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이 밝았다. 새해를 맞는다는 흥분과 기대보다는 또 한 해가 흘렀다는 서글픈 감회가 앞서는 것은 쓸데없이 나이만 먹기 때문일까? 모처럼 고국에서 맞는 새해인데 홀로 방구석에 처박혀 있을 수는 없는 일. 조심스럽게 동생에게 말을 건넸다. 신정 연휴기간 중에 제수씨를 모시고 남도 여행 가지 않겠느냐고. 돈 버는데 정신이 팔려 휴식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동생에게 안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고, 바쁜 남편이 서운했을 제수씨에게도 남도의 맛있는 음식으로 기분 전환할 기회를 주자는 생각에서 말이다. 둘다 흔쾌히 응해 주었다.

 

2010 1 1, 원주에서 내려온 동생 내외와 청주를 출발해 대전, 무주를 지나 육십령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예전에 백두대간 산마을 사진작업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분이 함양 백전면에 살고 있어 인사나 드린다고 서상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났다. 하지만 함양 백전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눈이 많이 내려 더 이상 진행이 어려웠다. 아쉽지만 차를 돌려 안의로 향했다.

 

 

 

안의는 기와집이 많고 양반 전통이 살아있는 도시다. 더구나 미식가들에겐 안의 갈비찜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참새가 방앗간을 어찌 그냥 지나치랴. 현지 주민들에게 삼일식당을 추천받아 찾아갔다. 사람들로 붐비는 것을 확인하곤 잘 찾아왔다는 안도감이 든다. 갈비찜에 막걸리 한 잔씩 마셨다. 그런데 갈비찜이 그리 맛있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입이 너무 까다로운 편인가?

 

 

 

 

차를 몰아 보성 벌교읍으로 향한다. 내 판단으로는 고속도로를 이용해 사천으로 가서 거기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갔으면 했으나, 차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은 88고속도로를 타고 남원으로 가서 순천을 경유하는 길을 제시한다. 어차피 운전은 동생의 몫. 그 친구는 내비게이션을 철저히 신봉하는 사람이다. 이번에는 기계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다.  

 

벌교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할아버지 한 분을 붙잡고 여자만 가는 길을 물었더니 여자만이 어디냐고 오히려 반문이다. 아니, 여자만은 벌교 앞바다라던데 뭐가 잘못된 것일까? 여자만은 어딘지 잘 모르겠고 벌교에서 굳이 바다를 보려면 어느 마을로 가보라고 마을 이름을 알려준다. 벌교에 오면 확 트인 바다가 사방으로 나타날 줄 알았는데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이람? 촌노가 알려준 마을은 내비게이션을 이용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가 있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 공사가 한창인 곳에 갯벌이 나타났다. 비릿한 바다 내음도 좀 묻어나고 무성한 갈대도 바람에 살랑대며 분위기를 돋군다. 갈대 우거진 둑방길을 거닐며 모처럼 여유를 부려 보았다. 갯벌과 갈대숲, 거기에 일몰까지 더해져 남도 바다의 풍취가 물씬 풍긴다. 동생 내외도 모처럼 팔장을 끼고 둑방길을 걸으며 신혼 분위기를 연출한다.

 

 

 

 

 

 

 

남도 여행을 왔으니 솔직히 먹거리가 가장 관심사 아니겠는가. 벌교의 특상품이라면 바로 꼬막. 어느 집 꼬막 정식이 가장 맛있는지 수소문한 끝에 원조꼬막식당을 찾았다. 원조란 이름이 붙을 정도로 유명한 집인지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룬다. 돈을 쓸어 담는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것인가. 이 식당의 꼬막 정식은 1인분에 15,000원을 받는다. 꼬막으로 요리한 다섯 종류가 나오는데, 통꼬막, 꼬막전, 꼬막회, 꼬막무침, 꼬막탕이 바로 그것이다. 통꼬막과 꼬막무침은 어디서나 먹을 수 있지만 나머지는 솔직히 여기서 처음 시식해 보았다.

 

 

 

 

 

저녁을 마치고 겨울시즌에 보성 차밭에서 열린다는 빛의 축제 현장으로 갔다. 구불구불한 차밭을 따라 전구를 달아놓아 불빛이 현란스럽다. 어디서 몰려 왔는지 차들은 꼬리를 이어 줄을 섰고 싸늘한 밤공기에도 불구하고 가족 나들이에 나선 인파들로 만원이었다. 우리도 전구로 만든 터널을 따라 차밭 아래로 내려가 보았다.

 

 

 

 

 

어떤 축제 현장에도 빠지지 않는 엿장수 각설이들만 없었다면 더 운치가 있었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이 이들 밖에 없단 말인가. 입맛이 씁쓸해진다. 축제 현장 가까이에 있는 펜션에 들러 빈방이 있는지 물었더니 방이 없단다. 보성 유스호스텔에 방을 구해 하루 묵을 수 있었다. 동생과 소주 잔을 기울이며 밤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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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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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3.07.12 0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찍기만 하면 작품이 된다는 보성 차밭이 전구를 달아 빛의 축제 현장이 되는군요...엿장수가 없다면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가족들은 심심할테지요...먹는게 남는거라잖아요...ㅎㅎ 역마살이 있다 하셨는데 산을 타고 오르내리는 건강한 신체와 자연에 대한 호기심, 여행을 뒷받침하는 경제력이 있어야하니 제대로 주인을 만났습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는 멋진 풍경을 직접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남기시는 보리올님이 다른 세계에 살고있는것 같아요... 쬐끔 아니~많이 부럽습니다...^*^

  2. 보리올 2013.07.12 0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에 가는 경우는 남들보다 더 많을 겁니다. 그만큼 캐나다에 있는 산들이 매력적이거든요, 남들보다 여행을 더 다닌다는 이야기는 부분적으로 맞을 겁니다. 요즘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요. 그래도 여건이 허락하면 여행을 통해 사람사는 체취를 맡는 것을 좋아해 길 나서는 것을 무서워하진 않습니다.

  3. justin 2015.12.24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도 여행 가기전에 예비 견학왔습니다 ~ 저도 같은 겨울이라 보성 빛의 축제를 보겠어요!

    • 보리올 2015.12.24 18: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행에 참고가 된다니 다행이구나. 보성 빛의 축제는 12/11일부터 1/24일까지 45일간 다향각에서 한다고 하니 구경 잘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