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몬조에서 루크라까지만 가면 된다. 부담없는 여정이라 출발 시각도 늦추었다. 9시에 로지를 나섰다. 좁은 골목에서 옷차림이 깨끗한 학생들과 교행을 하게 되었다. 첫눈에 네팔 학생들은 분명 아니었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 보았다. 싱가포르에서 수학여행을 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 그렇지. 그래도 열 서너 살 정도 되는 중학생들이 수학여행을 히말라야로 왔다니 너무나 의외였다. 그 중엔 싱가포르에 유학 중이라는 한국 학생도 한 명 끼어 있어 우리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그들은 남체까지만 간다고 했다.

 

타로코시(Tharokosi)에 도착하기 직전에 마오이스트 깃발을 들고 온 현지인이 통행료를 요구한다. 정모가 직접 나서 우리 일행이 모두 24명이라 했더니 무슨 소리냐며 들어갈 때 31명으로 카운트를 했다고 한다. 돈 받는 일이라고 이렇게 치밀할 줄은 정말 몰랐다. 헬기를 타고 몇 명은 먼저 하산을 했기에 인원이 줄었다 해명을 했다. 1인당 100루피씩 통행료를 냈다. 안나푸르나에 비해선 그래도 싸서 좋았다.

 

카트만두로 먼저 내려갔던 허 화백과 박 대장이 여기까지 마중을 나왔다. 우리와 함께 점심을 먹겠다고 식사도 거르곤 기다리는 시간 내내 맥주로 배를 채웠는 모양이다. 비록 헤어진지 며칠밖에 안 되었지만 다들 반갑게 부둥켜 안으며 해후를 즐겼다. 박 대장은 그 사이 카트만두에서 부인과 둘째 아들을 데리고 왔다. 타로코시에서 점심을 먹었다.

 

빗방울이 간간이 돋더니 루크라 도착할 즈음엔 진눈깨비로 변해 버렸다. 구름이 잔뜩 끼어 시야도 그리 좋지 않았다. 트레킹 마지막 날에 날이 궂은 것이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고산 지역에서 비를 맞았다면 청승맞은 것은 둘째치고 저체온증이 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서서히 진눈깨비가 눈으로 바뀌더니 눈송이가 점점 커진다. 고산 지역에서도 보지 못한 눈을 드디어 루크라에서 보게 되었다. 설마 내일 비행기 뜨는데 문제는 없겠지?  

 

루크라에선 다와(Dawa)가 운영하는 히말라야 로지에 들었다. 식당도 넓고 시설도 좋은 편이었다. 특히 화장실이 깨끗해 마음에 들었다. 다와는 루크라에선 유명 인사다. 이곳을 지나는 대부분의 원정대가 다와에게 부탁해 포터나 좁교, 식량을 구한다. 거의 만능 해결사라고나 할까. 그래서 돈도 많이 벌었고 이 지역에선 영향력도 제법 세다. 다행히 박 대장과 정모와는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어서 우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저녁에 또 한 차례 술 파티가 벌어졌다. 허 화백과 박 대장이 카트만두에서 공수해온 와인이 한 순배 돌았다. 저녁 메뉴는 닭도리탕. 어제에 이어 오늘도 너무 많이 먹고 마셔 배도 부르고 다들 기분좋게 취했다. 이리 미련스럽게 먹고 마시는 자신을 탓하면서 호준이를 데리고 맥주 한 잔 하러 또 밖으로 나섰다. 많은 일행들 뒷바라지하며 고생이 많았을텐데 맥주 한 잔이라도 사주고 싶었다. 박 대장이란 거물이 참가하게 되어 일정에 변경이 많았던 점이 가장 힘들었다고 실토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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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rtyLUV 2013.07.10 16: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와우! 멋지네요!^^
    좋은 사진과 글 잘 보고 갑니다~

  2. 보리올 2013.07.11 03: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칭찬의 댓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댓글 덕분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곤 합니다.

  3. 안영숙 2013.10.02 2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한번 가보고 싶은데,,, 유효기간이 임박해서 포기.

  4. 보리올 2013.10.03 07: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회장님이 유효기간 임박했다 하면 다른 사람들은 거의 폐차 상태일텐데 이거 어쩌면 좋죠? 어떻게 하면 유효기간 연장할 수 있을지 빨리 묘안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아침 6시에 기상해 6 30분에 아침 식사, 7시 출발로 아침 일정을 잡았다. 날씨가 쾌청해 기분이 좋았다. 로지에서 마차푸차레가 빤히 보인다.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는 모습에 가슴이 설렜다. 하늘 높이 솟은 자태는 또 얼마나 수려한지사실 안나푸르나 주봉(8,091m)은 베이스 캠프에 올라야 겨우 진면목을 보여주는데 반해, 마차푸차레(6,993m)는 트레킹 출발점부터 베이스 캠프까지 줄곧 우리 시야에 들어온다. 마차푸차레는 물고기 꼬리처럼 보인다 해서 피시 테일(Fish Tail)이라고도 부른다. 네팔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산이라 아직 입산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샤우리 바자르(Syauli Bazar)를 지나쳤다. 대부분 수확이 끝난 벌판에 뒤늦게 가을걷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꼬마들이 몰려와 사탕이나 펜을 달라고 손을 벌린다. 없다고 하면 그럼 돈을 달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한다. 악의없는 아이들 표정이 귀여워 앞에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모니터로 사진을 보여주면 왁자지껄 웃으며 좋아라 한다. 귀여운 녀석들.

 

마오이스트가 나타나 통행료 1,000루피를 수거해 갔다. 아니, 아직도 돈을 받는 마오이스트가 있나? 한 번 점잖게 따져 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모디 강을 따라 올라간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간드룩(Ghandruk)으로 가는 길이고 우리는 오른쪽 좁은 길로 들어섰다. 간드룩으로 가면 고레파니(Ghorepani)를 거쳐 푼힐(Poon Hill) 전망대로 갈 수가 있다. 가끔 푼힐 전망대를 다녀와선 히말라야 8,000m급 고봉을 등정한 것처럼 자랑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길이 갈리는 지점에선 예외없이 포터 누리가 우리를 기다렸다가 길을 알려주고는 다시 앞장을 선다. 나이는 좀 들어 보였지만 인상이 참으로 착해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햇볕이 점점 강해진다. 땡볕에 오르막을 걷느라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히말라야에서, 그것도 11월 중순에 이렇게 더위에 녹아나고 있으니 누가 알면 엄살이라 하겠다. 빨리 고도를 높여 선선한 지대로 오르는 것이 최선책이다. 오늘 우리가 오르는 고도는 755m라지만 거리는 만만치 않았다. 내일부터는 거리보다 고도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뉴 브리지(New Bridge)를 지나 작은 능선 위에 자리잡은 지누 단다(Jhinu Danda, 1,780m)에 도착했다. 입구에 태극기를 걸어 놓은 로지에 들었다. 아무래도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모양이었다. 온수를 한 통 사서 샤워를 했다. 저녁 먹을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책을 읽다가 낮잠을 잤다. 로지 주인과 동생이 대화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 그 사이에 둘이 친해진 모양이다. 웰컴(Welcome)을 한국 말로 뭐라 하는지 묻는다. 산 속이라 어둠이 일찍 내려 앉는다. 깜깜한 밤중에 헤드랜턴을 키고 올라오는 한국인들이 있었다. 오늘 아침에 카트만두를 출발해 하루에 여기까지 왔단다. 우와, 의지의 한국인들을 여기서 또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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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더위를 피하자는 의견에 출발 시각을 아침 6시로 조정했다. 다행히 구름이 잔뜩 끼어 날씨가 그리 덥지는 않았다.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며 몇 개 마을을 지났다. 절구통에 곡식을 빻는 아가씨들, 밥 짓는 여인, 커다란 등짐을 나르는 처녀들, 손님용 달밧을 준비하는 길거리 식당 아줌마 등 자연에 순응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을 접할 수 있었다. 카메라를 피하지 않는 그들이 고마웠다. 치치라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마칼루를 다녀온 지난 2주 사이에 도로 공사 진척이 꽤 많이 되었다. 이런 속도라면 마네반장까지 금방 완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구간에는 한가로운 농촌 풍경이 펼쳐졌다. 한 번 지났던 길이기에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전에 못보고 지나친 풍물들을 감상할 수 있어서 나름 재미있었다. 네팔, 중에서도 히말라야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뭐라 할까, 세월의 흐름이 멈춰진 그런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네처럼 하루하루가 변화무쌍하고 뭔가에기는 듯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 시각에서 본다면 천년을 아무런 변화없이 무미건조하게 사는 그런 느낌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자연에 기대어 사는 파란만장한 삶이 있으리라.

 

눈을 시원하게 하는 풍경이 이어져 마음은 행복했지만 마네반장까지 10시간이 넘게 걸리는 다리품에 꽤 힘이 들었다. 경치가 좋은 곳에선 사진을 찍는다 시간을 끌긴 했지만 그래도 무척 먼 길이다. 마네반장에서 우리를 환호하게 만든 것은 시원한 맥주. 가게에 냉장고가 있었던 것이다. 그 시원함, 그 고마움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마네반장에서 무슨 축제가 있다고 지난 번 텐트를 쳤던 운동장을 쓸 수가 없었다. 마을 입구 공터에 텐트를 쳤다. 문명으로 귀환한 듯 여유롭게 시내를 구경했다. 200m 되는 도로 양쪽에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지난 번에 들렀던 도너츠 집에서 럭시를 몇 병 사서 옹추에게 주었다.

 

한데 들려오는 소식은 그리 반갑지가 않다. 얼마 전에 마오이스트 한 명이 살해되어 파업을 벌이고 있는 중이란다. 버스나 짚 모두 발이 묶여 버렸다. 다행인 것은 오늘 저녁에 파업이 끝이 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일 공항까지 몇 시간을 또 걸어야 한다. 한 대장과 선배님 몇 분 모시고 도너츠 집으로 가서 럭시를 샀다. 술 김에 비박을 하겠다고 학교 처마 밑에서 잠을 자다가 모기에 쫓겨 결국은 텐트로 들어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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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개가 짖는 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예정보다 일찍 일어나 텐트 밖으로 나왔다. 비는 그쳤지만 구름이 가득한 우중충한 날씨를 보인다. 덕분에 날씨가 선선해졌다. 아룬(Arun) 강을 건너기 위해 줄곧 내리막 길을 걸어 850m 고도를 낮추었다. 힘들게 올라온 높이를 이렇게 허무하게 반납하는 일처럼 아쉬운 것이 없다. 눔에서 계곡 건너 빤히 보이던 세두아(Sedua)까진 강을 건넌 후, 800m 고도를 올려야 하고 오늘의 목적지, 타시가온(Tashigaon)까진 거기서 다시 고도 610m를 올려야 한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사람을 녹초로 만드는 지옥 코스가 계속되었다.

 

세두아에서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고 입산 신고를 했다. 여기서 마칼루-바룬 국립공원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과거엔 반군 세력권 안이라 관리 사무실을 열 수가 없었다. 반군이 제도권으로 들어가면서 사무실을 다시 열게 된 것이다. 그래도 어느 건물엔 낫 모양이 그려진 빨간 깃발이 나부끼고 있어 섬찟한 마음이 들었다. 마오이스트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고 오지 지역은 아직도 마오이스트의 영향력이 강하단 의미 아니겠는가.

  

오후 2시가 넘어 섹시난다에서 늦은 점심을 들었다. 너무 지치고 허기진 일행들에게 비빔냉면이 건네졌다. 눈이 동그레진 대원들, 허겁지겁 그릇에 얼굴을 파묻었다. 동네 꼬마들이 모두 몰려와 우리 식사 장면을 보면서 저희들끼리 재잘대며 웃는다. 우리가 졸지에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이다. 식사가 끝나자 절묘하게 시간을 맞춰 빗방울이 떨어진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후엔 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린다. 다시 빗길 산행 채비를 갖췄다.

  

또 긴 오르막을 걸어야 했다. 길 옆으로 논과 밭이 펼쳐진다. 보리밭이 아름답게 펼쳐진 타시가온에 도착했다. 해발 2,110m. 이 마을 이후로는 사람사는 동네가 없단다. 양이나 염소를 치는 목동들이나 가끔 만날 있을 것이다. 한 대장이 쿡 템바에게 염소를 한 마리 잡으라 지시한다. '먹은 만큼 간다' 한 대장의 평소 지론 외에도 이 마을을 떠나면 양이나 염소 사기도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긴 닭이 의외로 비쌌다. 염소 한 마리와 닭 다섯 마리 가격이 엇비슷하다. 닭 다섯 마리는 우리 대원들만 먹을 양이지만 염소 한 마리를 잡으면 포터들까지 모두가 포식할 수가 있다.

 

고기 냄새를 좇아 마오이스트를 자칭하는 앳된 아가씨 두 명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사다인 옹추를 통해 마을 발전 기금을 기부해 달라 한다. 요청인지, 협박인지가 좀 헛갈렸다. 마오이스트가 제도권으로 들어온 이 마당에 무슨 돈 요구냐며 한 대장이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한밤중에 총을 가지고 나타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우린 옆에서 마음을 졸일 수밖에. 하지만 밤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텐트를 친 곳 바로 옆에 있던 가게가 졸지에 주막으로 변해 버렸다. 굳게 문이 닫혔던 가게가 우리 출현에 급작스레 문이 열리더니 이제는 주모가 호객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주모는 이 마을에 사는 도마 자매. 언니인 도마는 30살이고 동생은 23살이란다. 베이스 캠프 가는 구간에 매점을 더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위에 있는 매점으로 올라갈 작정인 모양이다. 우리를 봉으로 본 것 같은데, 점점 비싸지는 맥주를 누가 그리 많이 팔아줄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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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티 콜라를 출발해 마차 콜라(Machha Khola)로 향한다. 콜라라는 말은 이라 보면 된다. 영어의 크릭(Creek)과 리버(River)의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 귀에 익숙한 코카 콜라, 펩시 콜라란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마을에는 한 해 농사를 마감하는 손길로 바빠 보였다. 벼베기에 탈곡, 밭갈기 등으로 농촌에 활력이 넘쳤다. 한 촌노가 볼이 퉁퉁 부운 채 우리에게 약을 달란다. 그 동안 치통으로 엄청 고생했을 것이 분명했다. 약사 신분인 김덕환 선배가 정성껏 치료를 해주었다.

 

점심으로 삶은 감자와 계란을 먹고 쉬엄쉬엄 걸었다. 일정이 그리 빡빡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나에겐 현지인들과 소통하고 그들 삶을 들여다 볼 시간적 여유가 있어 좋았다. 행색은 비록 초라했지만 큰 욕심 없이 살아가는 그들이기에 탐욕에 찌든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마스테! 인사를 하며 펜을 달라, 사탕을 달라 조르는 꼬마들이나 사진을 찍은 댓가로 돈을 요구하는 할머니까지 그리 싫지가 않았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아들들, 특히 장남은 머리를 삭발하는 네팔 풍습을 들었기에 아르마라 마을의 상주들 사진을 찍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우리 콜라에서는 학교 옆을 지나게 되었다. 쉬는 시간인 듯 학생들이 밖으로 나와 우리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 한다. 포터 한 명이 저 멀리 설산을 가르키며 마나슬루, 마나슬루라고 외친다. 드디어 마나슬루가 우리 눈에 잡힌 것이다. 5시간 예상한 거리를 8시간에 걸었다. 이틀을 꼬박 걸었건만 아직도 해발 고도는 930m를 가르키고 대낮 찜통 더위는 여전했다. 강변으로 내려가 신발을 벗고 강물에 발을 담갔다.

 

하룻밤 야영할 마차 콜라에서 마오이스트를 처음 만났다. 텐트를 치고 있는데 영수증 철을 들고와 통행료를 요구한다. 이 지구상에서 점점 세력을 잃어가는 공산주의자들이 아직도 여기선 활개를 친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마오이스트와 정부군 사이에 군사적 충돌을 느낄만한 흔적이 없었기에 그냥 버틸까도 했지만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할 수는 없는 일. 한 사람당 2,000루피 달라는 것을 1,400루피로 깍은 것에 만족할 수밖에. 또 다른 마오이스트가 나타나 통행료를 요구할 지도 몰라 영수증을 챙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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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니카 2012.11.22 2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그만 바구니 요람에서 평화롭게 잠든 아기의 모습이 참으로 편안합니다. 장작을 패고 물을 길러 다니고 큰 산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감하는 그들의 삶이 어쩌면 지구상에서 가장 사심없이 사는 사람들 일겁니다.