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덴마크] 코펜하겐 ⑩ ; 우리 구세주 교회 & 크리스티아니아

여행을 떠나다 - 유럽

by 보리올 2024. 6. 5. 14:26

본문

 

 
운하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크리스티안스하운(Christianshavn)으로 들어섰다. 1696년 크리스티안 4세(Christian IV) 당시 지어진 우리 구세주 교회(Church of Our Saviour)로 가기 위해서다. 나선형 첨탑이 우뚝 솟은 바로크 양식의 우리 구세주 교회는 제법 위엄이 있어 보였다. 교회 자체는 램버트 반 하벤(Lambert van Haven)이 설계했지만, 첨탑은 교회가 완공된 이후 1752년에 라우리츠 데 투라(Lauritz de Thurah)의 설계로 지어졌다. 당시 국왕이었던 프레데릭 5세(Frederik V)가 첨탑 완공식에 참석해 직접 첨탑까지 오르기도 했다. 일설에는 나선형 계단이 설계와 반대로 공사가 된 것을 알고 라우리츠가 첨탑에서 뛰어 내렸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 그는 이 첨탑이 완성된지 7년 뒤에 죽었다고 한다. 교회는 무료 입장이지만 첨탑은 돈을 내야 했다. 그것도 온라인으로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올라갈 수가 없었다. 급히 현장에서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고 한 시간을 기다린 뒤에야  올라갈 수 있었다. 90m 높이의 첨탑엔 계단 400개가 있는데, 그 중 마지막 150개는 바깥으로 나가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빙빙 돌며 올라야 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면 좀 무서울 것 같았다. 360도 파노라마 조망이 가능한 곳이라 코펜하겐이 한 눈에 들아왔다. 
 
역시 크리스티안스하운에 있는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로 향했다. 1971년에 이 지역에 있던 군막사 철거 지역을 일군의 히피족과 예술가, 홈리스,약물중독자들이 무단 점유를 시작하면서 프리타운(Freetown)으로 선언한 마을이다. 보통 크리스티아니아 앞에 프리타운을 붙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엔 불법으로 금지했던 마리화나 유통이 공공연히 이뤄졌던 장소였다. 그 이후 자유와 창작을 기치로 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했고 현재는 약 900명이 거주하는 예술촌으로 변모했다. 그 덕에 매년 5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오는 핫한 관광지로 대우를 받고 있다. 크리스티아니아의 면적은 약 84 에이커. 카페와 바가 많고 수시로 마켓이 열린다. 가옥  대부분도 주민들이 독창성을 발휘하여 직접 지었고, 건물 외관을 알록달록하게 칠해 마을 전체를 예술로 채운 느낌을 줬다. 난 톡톡 튀는 외관과 벽 장식에 눈이 즐거워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휘집고 다니는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 눈빛이 역력했다. 아무리 마리화나와 알코올을 제외한 마약이나 무기를 소지할 수 없다곤 해도 차가운 눈초리에 서둘러 마을을 벗어났다. 
 

우리 구세주 교회 내부에 있는 제단과 1698년에 만든 파이프 오르간이 그나마 인상적이었다.

 

우리 구세주 교회의 나선형 첨탑을 걸어올라 코펜하겐의 도심 풍경을 한 눈에 담았다.

 

퇴락한 마을 모습과는 달리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느껴진 크리스티아니아는 카메라를 든 관광객을 그리 반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덴마크 사회주의 문학가였던 마틴 안데르센 넥쇠의 석상을 발견했다.

 

크리스티안스하운 주변의 운하 풍경

 

크리스티안스하운 한 귀퉁이에 브로엔스(Broens)란 길거리 푸드 코트가 있어 맥주와 음식으로 휴식을 취하는 사람이 많았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