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으로 몸이 피곤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휴대폰이나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할 수 없어 간당간당한 배터리 잔량 때문에 가슴을 졸이며 사진을 찍어야 했다. 그런 마당에 3일차 구간 뒤로는 위클로 웨이의 풍경이 점점 평범해진다는 이야기에 정오쯤 도착하는 글렌달록(Glendalough)에서 트레킹을 마치기로 했다. 위클로 웨이 상에 있는 마을 중에서 오직 글렌달록에서만 하루 두 편인가 더블린(Dublin)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 이유도 예정보다 일찍 마치는데 한몫했다. 나머지 구간은 추후 형편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위클로 웨이로 돌아가기 위해 아침 6시경에 라운드우드(Roundwood)를 출발했다. 노숙이다 보니 엄청 일찍 일어났고 어느 가게도 문을 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침을 굶어 속은 허전했으나 전날 구간을 끊은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도중에 도로 양쪽으로 블랙베리(Blackberry)가 지천으로 열려 있었다. 이것으로 배고픔과 갈증을 채우라는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블랙베리 선물에 어설픈 일출도 용서가 되었다.
라운드우드에서 글렌달록까지는 12km 거리에 네 시간 정도 걸린다. 전날 벗어난 위클로 웨이로 들어섰다. 4km 떨어진 올드브리지(Oldbridge)까지는 대부분 아스팔트 도로를 걸었다. 실제 애번모어 강(Avonmore River)을 건너는 조그만 다리가 있었다. 캠핑장도 하나 있었다. 여기서 글렌달록까지 8km 남았다는 이정표도 보였다. 마을 주변으로 푸른 초원이 넓게 분포하고 있었고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경도 펼쳐졌다. 오르내림이 별로 없는 산길이라 그리 힘든 줄로 몰랐다. 가끔은 사다리로 돌담을 넘어 개인 소유의 목초지로 들어가기도 했다. 오전 11시가 되기도 전에 글렌달록에 도착했다. 게시판에 있는 지도로는 위클로 웨이 시작점인 말레이 공원(Marlay Park)에서 50km를 내려온 지점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오후 4시 30분에 있다는 버스를 기다리며 호텔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글렌달록 방문자 센터 인근에 있는 게이트웨이(Gateway) 주변을 돌며 모처럼 유유자적 여유를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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