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테에서 다라파니까지는 한 시간 거리. 다라파니 초입에서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다. 일행을 먼저 보내고 내가 대표로 남아 검사를 받았다. 검문이라기보다는 허가증을 제시하면 거기에 스탬프를 찍고 장부에 인적사항을 적는 그런 요식 행위였다. 경찰은 그리 친절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트집을 잡지도 않았다. 검문소를 지나면 마나슬루와 안나푸르나 가는 길이 갈린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라르케 패스(Larke Pass) 방향으로 오르면 마나슬루가 나온다. 여기선 4~5일은 잡아야 마나슬루 베이스 캠프에 닿을 것이다. 몇 년 전에 그 길을 걸어 내려온 적이 있어 기억이 났다.

 

학생들의 등교길 행렬을 지나치고 선한 눈빛을 가진 꼬마들과 마주쳤다. 담장에 쌓아놓은 나무 위에 종이를 펴놓고 공부하는 여자아이도 만났다. 이들이 바로 네팔의 미래 희망 아니겠는가. 티망(Temang)까진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되었다. 뒤로는 마나슬루가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채 우리를 굽어보고 있었다. 우람한 산세가 단연 독보적이었다. 조금 있으니 하얀 뭉게구름이 정상을 가려 버렸다. 손목에 찬 고도계로는 해발 2,600m가 넘었지만, 지도에는 티망베시(Temang Besi)라 하여 2,270m라 표기되어 있었다. 지도가 잘못된 것인지, 서로 다른 마을을 의미하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히말라야 다른 곳보다 안나푸르나는 말똥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다. 여기선 운송 수단으로 말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길바닥엔 말라붙은 말똥이 즐비하고 거기서 나는 냄새 또한 하나의 상징물이 되었다. 우리 옆으로 크고 작은 말떼들이 지나가면서 뽀얀 먼지를 일으킨다. 탄촉(Thanchok)을 지나며 우리 앞으로 또 다른 설산이 나타났다. 포터 긴딩의 설명으로는 안나푸르나 3봉이라 하지만 아무리 봐도 지도상으론 안나푸르나 2봉이다. 3봉은 앞으로 2~3일 더 걸어야 우리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네팔 사람들 이야기라고 무조건 믿으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묵을 차메(Chame)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은행도 있고 인터넷 카페도 몇 개 있었다. 급히 메일을 보낼 일이 있어 인터넷 카페에 갔더니 한글 자판은 물론 없었다. 접속 속도가 너무 느려 사이트 하나 여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장난이 아니었다. 겨우 다섯 줄짜리 메일 하나 보냈는데 220루피를 달란다. 1분에 10루피씩 받으니 이 메일 하나 보내는데 22분을 썼다는 이야기다. 우리 나라에 비하면 무척 비싼 셈이다. 하기야 히말라야까지 와서 인터넷을 하겠다는 내가 잘못이지, 인터넷을 하려면 위성을 사용해야 하는 이들을 탓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로지에 든 일행들이 슬슬 신체적 변화를 느끼면서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두 분 스님은 벌써부터 약한 두통을 호소한다. 해발 2,700m의 고도를 넘겼으니 긴장감이 조금씩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부터는 나도 술을 마시지 말자 마음을 먹었지만 포터들에게 네팔 막걸리 창을 사주면서 나도 덩달아 한 잔을 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창을 한 잔 더 마셨다. 이러다가 내가 가장 먼저 뻗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일부턴 3,000m 위로 오르니 무조건 금주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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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으로 팬케이크와 짜파티, 만두, 계란 프라이 등을 시켰다. 꽤나 푸짐한 편이었다. 맛으로 먹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먹을만해서 다행이었다. 로지 주인이 쓰레기를 출렁다리로 가져가더니 강으로 휙 던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대부분 음식물 쓰레기였는데 말이다. 강이 그에겐 쓰레기 처리장이었다. 현지인들의 환경 의식 수준을 보곤 심히 걱정이 되었다. 히말라야가 그들의 생활 터전이긴 하지만 이제 그들만의 소유물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그들에게 쓰레기를 지고 산 아래로 내려가라고 할 수도 없는 일. 산 속에서 쓰레기를 처리할 묘책은 과연 무엇일까. 가슴이 답답했다.

 

산사태 지역에 길을 내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히말라야 산골 마을까지 굴착기를 들여와 시끄러운 기계음을 내고 있었다. 압축공기를 만들기 위해 컴프레서도 요란하게 돌아간다. 예전에는 도로를 놓기 위해 사람들이 망치나 해머로 돌을 깨던 방식에서 이제는 폭약을 사용한 발파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실 재해 복구라기보다는 안나푸르나 라운드 코스 대부분을 잇는 도로를 놓고 있는 것 같았다. 조만간 안나푸르나를 차로 돌아볼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태라면 이 코스를 다시 오기가 힘이 들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제부터 마르샹디(Marsyangdi) 강을 따라 꾸준히 올라서고 있다. 강의 수량도 엄청났고 물이 흐르며 만들어 내는 함성소리도 대단했다. 산길 양쪽으론 수백 미터 낙차를 가진 폭포들이 연이어 나타나 우리 눈을 즐겁게 했다. 우리 나라에 있었다면 대단한 이름을 얻었을텐데 이곳 히말라야에선 그저 이름없는 무명폭포일 뿐이다. 자가트(Jagat)를 지나자 멀리 하얀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산자락을 휘감고 있는 구름인줄 알았는데, 머지 않아 산불이란 것을 알아챘다. 급사면을 태우며 올라가는 산불이라 진압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이럴 때는 시원한 빗줄기가 최고인데 비 내릴 기색은 전혀 없다.

 

(Tal)이란 마을은 강이 에돌아가는 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산자락에 기댄 마을만 보다가 강바닥에 있는 마을을 대하니 기분이 새로웠다. 마을로 내려서면서 높은 위치에서 마을을 내려다 보면 더 아름답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조그만 마을이 하얀 모래, 에메랄드빛 강물과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히말라야에서는 그리 흔치 않은 풍경이었다. 예전에 마나슬루를 돌고 나올 때도 여기를 지나며 이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했는데 다시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일정 상으론 다라파니(Dharapani)까지 가려 했지만 진행 속도가 좀 느렸다. 카르테(Karte)에 있는 로지에 짐을 풀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로지 입구에 맛있는 김치가 있습니다란 한글 표지판이 붙어 있어 순간적으로 입에 침이 고였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네팔에서 네팔인들이 담근 김치가 어떤 맛일까 궁금했다. 더구나 여긴 히말라야 산속 아닌가. 그런데 짐을 풀고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김치가 떨어졌다고 오리발이다. 그렇다고 다시 짐을 쌀 수도 없고. 우리가 결국 이 표지판에 낚인 셈이었다. 온수에 샤워를 한다고 다들 부산하다. 상행 구간에서 샤워가 가능한 마지막 지점이 아닐까 싶어 나도 마지막으로 샤워장을 들어섰는데 차가운 물만 나와 낭패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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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rima bella 2014.01.06 06: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말라야에도 이런 시원한 물줄기의 폭포가 있군요.
    등반할 맛이 날 것 같아요^^

    • 보리올 2014.01.06 07: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히말라야엔 폭포가 그리 발달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곳인데 폭포가 아주 없을 리는 없지요. 엄청 큰 폭포도 이름이 없다 해서 좀 놀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접근은 그리 쉽지 않더군요

 

매년 한 차례씩 히말라야를 찾고 싶다는 꿈이 몇 년 간은 그런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안나푸르나(Annapurna) 라운드 트레킹에 도전한다.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와 안나푸르나 북면 베이스 캠프에 이어 안나푸르나 라운드 코스까지 트레킹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트레킹을 함께 할 일행은 나를 포함해 모두 6. 아주 단출한 구성이었다. 밴쿠버 산에서 인연을 맺은 세 분에 추가하여 논산에 계시는 비구니 스님 두 분이 참여를 하였다. 여섯 명 중에 두 명은 히말라야가 초행길이라 고산 지역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했다.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 예정대로 아침 7시에 카트만두를 출발할 수 있었다. 동절기로 들어서는 11월임에도 햇볕이 따가웠다. 도심을 빠져나가며 마주치는 거리 풍경은 여전했다. 코를 찌르는 매연도, 시끄러운 경음기 소리도 예전 그대로였다. 그런데도 여기 사람들은 짜증을 부리는 법이 없고 바삐 서두르지도 않는다. 역시 네팔답다고나 할까. 베시사하르(Besisahar)까지는 전세버스로 6~7시간을 예상한다. 실제 거리야 그리 멀진 않지만 도로 사정이 엉망이라 버스는 세월아 네월아 노래를 부르며 달린다. 그곳은 마나슬루(Manaslu) 라운드 트레킹을 마치고 버스에 올랐던 곳이라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아침 구보에 나선 군인들이 버스 옆을 질러 간다. 하얀 교복을 차려입은 여학생들은 발걸음 가볍게 학교로 가고 있다. 정겨운 네팔 풍경이 차창을 스쳐 지난다. 갑자기 검정색 도요타 SUV 차량 한 대가 경광등을 돌리며 우리를 추월해간다. 그 꽁무니에는 3성 장군 표식이 매달려 있었다. 딱딱한 표정의 호위병들이 탄 트럭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들이 들고 있는 총구가 섬뜩했다. 네팔에서 3성 장군이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위치가 아닌가. 카트만두 분지를 벗어나자, 공기도 깨끗해지고 소음도 적어져 마음이 편안해졌다.  

 

정오가 가까워오자 기사가 허름한 현지식당 앞에 버스를 세웠다. 메뉴라곤 오로지 달밧만 있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네팔에 처음 온 사람들에겐 이들의 주식인 달밧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네팔 식당은 대부분 외국인과 현지인을 구분해 서로 다른 가격을 받는다. 물론 테이블이나 식기도 약간은 차이를 둔다. 모두들 달밧을 별 부담없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이번 여행이 수월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달밧만 먹을 수 있다면 네팔 여행은 무척 쉬워진다.  

 

베시사하르에 도착할 즈음, 왼쪽으로 안나푸르나 연봉이, 오른쪽으론 마나슬루 연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나푸르나 정상은 구름에 가려 식별이 어려웠다. 흰눈을 이고 있는 마나슬루의 장엄한 모습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마나슬루야, 오랜만이다!’ 속으로 마나슬루에게 재회의 인사를 건넸다. 베시사하르는 개발 붐에 몸살을 앓는 듯이 보였다. 여기저기 골재 채취장이 흉물스럽게 자리잡고 있었고 사람들이 쭈그리고 앉아 돌을 깨고 있었다.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히말라야 깊은 산속까지 개발붐이라니이런 산골 모습을 보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시사하르에서 샹게(Syange)까지는 짚으로 이동이 가능해졌다. 몇 년 전까진 두 발로 걸었던 구간인데 그 새 차가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안나푸르나 라운드 구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이야긴 바로 이 때문이다. 전에는 3주 잡았던 것을 요즘엔 2주면 충분하고, 어쩌면 멀지 않아 1주 코스도 생겨날 판이다. 신작로가 탐탁치 않아도 차로 갈 수 있는 구간을 걸어가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가격부터 협상을 벌였다. 1인당 300루피면 충분하다 들었는데 처음 만난 기사는 7,000루피를 달라고 하고, 두 번째 기사는 5,000루피를 요구한다. 너무 시간을 끌 수가 없어 그 금액에 가기로 했다.  

 

짚으로 2시간을 달렸다. 그 울퉁불퉁한 길을 쉬지 않고 운전을 해야 했다. 중간에 펑크난 타이어를 갈아 끼웠다. 구불구불한 벼랑 위를 달릴 때는 아찔한 곡예 운전에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 새로 다리를 놓고 있는 현장에서 차가 멈췄다. 여기서부터 샹게까지는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어차피 내일부터 걸을테니 컨디션 조절한다 생각하고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 것이다. 1시간 30분을 걸었나. 샹게 로지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저지대일 때 가능하면 샤워를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이번 트레킹은 잠과 식사를 모두 로지에서 하기로 했다. 로지에서 제공하는 볶음밥이나 계란 프라이, 모모(Momo)라 불리는 만두로 때워야 한다. 첫날 저녁인지라 별 어려움 없이 식사를 마쳤다. 시장이 반찬이란 말이 실감이 났다. 비행기에서 면세품으로 산 위스키 한 잔씩에 마음이 들뜬 모양이다. 보름달이 보여 로지 밖으로 나왔다가 계곡에 놓인 출렁다리에 올랐다. 보름에서 하루나 이틀은 지난 듯이 보였지만, 달빛이 너무 밝아 별들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히말라야의 밤하늘을 다시 볼 수 있어 가슴이 훈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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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누리 2014.01.04 15: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보리올 2014.01.04 16: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따끈한 커피 향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근데 하누리님도 산과 사진, 여행 모두를 좋아하시네요. 좋은 글과 사진으로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시니 큰 덕을 쌓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십시요.

  2. Justin 2014.01.19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드디어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래킹 시리즈의 첫 편을 읽어보았네요. 앞으로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됩니다!

    • 보리올 2014.01.20 12: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블로그 글도 차례를 정해 놓고 순서대로 보냐?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은 워낙 유명하다만 실제 가본 소감은 좀 별로였다. 사람도 많고 바가지도 심하고 너무 개발이 많이 되었고. 아직 개발이 덜된 다른 코스를 추천한다.

  3. 설록차 2014.01.20 0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에 가셨던 코스와는 길이 다른것인지~높이가 달라지는지~ 다른 점이 뭐에요?
    그동안 모니터의 작은 글자를 보면 초점이 안맞고 눈물이 나서 읽기가 힘들었는데 다행히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 보리올 2014.01.20 12: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니터의 문제였군요. 고치셨다니 다행입니다. 안나푸르나에는 세 개의 대표적인 트레킹 코스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는 해발 4,130m의 남면 베이스 캠프까지 오르는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 코스가 가장 쉬운 편이죠. 로지, 음식 등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보통 5~6일 정도 걸으면 됩니다.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은 보통 10~12일 정도 걷는데 안나푸르나 주봉 아래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라 보면 됩니다. 이 코스에서 가장 높은 곳이 토롱 라로 해발 5,416m입니다. 고산병 때문에 여길 오르는 일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안나푸르나 북면 베이스 캠프는 안나푸르나 정상을 오르려는 원정대 아니면 잘 안갑니다. 베이스 캠프의 높이는 4,200m라지만 가는 길이 좀 험합니다. 로지같은 시설이 없어 텐트를 쳐야 하는 일도 좀 성가시구요. 나중에 안나푸르나를 가시려면 ABC 코스부터 가시는 것이 수순입니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신지요?

 

 

진주까지 내려온 김에 박정헌 대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이 친구는 사천 출신의 산사람으로 산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은 전형적인 경상도 터프가이 같았다. 그런 그가 2012 8 31일 진주에다 히말라얀 아트 갤러리(Himalayan Art Gallery)를 오픈했다는 이야기를 페이스북을 통해 들었다. 난 그가 열심히 산에나 다니는 산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히말라야 예술에 대한 안목이 이렇게 높은 줄은 미처 몰랐다. 어떤 작품들로 갤러리를 꾸몄을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박대장은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바위꾼 중 한 명이다. 알파인 스타일로 히말라야 고봉을 오르던 거벽등반가였다. 지난 2005년인가, 후배 최강식과 둘이서 히말라야 쿰부 지역의 촐라체를 등반하고 하산하다가 최강식이 크레바스에 빠지는 사고를 당했다. 9일간의 사투 끝에 조난 사고에서 둘 다 살아 돌아온 기적같은 이야기를 <>이란 책으로 엮었다. 물론 그 댓가로 두 사람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잘라야 했다그 후 박대장은 거벽 등반에서 패러글라이딩으로 방향을 전환해 여전히 히말라야를 찾고 있다. 패러글라이딩으로 장장 2,400km에 이르는 히말라야 횡단 비행을 해낸 것이다. 한 마디로 대단한 친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어느 잡지사와 인터뷰한 내용이 생각난다. 촐라체 조난 사고 당시의 심경 묘사가 너무나 절절해 그걸 보는 순간 내 가슴이 먹먹해졌던 기억이 난다.    

죽음은 한 순간이다. 크레바스에 빠진 후배를 구하려고 할 때 내 안에서 또 다른 내가 나와서 나를 유혹했다. 또 다른 나는 최강식은 죽었다고 나에게 끝없이 속삭였다. 후배가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죽는 길이고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사는 길이었다. 23m 깊이 크레바스는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다. 후배의 몸무게를 지탱하느라 나도 척추가 나간 상황이라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자일을 끊어야만 내가 살 수 있었다. 크레바스 안에서 후배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 오히려 절망했다.”    

 

갤러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전화를 걸어 정확한 위치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박대장이 갤러리 문 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늦은 축하 인사를 건넸다. 갤러리에 들어서자, 여긴 한국이 아니라 네팔 박타푸르나 파탄에 와있는 느낌이 들었다. 갤러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정성을 들이고 신경을 쓴 기색이 역력했다. 박대장의 안내로 전시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네팔 네와르 건축양식으로 조각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네와르 2층 창틀과 공작새 문양 창틀은 네와르 최고의 목각 장인인 레드 샴 실파카(Radhey Shyam Silpakar)가 기증한 작품이라고 한다. 네팔에서 꽤 유명한 조각들인데 여기서 볼 수 있다니 신기했다. 작품을 고르고 여기까지 가져온 박대장의 노고에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그 외에도 박대장이 패러글라이딩을 하면서 찍은 히말라야 사진과 소품이 걸려 있었다. 그는 히말라야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산사람이 분명했다. 박물관 뒤에 차실을 하나 마련해 놓아 거기서 차 한 잔을 마셨다. <>이란 책에 저자 서명을 해서 건네준다. 오래 전에 사서 읽었던 책이지만 고맙게 받았다. 어떤 연유로 히말라얀 아트 갤러리를 세웠는지 물었고, 그의 비전을 들었다. 그는 네팔 산악 지역에 사는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을 세우고, 히말라야 예술가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며, 세르파의 탐험 활동을 지원하는 꿈을 이루고 싶다 했다. 그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매달 얼마씩를 후원하는 약정서에 서명을 해서 박대장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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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드래곤 2013.12.05 1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시품도 중요히지만 좋은일도 하시는군요

  2. 보리올 2013.12.05 14: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일들이 더 확산되어야 한다고 전 생각합니다. 박대장이 갤러리를 오픈한 취지가 좋으니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리라 믿습니다. 그나저나 드래곤님도 사진과 여행 좋아하시는 것을 보니 역마살이 대단하신가 봅니다.

  3. 설록차 2013.12.07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향이 가까워 진주에 갤러리를 열었겠지만 위치가 좀 아쉬워요... 서부 경남의 요충지라해도 히말라야 문화를 이해하고 찾아올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길 바깥에 위치한 조각 창문틀이 손상되지 않고 잘 보관이 될런지 걱정됩니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만든 조각을 보니 예술을 넘어 참선의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할 수 있을것 같아요... 옮겨온 분의 정성도 대단하구요... 배 건너에 외가가 있고 본적도 진주에 있어 그 일대가 눈에 선합니다...^^

  4. 보리올 2013.12.07 1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방이란 한계는 분명히 있겠죠. 하지만 박대장의 본거지라 이 갤러리를 발판으로 지역 특성을 살린 여러 행사가 치뤄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어떤 일이든 열정이 대단한 친구니 잘 꾸려 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언제 고향 가시면 한번 들러 보세요.

 

카트만두에서 택시 한 대를 전세내 박타푸르(Bhaktapur) 구경에 나섰다. 나야 몇 번 다녀온 경험이 있어 따로 가이드를 쓰지 않고 내가 직접 일행들을 안내했다. 박타푸르에 오면 으레 들르는 곳을 차례로 돌아 나왔다. 덜발 광장(Durbar Square)과 왕궁을 지나 타우마디 광장(Taumadhi Square)까지 한 바퀴 돌고 나서는 허기를 때우러 시장통에 들렀다. 네팔 떡집같은 곳에서 눈으로 뭔가를 대충 시켰는데 너무 달아 혼났다. 이건 완전 설탕 덩어리 그 자체였다.

 

 

 

 

 

 

 

 

우리 앞으로 결혼 행렬이 지나가 예정에도 없던 구경을 했다. 풍악을 울리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가고 그 뒤를 노란 꽃으로 장식한 차량이 따라간다. 신랑, 신부를 직접 볼 수 없었던 것이 좀 아쉬웠다. 박타푸르를 빠져나오다 갑자기 바퀴가 덜컹거려 차를 세웠다. 왼쪽 앞바퀴가 펑크가 난 것이 아닌가. 운전기사는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바퀴를 갈아뀐다. 그 시간이 엄청 빨랐다. 혹시나 우리가 다른 차를 타고 갈까봐 속으로 걱정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린 그렇게 야박한 사람들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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