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로 가는 길에 클리어워터(Clearwater)에 있는 웰스 그레이(Wells Gray) 주립공원에 들렀다. 관광안내센터에서 가이드 이안(Ian)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안과 함께 트로피 마운틴(Trophy Mountain)에 있는 산장으로 당일 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이 하이킹 또한 BC주 관광청의 팸투어 일환이었다. 잘 생긴 강아지 맥스를 데리고 이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헛투헛 하이킹(Hut to Hut Hiking)이란 새로운 개념을 캐나다에 소개한 장본인이다. 그는 이 고장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산을 좋아했다고 한다. 성인이 되어 네팔과 뉴질랜드에서 가이드 생활을 하다가 뉴질랜드 산장 운용 사례에서 착상을 얻어 고향인 클리어워터 산 속에 산장 세 개를 지어 놓곤 하루씩 묵으며 하이킹을 이어가는 방식을 창안했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 관계상 당일 산행으로 트로피 마운틴에 있는 산장 하나만 방문하는 것으로 했다. 일종의 맛보기라고나 할까.

 

이안의 차에 올라 웰스 그레이 주립공원을 관통해 트레일 기점에 섰다. 처음엔 키가 작은 관목숲을 지나더니 곧 고산 지역에 펼쳐진 초원이 나타났다. 고도차가 크지 않아 산행 자체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쉬엄쉬엄 걷다 보니 두 시간만에 산장에 도착했다. 산장엔 식당과 침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하이킹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식재료를 헬기로 미리 올려놓는다고 한다. 침실에는 매트리스와 침낭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이야긴 텐트나 침낭, 매트리스, 음식, 취사구 등이 없어도 산에서 묵을 수 있으니 배낭을 가볍게 꾸린다는 이점이 있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행하는 것이 힘든 사람에게 괜찮은 방식이 아닌가 싶었다. 자연을 즐기려는 사람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에 맞춰 선택의 폭을 넓힌 셈이었다. 식당에서 이안이 만들어준 샐러드와 빵으로 점심 식사를 마쳤다. 오후엔 트로피 마운틴 탐방에 나섰다. 산장 뒤로 펼쳐진 리지에 올라 주변 산세를 감상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파도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간 산세가 눈에 들어왔으나 지리산 천왕봉에서 보는 풍경에 비해선 그다지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웰스 그레이 주립공원 안으로 들어가 트로피 마운틴으로 드는 산행 기점에 섰다.

 

 

어느 정도 고도를 높이자, 알파인 메도우즈(Alpine Meadows)라 불리는 고산 초원지대가 눈 앞에 펼쳐졌다.

 

 

 

트로피 마운틴을 오르는 길에 마주친 식생들

 

 

파도처럼 사방으로 요동치며 뻗어 나가는 산세가 눈에 들어왔다.

 

 

 

트로피 마운틴에 세운 산장에 도착했다. 식재료와 침낭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트로피 마운틴의 리지를 거닐며 주변 산세를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 힘들지 않은 하루 산행을 마치고 하산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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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지진 피해 현장을 제대로 본 것은 카트만두 북서쪽에 위치한 농촌마을, 달마스타리(Dharmasthali)에서였다. 이 마을을 찾게된 것은 우리 나라 원불교에서 운영하는 새삶교육센터가 여기 설치된 인연도 작용했지만, 지진 피해가 제법 큰 마을 중 하나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현장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달마스타리로 접근하는 도중에도 길거리에 무너진 집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하지만 그 정도는 달마스타리에 비해선 약과였다. 달마스타리는 전체 가옥 중 60%가 무너졌다고 했다. 성한 집보다 무너진 집이 더 많다는 이야기 아닌가. 달마스타리 이웃에 있는 파담살이란 마을은 60여 채의 가옥 전량이 파손됐다고도 했다.

 

달마스타리 마을에서 직접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원불교 교무로부터 피해 현황을 설명듣고는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은 정말 폭격을 맞은 것처럼 처참하게 널부르져 있었다. 성한 집을 찾기가 어려웠다. 뭐라 할말을 잃었다. 어떤 사람들은 잔해에서 살림살이를 꺼내고 있었고, 어느 노부부는 허물어진 잔재 위에서 보리를 타작하고 있었다. 어차피 살아난 사람은 질긴 삶을 이어가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노란 캡모자에 검정 선글래스를 쓰고 나락을 까부르는 아낙의 모습이 묘하게 다가왔다. 이것도 슬픔을 이겨내는 한 가지 방편이 아닐까 싶었다. 마침 말레이지아와 타이완에서 왔다는 모 불교단체가 마을 주민들에게 구호품을 나눠주고 있는 현장도 둘러보았다.

 

(사진) 달마스타리로 가는 길에 도로 중앙에 앉아 쉬고 있는 소들을 발견했다.

하필이면 번잡한 도로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사진) 카트만두를 벗어나 달마스타리로 가면서 본 지진 피해 현장들.

 

 

 

 

 

 

 

 

 

 

(사진) 달마스타리는 전체 가옥 중 60% 이상이 손상을 입어 피해가 큰 지역이었다.

 

(사진) 지진 피해 현장에서 보리를 까부르는 아낙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었다.

 

 

 

 

 (사진) 말레이지아와 타이완 불교 단체에서 현지 구호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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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다 2018.09.15 1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진은 끔찍하죠.. 그런데 네팔같은 경우는 피해가 덜한 것 깉아요.. 산업이 발달했다면 훨씬 컸을 것입니다. 빨리 복구되기를 바랍니다

    • 보리올 2018.09.15 17: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제는 많이 복구되었을 겁니다. 이 이야긴 3년 전에 쓴 것입니다. 워낙 흙집이 많았던 지역이라 피해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피부로 느끼지 못 했던 지진의 위력을 보고 저도 솔직히 겁이 나더군요.

 

지진으로 무너져내린 건물 잔해보다도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은 사람들을 보는 것이 더 힘들었다. 건물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공터나 밭에는 천막이나 텐트가 세워져 있었고 그 안에는 주민들, 특히 노인들이 무기력하게 누워 있었다. 한 가구가 들어있으면 최소한 프라이버시는 지켜지련만 보통은 세 가구가 천막 하나를 함께 쓴다고 했다. 천막은 대부분 중국 적십자에서 제공된 것이었다. 중국에선 적십자를 홍십자(紅十字)라 부른다는 것도 네팔에서 알았다. 발빠르게 지원에 나선 중국이 한편으론 고맙기도 했지만 네팔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느 건물 벽면에 붙어있는 공고문의 내용이 궁금해 물어보았더니 피해를 입은 가구를 적어 놓았다고 한다. 행여 구호품이 도착하면 여기에 있는 가구들만 받아야 하는데, 피해 가구를 일일이 확인할 방법이 없어 대상자가 아닌 사람도 구호 물품을 받아가는 모양이었다.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구호품을 받으면 나중에 죽어 지옥에 떨어질 것이란 섬뜩한 경고 문구도 따로 붙어 있었다. 머리를 삭발한 남자들을 가끔 발견할 수 있었다. 네팔에선 직계가족이 죽으면 상주들이 대부분 삭발을 하는 풍습이 있는데, 이들 가족 중에 누군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삭발한 머리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피해 가족들을 위해 임시로 설치한 다른 지역의 천막촌도 둘러 보았다. 다들 궁색한 형편이었지만 표정만은 그리 어둡지 않아 네팔 사람들의 낙천적 기질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 피해 가구를 적어놓은 공고문이 벽면에 붙어 있었다.

 

 

(사진) 머리를 삭발하면 직계가족이 죽었다는 의미인데 그런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

 

 

 

 

 

 

 

(사진) 공터에 마련한 임시 천막촌. 몇 가구가 천막 하나에 공동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사진) 다른 지역에 설치된 천막촌을 찾았더니 여기는 대부분이 노인들이었다.

물을 여과하는 장치가 있어 그래도 한 시름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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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영수 2015.05.22 0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에서는 적십자가 아닌 홍십자라고 부르는것은 일반적으로 중국에서는 붉은색을 표기할 때 일반적으로 붉을적(赤)보다는 붉을홍(红)으로 표기를 합니다,
    그래서 적십자가 아닌 홍십자라고 하는 것이구요. 중국홍십자회는 한국으로 말씀드리자면 대한적십자사와 비슷한 곳이며. 현재 국제적십자.적신월연맹의 일원이기도 하구요.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에서는 이를 국제 홍십자. 홍신월연맹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적십자는 한국. 북한. 일본에서만 사용하는 표기이며. 중국을 비롯해서 대만. 홍콩. 마카오에서는 홍십자로 표기를 하구요. 중국. 대만. 홍콩. 마카오에서는 헌혈버스와 헌혈의 집도 모두 홍십자회에서 운영을 한답니다,
    이슬람권에서는 적십자사를 적신월사라고 하는데요. 이는 십자가가 기독교와 천주교의 상징이라서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을 이용해서 적신월이라고 하구요.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에서는 이를 홍신월이라고 부른답니다,

    • 보리올 2015.05.22 0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세한 설명 너무나 고맙습니다, 김영수 선생님. 제가 그 분야는 거의 아는 바가 없어서요. 하긴 Red Cross를 각 나라에 맞게 우리는 적십자, 중국은 홍십자 하는 식으로 자체적으로 표현한 것일텐데 제가 적십자와 달라 좀 이상하다 생각을 했던 것 같네요.

 

카트만두에서 만난 현지인 친구는 마치 예언자처럼 네팔에선 80년마다 커다란 지진이 일어난다고 했다. 어디서 80년이란 주기가 나왔을까 궁금했는데 예전에 일어났던 한 가지 사건이 떠올랐다. 1934년에 일어난 대규모 지진으로 인해 박타푸르에 있던 문화재가 상당 부분 파괴되었던 적이 있었다. 올해가 2015년이니 꼭 81년 전에 일어난 사건 아닌가. 그래서 그 친구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담담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덜발 광장에 있는 문화재가 모두 부서진 것은 아니었지만 기단만 남겨놓은 채 상부의 탑은 송두리째 사라진 것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그 앞에서 한쪽 발을 들곤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는 대만 봉사단원들의 철없는 행동을 보곤 절로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덜발 광장을 벗어나 사람들이 주거하는 지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긴 상황이 더 나빴다. 무너진 건물들이 한두 채 보이더니 한꺼번에 왕창 무너진 현장도 나타났다. 건물이 서로 붙어있다시피 해서 하나가 무너지면 옆 건물도 도미노 현상을 막을 수 없었으리라. 벽에 금이 가 조그만 충격에도 쉽게 무너져내릴 것 같은 건물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옥상에 놓인 화분은 떨어지지 않고 잘 버티고 있었다. 현지 사람들은 이제 만성이 된 것인지 손을 놓고 여기저기 앉아만 있었다. 얼굴엔 슬픈 표정도 거의 없었다. 굴삭기 한 대만 열심히 무너진 건물 잔해를 퍼담고 있었다. 마침 카트만두의 한 로타리 클럽에서 구호품으로 쌀을 가지고 왔다. 길게 줄을 선 주민들 앞에서 간단한 전달식을 갖는 것 같았다. 서로 어려움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진) 박타푸르 덜발 광장의 모습. 주로 탑이 많은 손상을 입었다.

 

 

 

 

 

 

 

 

 

 

 

(사진) 주민들이 주거하는 지역은 폭격을 맞은 듯 많은 건물들이 무너지고 말았다.

인명 피해도 많았겠고 이재민도 많이 생겼을 것 같았다.

 

 

 (사진) 카트만두 로타리 클럽에서 트럭에 쌀을 싣고와 자체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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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타푸르(Bhaktapur)는 지진 피해가 상당히 심하다고 들었다. 네와르 족이 지은 고풍스런 목조 건축물이 많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인데, 오래된 문화재가 꽤 손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이번 지진으로 문화재 외에도 박타푸르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가옥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박타푸르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네팔 교구청에서 내준 차를 타고 박타푸르로 향했다. 붉은 벽돌로 지은 문 옆에 주차를 하곤 걸어서 박타푸르로 접근했다. 왼쪽에 위치한 인공 연못에선 그물로 잉어를 잡고 있었다. 지나가던 구경꾼도 많았다. 팔짝팔짝 뛰는 팔뚝만한 잉어가 저울 위에 놓이는 즉시 팔려 나갔다. 식량이 부족한 비상 상황이라 잉어잡이를 특별히 허가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좁은 골목을 따라 덜발 광장(Durbar Square) 쪽으로 걸었다. 양쪽으로 더 좁은 골목들이 가지를 치고 있었지만 그저 눈으로 구경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야채 몇 단을 내어놓은 상인이나 면도에 열중하고 있는 이발사도 지나쳤다. 지진으로 내려앉은 전깃줄은 대충 끈으로 묶어 놓았다. 지나는 행인들을 위해 종이에 그려 넣은 해골 표식이 일종의 경고 표시이었고 그 외엔 어떤 안전장치도 없었다. 행인이 알아서 피해가라는 의미같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한쪽으로 기운 건물을 막대로 받혀놓은 현장을 지나며 조금씩 지진 피해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가 예상했던 피해보다는 훨씬 적다는 것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진) 일본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2011년 건설한 카트만두-박타푸르간 4차선 도로.

지진의 영향으로 한쪽 2차선 도로가 1m 이상 주저앉았다

 

 

 

 

 

 

(사진) 박타푸르 초입에 있는 인공 연못에서 그물로 잉어를 잡아 팔고 있었다.

 

 

 

 

 

 

 

 

 

 

 

 

 (사진) 덜발 광장으로 향하는 골목길을 걸었다. 여긴 지진 피해를 많이 받지 않아 사람들의 표정이 그리 어둡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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