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 해당되는 글 56건

  1. 2015.05.16 [네팔] 카트만두 ③
  2. 2015.05.14 [네팔] 카트만두 ②
  3. 2015.05.13 [네팔] 카트만두 ① (2)
  4. 2014.12.25 예천 회룡포 비박
  5. 2014.12.17 원주 서곡리 비박 (2)

 

타멜을 벗어나 아싼(Asan) 시장으로 향했다. 사람사는 냄새를 맡기엔 재래시장보다더 좋은 곳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쪽으로 가면서도 이번 지진으로 시장도 막대한 타격을 받았으면 어쩌나 싶었다. 예상대로 시장 규모는 예전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상인 숫자도 많이 줄었고 물건을 사려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의 활력은 여전했다. 사람들이 바삐 오가고 물건값을 두고 흥정하는 소리로 시끄럽기까지 했다. 예기치 못한 지진으로 나라 전체가 침통한 분위기라 해도 어차피 산 사람은 삶을 영위해야 하고 그런 민초들의 치열한 삶이 시장엔 있었다.

 

길거리 좌판에 몇 가지 물건을 올려놓곤 마냥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이 많았다. 야채 몇 단이 전부인 상인도 있었다. 초등학교 다닐 만한 이이들 넷이 꽃송이 몇 개를 올려놓곤 매대를 차렸다. 가격을 물어보는 사람도 없는데 아이들 표정은 진지했다. 누가 저것을 사러 올까 궁금했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차분히 기다릴 수는 없었다. 좁은 골목 양쪽으론 두세 평에 불과한 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판매하는 품목도 노점상보단 다양했다. 약재가게를 비롯해 생선가게, 야채가게, 튀김가게, 옷가게도 있었고 고기를 썰고 있는 푸줏간도 있었다. 두 팔이 잘린 마네킹이 쓰레기로 버려진 장면을 보곤 절로 미소가 나왔다. 네팔을 찾을 당시의 무거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사진) 시장에서 좌판을 깔고 장사에 여념이 없는 시장 상인들. 꼬마 상인들의 심각한 표정이 재미있었다.

 

 

 

 

 

 

(사진) 가게를 가지고 있는 상인들은 노점상에 비해선 그래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사진) 한가로운 릭샤꾼의 손에도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고, 쓰레기장에는 팔이 잘린 마네킹이 버려져 있었다.

 

 

(사진) 어둠이 내려 앉아도 가게는 밤늦게까지 불을 밝혔다.

 

 

 

(사진) 최근에 문을 열었다는 한식당 궁.

식당도 깨끗하고 음식도 정갈했지만 음식값이 다른 식당에 비해선 좀 비싸지 않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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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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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현지에서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카톨릭 교구청을 찾았다. 네팔 전역에 약 8,000명의 카톨릭 신도가 있어 34개 성당에서 미사에 참여한다고 한다. 그 때문에 네팔에 교구청이 생기고 주교좌 성당까지 생긴 것이다. 오랫동안 국교로 지정되었던 힌두교가 왕정이 무너지면서 덩달아 국교에서 철회되어 현재 네팔에선 종교 선택의 자유가 인정되고 있다 한다. 주교를 면담하기 전에 어썸션 성당(Assumption Parish)에서 미사부터 참여를 해야 했다. 카톨릭 신자는 아니었지만 전과정을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무려 한 시간 반이나 걸려 다섯 명의 신부가 집전한 미사는 경건하게 치뤄졌다.

 

우리의 주요 임무인 구호기관을 면담하고 지진 피해 현장을 살펴보고 난 후에 막간을 이용하여 타멜(Thamel)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여기는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 이전과 크게 다른 점은 거리를 활보하는 외국인의 숫자가 현격하게 줄었다는 것이다. 타멜 경기에 치명적인 타격이 있을 것이지만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치길 빌었다. 타멜 거리에도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들이 가끔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 숫자는 많지 않았다.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사람들이 사는 주거 공간이 나온다. 흙벽돌을 쌓아 지은 허름한 건물이 이번 지진에 용케도 살아 남았다. 여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안감을 느낄까 걱정이 앞섰다.

 

 

 

 

 

(사진) 네팔 주교좌 성당인 어썸션 성당에서 진행된 미사에 참여를 하였다.

 

 

(사진) 미사가 끝나고 기도 호텔(Hotel Kido) 안에 있는 일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사진) 카트만두의 길거리 모습은 여전히 활기로 넘쳤다.

 

 

 

 

 

 

 

 

(사진) 타멜의 길거리 풍경과 골목 안으로 숨어있는 주거 공간.

 

 

(사진) 일본인이 운영하는 우동집은 손님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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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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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후배의 부탁으로 급히 네팔을 다녀오게 되었다. 지난 425일 발생한 대규모 지진의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효율적인 지원방안을 찾기 위한 방문이었다. 카트만두야 그 동안 여러 차례 다녀온 곳이기에 낯선 곳에 대한 설레임은 없었다. 언론 매체를 통해 엄청난 지진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침통한 마음으로 비행기 트랩을 내려섰다. 하지만 차창을 스치며 지나가는 카트만두 도심은 예전과 같이 활력이 넘쳤다. 사람과 차량이 도로에 넘쳤고 매연, 클랙션 소리도 여전했다. 아무리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카트만두에선 무너진 건물이나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가물에 콩나듯 어쩌다 무너져내린 집이 한두 채 보였다. 카트만두는 실제로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았다. 사람들 얼굴도 평안하기 짝이 없었다.

 

카트만두를 걸으며 카트만두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왕궁의 담장이 길게 무너져내렸고 넓은 공터나 운동장에는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집을 잃은 사람들일까? 아니면 집이 무너질지도 모를 걱정에 밖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팔 전역에서 8,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는 상황에서 카트만두가 이만 해서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트만두 도심의 건물이나 가옥이 피해를 입었더라면 사망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카트만두 아래에 자리잡은 거대한 암반이 지진 피해를 줄였다는 이야기가 사실인 모양이다.

 

그렇게 신이 많다는 네팔에서 이 무슨 참변이냐고 한 마디 했더니 네팔인 친구가 답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신이 많았으니까 피해가 이 정도로 그쳤던 것이 아니냐는 반문에 할말을 잃었다. 지진이 발생했던 날이 네팔 휴일이었던 토요일이었다. 시각도 정오 직전인 오전 1155분이었다고 한다. 그 이야긴 집 안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는 의미다. 만약 이 지진이 자정 무렵에 일어났다면 집 안에서 잠자고 있던 엄청난 사람들이 참변을 당했을 것이란다. 이런 상황에선 어울리지 않겠지만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진짜 네팔 신들이 많은 덕이 아닌가 싶었다.

 

 

(사진) 카트만두 트라뷰반 공항에 내렸다. 공항 앞에 늘어선 인파의 환영을 받았다.

 

 

(사진) 담장 아래 쌓인 붉은벽돌이 내 눈에 비친 첫 지진 피해였다. 피해가 크지 않아 다행이었다.

 

 

 

 

(사진) 카트만두의 유명 이태리 레스토랑인 파이어 앤드 아이스(Fire and Ice)에서 리소토로 점심을 해결했다.

 

 

 

(사진) 그리 크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들었던 빌라 에베레스트(Villa Everest)는 지붕에서 기와 두 장 떨어진 것이 전부였다.

벽면 사진 속에선 박영석 대장이 웃는 모습으로 우릴 맞았다.

 

 

 

 

(사진) 왕궁 담장이 꽤 많이 무너져 있었다. 통째로 넘어진 어느 담장은 보도로 변했다.

잔디밭에 세워진 천막도 볼 수 있었다.

 

 

(사진) 빨래터를 지나면서 공기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사진) 저녁을 해결한 카트만두의 한식당 서울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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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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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5.05.24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팔에 다녀오셨어요...
    카트만두 같은 대도시에 피해가 적은 것은 천만다행이네요...
    낙천적인 사람들이라 잘 이겨낼거다 하셨지만 얼마나 불안하고 불편할지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일본이나 필리핀 지진 때 보다 언론에서도 덜 다루는 것 같아요..더 가난한 나라 아닙니까...
    관광객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클텐데 빠른 복구를 빌겠습니다...

    • 보리올 2015.05.24 20: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갑자기 네팔 다녀올 기회가 생겼습니다. 네팔의 현실을 참 잘 보셨습니다. 관광 수입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나란데 요즘은 그나마 트레커들도 발길을 끊고 있어 걱정입니다. 얼마간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늦가을 정취를 물씬 풍기는 10월 말에 맞은 비박 모임은 예천 회룡포에서 이루어졌다. 집결지로 직접 찾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난 버스를 타고 대전에서 문경으로 이동해 거기서 일행들과 합류를 했다. 우리 <침낭과 막걸리> 회원 중에 문경에 사시는 선배가 있는데, 그 분이 회룡포에 있는 주막 원두막을 비박장소로 섭외해 놓아 텐트를 칠 필요조차 없었다. 원두막에 대충 짐을 부리곤 카메라를 챙겨 마을 스케치에 나섰다. 회룡포 마을은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마을을 한 바퀴 휘감아 돌아가는 묘한 지형 안에 놓인 오지 마을이다. 하지만 강물이 만든 육지의 섬이란 독특한 지정학적 요인 때문에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우리가 도착한 늦은 오후 시각에도 회룡포엔 사람들이 많았다. 회룡포 마을로 드는 뿅뿅다리 위엔 강을 건너는 사람들의 줄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가족 단위로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그만큼 세간에 많이 알려진 관광지란 이야긴데 솔직히 나는 이곳을 처음 왔다. 햇볕이 낮게 깔리고 있어 사진을 찍기엔 좋았다. 강 건너 둑방 위엔 텐트촌이 형성되어 있었고, 그 주변엔 나락이 누렇게 익은 논이 펼쳐졌다. 누런 벌판에서 가을을 느낄 수 있었다. 속속 사람들이 도착하면서 긴 탁자를 채울 정도로 성원이 찼다. 고기가 구워져 나왔고 연신 술이 돌았다. 우리 모임 이름에 걸맞게 서산 막걸리가 분위기를 돋구는데 한 몫 톡톡히 했다. 많은 사람들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으로 성대한 만찬이 계속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안개 자욱한 뿅뿅다리를 다시 건넜다. 실제 눈에 보이는 풍경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몽환적인 운치를 풍겼다. 드라마 <가을동화> 의 배경이었고 12일도 여기서 촬영했다고 크게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이른 시각에 다리 건너로 산책을 나온 멤버가 몇 명 있었다. 아침 식사를 간단히 마쳤다. 복불복 제비뽑기로 뽑은 남정네 몇 명이 설거지를 나누어 했다. 네팔에서 온 다와도 뽑혔고 나도 거기에 간택을 받았다. 설거지에서 벗어난 여성회원들과 젊은 피들의 환호성이 들리는 듯 했다. 대전에서 성선이와 상은이가 찾아왔다. <영상앨범 산>이란 프로그램 촬영차 다녀온 남미 트레킹 기록을 책으로 낸 상은이가 저자 사인을 해서 일행들에게 책 한 권씩 전달을 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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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내외의 초청으로 우리 <침낭과 막걸리> 회원들이 원주에 모였다. 한 달에 한 차례씩 하는 비박 모임을 동생네 농가주택에서 하기로 한 것이다. 동생은 판부면 서곡저수지 옆에 있는 농가주택을 한 채 구입해 별장으로 쓰고 있었는데, 그것을 비박 장소로 선뜻 제공한 덕분이었다. 잔디가 깔린 마당이 넓어 텐트를 몇 동 칠 수 있었고, 야외 데크엔 대여섯 명 비박도 할 수 있었다. 우리 멤버 외에 네팔에서 온 앙 도르지의 아들 다와도 참석을 했다. 앙 도르지는 우리나라 산악계 인사들에게 많이 알려진 인물로 현재는 카트만두에서 빌라 에베레스트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다와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부산과 서울에서 어학원을 다닐 계획이었다.

 

예정보다 일찍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끼리 전어회를 안주 삼아 원주 막걸리가 한 순배 돌았다. 원주에서 살아있는 전어를 살 수 있다니 놀랍기도 했다. 전어는 회로도 먹었지만 숯불에 노릇노릇 구워서 먹기도 했다. 삼겹살도 뒤를 이었다. 일행들이 속속 도착을 하자 사람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취기가 오르기 전에 저수지나 좀 돌자고 했더니 몇 명만 따라 나선다. 어둠이 내려앉은 저수지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이 모임의 좌장인 허영만 화백이 늦게 도착을 했다. 여수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본격적인 저녁이 시작되고 막걸리 타임도 다시 불이 붙었다. 주량이 서로 다르듯 취침 시간도 제각각 달랐다. 동생이 미리 준비한 원주 막걸리가 동이 나고 멤버들이 들고 온 술도 떨어져 밤늦게 막걸리를 추가로 사와야 했다.  

 

옆 텐트에서 들려오는 폭격기 소리에 일찍 잠을 깬 허 화백과 둘이서 저수지 산책을 나섰다. 모두들 잠든 시각에 새벽 산책을 나가니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어스름한 저수지에 비친 산자락이 제법 운치가 있었다. 아침을 먹고 용수골로 올라 백운산 숲길을 좀 걷기로 했다. 정상까지 가는 산행이 아니라 두세 시간 숲을 걷는 산책이었다. 녹음이 우거진 산길은 너무 평화로웠다. 시원한 공기를 맘껏 들이켰다. 물이 불어난 계류를 건널 때는 우리의 돌쇠 성선이가 물로 들어가 돌을 옮겨 다리를 만들고 손을 잡아줘 모두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임도를 따라 얼마를 걷다가 길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노닥거린 후에 하산에 나섰다. 다시 계류를 건너려다 뒤에 처진 사람들 기다리는 틈에 왈가닥 여성 대원 셋이 물로 뛰어들어 물장구를 친다. 어딜 가나 끼가 너무 많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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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이샤7 2014.12.17 22: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회가 맛있어보이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