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씨가 계속되어 상쾌한 기분으로 포다라 산장(Rifugio Fodara)을 나섰다. 둘째 날 트레킹은 스코토니 산장(Rifugio Scotoni)까지 꽤 길게 걸어야 한다. 산행은 급경사 내리막으로 시작했다. 페데류 산장(Rifugio Pederu)까지 산길과 비포장도로를 바꿔가며 해발 고도를 500m나 낮춘다. 다시 오르막을 치고 오를 생각을 하면 내리막이 좀 아쉽긴 하다. 페데류 산장에서 다시 길게 오르막을 탄 후에 제법 넓은 비포장도로로 합류하면서 평탄한 길을 걷게 되었다. 그 길 끝자락에 있는 파네스 산장(Rifugio Fanes)에서 점심을 먹었다. 미트볼처럼 생긴 야채 덤플링을 시켰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됐지만 그리 길지는 않았다. 십자가가 세워진 지점부터 평탄한 길이 이어져 사방을 둘러보는 시선에 여유가 생겼다. 왼쪽으로 호수가 하나 나타났다. 호수가 많지 않은 돌로미티에서 이 정도 크기면 제법 큰 호수라 할 만했다.
조그만 산장을 지나고 개울을 건너자, 우리 양쪽으로 암봉들이 줄지어 늘어섰고 그 사이를 넓은 초원이 자리잡고 있는 멋진 지형이 나타났다. 초원에는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대지를 하얗게, 노랗게 수를 놓고 있었다. 초원을 거닐며 마치 별천지를 사열하는 기분이 들었다면 내가 오버하는 것일까? 가슴이 먹먹한 돌로미티 풍경에 지루한 줄도 모르고 한참을 걸었다. 로치아 고개(Col de Locia)부터는 풍경이 조금씩 달라진다. 로치아 고개에서 급한 경사를 내려서 나무 다리로 계류를 건너니 스코토니 산장으로 오르는 도로가 나왔다. 여기서부터 꽤 가파른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라가주오이(Lagazuoi)에서 내려오는 스키장 시설물을 보며 30여 분 땀깨나 흘리고 나서야 산장에 닿을 수 있었다. 시설이나 규모는 다른 곳에 비해 열악하지만 푸짐한 음식과 친절한 직원들 덕택에 기분좋게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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