롭슨의 변덕스러운 날씨를 체험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첫날 산행을 마치고 캠핑장으로 돌아왔더니 그 사이에 모든 경치가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리더니 오래지 않아 청승맞게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롭슨 정상도 구름 속에 모습을 감춰 버렸다. 롭슨이 자랑하는 버그 호수 트레일(Berg Lake Trail)로 들어가야 하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어쩌란 말인가. 산에서 비나 눈을 맞는 것은 다반사라 하지만 우리는 지금 방송을 위한 프로그램을 촬영하고 있는데 비가 오면 이 웅장한 산세와 아름다운 풍경이 모두 구름에 가려 버린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가 들어갈 버그 호수 트레일은 캐나다 로키에서 경치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여름에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야영장을 예약하지 못하면 들어가기가 어렵다. 산행기점은 롭슨 공원 안내소에서 아스팔트 길을 따라 1km를 더 들어가야 한다. 롭슨 강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된다. 굉음을 내며 흘러내리는 롭슨 강을 따라 오솔길을 걷는다. 이 구간은 경사도 그리 급하지 않아 산책 코스로는 그만이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은지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강물을 벗삼아 키니 호수까지 올랐다.
버그 호수까지는 편도 거리 21km에 등반고도가 780m에 이른다. 야영에 필요한 등짐 무게를 생각하면 왕복에 2~3일은 잡아야 한다. 이 트레일 안에는 모두 일곱 군데의 크고 작은 야영장이 있다. 우리가 하룻밤을 묵을 야영장은 산행기점에서 11km 지점에 있는 화이트혼 야영장. 버그 호수 주변의 야영장 예약이 여의치 않아 중간지점에 잡을 수밖에 없었다. 지붕과 난로가 준비된 쉘터가 있었고 야외 화장실도 설치되어 있었다. 빗방울이 텐트를 치는 소리를 들으며 모처럼 텐트 속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도 하늘이 흐리긴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묵은 야영장에서 10km를 더 올라야 버그 호수에 닿는데 여기서부터 사실은 급경사가 시작된다. 아이들은 여기에 쉬고 있으라 하고 한 대장과 둘이서 버그 호수로 출발했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느라 숨을 헉헉 몰아 쉴 즈음에 세 개의 커다란 폭포를 만났다. 화이트 폭포와 풀 폭포, 그리고 황제 폭포가 바로 그것이었다. 폭포의 높이도 높이지만 쏟아져 내리는 수량이 엄청났다. 우리가 걷고 있는 산길이 ‘천개 폭포의 계곡(Valley of a Thousand Falls)’이라 불리니 폭포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 계곡 양쪽으로 이름도 없는 실폭포들이 쉬지 않고 물을 쏟아 붓는다.
황제 폭포를 올라서면 산길이 유순해진다. 힘든 구간이 끝난 것이다. 조용히 굽이치는 물길을 따라 초원이 펼쳐졌다. 세찬 비바람이 온몸을 때렸다. 해발 1,641m에서 맞는 비바람은 그런대로 참을 수 있었지만 롭슨의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버그 호수가 시작되는 지점에 미스트 빙하가 먼저 나타나고 그 뒤로 버그 빙하가 호수면에 꼬리를 맞대고 있다. 빙하가 얼음 덩어리 채로 떨어져 호수에 떠다니기도 한다. 여기서 발길을 돌렸다. 세찬 비바람에 촬영도 성가셨고 몸이 떨려와 오래 있기도 힘들었다. 빨리 아이들이 기다리는 화이트혼 야영장으로 내려가 뜨거운 라면 국물로 몸을 녹여야겠다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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