

 

토론토 공항에서 비행기를 내려 핼리팩스행 게이트를 찾아갔더니 핼리팩스 지역에 엄청난 눈폭풍(스노스톰)이 불어 모든 항공편이 취소된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에어 캐나다에서 제공한 호텔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토론토 날씨도 장난이 아니었다. 영하 13도라는 기온은 그렇다 치더라도 바람이 쌩쌩 불고 눈발이 세차게 날려 밖으로 나가기가 어려웠다. 토론토 공항 근처에 있는 크라운 플라자(Crowne Plaza) 호텔에 진을 치고 식사를 하거나 맥주를 축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집사람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일정 차질로 빚어진 짜증과 걱정을 모두 날려버릴 수 있었다. “우리 신혼여행 온 것 같지 않아요?”하는 소리에 말이다.

 

핼리팩스로 가는 비행기는 다음 날 오후 늦은 시각에 출발하는 것으로 잡혔다. 아침 일찍 공항으로 나가 짐을 부치고 남은 시간을 어찌 보낼까 고민하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토론토 시내에서 커피 한 잔을 하고 돌아오자는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일부러 시간이 많이 걸리는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 보기로 한 것이다. 지도에서 대충 눈대중으로 찍은 우리의 목적지, 로얄 온타리오 박물관까지는 무사히 갔다. 마침 특별전으로 중국 진나라 병마용 전시가 있었지만 거기선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구경을 할 수는 없었다. 그저 길 건너편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곤 다시 공항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방문한 토론토 여행이 너무 싱겁게 끝나긴 했지만 이번에는 이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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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NC-eh 2014.04.05 1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사는 동네가 누군가에겐 이런 추억이 있는 여행지네요.

    • 보리올 2014.04.05 13: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기치 못한 사유로 낯선 곳에서 하루를 묵는 의외성이 있었지요. 당시는 좀 황당하기도 했지만 지나고 나니 모두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오랜 만에 유럽으로 출장을 떠난다는 설레임을 안고 다시 찾은 브뤼셀. 마지막으로 유럽을 다녀온 지가 언제였던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옛날 여권을 꺼내 입국 스탬프를 확인해 보았더니 마지막 스탬프가 찍힌 것이 2003 3월이었다. 정확히 8년이란 세월을 훌쩍 건너 뛰고 다시 유럽을 찾게 된 것이다. 1988년부터 만 5년간 독일에서 살았던 나는 그 후에도 자주 출장을 갔었기 때문에 유럽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동안 얼마나 변했을까 내심 궁금하기는 했다.

 

2011 3 13일 브뤼셀에 도착해 3 17일 그곳을 떠나 독일로 갔다. 핼리팩스에서 몬트리얼로, 몬트리얼에서 다시 미국 뉴저지 뉴왁(Newark)으로, 그리곤 뉴왁에서 브뤼셀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가 이륙한지 한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핼리팩스 상공을 날고 있다는 운항 정보가 단말기에 나타났다. 이렇게 하루 종일 뺑뺑이를 돌리고 제자리로 왔는데 그래도 항공권 가격은 훨씬 싸지니 이 무슨 요지경 세상인가 싶었다.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런던 상공을 날고 있다고 알린다. 하늘이 밝아지면서 햇살이 구름 위를 비추기 시작했다. 아래로는 구름 바다가 펼쳐져 런던의 흔적도 볼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브뤼셀 공항은 예상외로 사람들로 붐볐다. 유럽 연합의 수도라서 그런지, 아니면 어떤 행사 때문에 일시적으로 방문객이 많아 그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잔뜩 구름을 머금은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우중충한 날씨였다.

 

 

 

공항에서 택시를 탈까, 버스를 탈까 잠시 고민하다 여행의 묘미는 역시 버스라는 생각에 버스를 택했다. 회사 경비 몇 푼 아꼈다는 자부심도 좀 들었고. 난 어느 도시에 가던지 버스만 제대로 탈 수 있다면 이 세상 어디든, 어떤 종류의 여행이라도 해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버스가 내겐 외지에서의 적응력을 가늠하는 하나의 척도라고나 할까.

 

 

버스에 오르며 기사에게 다운타운으로 가냐고 확인하고 탔는데도 도심과는 좀 떨어진 지하철 역에서 내리라고 한다. 좀 황당하긴 했지만 종점이라니 별 도리가 없었다. 공항에서 구한 지도에서 현위치를 확인하곤 가방을 끌고 시내로 걸었다. 한 시간쯤 걸어 호텔에 도착한 것 같았다. 그 덕분에 그랑 플라스(Grand Place)도 구경하며 지나쳤고 도심의 윤곽도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이번 유럽 여행은 회사 업무와 관련한 전시회가 브뤼셀에서 열리기 때문이었다. 낮에는 전시회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저녁 시간을 이용해 브뤼셀 도심을 걸어볼 기회가 있었다. 브뤼셀도 사실 초행길은 아니었다. 독일에서 근무할 때 두 번인가, 세 번을 여행삼아 다녀간 적이 있다. 그 때도 그랑 플라스 광장의 아름다움에 놀랐고, 오줌싸개 동상의 초라함에 실망했던 적이 있었다. 그 외에 엑스포를 기념해 세웠다는 분자 형태의 대형 조형물, 아토미엄(Atomium)을 보았던 기억이 전부였다. 그래도 전에 왔었던 곳이라고 훨씬 마음의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내가 묵은 곳은 베드포드(Bedford) 호텔이었는데 이름만 별 네 개 호텔이지, 시설이나 서비스는 너무 형편없었다. 우리는 하루에 €150 유로로 예약을 했지만 방에는 하루 숙박비가 €260 유로라 버젓이 적혀 있었다. 솔직히 시설은 캐나다 모텔보다도 훨씬 못해 보였다. 외국에서 단체 여행을 온 고등학생들이 방에서 무슨 놀이를 하는지 괴성을 지르며 시끄럽게 굴었다. 인터넷도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사용이 쉽지 않았고,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아 찬물로 샤워를 해야 했다. 방에선 쾨쾨한 냄새가 어찌나 진동을 하던지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은 호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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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돌아가는 날이 밝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했다. 공기가 제법 쌀쌀하긴 했지만 여행 중에 좋은 날씨는 굉장한 행운이다. 렌트카를 돌려주러 가는 길에 저지 시티에서 아침 일출을 맞았다. 허드슨 강을 건너 맨해튼 스카이라인을 타고 떠오르는 태양은 그리 장엄한 광경을 연출하진 않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에게는 뉴욕이 주는 하나의 보너스라 할만 했다.

 

 

 

 

 

렌트카를 반납하고 패스를 타고 맨해튼으로 나갔다. 샌디의 피해로 지하철이 운행하지 않는 역이 있음에도 안내문조차 찾기 힘든 불편이 생각나 33번가 지하철 역사를 사진으로 남기려고 카메라를 꺼냈다. 바로 보안요원 한 명이 달려오더니 지하철 역사내 사진 촬영은 안된다고 손을 내젓는다. 참으로 희한한 세상이다. 여기에 무슨 기밀이 있다고. 그렇다고 내가 그만 사람인가. 친구가 저리로 사이 지하철 입구 사진을 한 장 박았. 

 

 

공항으로 가긴 시간이 너무 일러 한인 타운에서 시간을 보냈다. 파리바게트로 가서 내가 좋아하는 단팥빵으로 배를 채웠다. 여기 빵과는 완전 다른 맛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 다음은 교촌 치킨에 가서 닭다리를 뜯었다. 집사람이 또 뭘 먹냐고 했지만 단팥빵은 간식이지 점심이 될 수는 없지 않느냐 하며 통닭을 시켰다. 우리가 예상했던 치킨과 다르게 나오긴 했지만 매콤한 맛에 먹을만 했다. 뉴욕만 돼도 한국 음식에 관한 한 천국이나 다름없다

 

 

 

                                                                                                                                                                                                                                                                                                                                                                       

지하철로 125번가로 이동해 거기서 공항가는 M60 버스를 탔다. 그리 시간이 많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공항에 늦게 도착했지만 비행기 출발이 시간이나 늦춰진다. 이륙을 기다리는 비행기들이 무척 많았다. 엄청 바쁜 공항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뉴욕을 때의 역순으로 몬트리얼을 경유해 핼리팩스로 돌아왔다.

 

 

 

 

 

 

 

<여행 요약>

 

Ü 여행지 : 뉴욕이 주 목적지였고 거기서 3일을 보냈다. 중간에 필라델피아 롱우드 가든과 메사추세츠 케임브리지, 보스톤을 다녀오는데 이틀을 할애했다.

Ü 여행 기간 : 2012 11 10일부터 11 14일까지 4 5일의 일정으로 갔다.  

Ü 교통편 : 핼리팩스 ~ 뉴욕 구간은 당연 항공편을 이용했고, 뉴욕에서는 지하철을 타고 움직였다. 필라델피아, 매사추세츠를 갈 때는 렌트카를 빌렸다.

Ü 숙박편 : 지인의 도움으로 호보켄의 W 호텔을 할인 요금으로 잡을 수 있었고, 다른 지역에선 현지 호텔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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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가네 2013.03.07 09: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여행이었네요. 부럽습니다.
    저희가족도 5월에 뉴욕가족여행갑니다.
    렌트카 추천해 주실수 있나요.
    JF케네디공항에서 가까운 한인렌트카면 좋겠습니다.
    영어가 부족해서...

  2. 보리올 2013.03.07 09: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죄송해서 어쩌죠. 솔직히 뉴욕의 한인 렌트카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전 회사에서 거래하는 렌트카 회사(엔터프라이스)의 가격과 다른 회사의 온라인 가격을 조회해 보고 그 중 낮은 금액으로 결정을 합니다. 공항이나 맨해튼에서의 렌트 가격이 너무 비싸 그 때는 뉴저지의 저지시티에서 차를 빌렸는데, 맨해튼의 절반 정도 되더군요. 공항에서부터 차가 필요하면 싸게 빌리기는 어려울 겁니다. 참, 맨해튼 구경하실 때 렌트카 있으면 무지 불편합니다. 숙소에 짐을 두고 지하철 이용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